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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달의 여신
동, 서양을 무론하고 달이 여신의 존재라는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중국신화에서도 달의 여신이 주인공이 되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신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달은 여신의 상징적 존재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달은 태양처럼 광휘가 넘쳐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세상 천지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는 어둠의 존재도 아니다. 분명하지 않는 중성적 속성 때문에 악도, 선도 아닌 중간적 존재가 된 것이 달이다.
달은 시간의 개념에서 보면 순환적 양식을 가진다. 만월이 되었다가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게 밤 사이에 기울어져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사흘이 지나면 서쪽 하늘에 초생달로 다시 살아난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천상의 징표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의 생명을 발아하고, 탄생시키는 자궁의 주기를 보여준다. 따라서 달은 재탄생의 주관자이고, 부활의 주재자이다. 달은 밤 사이에 촉축하게 나려서 풀에게 생기를 주는 이슬의 관리자이다. 이슬을 맞고 생명이 충만해진 풀을 뜯는 가축을 가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달은 만월이 지나면 스르르 스러지듯이 죽음을 주재하는 신이기도 하다. 죽음이 달의 관장이라면, 달이 우리 앞에 보기 좋은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추측된다.
태양신 복희와 부부 사이로 등장하는 중국 신화가 그래도 달의 위상을 좀 더 높여준다고 하겠다. 중국 신화에서 달의 여신의 계보는 여와 - 서왕모 - 상아(항아)로 이어진다고 본다. 여와는 달의 여신이라기보다는 태모신적인 성격이 강하다. 서왕모는 달의 신은 아니지만 계보상으로 달의 여신으로 본다. 서왕모부터 살펴보자.
산해경에서 묘사한 서왕모의 형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서왕모는 형상이 사람과 같으나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잇빨을 가졌다. 휘파람을 잘 불어서 소리는 소름이 끼친다. 봉두난발에다 머리에는 옥승을 썼다. 하늘의 재앙과 오형잔살의 기(氣)를 가졌다.’형상으로 보아서는 호랑이와 연관이 있는 신이다.
서왕모는 여와의 후신이라고 말 함으로 달의 여신이다. 달이 재탄생을 주관하지만 죽음을 다룬다는 것은 세계 곳곳의 신화에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중국 신화에서는 달의 신이 한발 즉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인 가뭄을 주재한다. 재앙을 주는 것이 달의 신이라면 서왕모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할 리 없다.
아즈텍 신화에서도 달은 태양이나 낮에 반대되는 악의 세계를 주재한다고 보았다. 일식은 악의 세력이 선한 세력에 침범하는 것으로 보았고, 일식은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날 증후로 보았다.
중동이나 이집트의 신화에서는 달보다 금성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새벽하늘에 금성이 떠오르면 곧 날이 밝아지리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낮을 인도하는 금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금성신 인안나를 달의 신 난나의 딸로 보았다. 달은 금성신을 출산한 신으로만 다룬다. 사막지대는 지표가 될 만한 지상의 존재물이 없다. 끝없는 평지에 지평선만이 펼쳐져 있다. 지리적 특성상으로 달이 시간의 지표(역법의 지표)가 되기는 어렵다. 금성(시베리우스)이 지평선에 떠오르는 순간이 시간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금성을 더 숭상하는 것이 이해된다. 사냥의 신인 아르테미스를 달의 신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달빛의 신이라는 것이 정확하다고 하였다. 아르테미tm 역시 달의 신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다.
