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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말씀 : 시편 95편 1~7절(표준새번역)
시95:1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 높여 외치자.
시95:2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
시95:3 주님은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뛰어나신 왕이시다.
시95:4 땅의 깊은 곳도 그 손 안에 있고, 산의 높은 꼭대기도 그의 것이다.
시95:5 바다도 그의 것이며, 그가 지으신 것이다. 마른 땅도 그가 손으로 빚으신 것이다.
시95:6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시95: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가 손수 이끄시는 양 떼다.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
* 말씀묵상
(1) 오늘 나에게 다가온 말씀(한 단어, 한 구절)은 무엇입니까?
(2)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 또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말씀 나눔
목사님께서 고별설교를 하라고 하시는데 굳이 가는 마당에 설교를 ...그럼 어떤 설교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저에게 주신 개인적인 말씀이지만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함께 나누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기 빈들 교회가 저의 삶의 3번째 사역지입니다. 이전의 교회를 사임을 할 때 분명히 기도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해서 사임을 하겠다고 했더니 한 번은 다 가르쳐 놓았더니 간다고 뭐라고 하시고 한 번은 그만 두기를 바라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그만 둔다고 혼이 난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빈들 교회는 연약하고 부족한 과부 한 사람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떠나가는 마당에 좋은 추억을 간직하며 떠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세워주셨는데 기억에 남을 만한 말씀으로 여러분과 은혜의 자리에서 서로 축복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요약하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시편 95편은 제사장이나 레위인 봉사자가 성전에 모인 회중들을 향하여 여호와를 찬양하고 경배하고자 초대하는 일종의 찬양 시편입니다. 일종이 명령문이자 초청의 형식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부르고 있습니다.
“오너라” 반복되는 청유형의 표현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서둘러 주님께로 향하도록 만듭니다.
1절 :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6절 :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1절 우리가 노래할 대상이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높여 외치자. 구원의 반석 이신 하나님은 “여호와 수리”입니다. 여기서 반석은 넓고 평평한 바위로서 어떠한 것을 지탱해 주는 견고하고 든든한 기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고전10:4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땅은 주변의 열강들 사이에 놓인 땅입니다. 지정학적으로 수많은 주변의 침략과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땅을 지키며 사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것이었으며 주변에 강한 블레셋을 비롯하여 이방 나라는 이스라엘을 탐내고 괴롭혔습니다. 이런 외세의 침입을 극복해야 했는데 이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선민사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과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환난과 위협을 겪으면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거대한 바위뿐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든든한 바위가 되어주신 분 그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고백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새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나요?
주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왕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은 우상숭배로 다양한 신을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왕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며 모든 자연 만물을 주관하시고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도우실 수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반석 이신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우린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시 62:2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삼하 22:2 다윗이 하나님이 모든 원수들과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셨을 때 다윗이 부른 노랫말 속에도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이 시간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수리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일생 가운데 함께 계시기를 바라며 고된 인생길에 구원의 은혜가 경험되리라 믿습니다.
6절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 우리를 지으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자. 즉,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며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도록 이끌고 가시는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지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호와 호세누 :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어떤 물건을 만든 사람은 그 물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잘 안다는 것은 특성과 장점도 포함하지만, 약점과 핸디캡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십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무릎을 꿇자고 합니다. 이점을 시편 기자는 양과 목자의 비유를 통해 설명합니다.
시100:3에 보면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가축으로 길러지는 양의 시력은 나쁘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앞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게 보이면 따라간다. 그래서 방향감각이 둔하여 낭떨어지나 가시나무를 구별하지 못하지만 귀가 밝아 목자의 음성은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양은 털을 주기적으로 깍아 주지 않으면 털에 눌려 움직이지 못합니다. 양은 풀밭에서 방목하는 식습관 때문에 적은 양의 비가 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양은 잘 속는다. 양은 반드시 자신들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강하다. 양은 잘 넘어진다.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양은 이기적이고 제 멋대로이다. 새끼 양이 배고파서 어미 양에게 우유를 얻기 위해 다가가면 매정하게 새끼를 뿌리치고 가 버린다. 양은 겁이 많다. 힘이 약하여 방어력도 없고, 다리가 짧아 맹수로부터 도망가지도 못한다. 우둔하고 고집이 센 동물이며, 울타리가 없으면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기 때문에 반드시 목동이 필요하다. 겁이 많아서 한 마리가 도망가면 다 도망간다.
이처럼 양은 목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성경에서는 이런 양의 모습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쉴만한 물가와 맑은 시내로 인도합니다. 양은 목자를 따라갈 때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양이 실족하지 않도록 인도 하고 못된 짐승의 공격에서 막아주고 대신 싸워줍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우릴 그렇게 사랑하고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린 그 분께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관계를 맺고 있고 양도 목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반석이 되십니다. (여호와 수리)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고 그가 기르시는 백성입니다. (요 10:27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럼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7절 : 음성을 들어라. 이 말씀은 히브리서에 바울이 인용한 말씀입니다. (히3:7~11)
앞서 설명한 양은 시력이 좋지 않아서 혼자서는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기 힘들어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몰아가는 곳으로만 가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몰아가실 때 방해 되는 요소 하나가 있어요. 오늘 말씀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보아라.”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개혁개정에서는 *완악하게 하지 말아라*. 완악의 뜻은 자기 생각만을 강하게 고집하며 타인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완고하게 말아라.” 하면서 들어준 예시입니다.
오늘 본문 뒤의 내용으로 (8절) 백성은 출애굽을 경험하고서도 신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진 친 곳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목이 말라 불평합니다.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하는 거죠.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우리를 죽게 만든다고 모세를 원망)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반석을 지팡이로 쳤고 백성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이곳을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다 여호와를 시험하였다 하여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함 ( 9절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또 시험 하였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백성을 보면서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너희는 또 의심하고 시험하고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을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틈만 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후회합니다. 므리바에서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 므리바에서처럼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분명히 보고 알고 깨달았음에도 우리는 마음이 완고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수리 / 여호와 호세누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우리를 손수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끌릴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은 어렵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서울로 가는 것을 결정하면서 하나님이 이곳에 머무르라고 하시는지? 떠나라 하시는지를 알고 깨닫기 위해 많은 시간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한 편 소개할게요. 제가 서울로 가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시속에
여호와 이레 : 하나님께서 준비하심 / 여호와 샬롬 : 하나님의 평화
여호와 닛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 / 여호와 라파 : 치료의 하나님
여화와 수리 :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 / 여호와 호세누 :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기도 : 우리의 반석과 구원이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예배하고 찬양하게 하시고 무릎 꿇는 자녀로 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친히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 우리도 오늘 말씀에 오너라 너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라 하셨으니, 잘 듣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구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움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