마음의 언어
無路 이영주
요사이 농촌의 실정은 주인과 외국인 도우미가 농사를 짓는다.
우리 밭에 도지로 호박을 심은 강씨네도
중국 한족부부가 농사일을 도와주고 있다.
다른 집은 매년 사람이 바꾸는데 강씨네는 농사철만 되면
같은 사람이 3년 째 해마다 찾아와 농사일을 도와주고 있다.
농사만 지으면 대략 4개월가량 머물게 되는데
강씨네는 호박 외에 나무를 심은 사이에
콩과 팥을 심어 관리하기에 3월에 한국에 오면 농사일이 끝나는
11월쯤 다시 중국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두 부부는 눈치가 빠르고 농사일이 익숙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 주인이 시키기 전에 일을 찾아서 척척 한다.
한국말이 익숙지 못해 눈빛으로 교감을 나누고 손짓발짓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농사일을 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고 했다.
매우 더운 날이었다.
집 테라스 공사를 하는데 강씨가 오래간 만에 집에 들러
차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내일은 자기네 도우미부부 남편의 생일 이니 저녁은 외식을 해서
고기를 좀 사주워야겠어요.”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박밭을 내려다보니
부부는 호박을 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부부가 타국까지 와서 일하니 얼마나 힘들까?
나와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매일 얼굴을 대하니
선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일할 때 신기 좋은 등산양말 한 켤레와 평상시에 신는 양말
한 켤레씩을 그들 부부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집에 와 아내에게 부탁해 예쁜 포장지에 선물을 포장해 두었다가
밭에서 일을 끝낸 부부에게 선물하니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었다.
고맙다고 연실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선물을 받은 사람보다 내가 더 기분이 좋았다.
이튼 날 풀을 베려고 낫을 갈았는데 녹을 제거해도
녹 쓴 낫은 풀이 잘 베어지지 않고 엇나가 힘이 들었다.
호박밭에서 농약을 치던 남자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낫을 가지고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사람이 낫을 몇 번 숫돌에 갈더니 손끝으로 낮을 만져보고 나서
풀을 베어보라고 한다.
정말 낫만 대면 풀이 싹싹 깨끗하게 베어졌다.
웃으면 고맙다고 하니 낫이 더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한다.
3개 더 가지고 가서 그 것까지 낫을 갈았고
그 낫으로 힘들지 않게 풀을 베었다.
중국친구는 낫의 녹을 제거해 반짝이는 것보다
날이 서야 잘 베어진다며 낫을 갈고 나서
날이 섰는지 손끝으로 만지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풀이 사각사각 잘 베어지니 힘도 적게 들고 빨리
일을 끝낼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故)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칠십년이 걸렸다고 했다.’
인간의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아도 진실한 사랑은
국경을 넘어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힘든 밭일을 하는데 그들 부부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지가 된다.
요사이 중국친구는 마주칠 때 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부인은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눈인사를 한다. (2015.7)
첫댓글 하나 하나 배워가는 농부모습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