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유산 인생 투어(6. 인생 영화를 만나다)
◇ 코리아극장 터 : 중구 명동길 26
-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 있었던 재개봉 영화관
코리아극장은 지난날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 있었던 재개봉 영화관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운영되었다. 극장은 명동 중심부에 자리 잡아 영화 관객의 접근성이 좋았으나 메이저 개봉관이 아닌 재개봉관으로 운영되었다.
이 극장은 명동 중심가 유네스코 회관 2층에 있는 재개봉관 성격의 단관 영화관으로, 당시 명동 번화가의 상징적인 극장 가운데 하나였다. 1970~80년대까지 젊은이들이 많이 찾던 극장이었고, 주변 중앙극장과 함께 명동 일대 영화 문화의 축을 이뤘던 곳이다.
1991년 7월, 영화 "코끝에 걸린 사나이", “인디아나 존스 3”, “007시리즈” 등 UIP 배급 외국 영화를 자주 개봉해서 상영된 곳이다.
◇ 명동극장(明洞劇場) 터 : 중구 명동1가 65-2번지
- 일제 강점기 연극을 하던 낭화관이 1935년부터 영화 상영관으로 개조한 후 광복 후에 명동극장으로 운영
명동극장(明洞劇場)은 일제 강점기인 1917년에 일본 연극[나니와부시 : 浪花節]을 하던 낭화관이었다. 1935년부터 낭화관은 영화 상영관으로 개조하였다. 광복 후 명동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재개봉관으로 운영되다가 1974년에 폐관했다.
1960~70년대 외화 재상영으로 젊은 층에 인기가 있었으나, 중앙투자금융에 인수된 후 사무실로 전환되었다. 이 극장은 코스모스 백화점(현 CGV 명동 부지) 맞은편의 2층 벽돌 건물로 수용인원은 300~400명 규모였다.
◇ 명동예술극장 : 명동 1가 54번지 (‘20-서울미래유산)
- 일제 강점기 1936년에 명치좌(明治座)로 세워져 시공관, 국립극장 등으로 불리다가 헐리기 직전에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
명동예술극장은 일제 강점기 1936년에 일본인 이시바시〔石橋良祐〕가 메이지자[명치좌(明治座)]를 철근 콘크리트조 4층 건물로 관객 1,178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극 상연용 극장을 세운 것에서 비롯된다.
광복 후에도 한동안은 일본의 소유로써 국제극장(國際劇場)으로 불렸고, 서울시가 인수하여 시공관(市公館)으로 개칭하였다.
1961년 11월 ‘정부조직법’의 개정으로 국립극장이 공보부(公報部)로 이관됨에 따라 시공관은 국립극장 전용 공연장이 되었다.
국립극장일 때는 1년에 5편 정도의 연극을 공연하였는데, 대표적인 연극으로 [호동왕자] , [햄릿] 등이 있으며, 장민호, 김동원, 주선태 등 연극인이 활동하였다.
1973년에 국립극장이 장충동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예술극장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이 극장이 1976년에 연금 특별재산으로 정부의 총무처로 넘어가면서 이 극장은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되었다.
그런데 대한투자금융에서 이 극장 건물을 헐고 새 빌딩을 지으려고 하자, 2003년 각계의 ‘명동 국립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였다. 이에 문화관광부에서 이 극장을 재매입하기로 하여 보존하게 되었다.
2009년 6월 5일, ‘옛 명동 국립극장 복원 사업’으로 ‘문화가 숨 쉬는 도시’를 지향하며,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여 오늘에 이른다.
◇ 삼일로 창고극장 : 중구 삼일대로 9길 12(저동1가) (2013-서울미래유산)
- 가정집을 개조한 한국 최초의 창고형 소극장
삼일로 창고극장은 1975년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민간 소극장으로, 한국 소극장 운동과 실험극 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1975년 극단 에저또의 방태수 대표가 옛 삼일고가도로의 남단, 성모병원 뒤의 2층 주택을 사들여 개조해서 만든 한국 최초의 창고형 소극장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다.
이 극장은 165㎡(약 50평) 남짓한 100석 규모의 소규모 극장이지만, 이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한국 공연예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관객 감소와 재정난 등으로 여러 차례 개·폐관을 반복했고, 2015년 10월에는 심각한 운영난으로 한 차례 폐관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2018년 서울문화재단이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재개관하였다.
이 극장은 명동예술극장, 남산드라마센터(남산 예술극장)와 함께 연극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구심지 역할을 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에 연극인들은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연극인과 관객 모두에게 문화 해방구를 만들어냈다.
이 극장 무대에서 추송웅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비롯해, 윤여정·윤석화 등 많은 배우와 연출가들이 거쳐 간 곳인 만큼 연극인들에게는 ‘고향 같은 극장’으로 기억된다.
