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공시
<수필> - 文霞 鄭永仁 -
드디어 집사람의 생일 공시(公示)가 하달되었다.
몇 월 며칠이 자기 생일이란다. 더구나 이번에는 칠순까지 겸한다고 한다. 유난히 칠순을 강조한다. 그 명령 같은 생일 공시를 받들 자는 남편인 나와 딸뿐이다.
딸은 아직도 두어 달 남았는데, 벌써부터 생일 타령이냐고 투덜거린다. 아내는 눈꼽만치도 미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마치 당당한 포고령을 듣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금년 달력에는 이미 내가 집사람의 생일날에다 큼직하게 붉은 유성매직으로 둘러치기까지 했다. 그날 일진(日辰)이 ‘을묘(乙卯)’다. 차라리 ‘을술(乙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내는 오뉴월 개팔자다.
생일 공시를 하면서 은근히 받고 싶은 선물을 암시까지 한다.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따로 없다. 재작년 내 칠순에 빗대어 그에 버금가는 기대를 하고 있나보다. 나와 딸은 어안이 벙벙하지만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보름 전부터 갑자기 들이닥친 아내의 발병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고 갔는데……. 지금에야 마음의 긴장과 불안감이 너누룩해졌다. 그 상황에 대놓고 뭐라고 이야기할 계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검사를 한 마당에 그 결과를 보고서야 급한 불을 껐기 때문에 그런 마당에 뭐라고 어깃장을 놓을 처지가 아니다.
더구나 내가 믿는 신에게까지 이번에 집사람의 최악의 상황을 비껴주신다면 아내의 무슨 말이든지 듣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내의 자작 생일날 사전 알림은 우리 둘 앞에서 포고령을 방불케 한다. 한 마디로 둘이서 알아서 기라는 암시가 가득 담겨 있다.
한번은 아내의 생일에 산 햇수만큼 장미 상자를 선물한 적이 있다. 선물을 받은 아내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현찰로 주면 좋잖아요. 이건 시들면 고만이잖아요.” 하는 눈빛이 여전하고, 말본새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아내에게 당신은 낭만이 없다고 하니, “낭만에 초 쳐 먹을 수 있어요.” 한다.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투다. 하기야 낭만은 눈 씻고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주의자이다. 개띠라서 그런가…….
어느 작가의 꽁뜨에 보면 아내의 생일 선물을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질 좋은 고무장갑을 포장을 잘해서 주려고 한다. 나도 그렇게 했다가는 질 좋은 고무장갑으로 맞을 일 있나? 더구나 설거지용 고무장갑은 내 소관인 경우가 많으니…….
늘그막의 받고 싶은 선물을 이즈음은 ‘3금’이라 한다. 현금(現金), 지금(只今), 입금(入金)이라는데…….
무엇으로 할까?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선택이다. 현금이냐, 물건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서 하는 독백(獨白)은 햄릿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금이냐, 물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현금으로 하면 얼마를, 물건으로 하면 무엇을……. 그 속내를 어찌 알리! 그리고 딸과 합작으로 할 것인가, 단독으로 할 것인가.
나는 빈궁마마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다. 집사람은 꽤 오래 전에 예닐곱 시간 여의 수술 끝에 ‘빈궁마마’로 등극했다. 그때 내가 일차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아내가 온전히 빈궁으로 수술실에서 나오면 무슨 말이든지 잘 듣겠다고. 거기다가 나도 오래 전에 ‘쓸개 빠진 남자’가 되었으니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따로 없다. 쓸개가 없으니 더구나 우유부단한 성격에 이리저리 줏대가 흔들린다.
더구나 엊그제 빈궁마마는 조직검사까지 한 마당에 나의 잔망스런 생각의 나래는 이번에 아주 급한 불만 꺼주시면 중전마마처럼 받들겠노라고 내가 모시는 신(神 )에게까지 약속했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여보, 설거지 안 해요? 내가 아플 때 설거지 해준다고 약속 했잖아요?” 거만스런 빈궁의 하명이 떨어진다. 이 주둥이는 왜 그런 약속을 함부로 했는지, 특히 여자들과는 허투루 약속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나는 끽 소리 못하고 내 전용 빨간 앞치마를 걸쳤다. 두 번 닦지 않게 깨깟하게 닦으라고 누워서 하달한다. 그러고 나서 웬 코맹맹이 소리로 “여보, 당신 커피 안 마셔요?” 이젠 직유법도 아닌 은유법으로 커피 심부름까지 시킨다. 그것도 “내 껀 물 적게 타는 거 알지요?”
오늘도 나는 설거지를 부지런히 마치고, 빈궁마마에게 커피까지 대령한다. 이젠 이런 것이 점점 굳어져만 가는 것 같다. 아마 젖은 낙엽족이 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인가.
‘아, 옛날이여~’ 라고 목 터지게 부르던 이선희가 왜 그리운지 모르겠다.
이제야 주부들이 설거지를 다 끝내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그윽함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런 것을 진즉 알았더라면……. 이 통에 전업주부로 나서 봐.
그나저나, 아주 오랫동안 집사람의 ‘생일 공시’가 나에게 하달되었으면 좋겠다.
요 며칠 전에 한 30년 동안 부부 모임을 갖던 회원이 아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7년여의 암 투병 끝에……. 비에 젖은 수탉처럼 어깨 축 쳐진 그 회원을 보면서 남편이 아내 앞에서 먼저 가야한다는 죽음 순서의 진리를 다시 한번 가슴에 깊숙이 되새기게 된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