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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조철제(趙哲濟)가 증산사상(甑山思想)에 기초하여 세운 종교. 우주 본원의 법칙이자 태극의 원리를 주재하고 지배하는 증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조철제는 만주(滿洲)에서 증산 강일순(姜一淳)의 이야기를 듣고 입산수도, 1916년 귀국하여 충청남도 안면도(安眠島)를 근거로 포교하다가 강일순의 누이 선돌부인을 맞이하여 무극도(無極道;일명 天人敎)라는 종교를 세웠다. 1923∼1926년 정읍군(井邑郡;지금의 정읍시) 태인면(泰仁面) 태흥리(泰興里)에 교당을 짓고 교명을 무극대도라 개칭하였다. 그 뒤 진업단(進業團)이라는 신도단체를 중심으로 간척공사를 벌여 안면도에 20만평의 농경지와 원산도(元山島)에 염전을 만들고 벌채사업·광산채굴 등의 사업을 경영,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1936년 조선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산령으로 교세가 위축되었다. 1948년 본부를 부산 보수동(寶水洞)에 정하고 교명을 태극도로 바꾸었으며 1955년 현재 위치인 부산 감천동(甘川洞)으로 이전하였다. 1958년 조철제가 죽은 뒤 태극도는 신·구파로 분리되어 구파는 조영래(趙永來)·이갑성(李甲性)으로 이어졌고, 신파는 박한경(朴漢慶)이 많은 신도를 이끌고 탈퇴하여 1969년 서울에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를 창설하였다. |
증산법종교 본부라고 하는데 종파별로 자기네들이 옳다고 하니..... 속된말로 강증산교가 제일 잘나갔을때는
종파가 100여개가 되었고 6.25전 한번도의 3/1정도가 강증산교였다니 .......진짜?가짜? 모르고 들은이야기
우연의 일치였는지 마침 가는날이 장날, 이날이 강증산 상제님 오신날(생일)
영대란곳은 아래 내용에 적힌데로라고 하지만 종파가 많아 서로 강증산교주님을 모실려고 묘지를 파헤쳐지는 사건
까지 있었다고 들었음,
이곳은 강증산 둘째부인을 모시는곳이라고 들었음(고씨) 옆건물은 그의 딸인 강순임을 모신곳
산중턱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기에 올라가는 도중에 저는 이곳과 무관한 사람이라서 눈치가 보여 87세되신 신도 할아버지를
모셔다가 드림 신도들이 하는말 몸도 편찮으신데 서울에서 오시느라 수고하셨다고하며 딸,며느님이냐구 물음,ㅎㅎㅎ
전국에서 몇백명이 모여 하얀 소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러옴,강심장인 저는 선입견때문에 무서워서 벌벌 ㅎㅎ
강증산교의 또다른 종파 용화전 옛날 이곳에서 공부한 고시생들이 100명합격했다는 소문
이곳도 강증산교의 또다른 종파 태극교 우주세계을 상징한다나요?
이곳은 예전에는 많은 신도들이 있었으나 5명이서 오신날 준비를 하고 있었음,
사당에는 강증산교주 부부 초상화를 모시고 있었음
이곳은 산자보다 죽은자가 많은곳 같았음 텅빈 그들만의 공간에는 산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음,
증산교(甑山敎.흠치교) 1901년 고부(古阜) 출신의 유생 강일순이 전주(全州) 모악산 아래에서 창도한 흠치교와, 나중에 그의 부인 고씨(高氏)가 창도한 태을교를 비롯하여 현재의 대순진리회에 이르기까지, 이 계열의 교파를 통틀어 이르는 말. 교주 강일순(姜一淳)의 도호(道號)가 증산(甑山)이었으므로 증산교 또는 증산교단이라고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흠치교라고 하였다. 1894년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이 실패하자 강일순은 전국을 떠돌다가 모악산 대원사(大願寺)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고 동학과 마찬가지인 '후천선계개벽(後天仙界開闢)'을 주장하는 흠치교를 창설하였다. 그 교리는 '천지공사(天地公事)'로 집약되며, 그것은 다시 운도공사(運度公事)ㆍ신도공사(神道公事)ㆍ인도공사(人道公事)로 구분된다. 그는 여러 가지 이적(異蹟)을 행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죽은 후 교인들이 흩어지자 1911년 그의 부인이 태을교(太乙敎)를 만들어 교인들을 다시 모았으나, 그 후 보천교(普天敎)ㆍ미륵불교ㆍ모악교(母岳敎)ㆍ용화교(龍華敎)ㆍ증산대도ㆍ태극도ㆍ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등 많은 파로 갈리었다. 1901년(광무 5) 강일순(姜一淳)이 전라북도 정읍(井邑)에서 창설한 종교. 강일순은 오랫동안 유(儒)ㆍ불(佛)ㆍ선(仙)의 교리를 연구하고 수도(修道)한 끝에 드디어 천지(天地)의 대도(大道)를 깨우치고 기도소를 설치, ‘신화일심(神化一心)’ㆍ‘인의상생(仁義相生)’ㆍ‘거병해원(去病解怨)’ㆍ‘후천선경(後天仙境)’을 교의(敎義)로 하는 종교를 청설하였다. 