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일간을 본원(나)으로 기준 삼고, 나머지 글자들과의 관계를 해석하며 풀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외웠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어 있구나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선운 왈 “지금은 사주를 일간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연간 중심으로도 했었다. 앞으로 다시 연간이나 월간이 중요해서 그쪽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본원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고! 여기서 내 멋대로의 생각이 시작되었다.
옛날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가까운 조선시대로 가보자. 철저한 신분사회였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 양반이야!”라는 한 마디면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나에 대한 설명을 보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넌 대장장이야!”라는 말 한마디로 서로의 관계정리는 바로 마무리되어 버린다. 내 희망이 무엇이고, 개성이 어떻고, 무얼 잘하고 등은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이다. 자신이 처한 신분 내에서만 처신할 수 있을 뿐, 신분을 벗어난 행동은 결코 용납되지도 않았다. 사람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교에서도 영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그 영생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가문인 것이 문제일 뿐이다.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은 대를 잇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선운은 ‘개 사주’도 본다고 했다. 요즈음 애완견은 같이 사는 사람보다 서열이 높은 경우도 많다. 개 키우는 게 육아와도 비슷하다. 이런 개들은 당연히 일간 중심으로 봐야한다. 같은 개지만 들개는 다르다. 무리사이에서 서열이 철저하다. 이런 개들은 연간 중심으로 봐야한다. 좀 더 확장하면 ‘개미 사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미 사주’에서는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병정개미, 일개미 등으로 나눠진 계급사회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본원으로서는 당연히 연간을 중심으로 잡고 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분제도가 완연한 사회에서의 본원 기준 해석은 연주 60개 정도면 구별하기에 충분할 정도가 될 것이며, 연간이 나를 결정짓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다시 지금의 현대사회로 돌아와서 보면, 지금은 개인적인 역량이 중요하다. 신분적인 차별은 없어진지 오래다. 집집마다 자기가 다 왕이다. 백화점에서 왕 대접 받으며 쇼핑을 즐길 수 있고, 집을 대궐처럼 꾸미고 살아도 옆에서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부러움까지 받는다. 개인을 표현해야 하는 가짓수가 엄청 많아져 버린 것이다. 사주는 연주/월주/일주/시주로 틀이 짜여 있다. 경우의 수로 따지면 연주(60개) x 월주(60개) x 일주(60개) x 시주(60개), 총 12,960,000개의 가지 수가 나온다. 대충 1천3백만 가지이다. 일주 중심이면 60 x 60 x 60, 총 216,000개가 된다. 이 정도면 우리 사회의 개인별 특성을 고려할 정도는 충분히 될 것 같다. 그래서 현대 사회로 오면서 일간이 본원으로 자리 잡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이른다.
사회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계속 변신을 거듭한다. 지금의 50~60대는 십중팔구 그 부모세대보다 잘 산다. 회사를 다녔어도 더 높은 직급까지 올라갔으며, 재산을 불려도 더 많이 불렸다. ‘하면 된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사회발전 또한 그런 시류를 잘 지지해 주었다. 괜찮은 대학 간판만 있어도 평생이 보장되었다. 지금의 20~30대는 어떠한가. 십중팔구는 그들의 부모세대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잘되기 어렵다. 금 수저, 캥그루 족, n포 세대. 부의 대물림이 확연해지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이제 박물관으로 모셔야 할 듯하다. 개인의 운신 폭이 점점 좁아져가는 것이다. 부모 잘 만나면 그냥 평생을 잘 지낼 수 있다. 새로운 신분사회로 이동해 가는 것이 보인다. 본원의 위치가 일간에서 월간으로 또는 연간으로 이동해야하는 징조를 보이는 것이다.
본원의 위치를 고민해 볼 때, ‘신분제도’라는 키워드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하게 떠오르는 키워드는 ‘천동설’이다. 천동설과 지동설. 어느 것이 정답일까? 그 정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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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