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림4주월요일 묵상
샤를르 드 푸꼬의 영성
이기우신부
2020.12.21.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아가 2,8~14 루까 1,39~45
오늘 독서는 아가서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아가라고이름이 지어졌습니다만, 원 이름은 잠언처럼
지은이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이스라엘의 현인으로 알려진 솔로몬을
내세워서 붙여진, ‘솔로몬의노래’입니다. 이 아가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
할 때나 결혼식에서 불리던 노래였는데, 구약 시대에 유다인들은 이노래를 하느님
께 드리는 인간의 사랑 고백으로 해석하여 과월절 축제에서 낭송하였습니다.
사실은 인간이 하느님께 이렇듯 달콤한 사랑을 드리지 못하지요? 오히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짝사랑을 반성하는 의미가 더 커 보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서는
사랑의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서, 신부인 교회에 대한 신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해석하는 관점이 대새였습니다.
오늘 복음이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은 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 만나는
내용인데, 이 두 여인이 모두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체험한 처지여서 독서에
아가서가 배치된 것 같습니다. 엘리사벳은 줄곧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사람이 필요하셨던 하느님꼐서 개입하셔서 아들을 잉태한지 여섯 달이나 된
처지였고, 마리아는 이제 막 메시아를 잉태하리라는 전갈을 받은 처지였는데,
처지는 이렇게 달랐어도 하느님의 사랑어린 개입을 체험하기로는 똑같았습니다.
사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도 비슷해서 본질적
으로 짝사랑으로 흐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때는 대개
자신도 가정을 이루어서 부모가 되어 본 다음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처럼,인간도
거저 주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정신 차리
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호간에 사랑을 주고받기보다 사랑이 큰 쪽에서 먼저
일방적으로 주고 다른 쪽에서는 받기만 하는 짝사랑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도 뒤늦게나마 그 사랑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표현하는 고백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연인 사이의 사랑 고백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두사람 다 하느님 앞에 신심이 두텁고 서로간에도 신뢰가
깊었던 사이로서 아나빔에 속했습니다. 그러기에 만나자마자 평소에 하느님꼐
기도를 바치던 바에 대한 응답이 주어진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공통적이었던
두 여인 사시에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통교가 마치 전기가 통하듯이 이루어져서,
바로 서로의 마음과 처지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런 뜻에서 엘리사벳의 인사말은
성모송에 들어와서 신자들의 일상적인 기도에도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목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이러한 인사
말의 끝에 엘리사벳은 늙은 나이에 임신한 잔신보다도 처녀이면서도
주님께서 메시아를 잉태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한 마이라가
더 복된 처지라고 축하하며 성령으로 가득 차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바칠 때, 환희의 신비 제2단에서 이 사건을 묵상합
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관상하는 묵주기도 잔체 신비 20단 중에서 예수님
이 주어로나 목적어로 나오지 않는 우일한 단입니다. 이를 방문의 신비
라고 부릅니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복음을 증거한 프랑스의
순교자 샤를르 드 포꼬(1858~1916)사제는 이 신비에 주목하여 죽기까지
그 영성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회칙 ‘민족들의 발전’
(12항)에서 ‘모든 이의 형제’라고 푸꼬신부를 소개하며 현대인들에게 보편
적인 형제애를 증거한 그리스도인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푸꼬 신부를 사막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은 영적으로 가난으로 살아가는,
투아게르족으로서 이슬람의 가난한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관습과
언어를 배우며 자신의 모든 능력과 정성을 다해 사람들을 섬겼으며 이로써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알제리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역에 살전 사람들은 이미 중세에 십자군 전쟁의
피해를 기억하고 있는 이슬람 신자들이고, 또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나라인
프랑스가 무력으로 식민통치를 하고 있어서 반가톨릭적 정서가 팽배했던
상황이었으므로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선교가 불가능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래서도 더욱 그가 자신의 삶으로 예수를 보여주겠다는 선교 방식은 불가피
했고 또 적합했습니다. 그러다가 반프랑스 봉기가 일어났을 때 광신적인
사누시파 이슬람 광신자에 의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총에 맞아 죽었던
푸꼬 신부를 그가 죽은지 몇 년만에 프랑스 교회가 찾아서 그의 삶과 영성
을 세상에알렸습니다.
그는 사막에서의 고적한 삶을 통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순하게 하느님을
깨닫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막의 은수자’였습니다. 그 후 그의 영성을 따르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세속에서 복음을 알리기보다 실천하는 관상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고통을 나누는 사도직이 생겨났습니다. 2005년 베네딕도
16세 교황에 의해서 복자품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