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의 집인 박물관 현관 정면에 걸린 그림, 가운데가 뒤러다

▶ 2012년 7월 26일(목), 맑음, 불볕
- 독일, 뉘른베르크(Nurnberg, Nuremberg), 밤베르크(Bamberg)
민박집 아침식사 때에 서울 화곡동에서 왔다는 내외 두 분 어르신을 만난다. 미국에서 박사학
위 따르라 외국생활을 오래한 사위와 딸이 모처럼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 중이
다. 여행시작한 지 닷새가 지나자 힘들어 더는 못 버티시겠다며 서울로 돌아가야겠단다. 다
못 먹은 컵라면 3개, 짜파게티 3개와 김치를 우리에게 선뜻 주신다. 아내가 살갑게 말 건넨 덕
분이다. 식사자리 먼저 뜨는 두 분 어르신에게 벌떡 일어서서 허리 굽혀 인사하였다.
오늘은 로텐부르크 동쪽에 있는 고도를 간다. 뉘른베르크와 밤베르크다.
뉘른베르크는 로텐부르크에서 80㎞ 정도 떨어져 있다. 국도로 간다. 평원은 밀밭이거나 옥수
수 밭이고 구릉지는 포도밭이다. 고속도로 벗어나 차가 슬슬 기자 뉘른베르크에 다 온 줄 안
다. 구 시가지 한복판으로 진입하여 미리 스마트 폰 내비게이션으로 찍은 지하주차장을 단번
에 찾아낸다.
독일 중앙의 프랑스계(Franconian basin)인 모래평원에 위치한 뉘른베르크는 종종 바이에른
의 ‘비밀 수도’로 불리는데 상주인구 50만 명으로 뮌헨에 이어 바이에른의 제2의 도시이다.
또한 뉘른베르크를 ‘독일왕국의 보석상자’라고 하며, 그 보석으로 저명한 예술가인 알브레히
트 뒤러(Albrecht Durer), Hans Sachs, Veit Stoss, Peter Vischer, Martin Behaim, Peter
Henlein을 든다. 나는 뒤러만 어슴푸레 알겠다.
뉘른베르크는 히틀러가 특히 좋아하여 이 도시에서 나치당 전당대회를 열었고,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뉘른베르크라는 말은 ‘생강이 든
빵(Lebkuchen)’과 ‘튀긴 소시지’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소시지는 유명하다. 우리
는 점심으로 소시지 요리를 가장 잘한다는 Bratwurst Rosien에서 모둠 소시지를 먹었다.
중앙광장 부근에 있는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St. Sebalduskirche)와 프라우엔 교회
(Frauenkirche)는 종교개혁의 명분인지 내부 장식이 소박하다. 금칠한 ‘미의 분수(Schoner
Brunnen)’는 작지만 중앙광장의 랜드 마크다. 온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카이저부르크
(Kaiserburg) 성은 북쪽 언덕에 있다. 남문 성루 하나가 성을 대표한다.
뒤러의 집. 뉘른베르크는 뒤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독일 최고의 그래픽 아티스트요 화
가이며 예술 이론가라고 한다. 뒤러(1471~1528)가 1509년 이사하여 20년 동안 살다가 죽은
집이다. 이태리를 벗어난 유일한 르네상스 예술가라는 뒤러의 집으로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
직하고 있다 한다. 지금은 뒤러의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 뉘른베르크 가는 길, 국도

2.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 첨탑

3.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 내부

4.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 안에 걸려 있는 그림, 유명한 그림인지 관광객 가이드는 설명한다

5. 시청 벽에 걸린 판화, 뒤러의 작품으로 짐작한다

6. 프라우엔 교회. 종교개혁 때 성당을 접수했음이 틀림없다

7. 미(美)의 분수, 중앙광장의 랜드 마크다. 철망 안에 있는 황금 고리를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8.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 뒤쪽

9. 뒤러의 집 앞 거리

10. 가운데가 뒤러의 집

11. 뒤러의 기도하는 손, 뒤러의 집에서

아내가 교회 목사님에게 들었다는 얘기다. 뒤러에 대해서는 그의 예술적 성취 못지않게 어릴
적 친구와의 우정이 감동적이다. “궁벽진 시골에서 농사꾼으로 나서 자랐던 뒤러는 일찍이 그
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의 간곡한 권유와 도움을 받아 도회지로 진출하여 성공하였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기도하는 손’은 뒤러가 그의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린 것이다.” 뒤러와 그의 친
구와의 우정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교과서에는 뒤러가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금세공사인 아버지의 조수로 일하다1486년 ∼
1489년 M. 볼게무트에게 사사(師事)하였고…” 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뉘른베르크에
뒤러의 생가가 있을 법한데 안내책자, 팸플릿 등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그의 출생지를 알 수가
없다.
바이스게르버 거리(Weissbergasse). 책자의 소개다.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난 20여 채의 전통주
택들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뉘른베르크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거리다.” 사실과 딴판
이다. 전쟁의 피해를 벗어난 전통주택은 후하게 봐주어 3채? 우리가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몇
번이고 확인하였으나 틀림없다. 누가 보면 행인 없는 거리를 우리가 종일 헤매고 있는 줄 알겠
다.
밤베르크로 간다. 뉘른베르크에서 북쪽으로 63㎞ 떨어져 있다.
레크니츠(Regnitz) 강 사이 섬에 있는 구 시청사, 작은 베네치아로 불리는 강안(江岸)에 늘어선
주택들, 장미정원, 웅장한 대성당, 밤베르크 영주 주교의 신궁전 등 아름다운 도시다. 차분하고
조용하다. 호프집 길가 탁자에서 나는 웃음소리에도 귀 기우리고 싶어진다.
신궁전에 들어간다. 된통 잘못 걸렸다. 독일어 해설에 걸린 것이다. 방 40여 개. 해설사는 방마
다 자세히 그리고 열심히 설명해 준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은지 다음
방으로 이동이 무척 더디다. 동행 11명. 빠져나갈 수도 없다. 설명이 끝날만하면 질문을 툭 던
지곤 하는 할머니가 있다. 이동하려다 말고 다시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돌아버리겠다.
궁전치고는 내부 장식이 그리 호화롭지 않다. 바닥은 특이하게도 대리석이 아닌 나무판자를 깔
았다. 이따금 남들 웃을 때 애매한 미소 지어 주며 태피스트리(tapestry, 다채로운 선염색사(先
染色絲)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초상화, 샹들리에를 보고 또 볼 수밖에. 성 관람에 1시간 30분
이 넘게 걸렸다.
귀로. 오늘 하루도 길었다. 큰 일 치러낸 기분이다.
12. 바이스게르버 거리. 뉘른베르크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거리라고 한다.

13. 밤베르크 구 시청사

14. 밤베르크 주교이자 영주의 신궁전

15. 밤베르크 성당

16. 신궁전 방의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

17. 신궁전 방의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

18. 신궁전 방의 벽에 걸린 그림

19. 신궁전 방의 벽에 걸린 그림

20. 밤베르크의 작은 베네치아

21. 밤베르크의 작은 베네치아

22. 귀로에서 본 구릉지 포도밭

첫댓글 고전과 현대가 어울려 쉼쉬는 그곳을 기회가 되면 찾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