◇ 중앙극장 터 : 중구 명동(저동1가) (대신증권 신사옥)
- 1922년에 일본인이 세운 명동 영화 문화의 상징인 이 개봉관은 폐관 후에 철거
일제 강점기인 1922년에 일본인 오이시가 '중앙관'을 세운 데에서 시작해 1934년부터 '중앙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44년에 조선악극단 출신 김상진이 인수해 운영했다.
광복 후에 이 극장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죠스’, ‘쿼바디스’ 등의 상영으로 유명했다. 할리우드 대작을 상영하여 관객을 끌어모았다. 1960~70년대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였으나 IMF와 멀티플렉스 경쟁으로 쇠퇴하게 되자, 1998년 1관을 3관으로 증축해 예술·독립영화로 전환했으며, 2007년부터 ‘중앙시네마’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극장은 명동성당 입구 근처에 있는 까닭에 명동 영화 문화의 상징이었다.
1952년에 동양물산이 인수하면서 자회사 동양영화를 통해 운영되었고, 1990년대에는 벽산그룹과 쌍용그룹의 경영을 거쳤다.
2010년 5월 31일, 중앙시네마는 벽산건설에 건물이 매각되어 76년 만에 폐관하였다. 이 극장은 2014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업무용 건물로 재개발되었다.
◇ 스카라극장 터 : 중구 초동 42
- 일제 강점기 약초극장(若草劇場)으로 불리다가 광복 후에 수도극장(首都劇場)으로 개명하여 2005년에 폐관
스카라극장은 일제 강점기 1935년 약초좌(若草座)라는 이름으로 극장이 세워져, 약초 동보극장(若草東寶劇場) 혹은 약초극장(若草劇場 : 와카쿠사 게키조우)이라고도 불린 후에도 몇 번 극장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5년까지 운영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극장의 소유주는 일본인이었다. 1,172석 규모의 대형 극장으로 영화와 공연을 병행했으며, 광복 후 1946년에 홍찬 지배인이 인수해 수도극장(首都劇場)으로 개명했다. 이 시기에 국내 최초 키스 장면 영화 《운명의 손》 개봉 등으로 화제가 되었다.
1962년 9월, 이 극장은 김근창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며 ‘스카라극장’(Theatre Scala)으로 재개관했다. 이 당시 외화 상영에 주력하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 흥행작을 선보여, 1960~70년대 충무로에서는 높은 매출과 관객 수를 자랑하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에 명보극장,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시설 좋은 영화관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조금씩 쇠퇴했지만, 1990년대 중반의 단관이 주류이던 시절까지 건재한 위치를 유지했다.
1990년대 보수 공사로 좌석을 700석으로 줄여 쾌적함을 강조했으나 경쟁 심화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복합영화관 극장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자, 스카라극장도 내림세를 맞게 된다. 스카라극장은 극장 시설을 보수하고, 다양한 영화 관람 이벤트(계획된 행사)를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아 관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2005년 11월, 국가유산청이 극장 건물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예고하자, 소유주인 화성물산은 한 달 뒤인 12월 6일에 기습 철거를 감행했다.
3년 뒤인 2009년에 이 극장 자리에 「아시아경제신문」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 이름은 '아시아 미디어타워' 이다.
◇ 명보극장 : 중구 마른내로 47(초동 18-5)
- 1957년에 한국 영화 전용관, 복합영화관을 거쳐 2008년에 폐관한 후 명보아트홀로 바뀐 극장
명보극장은 1957년에 충무로에서 개관해 한국 영화 전용관으로 출발했다가, 국내 최초의 복합영화관을 거쳐 2008년에 폐관한 후 명보아트홀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 극장은 1957년에 함흥 출신 영화제작자 이지룡이 세웠다. 1,224석 규모로 개관한 명보극장은 초기에는 한국영화 전용 극장으로 운영되었다. 6·25 전쟁 이후 충무로에 세워진 현대식 극장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이 극장은 개관 초기에 '성춘향', '폭군 연산군' 등 한국 고전영화와 '지옥의 묵시록', '아마데우스' 등 할리우드 명작을 상영하며, 2,000만 관객을 모았다.
명보극장을 개관한 뒤에 자금난 등으로 극장의 운영권이 대림산업으로 넘어갔고, 1977년에 배우 신영균이 이 극장을 인수한 후 고품질 한국 및 외국 영화를 상영하며 인기를 끌었다. 1994년 국내 최초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명보프라자'로 재탄생했으나, 2001년 원래 이름인 명보극장으로 환원되었다. 2000년대 복합영화관과의 경쟁으로 쇠퇴했다.
2000년대 경쟁 심화로 2008년 4월 30일에 영화 상영을 종료했으나, 2009년 신영균 예술문화재단에서 '명보아트홀'로 리모델링해 재개관했다. 현재는 실버극장과 다양한 공연(뮤지컬, 연극 등)을 중심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