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서일지(2024.07.04~07.25)*
<7월 12일 금요일>
말(言語)의 광활한 세계(世界)
말(言語)은 살아있는 영혼이다.
그 어원을 밝혀내는 작업은
그 민족의 시원을 찾아가는 일이다.
1
-진위 여부에서 논란이 있으나, 번역가이기도 했던 후타바테이는 소설 속의 대사 “I love you”를 고심 끝에 “죽어도 상관없다死んでもいいわ”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같은 문장을 나쓰메가 “달이 아름답네요月が奇麗ですぬ”로 번역했다는 설화는 유명합니다.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4장 격변하는 근대, 3-문학과 신조어 중에서)
현대 한국어가 있기 전의 한국어의 변천과정에서 외국 언어, 특히 한자문화권이 아닌 서구 유럽에서 들어온 각종 언어를 일본에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재미있는 일화다. 물론, 이렇게 일본어나 중국어로 번역된, 서구 유럽의 근대문화와 문물을 뜻하는 방대한 단어들(정치, 경제, 법률, 과학, 문학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한국, 당시 조선시대 말기 대한제국 초기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유입되며 한국어에 영향을 주고 오늘날과 같은 국어가 정착되어 사용되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 땅에 사는 현대인이 고대 사회의 고구려인이나 백제 등 삼국시대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 우리가 나누는 것처럼 서로 대화가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사료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신라와 고구려인들의 말도 서로 달랐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한국어의 조상은 고려시대까지, 한국을 포함한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사료를 바탕으로 추적을 해서 밝혀내는 일이 가능하고, 즉,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조상들과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고 하고, 그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장담을 할 수 없다 하며, 그 이유는 남아 있는 고문서나 책자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듯 고대 삼국시대나 북방의 고조선과 부여 등의 상고시대에 관한 역사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제외하면 현존하는 책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어의 어원과 변천을 다루며 중국, 일본, 거란, 여진, 말갈과 같은 고대 여러 민족과 국가 간의 연관성을 다루는 부분은 다소 난해하고 복잡해서 지루한 감을 주지만, 어쨌든 당시의 국가 간 상호교류나 문화, 생활 방면의 공유차원에 유사한 단어가 발견, 발전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에 없는 이야기로 그 어원(語源)과 관련해 한 가지 떠오르는 이야기로 오래 전 읽은 소설가 최인훈 선생의 산문집에서 본 ‘길’에 대한 명상이 있다. ‘길’은 태곳적부터 있어온 순수한 우리 고유 말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길목’을 들었는데, 길목은 연못이나 샘과 같은 물이 고여 있는 곳과 같은 목적지로 가는 길 인근이나 초입에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는 짐승 사냥과 수렵으로 생활을 연명하던 시대로 물을 찾아 접근하는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동물이 접근하는 길 초입에 사냥꾼들이 숨어 기다리다가 포획했다고 해서 그곳을 ‘길목’이라고 하고, ‘길목 사냥’이라는 말이 생겨났던 것이다. 오늘날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음식이나 술집 장사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으면 ‘길목 좋은 곳에서 장사’한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
2
출람지청(出藍之靑)
우리 집 거실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출람지청(出藍之靑)」이라는 액자는 아내가 대학교 졸업하던 그 해에 지도를 해주셨던, 학과교수님이 친필로 써서 졸업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그때 받은 글귀라고 한다. 오래 전 작고하신 장인어른이 그 글귀를 소중히 여겨 바로 액자로 만들어 아내에게 주셨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그 액자를 몇 번의 이사 중에도 소중하게 잘 보관해서 지금껏 집집마다 동행하고 있다.
좀 쉬려고 소파에 앉노라면 액자의 글귀가 항상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출람지청(出藍之靑)’의 출(出)은 그 뜻으로 치자면 ‘어디로 나가다’라는 것인데, 흔히 집을 나가거나 어떤 장소로부터 밖으로 이동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외출, 가출 등이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왜 ‘뫼 산(山)’ 자가 둘이나 사용되고 위아래로 겹쳐진 채 씌어있을까 라는 의문이 어느 날 슬며시 드는 것이었다(한자는 자연과 사물의 형상을 본 떠 만든 상형문자다). 몇 번 그런 생각을 하며 날이 흐르던 중 어느 날 어떤 생각이 떠오르며 무릎을 딱 하고 치고 말았다.
-일상에서 사람이 집을 들고나는 일에 있어서 육중하고 무거운 태산을 두 개나 이고 질정도의 신중을 기한 후에 출발하라는 의미다. 즉, 모든 일의 시작을 논함에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삼국지의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유비의 권고를 받고 군사(君師)로 나선 제갈공명도 후일 사마의와의 일전을 앞두고 심사숙고해서 출사표라는 명문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다 치고, 이 글자를 좋아하는 건 액자 안에 조그만 흰 한지에 펼쳐진 아내의 대학 은사님의 단아한 필체 때문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늘 생기가 느껴진다. 한 획이라도 무신경하게 그어진 글자가 없는 것이 모든 글자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결처럼 부드럽게 그어진 붓놀림이란! 람(藍)의 맨 아랫단 획은 그 부드러움이 마치 남빛 바닷가에 띄어진 배의 넘실거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넘실거림은 마침내 청(靑)에 이르러서는 발을 한 쪽으로 살짝 들어 올린 듯 젊은 청년의 흥에 겨운 활기찬 몸짓 같지 않은가. 그러면서 출(出).람(藍).지(之).청(靑)의 네 글자는 각자 제자리에서 단아한 형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내의 은사분이 평소 즐겨 쓰시는 별호인 듯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액자 한쪽의 빨간 낙관과 함께 조그맣게 씌어 진 두헌(杜軒)은 당배나무 추녀를 의미하고 있었다.)
봐도 봐도 물리기는커녕 보면 볼수록 정감이 어리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과연 제자를 가르치신 은사님이 주실 만한 선물 같아 늘 감사할 따름이다.
3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서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바보와 앵무새들의 철학에 관하여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 미셀 옹푸레>중에서)
1)이 여름에 사색과 철학 세계의 지평을 단 한 방에 넓혀줄 만큼 흥미로운 책
2)시대를 초월해 통찰력 있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다양하고도 놀랍고도 깊은 사색들의 모음집이다.
3)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복잡하게 펼쳐진 세계에 대해 기분 좋게 사색할 수 있는 통로 100편!
4)이 책은 세계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요약한 한 편 한 편의 칼럼이 모여 이룬, 100편의 시를 모은 시집(詩集)같다.
5)이 책을 쓴 저자의 놀라운 기술(記述)로 어렵다고만 느끼는 철학을 전혀 어렵지 않게 소개한, 철학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