달과 해의 관계를 부부로 설정한 신화가 많다. 달이 여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나 남자로 보는 지역도 더러 있다. 알라스카의 북부지역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의 신화에는 해가 여자이고, 달이 남자로서 부부이다. 해는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바랐고, 달은 추워지기를 바랐다. 부부가 이 문제를 두고 걸핏하면 싸웠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너무 화가 난 남편(달)은 아내(해)의 유방을 날카로운 칼로 잘라버렸다. 해는 붉은 피를 흘리면서(해가 붉게 빛나는 이유이다.)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남편도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으나 너무 뜨거워서 가까이 다가 갈 수 없었다. 달은 밤이 되었다. 그러나 해와 달은 부부이므로 어떤 때는 해가 달을 찾아가고(월식), 또 어떤 때는 달이 해를 찾아간다.(일식)
에스키모인의 신화가 일반적인 해와 달의 신화에서 성의 역할이 다른 점은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이들의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여신을 남신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려는 이들의 사유 세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신화는 일본에도 있다. 햇님은 여신이고 달님은 남 동생이다. 이런 종류의 신화는 북방계의 신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는 남자, 달은 여자로 본다. 그러나 부부가 아닌 오누이로 설정한 신화도 많다. 떡장수인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오누이의 이야기가 잘 말해준다. 호랑이는 거짓말을 하여 할머니를 잡아먹는다. 할머니 차림을 하고 오누이를 찾아간 호랑이는 오누이도 잡아먹으려 한다. 어린 남매는 눈치를 채고 도망을 가서 샘가에 있는 나무에 올라갔다. 하늘에게 기도하자 동아줄이 내려와서 이를 타고 하늘에 올라간 오누이는 오빠는 해가 되고, 누이는 달이 되었다. 이들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베풀었는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신화에 나타나는 달은 여자이다. 달은 음양에서 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아프리카의 부시맨 신화에도 달에 관한 것이 있다. 산토끼가 어머니가 죽자 구슬프게 울었다. 달이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와서 위로하였다. 어머니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이 든 것이다. 달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듯이 어머니도 살아서 돌아오리라고 하였다. 산토끼는 달이 거짓말을 한다면서 믿지 않고 계속하여 울었다. 달은 화가나서 산토기의 웃 입술을 찢어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도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달은 재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같다. 다만 토끼가 달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사냥군이 부시맨들이 약삭빠른 토끼에 대하여 악감정을 가진 것의 표현이 아닐가?
서왕모를 무섭게 표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후한의 예의지에 ‘위에 신인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신도(神荼)이고, 하나는 욱루(郁루)이다. 사람을 해치는 여러 귀신들을 다스려 갈대끈으로 묶어서 던져버린다.’라고 했다. 욱루는 허수아비(괴뢰)를 말하며, 옛날에 귀신을 쭟던 방법으로 가면을 쓰므로 머리가 크게 보이도록 한 사람을 일컫는다. 주례에서는 이런 사람을 방상씨(方相氏)라고 불렀으며 귀신을 쫓는 종규(鐘馗)의 원형이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 설명대로라면 서왕모의 뿌리는 옛날에 귀신을 쫓는 굿을 하던 무녀이고, 굿을 할 때 험상궂게 보이도록 가면을 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팔월 대보름의 휘영청 밝은 달 속에서 옥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질을 한다는 상상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아름다음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충만감을 준다. 서왕모가 호랑이 모습이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토끼는 언제부터 달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달의 신은 서왕모이고, 또한 죽음의 신이다. 나중에는 상아로 연결된다. 산해경에 의하면 호랑이 신 도(荼)가 사는 산은 만 가지 귀신들이 출입하는 산이라고 하였다. 호랑이 신과 귀신과 관계를 설명해주는 글이다. 실제로 중국의 고대에 만든 청동기에는 호랑이가 귀신(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을 잡아먹는 모양을 한 용기가 있다. 그렇다면 서왕모를 호랑이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 이해된다.
달 속의 토끼는 호랑이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준다. 초사 천문(天門)지에 ‘밤에 빛나는 달은 무슨 이유로 죽었다가 살아나는가? 그 이(利)가 얼마나 날카로우면 <고토(顧兎)를 뱃속으로 먹어 치우는가?>’라는 글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고토를 토끼로 해석한 것이 옥토끼로 잘못 알려진 단초가 되었다. 중국 언어에서 음의 특징으로 고토는 호랑이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말하자면 달 속에 토끼가 있다는 신화는 달 속에 호랑이가 있다, 라고 바꾸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달의 신은 죽음의 신이고, 귀신을 다스리는 신은 호랑이다. 이 두 신화가 결합하여 달 속에는 호랑이가 있다는 전설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후대에 와서 글자의 음을 잘못 해석함으로 호랑이가 토끼로 둔갑한 것이다.
이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호랑이가 토끼로 바뀌게 되는 동기를 단순히 음의 특성으로 따지는 논리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반드시 있다. 대중의 정서가 호랑이에서 토끼로 바뀔 때는 나름대로 사회적 배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초나라에서 출토된 칠화에 봉새가 호랑이를 발톱으로 짓누르는 그림이 있다. 봉새는 태양의 상징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초나라 사람이 이방의 호랑이 신 숭배족을 이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쨌거나 고대 사회에서 달의 위상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보기이다.