그는 신과 인간이 별개의 존재라는 종래의 사상을 부인하고, 따라서 종국적인 구원읅 신에서 얻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음을 닦고 수양을 쌓아 일심(一心)의 경지, 즉 영육일치(靈肉一致)의 경지에 다다를 때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신화일심(神化一心)’을 주장하였으며, ‘인의상생(仁義相生)’은 이 ‘신화일심(神化一心)’의 과정으로서 자애(慈愛)ㆍ인도(人道)ㆍ상호부조(相互扶助)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의상생(仁義相生)’은 재화(災禍)와 불평ㆍq2nf만을 없애는 적극적인 태도 없이는 이룰 수 없다고 하여, ‘거병해원(去病解怨)’을 교리의 하나로 삼았으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하여 성취되는 인간의 신화(神化)를 ‘후천선경(後天仙境)’이라 하였다. 그런데 ‘후천선경(後天仙境)’은 극락이나 천당과 같이 죽은 후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생활하는 현실적인 지상(地上)에 이룩되는 낙원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여 독자적인 종교를 창시하였다. 강일순은 이 같은 교리를 가지고 교세 확장에 힘을 써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1907년(융희 1)에는 김형렬(金亨烈)ㆍ차경석(車京石)ㆍ안내성(安乃城)ㆍ김인두(金因斗)ㆍ장기동(張基東) 등 훌륭한 제자를 얻어 동학*(東學)과 함께 유력한 종교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신화(神化)의 과정에 도달하기 위하여 주문(呪文)을 외울 것을 제창하여 ‘천을천상원군(天乙天上元君)’에게 소원 성취를 비는 ‘흠치흠치태을천상원군흠리치야도래흠리함리사바아(吽哆吽哆太乙天上元君吽哩哆椰都來吽哩喊哩娑婆婀)’라는 주문을 외우도록 하였다. 1909년(융희 3) 강을순이 죽자 흠치교는 동요를 일으켜 많은 충격을 받았으나,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강일순을 교조(敎祖)로 하는 여러 개의 교파(敎派)로 갈려져 각기 독자적인 종교를 창설하였다. 이 중 중요한 것은 보천교(普天敎)ㆍ무극대도교(無極大道敎)ㆍ미륵불교(彌勒佛敎)ㆍ증산대도교(甑山大道敎)ㆍ동화교(東華敎)ㆍ태을교(太乙敎)ㆍ대세교(大世敎)ㆍ원군교(元君敎)ㆍ용화교(龍華敎)ㆍ선도교(仙道敎) 등이다. (이홍직:<국사대사전>) ------------------------------------ 한국에서 성립된 종교의 하나. 창시자 강일순(姜一淳)의 호에 따라 ‘증산교’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는 ‘흠치교’라고도 하였다. 한국 신종교 가운데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로 성장하였으며, 유(儒)ㆍ불(佛)ㆍ선(仙)ㆍ단군사상ㆍ기독교 등 전통종교의 유산을 거의 모두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발생】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적 모순이 뚜렷해지고 외세의 간섭이 심해지자, 기층민중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이에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그중 동학농민운동은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형태로 나타난 대응으로서 한때 삼남지방에서 기세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물적 토대가 미비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흥선대원군의 보수개혁과 개화파의 혁신도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제국주의 세력의 음모, 그리고 시대정신의 전근대성 등으로 인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에 강일순은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길을 모색하려는 방편으로 전통종교의 교리를 공부하고, 세상의 모든 것에 밝아지는 ‘도통공부’에 힘썼으며 1897년(고종 34)부터 3년 동안 전국을 편력하는 등 수행에 정진하였고, 1901년 전라북도 모악산(母岳山)에 들어가 세상이치를 궁구(窮究)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7월 ‘천지대도(天地大道)’를 깨닫고 욕심ㆍ음란함ㆍ성냄ㆍ어리석음의 4가지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가 도를 깨쳤다는 소문이 퍼짐에 따라 이듬해부터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증산교는 강일순의 큰 뜻과 당시 기층민중들의 소망이 동학사상ㆍ미륵사상ㆍ정감록비결 등과 두루 맞물리면서 점차 종교적인 틀과 교리를 갖추어 나갔다. 강일순은 1909년(순종 3)까지 7년간 포교활동을 했는데, 자신이 직접 종교체제를 만들지는 않았고 그의 실천지침인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며 주변사람들을 가르쳤을 뿐이다. 