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심(平靜心) 질병을 물리친다
“대체로 사람의 질병(疾病)은 병이 발생하는 날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근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치료하는 방법에 있어 병의 근원을 먼저 다스리지 않고 지엽(枝葉)적인 부위를 치료하려 든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효과를 보기 어렵고 묵은 뿌리와 썩은 풀뿌리가 충화(沖和, 부드럽게 조화함)한 기운만 손상시킬 따름입니다. ··· 마음은 한 몸의 주재(主宰)이자, 모든 변화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한번 평정심(平靜心)을 잃게 되면 다만 온몸이 뒤집어지고 만사(萬事)가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의 근원이 또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병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대체로 마음은 관직으로 치면 군주(君主)에 해당하니 사물에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지 명령을 받지는 않으며, 그 쓰임은 불과 같으니 정적(靜的)인 것을 필요로 하고 동적(動的)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1700년 숙종 26년 10월, 병산 이관명 선생, ‘옥당에서 경계를 진달하는 차자(玉堂陳戒箚)’ 에서>
마음은 한 몸의 주재(主宰)이자, 모든 변화의 근본
······································································· 병산 이관명 선생
옥당에서 경계를 진달하는 차자〔玉堂陳戒箚〕
삼가 아룁니다. 신들이 삼가 며칠 전의 비망기(備忘記) 와 약방에 내리신 비답(批答)을 보니, 성상(聖上)께서 가슴이 결리고 아픈 증상이 7개월 사이에 세 번 있었는데 병이 발생한 원인이 있다고 하교하셨습니다. 신들은 이에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어서 성상께서 질병을 조심하는 방도에 유념하고 근본을 치료하는 방법에 마음을 쓰셨으니 다행스러웠습니다.
대체로 사람의 질병은 병이 발생하는 날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근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치료하는 방법에 있어 병의 근원을 먼저 다스리지 않고 지엽적인 부위를 치료하려 든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효과를 보기 어렵고 묵은 뿌리와 썩은 풀뿌리가 충화(沖和, 부드럽게 조화함)한 기운만 손상시킬 따름인데, 지금 전하께서 밝고 지혜로우셔서 이런 이치를 통찰하시고는 눈앞의 효과를 힘쓰지 않고 병의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서 몸조리하는 계책을 시험해 보려고 하십니다. 전하의 한 몸은 모든 신(神)들이 붙들어 보호해 주는 바인데, 이에 더하여 병의 근원을 치료한다면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 기쁨을 손꼽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신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바입니다.
신들이 또 들으니, 마음은 한 몸의 주재(主宰)이자, 모든 변화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한번 평정심을 잃게 되면 다만 온몸이 뒤집어지고 만사가 어긋날 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의 근원이 또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병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던 것이니, 이런 교훈은 분명하여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가한 가운데에서 함양하면서 한 몸을 주재하고 모든 변화에 응하는 전하의 마음을 신들의 얕고 어리석은 수준으로 헤아릴 수는 없지만 사령(辭令)에 드러내신 것을 가지고 본다면 전하의 중화(中和)의 쓰임이 중도를 얻지 못한 것이 간혹 많이 있으니, 그렇다면 정신과 기운을 기르는데 방해되는 것이 어찌 적겠습니까.
대체로 마음은 관직으로 치면 군주에 해당하니 사물에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지 명령을 받지는 않으며, 그 쓰임은 불과 같으니 정적인 것을 필요로 하고 동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사물의 특성에 맞게 대응하지 못하셨기에 점차 어수선하게 흔들리는 단서를 이루고 격하게 반응하다가 번민이 생기도록 만듦으로써 밖으로는 온갖 제도를 순조롭게 하여 공평하고 진실한 정치를 이루지 못하였고 안으로는 오관(五官 이ㆍ목ㆍ구ㆍ비ㆍ형체)을 가지런히 하여 기(氣)를 원활하게 소통시키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원인 마음을 먼저 다스리지 않고 그저 헌기(軒岐)의 기술만 책망하는 것은 또한 곤란하니, 성교(聖敎)에서 이른바 ‘구구한 약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이 진실로 마땅한 것입니다.
신들이 지난번에 자연재해를 보고 어리석은 소견을 진달하면서 또한 기쁘고 성난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대하여 중간에 덧붙여 진달하였는데, 과분하게 장려해 주셔서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만 보잘것없는 신들의 견해까지 채택하시는 성상의 성대한 뜻에 대해서는 내심 흠앙(欽仰)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비망기와 준엄한 성지(聖旨)를 거듭 내리시어 직무를 데면데면하고 소홀히 했다고 질책을 약방(藥房)의 신하에게 가하셨는데 말씀과 기상이 크게 정도를 잃었으니, 전하의 청명(淸明)한 근원이 여기에 이르러 다시 격렬해졌습니다.
아, 그 사람은 약방의 신하이니, 미리 살펴 헤아려서 제때에 조리(調理)해드리지 못했다면 민첩하지 못한 과실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 경우는 뜻하지 않게 일어난 하나의 실수에 불과한데, 이것을 곧바로 군부(君父)를 소홀히 여긴 죄과(罪科)로 돌린다면 참으로 대성인(大聖人)께서 공평한 마음으로 아랫사람의 처지를 보살펴 주는 도리가 아닙니다.