후대로 오면 서왕모는 인간에게 선한 일을 많이 배푸는 여신으로 새롭게 나타난다. 용모도 호랑이가 아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의 꿈꾸는 세상도 서왕모가 주재하는 곤륜산에 가서 그들과 어울려 사는 신선이 되는 일이다. 그만큼 서왕모의 위상이 높아졌다면 달은 어떤 위치로 바뀌었을까?
다음 세대의 달의 여신이 된 상아 즉 항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달은 여인의 상징이다. 달로 도망 간 항아가 여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므로 달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대중의 정서임을 말해준다.
항아는 예(중국의 인간 영웅이다.)의 부인이다. 예는 하늘나라의 장군이었으나 죄를 지어서 인간세상에 귀양을 왔다. 항아도 하늘나라의 선녀이었으나 남편을 따라 인간세상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 사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죽음의 신이 움켜쥐고 있는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서쪽 세상에 곤륜산이 있고, 그 산에는 서왕모가 산다는 소문을 들었다. 서왕모는 곤륜산 정상에 자라는 불사수라는 나무의 열매로 불사약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다. 예는 불사약을 구하러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헤라클레스으 영웅담과 유사하다) 서왕모를 찾아가서 불사약을 간청하였다. 서왕모는 예가 인간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는 것을 알고 불사약을 주었다. 이것이 마지막 남은 불사약임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집으로 돌아 온 예는 성스러운 날을 받아서 이 약을 아내와 같이 복용하기로 하였다.
항아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은 본래 신의 신분이었은데 남편인 예의 잘못으로 인간이 되었으니 남편은 먼저 아내인 자기를 신으로 되돌려 놓을 의무가 있다. 남편은 죄의 값이므로 자신이 불사약을 먹고 신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예가 집을 비운 사이에 호로병의 뚜껑을 열고 불사약을 모두 먹어 버렸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면서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하늘로,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렇게 꿈꾸었던 하늘나라로 막상 되돌아가니까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어디로 갈까? 하늘나라에 닿으면 남편을 저버린 자신을 손가락질 할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촘촘한 별들 사이에 둥그런 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리로 가자. 잠시 쉬면서 눈치를 살펴보고 나서 결정하자. 월궁에 들어간 항아에 관하여 대체로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몸이 흉측하게 변하여 두꺼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하여 항아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월궁의 셍활이 너무 단조롭고 쓸쓸하였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질을 하는 토끼가 유일한 친구였다.비록 불사의 몸이 되었더라도 남편과 말다툼도 하고, 인간과 부대끼면서 살았던 인간의 삶이 자꾸 그리웠다. 얼마 뒤에 선도(仙道)를 어긴 죄를 지은 오장이라는 신선이 나타나서 계수나무를 도끼로 자르는 벌을 받았다. 나무를 자르면 금방 새롭게 나무가 자라났다.(달의 속성이다.) 끝없이 나무를 자르고, 다시 자라는 일만이 달에서 반복하였다. 무의미한 반복이 되풀이 되는 것은 시지푸스 신화와 유사하다. 항아는 같은 일이 끝없이 반복하는 일에 염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인간사의 일들이 그리움이 되어서 눈물을 흘렸다.
후대의 시인들은 항아를 이렇게 조롱하였다.
‘항아가 월궁에서 후회하네,
푸른 하늘에서 밤마다 ---‘
항아의 전설은 여인의 내면적 속성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한편으로 불충한 아내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다. 항아의 이야기에 이르면 중국인의 사유세계를 보는 듯 하다.
어쨌거나 신화는 달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비춰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더라도 음과 양의 원리가 세상의 조화를 생성한다는 논리는 인간의 출산과 관계를 맺는다. 조선조에 이르면 기자신앙과 음양설이 습합한다. 고적한 밤에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남자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비는 모습은 우리 어머니,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다.
경상도 선산지방에서는 정월 대보름 날에 마을의 공동우물에 보름달이 모습을 드리우면 먼저 물을 떠 마시는 사람이 아들을 수태한다는 민속이 있다. 이것을 ‘용알뜨기’라고 한다.
달의 신화는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전해온다. 그러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끝없이 순환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첫댓글 그림 하나 없이 이렇게 빽빽히 적혀진 해와 달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