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 지 제법 긴 세월이다. 술발로는 해갈이 여부족이라 택한 글의 길이었다. 쓰다 보니 글맵시도 달라진다. 어느 때는 일기쓰듯 매일 끄적 끄적 거렸다. 다작을 하는 내 경우 테크닉만 는 것 같은 우려감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많이 달라진 내 글 솜씨다. 어릴 적 특별활동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의외의 선택인데 특별활동으로 나는 맨 처음 야구 반을 택했었다.
순전히 이는 아버지가 사준 글러브 때문이었다. 남보다 먼저 글러브를 쥔 경험이 곧 자질은 아닌 것인데 소질에 대한 무지가 빚은 결과였다. 딱딱한 야구공이 나는 무엇보다도 무서웠으며 당시 왼손잡이를 위한 배려는 없었다. 왼손잡이 그리고 무서웠던 것이 나로서는 천만다행인 셈이다. 그 다음 선택한 것이 문예반이다. 이 또한 소질을 쫓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책이 좋아 선택한 고육지책이었다.
엄마라는 주제를 주고 글을 써보라고 했는데 나는 제대로 글구멍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중학교 들어가서도 나는 또 문예반을 택했다. 그런 나는 백일장에 참가는커녕 교내에서도 이름 한 번 오르지 못하고 중학교를 마쳤다. 내 소질은 기실 문예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었다. 중학생 때 안양과 서울을 잇는 큰 안양대교( 나중 그 대교는 1977년 물난리로 끊어지고 말았다.) 가 개통 될 무렵 친구들 몇이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여직 내 기억 속에 있다. 한 친구는 장래 교수가 되겠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파일럿을 꿈꾼다고 했다. 나는 이에 대하여선 한 번도 생각해 본적도 없으면서 천연덕스럽게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다. 그 무렵 나는 박종화의 금삼의 피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무렵의 의식이 그냥 헛것에 닿는 맹목적은 아닌 것도 같다.
친구는 대학 때 ROTC로 육군항공부대에 들어가 파일럿을 하고자 했고 다른 친구는 치과의사에서 전업을 하여 그의 말대로 끝내 교수가 되었다. 파일럿이 되려던 친구는 체력 테스트에서 아깝게 떨어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육군 대령 제대로 엇비슷한 길을 걸어간 셈이다. 나만 특이한 케이스가 아닐까. 공학으로 먹고 살던 놈이 어느 날부터서 갑자기 글을 쓴다고 억지춘향 글에 매달려 지금에 이르니 말이다.
그래도 그 다리위에서 말한 대로 모두들 꿈 가까이 다가간 것도 같다. 이순의 나이 나는 글을 가까이 한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젊었을 때는 ‘무엇을 위해서’ 노력해야 했지만, 더 이상은 세상에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감도, 어떻게든 세상과 어울려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으니 그야말로 좋은 시절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비로소 '나는 누구이며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실체에 관해 제대로 알아볼 좋은 때를 맞이한 것이다.
과연 문예반이 내 소질이었는지 제대로 알아 볼 좋은 기회다. 십여 년의 수련 생활이 내게 준 선물은 그야말로 값진 튼실함이다. 기교라 할 것도 될 것이지만 여느 기술처럼 글에도 노하우란 게 있다. 단지 감성의 재질로서만 충만이 안 되는 것이 글이다. 어려운 해법은 나도 잘 모르고 어려우니 차치하고 쉬운 말로도 기본적인 요건에 대해서는 설명이 가능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참신성이나 절제의 미학이다. 참신성은 바로 의외성의 흥미로움을 말한다.
수필은 진솔하여야 하지만 참신성은 당연한 것이고 물론 소설도 가상적이지만 새로움이어야 한다. 뻔히 아는 글은 매력이 없다. 시야 말로 반 이상이 참신한 상징성이 아닌가. 글은 읽고서 남기는 게 있어야 한다. 임팩트다. 그런 글은 시대 조류에 맞춰 가능한 짤막해야 하며 독자에게 훈계조나 획일성을 강조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이것이 관건이다. 쉽게 노견되고 그로 딱딱해진다. 글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서정성을 말한다.