군주와 신하는 부모 자식과 같은 관계이니, 자식이 잘못이 있다면 진실로 성심(誠心)으로 용서하면서 교육적인 뜻을 보이면 충분하거늘, 또 어찌 작은 의심과 노여운 마음을 그 사이에 두시는 것입니까. 성상께서 하나의 사소한 잘못으로 인하여 갑자기 의심과 노여움이 더해지다가 마음속 번뇌가 갈수록 한층 격해져 다소 불평하시는 뜻을 전후의 하교에서 가득 분출하셨는데, 중신(重臣)들이 석고대죄(席藁待罪) 하며 날을 보냈어도 사정을 아뢸 길이 없게 되자 많은 신하들은 두려움에 떤 채 상황이 안 좋아졌으니, 이 어찌 평소 전하에게 기대하던 바였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마음부터 화평함을 지극히 하셔서 성궁(聖躬,임금의 몸을 높여 이르는 말)을 조섭(調攝)하는 근본으로 삼으십시오. 진노(震怒)하시는 모든 상황에서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깊이 경계하시고 하교하는 순간에도 곡진(曲盡)하게 신하의 마음을 풀어 주셔서 상하 간에 막힘이 없고 심정과 뜻이 통하게 한다면 신하와 백성에게 더없이 다행일 것입니다. 신들이 외람(猥濫)되이 근시(近侍)의 반열에 있으면서 전하의 과실을 목도하고 끝내 함구하는 것은 의리상 감히 할 수 없기에 외람됨을 피하지 않고 지엄하신 성상을 번거롭게 해 드리오니,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신들의 참람(僭濫)함을 밝게 용서하시고 헤아려 채택하여 주십시오.
[주-1] 며칠 …… 하교하셨습니다 : 약방에 내린 비답은 1700년(숙종26) 10월 24일에 내렸고 비망기는 다음 날인 25일에 내린 것이다. 《承政院日記 肅宗 26年 10月 24日, 25日》
[주-2] 헌기(軒岐)의 기술 : 의술(醫術)을 일컫는 말이다. 헌기는 본래 의약(醫藥)의 시조(始祖)로 알려진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와 그의 신하 기백(岐伯)을 통칭하는 말이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3권 / 소차(疏箚) 16수>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
玉堂陳戒箚
伏以臣等伏見日昨備忘記及藥房批答。聖候胸膈牽痛之證。三發於七朔之內。而源委有由爲敎。臣等於此。不勝憂慮之至。繼以聖明留神愼疾之道。加意治本之方。爲幸也。盖人之疾病。非作於作之日。必有其本。醫治之道。不先其本而欲治其標。則雖有良餌珍劑。難責其效。而陳根腐荄。徒爲損冲和之氣而已。今我殿下明睿旁照。洞察此理。不務目前之近效。而深軫病根之所祟。欲試調養之策。殿 o下一身。百神之所扶護。而加以醫治得其本。則勿藥之喜。指日可待。此臣等所以攢祝者也。臣等抑又聞之。心者一身之主宰而萬化之根柢也。故吾之心。一失其平。則非但百體放倒。萬事顚錯而已。衆病之源。又從此出。是以古之人。乃以治心爲治病之本。誡誨班班。非可誣也。今殿下所以涵養於燕閒之中。主一身而應萬化者。非臣等淺蒙所敢窺測。而以其發於辭令者見之。殿下中和之用。不得其道者。或多有之。則其有妨於頤養神氣者。豈淺鮮哉。盖心其官則君也。命物而不命於物。其用則火也。要靜而不要 o其動。今殿下不能付物。馴致攖撓之端激而發之。惹起懊惱之萌。外不能順百度而做平允之治。內不能齊五官而盡節宣之宜。然則不先於本原之地。徒責於軒歧之術者。其亦難矣。而聖敎所謂非區區藥餌所可效者。斯固當矣。臣等頃覯天灾。冒進瞽說。而亦以喜怒之節。附陳其間。至蒙過奬。不勝慙恧。而惟其擇蕘之盛意則心竊欽仰矣。近來備忘嚴旨荐疊。至以悠泛緩忽。加責於保護之臣。辭氣之間。大欠稱停。殿下淸明之原。至此而復有所激矣。噫。彼職在保護之臣。不能預先審慮。及時調護。則不 o敏之失。藉曰有之。此不過無妄之一眚。而直歸之於慢忽君父之科。則實非大聖人平心體下之道也。君之於臣。猶父之於子。子有過失則固當誠心開釋。以示敎誨之意足矣。又何以一毫疑怒之心。參錯於其間哉。聖明因一微眚。遽加疑怒。淵衷所惱。轉輾層激。多少不平底意。溢發於前後之敎。至使公孤重宰。席藁經日。暴情無路。而羣下危懍。爻景不佳。此豈平日所望於殿下者乎。伏願殿下先從本原。克致和平。以爲攝養聖躬之本。凡於威怒之際。深戒暴遽。敎誨之間。曲賜開釋。使上下無阻。情o志流通。臣民幸甚。臣等忝在邇列。目見君父之過擧。終始泯默。義有所不敢。不避猥越。冒瀆宸嚴。惟聖明恕其僭而財擇焉。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3권 / 소차(疏箚) 1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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