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이는 의도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배달된 수필 계간지를 들춰보다가 어떤 글에 시선이 꽂혔다. 부제목으로 달린 ‘피천득의 수필 <인연>은 수필이 아니다.’라는 것이 눈에 펀득 띄어서였다. 그건 ‘상식의 허(虛)와 실(實)’이라는 제목의 글로서 금아선생 수재자인 석아무개 서울대 명예교수가 2011년에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한 ‘스승, 피천득을 말하다.’라는 내용을 잡지사 편집자가 발췌하여 재 수록한 것이었다.
내용은 누구나 수필로 믿고 있고, 피천득 선생의 명수필로 인정하는 작품이라서, 수필이 아니고 소설이라는 것이어서 뜻밖이었다. 이는 일종의 폭탄선언에 가까워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제자는 그 수필이 소설의 근거로 다음의 예를 들고 있었다. 이 작품은 1959년 일조각 출판사에서 ‘금아 시선집’을 펴낼 때, 잘못 묶였다는 것이다. 소설인데도 싸잡아 함께 묶어서 수필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연’에 나오는 청년은 약간 치졸하고 질투심이 많은데 그점이 안타까워서 한번은 피천득 선생에게 여쭈었더니 “아무려면 어떠냐”하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면서 석교수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스승을 옹호했다. 그 당시 선생이 일본에 간 것은 맞는데, 서울 YMCA를 통해 도꾜 관계자를 만나 기숙할 집을 소개받을 때 잠시 글 중의 주인공인 아사꼬를 만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면서 왜 자꾸만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 피천득선생이 ‘아무려면 상관없다’고 말할 정도로 당신은 그렇게 대범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가 아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해가 2007년이고, 그의 대담이 이루어 진 것이 2011년이면 한참 후인데 본인이 침묵하면서 굳이 밝히지 않았던 것을 제자가 뒤늦게 나서서 후일담으로 밝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또 이 글을 수필지에 재수록을 한 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논란이 된 <인연>이란 작품의 구성은 크게 세 단락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로 화자가 17세 되던 때 일본에 건너가 성심소학교 일학년생 인 아사꼬를 만나 목을 끌어안고 뺨에 입 맞추며 자기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반지를 선물 받는다.
10여년이 흐른 후 청순하고 세련된 한 송이의 목련 꽃같은 여대생이 된 그녀를 만나 추억의 성심여학교를 함께 걸으며 문학이야기를 나누고 사브르우산을 찾아오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경과한 후 전에 그가 사준 뽀족 창문이 그려진 동화책 속의 집과 같은 곳에서 사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이때 그녀는 이미 맥아더사령부의 소속군인 일본 장교와 살고 있는걸 보게 된다. 그때는 이미 백합 같은 얼굴은 많이 시들었다. 그는 만나보고서 악수도 없이 헤어진다. 그러면서 ‘아니 만났어야 좋을 것을’하고 후회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완곡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2007년 2월에 펴낸 <막쓰는 수필 잘 쓰는 수필>이란 수필 작법서로서 다음을 들어 아쉬움을 표명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대략 1925년 이후가 되는데, 그때는 이미 일제가 우리에게 핍박을 가하여 온 민족이 고난의 시절을 보내던 때다. 그런데 조선의 지식인이 그 일제의 심장부에 들어가 한갓 어린 일본소녀와 노닥이며 연애감정이나 키운 것이 과연 국민정서에 맞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수필문단에서 명작으로 추켜세워지고 교과서에도 실려 필독의 작품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못마땅할 뿐 아니라 지식인의 개념 없는 행동과 처신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한데, 이제 와서 느닷없이 그 작품이 수필이 아니고 소설로 쓴 것이라며, 본인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을 제 삼자가 주장하는 의도가 나변에 있는 것인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의 인식은 180도 바꾸어야 할것 같은데, 허구로 쓴 소설일 뿐이었다면 뒤통수를 맞는 격이 아닌가.
어쩌면 그 점을 노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공연히 오해를 한 거야. 피천득 선생은 그런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야."하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편에 이는 생뚱맞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왜 그러느냐 하면 문제의 작품인 인연은 이미 수필작품의 전범으로 공인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독자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경 의도하는 바가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혹시라도 우수한 수필작품 한편을 매장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스승의 인격을 지키고자함일까. 아무튼 궁금한 의도가 머릿속을 스치면서 어쩐지 씁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2015)
첫댓글 피천득님은 義士, 烈士. 그렇다고 志士도 아니고 평범한 삶을 아름답게 노래한 작가로 생각이 됩니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작품마다 작은 것에 사랑과 긍정에의 의지를 표현한 분이었습니다.
당시 한용운, 윤동주 같이 기개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원래 천성이 유약하고 늘 소년 같은
착한 마음의 소유자였으니 감히 왜놈들의 총칼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저도 고교 시절인 1963~4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에 참가, 광주 도청 앞에 갔는데 경찰들이 구두발로 차고,
곤봉으로 때리고 유치장에 잡아 가두니 무서워서 뒤로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심약한 성격의 사람은 폭력과 탄압을 두려워합니다.
피천득선생의 수필 <인연>이 사실은 소설이라는 글을 대하고 한동안 멍해졌습니다.
나는 그 글이 자신의 체험을 쓴 수필이라고 간주하고 일제가 발호하던 시기에 일본에 가서 웬 꼬마와 사귀는 이야기인게 해서 2007년에 펴낸 <잘쓰는 수필 막쓰는 수필 >작접서에서 비평을 좀 했는데 소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 그렇게 믿는다고 해도 좀 생뚱맞다는 생각은 지을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그간 아무 언급이 없었고, 그 대담을 한 제자는 그분이 돌아가신 한참 후에야 그런 주장을 펴기 때문이지요.
혹여 우수 수필 한편을 제물로 내놓고 대신 그것으로 그분의 인격을 지키겠다는 생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연>이 사실을 기반으로 써야하는 장르인 수필이라면 선생님 말씀처럼 강점기에 억압받는 시기에 일본에 건너가 어린 일본 소녀와의 연애담을 쓰고 그걸 훌륭한 작품이라고 추앙을 하는 건, 분명 잘못된 부분이라 생각을 하구요. 설령 제자가 나서서 주장했던 거처럼 수필이 아닌 소설이라 하더라도 시의적절한 작품은 아니기에 높게 평가할 작품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윤동주나 한용운의 시를 읽고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주는 글이야 말로 위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지요. 아마 <인연>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린 것이 친일 세력의 영향이 아니었나 짐작해 봅니다. 중학교때 그 수필을 대하면서 의구심이 들었었거든요.
한때 수필문단에서는 피천득선생의 <인연>을 최고의 작품, 수필의 전범으로 추켜올려 칭송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몰론 교과서에서 실렸구요.
제자인 석경진교수가 자기 스승을 변호한답시고 그것은 수필이 아니고 소설로 썼다고 강변했으니 이것은 곧 이경희수필가의 증언을 통해 바로 부정되었지요.
두분이 춘천을 간적이 있는데, 그때 다녀온 소감을 작자 쓰기로 해서 원고사 이경희수필가에게 왔다는 겁니다. 제목이 달리 붙엇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고쳤다는 일화도 소개했지요.
늦게나마 교과서에서 내려진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건너가 일본소녀와 연애담이 무슨 문학적 가치가 있겠습니까. 순국선열들에게 욕보이는 것이지요. 소선생님도 어릴적이지만 그런 것을 느끼셨군요. 해서 제가 작법서을 내면서 그것을 환기시켜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