【교단의 변천】 강일순이 죽은 뒤로는 그의 아내 고부인(高夫人)을 중심으로 선도교(仙道敎)라 이름하여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강일순의 추종자 차경석(車京石)의 실권이 커짐에 따라 보천교(普天敎)라 이름하였고, 19년 고부인 일파가 태을교(太乙敎)로 분리해 나가면서 김형렬(金亨烈)ㆍ안내성(安乃成)ㆍ이치복(李致福)ㆍ박공우(朴公又)ㆍ문공신(文公信)ㆍ김광찬(金光贊) 등이 각지에서 증산교 분파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신도수가 크게 늘어가는 가운데 차경석의 보천교는 보화교(普化敎)로 이름을 고치고 ‘시국(時國)’이라는 국호를 선포하는 등, 한때 기세를 올리기도 하였다. 총독부의 탄압과 차경석의 권위주의에 의하여 보천교를 탈퇴한 신자들이 새로운 교단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는데, 동화교(東華敎)ㆍ삼성교(三聖敎)ㆍ천인교(天人敎)ㆍ증산교객망리교단(甑山敎客望里敎團)ㆍ수산교(水山敎)ㆍ홍로교(烘爐敎)ㆍ무을교(戊乙敎)ㆍ임무교(壬戊敎)ㆍ인천교(人天敎)ㆍ원군교(元君敎)ㆍ서울대법사(大法社) 등이 그것들이다. 그 밖에 태극교(太極敎)ㆍ순천교(順天敎) 등은 보천교와 관계없이 나타난 분파였다. 한때는 100여 개의 교파가 난립하는 등 증산교는 교파의 분지(分枝)와 함께 그 영향력을 넓혀 나갔는데, 차경석의 황제등극 실패의 악영향, 지나친 교파분리, 총독부의 강제와 압력 등으로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8ㆍ15 이후 각 교파들이 교단을 정비하고 교리를 체계화하면서 민족종교로서 성장을 시도하여 일정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각 교파 사이의 교리해석의 차이로 증산교의 교파 통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리와 사상】 증산교 각 교파의 공통된 교리는 <대순전경(大巡典經)>과 <증산종단개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① 운도(運度) : 음양상수(陰陽象數)에 따라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상제(上帝) 강일순의 권능으로 조정된다. ② 개벽(開闢) : 운도의 조정을 말하며 이에 따라 세계는 선천과 후천으로 나뉘는데 선천과 후천이 교체되는 시기가 말세(末世)로 곧 현대이다. ③ 천지공사 : 운도의 조정작업을 이르며 후천세계에서는 모든 갈등과 대립이 해소된다. ④ 신인합발(神人合發) : 인간계와 신명계(神明界)에 있는 인간과 신은 서로 조응(照應)한다. ⑤ 조화정부(造化政府) : 천지공사를 행하기 위하여 모든 신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천지의 일을 의논하는 곳으로, 천지공사에는 운도공사․신경공사․인도공사가 있다. 증산교의 사상은 인간이 신이나 어떤 사물보다 존엄한 존재라는 인존사상(人尊思想), 개인ㆍ집단ㆍ계급ㆍ민족ㆍ국가에 쌓인 원한을 풀어 원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해원사상(解寃思想), 한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가 한 집안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민족주체사상 등이 대표적이다. 【숭배대상과 의식】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강림했다는 상제 강일순과, 환인(桓因)ㆍ환웅(桓雄)ㆍ단군(檀君) 등의 한국 시조신, 각 민족의 민족신, 공자ㆍ석가ㆍ예수 등의 문명신(文明神), 모든 사람들의 조상신, 최수운(崔水雲), 마테오리치(M. Ricci), 진묵대사(震黙大師) 등을 숭배대상으로 삼는다. 각 교파에서 공통적으로 행하는 의식에는 주문을 외우는 송주(誦呪)와 부적을 태우는 소부(燒符)가 있다. 교파에 따라 다양하지만 부적은 강일순이 남겼다는 <현무경(玄武經)>을 주로 사용한다. 【현황】 증산교본부 : 보천교ㆍ법종교(法宗敎)ㆍ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ㆍ보화교 등 60여 교파 아래 약 10만 명의 신도가 있다. 현재 증산교 여러 종파들이 상호단합과 공동보조를 위해 결성한 ‘증산교단연합회’를 비롯하여, 증산사상연구회ㆍ증산교단통정원 등이 있다. (퍼온글) http://blog.daum.net/glinhaus/14791780
* 엄마!! 그것 또쳐다봐요? 하지말라니까요?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본것 뿐이야! 맨처음엔 여호와증인이나 사이비종교믿는사람이 다 엄마같은 말을했어요 중얼중얼~~~~얌마!! 아니라니까? 강증산교 정리할려면 엄마머리로는 불가능하다 포기해야겠어 그리고 무서워서 못하겠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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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과연, 호기심의 극치로군요. 아들래미 말을 미인님, 흘려 듣지 마세요. 괜한 염려가 아닌 경우도 꽤 있거든요.^^
지혜님 몇십년전부터 궁금한게 조금이나마 풀렸으니 이제 더이상 관심없어요 ㅎㅎㅎ 너무 방대해서 정리도 안되고 이런곳이였구나?로 결론맺었어요 호기심에 저까지 이상하게 생길까봐 무섭구요 더 많은 엄청난 이야기가 있지만 종교적인 이야기라서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구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