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기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하고,
하느님을 만나려면 기운을 터득해야 합니다.
제주 법회 때 했던 한법을 오늘 소원성취 기도주간 때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딱 세 가지입니다. 한민족의 하느님, 인류의 하느님, 조화주 하느님. 최근에 불광선인께서 메시지를 주셨어요. “선불교는 한민족의 하느님을 찾는 종교이다. 한민족의 하느님은 인류의 하느님이고 인류의 하느님은 바로 조화주 하느님이다. 하느님을 찾는 것이 바로 복본이다.” 이게 최근 불광선인께서 내려주신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가 있어요. 그 역사만 해도 일만년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의 뿌리가 바로 하느님의 역사예요. 우리가 하느님 하면 기독교, 천주교를 생각합니다. 그게 이천년도 아니에요. 천주교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하느님이 계셨어요.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단군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리고 그 전에도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외래 종교가 들어오면서 부처가 하느님이 어느 특정 종교의 부처가 되어버렸고 어느 특정 종교의 하느님이 되어버린 거예요. 제가 언젠가 그 얘기를 했을 텐데, 하느님이 기독교의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찾으려고 법적투쟁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고. 기독교에서는 여호와예요. 그 뒤에 하느님을 붙인 거예요. 하느님은 유일신이 아닙니다. 한민족에게도 하느님이 있어요. 하느님의 문화가 있습니다. 하느님 신, 불광신명..., 하느님의 문화가 있는데 그 문화를 우리는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것을 다시 되찾는 문화가 바로 선불교에서 일어나야 하고 본래 하느님을 찾는 문화가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그 용어를 찾는 문화도 일어나야 하지만 하느님이라는 본래 의미를 되찾는 문화도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통하고 하느님과 하나 되었을 때 바로 그것이 신인합일의 법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성통공완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인간완성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기도를 이루기 위해서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뭔가를 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먼저 만나야 해요. 그러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운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운을 모르는 사람은 인연이 없다고 했어요. 기운을 터득하지 못하면 천지영기, 즉 신령스러운 천지기운을 터득하지 못한 자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통할 수 없고 하느님과 통하지 못하면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과 만나기 위해서 기운과 터득하는 거예요. 기운과 터득한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마스터 키를 내 손에 쥐는 것과 같은 거예요. 불광선인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마스터 키를 주신 겁니다. 마스터 키는 어떤 것이든지 열면 다 열리는 거예요. 하나만 열 수 있는 게 아니라 열쇠 하나 가지고 모든 문을 다 열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가지고자 하는 것, 다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라는 거예요. 그 키를 내 손안에 쥐는 것과 같은 거예요. 기운을 통해서 내가 하느님을 만났으니까 그 다음에 의지를 가지고 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기운을 모르면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통하지도, 하나 되지도 못하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운을 터득하는 순간에 무아가 되는 겁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밝은 사람이 있고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있다고. 민감하기만 하다면 영적인 감각, 기적인 감각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빠진 사람은 뇌가 굳어버립니다. 예민한 상태로 굳어버리는 거예요. 뾰족한 상태로 굳어버린 겁니다. 자기는 예민하고 민감하니까 굉장히 밝은 줄 알아요. 그것은 착각입니다. 뾰족한 상태로 예민한 상태로 자신의 뇌가 굳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은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정말로 밝은 사람은 생각하는 것, 사고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것이 긍정적이에요. 긍정적인 사람은 얼굴이 밝습니다. 기운이 밝은 사람은 얼굴이 밝고 얼굴이 밝은 사람은 의식이 밝습니다. 의식이 밝은 사람이 바로 불광,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사람이에요. 영적으로 밝지 못한 사람은 얼굴이 어둡고 얼굴이 어두운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의식이 유연하지 않아요. 무슨 얘기를 하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어요.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 중에 첫 번째로 무조건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감대가 형성이 안돼요. 좋기는 좋은데, 부정적이다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바르지 못하다는 거예요. 중심이 없다는 겁니다. 바르다면 누구한테나 내가 느낀 것이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아~” 하고 빨리 빨리 나누어지게 되는 거예요. 부정적이라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좋은데 공감이 안돼요. 그러니까 자기 안에 빠져있는 거지요. 자기 식대로 해석해버리는 거예요. 그것도 부정적인 거예요.
흔히 얘기하는 부정적인 것은 이런 거지요. 예를 들어서, “사랑해.” 하면 “가식적으로 그러시는 거지요?” 이것은 부정적인 거예요. “너 이거 고쳐야 돼. 이거 바꾸어야 돼.” 이러는 대로 “저 사랑하시는 거지요?” 이것은 너무 자기 식대로 라는 거예요. 물론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사랑하기 때문에 바꾸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꾸고 난 다음에, `나를 사랑하셔서 이런 것을 바꾸라고 하는구나.` 그것을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데 바꿀 생각은 안하고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부정적인 거예요. 이해되세요? 그것은 정말 착각이지요. “이것을 바꾸십시오.” “이것을 고쳐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구나.` 가 아니라 `이것을 내가 고쳐야 하는구나.` `이 부분을 바꾸면 되는 구나.` 하고 그 부분만 바꾸면 되는 거예요. 바꾸면서 느끼는 거예요. 바꾸면서 깨달아갑니다. `나의 본성을 알아보시는구나.`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한테 이런 것을 지적해주시는구나.` 라고 그것을 변화시켜가면서 바꾸면 되는데 그것을 그대로 못 알아듣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를 싫어하시는구나.` 아니면 바꿀 생각은 전혀 안하고, `저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래.` 오로지 그쪽 포인트만 맞추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만 알아듣는 거예요. 그것도 부정적인 거예요.
의식이 밝은 사람은 긍정적입니다. 그리고 의식이 밝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서 변화를 시켜나가는 사람이에요. 의식이 밝은 사람이 원하고 뜻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고 뜻하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라면 더 빨리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의식이 밝은 사람은 유연합니다 . 걸림이 없습니다. 거침이 없습니다. 거침이 없는 것이 무아예요. `나, 이것 좋아. 나, 이것 싫어. 나 이것 마음에 들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그게 이해가 돼. 나는 그게 이해가 안돼. 나는 이것을 하고 싶어. 자고 싶어. 먹고 싶어.` 몸에서 나오는 본능과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서 나오는 본능, 홍익하고자 하는, 자아를 실현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본성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무념무상 무아일체가 나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야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은 한민족의 하느님, 인류의 하느님, 조화주 하느님입니다. 이 하느님을 만나야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을 기운을 터득함으로써 만날 수 있습니다. 기운을 터득하려면 지감이 되어야 합니다. 지감된 상태에서 기운을 터득한 것만이 천지기운입니다. 지감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기운은 질이 떨어지는 기운이에요. 천지기운이 다 천지기운이 아닙니다. 욕심으로 아니면 기적인 감각에 빠져서 술에 취한 사람처럼, 그것은 천진기운 아닙니다. 천지영기 아닙니다. 음악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습관적으로 몸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은 천지기운이 아닙니다. 그냥 입력된 정보에 의한 작용일 뿐이에요. 천지기운, 천지영기는 새로운 것입니다. 내 마음이 무아가 됐을 때 모든 것이 새로운 거예요. 날마다 뜨는 태양도 새로운 거예요. 새롭게 뜨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습관적으로 됐을 때 천지기운이 아니에요. 천지기운을 안 받았으니까 천지마음이 안되는 거예요. 지감이 된 상태에서 기운을 터득하세요. 지감이 되면 기운을 터득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운기도 할 수 있어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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