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아래에서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그 봄 그 어느 부평 성당 마당에도,
성당 마당 한 쪽에, 목련나무가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 나무는 맨 먼저 꽃을 피웠다. 잎이 돋기도 전에 하얀 꽃송이부터 매달았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보다 그 나무 아래에서 처음 본 여고생이 더 신기했다.
그녀는 성당 반주자였다. 피아노 앞에 앉아 손끝으로 음을 쌓아 올리는 모습이 단정했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나로서는 피아노 반주라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 나이에 피아노를 저렇게 잘 칠 수 있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예뻤다.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성당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그리고 결국, 단 한 번 말을 걸었던 날도 성당 마당, 그 목련나무 아래였다.
그녀는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자, 문득 그녀가 눈을 들어 꽃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목련이 참 예쁘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조용히 웃었다.
"그렇죠? 그런데 목련은 꽃이 질 때도 너무 단호해요. 후두둑, 한순간에 다 떨어져 버리잖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목련을 자세히 보았다. 정말 그랬다. 벚꽃처럼 질질 시간을 끌지도 않고, 철쭉처럼 시들어가며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꽃잎이 툭툭, 그야말로 단호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해 봄이 지나고, 나는 대학에 갔다. 공부하느라 바빴고, 연애에는 영 서툴렀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봄이 오면, 특히 목련이 필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떠올랐다.
사람의 인연도 목련 같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뜸을 들이거나 망설이지도 않고, 어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스며들었다가, 어느 날엔가 한순간에 툭, 떨어지는.
나는 여전히 목련을 보면 그녀를 떠올린다. 성당 마당에서 조용히 기도하던 모습,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단호하게 떨어지는 꽃잎을 이야기하던 목소리까지.
목련이 피면, 그리고 질 때면, 나는 다시 그해 봄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