또한 속으로는 웃을지언정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듯 감정 표출을 자제해야 한다. 웃고 우는 것은 독자의 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때 맞춰 단숨에 눈물이 쏙 빠질 정도의 감정의 유출을 이루도록 진지해야 한다. 바로 감성의 극치와 절제의 미학이 거기에 있다. 아마도 이는 모든 글쟁이들이 갖는 과제이며 또한 작가라면 모름지기 극복할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싶다. 말이 그렇지 이 기법이 쉬운 것은 아니다. 수필을 접하다 보면 매우 난처한 것이 작가의 처신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글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설정이 실은 어렵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함몰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자기 자랑을 일삼은 글은 글도 아니다. 설령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으면 이 또한 눈치 못 차리게 은근히 넌지시 말해야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글의 원천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자명하다. 글이란 바로 생각의 흔적이다. 박경리 선생의 ‘ 멀리 나는 도요새 ’란 글에서 말한 대목이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다.
<삶에 대한 애환과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력 없이 생각의 샘에 물이 괼 수는 없는 것이다. >
생각하지 않고서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생각만으로 글이 되지는 않는다. 샘의 맑은 물처럼 정갈한 글을 얻고자 한다면 거르고 또 걸러 맑은 물만 흘러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맑아지려니 자성이 자연 따라오게 되어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요즘 꽤 실감하고 있다. 폭포수 처럼 쏟아지는 생각의 말미를 어찌 가두고 다듬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글을 버릴 줄도 알고 고루함을 과감히 탈피도 해야 한다. 얼마 전 나는 ‘조선의 꽃 열하일기’ 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글 집을 내기 전 나는 ‘우수문화콘텐츠 선정’이라는 모 국가 처에 응모를 했었다. 나름 수필적 요소를 가미하여 썼다는 참신성의 우쭐함을 내세워 내심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낙방을 했다. 장장 600페이지의 글구멍을 밤낮 채운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낭패감은 실로 컸다. 응모분야로 문학이 아니고 역사 문화를 선택한 것이 폐단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 전공이 역사 쪽이 아니라 위원들이 알아서 제쳐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정이 든 만큼 볼 의욕도 안 생겨 한 동안 열하일기 원고를 처박아 버렸다. 그러면서도 공들인 마음이 아까워 차마 밀치지는 못해 다시 살펴 본 열하일기였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떨어진 이유를 제대로 알았다. 아직도 미진하기는 여전하지만 만약 응모에서 채택이 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가치 떨어지는 고만고만한 글 집으로서 태생이 될 과오를 낳을 뻔 했다. 애벌레가 고치를 뚫고 나갈 때 조그만 구멍으로 힘들게 나오는데 쉽게 나가면 날개의 힘이 없다고 한말이 실감이 난다.
애벌레는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올해는 ‘조선선비 최부의 표해록’이라는 글로 응모를 또 했다. 역시 또 낙방했다. 하지만 작년처럼 낙심하지는 않는다. 다시 보고 고치고 고칠 기회가 내게 또 주어진 것이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140번,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38번,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는 12번 거절당했다. 흥미롭게도 위대한 작가들은 대부분 거절을 수차례 경험했지 않은가.
거절은 오히려 그들의 의지를 강화시키고 결의를 다지게 하여 성공의 길로 인도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의 글 성과는 의외로 유배 길에서 얻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정약용도 김만중도 김정희도 모두 그렇다. 낙심천만은 오히려 삶을 북돋고 새 방향을 일깨우기도 한다. 글은 생각을 대변하는 묵도의 길이다. 켜켜이 쌓인 낙심은 응결된 글로 해방구를 찾고 그만큼 생각이 또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다.삶이란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정진하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박경리 선생의 ‘멀리 나는 도요새’ 란 수필이 청량한 가을 아래 영롱하게 빛나는 이슬처럼 오늘 내게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고 있다.
<출세라는, 돈을 번다는 상자에 넣어진 사고방식, 그 상자는 일본의 전자제품같이 날로 작아져 간다. 그 상자에서 뛰쳐나온 자만이 우주를 느끼고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의 그 뜨거운 생명을 알게 될 것이다. 생명은 우주를 포옹하고 간다. 인간도 초목도 벌레까지, 그리고 우리는 도달하는 것이 아니며 영원히 가는 것이다. 옛날 노인이 말하기를 이야기는 거짓말이라도 노래는 다 참말이다, 오늘 글을 잘 쓴다는 전문가들보다 옛 노인이 먼저 더 정직하게 예술의 본질을 체득했던 것이었을까.
생명의 원천인 흙 한 줌보다 지폐 한 장이 소중하다는 생활 철학에 찌든 현실에서는 문안과 문밖이 있을 뿐 하늘도 없고 땅도 없다. 따라서 문안에서는 쓸모 없는 지식을 채워 머리통만 커졌지 삽자루 하나 안 잡는 왜소한 인간을, 한 분야만 파고들어서 한 부분밖에는 볼 수 없는 무식한 전문가를 양산하고 문밖에서는 자신의 삶을 장난감 망가뜨리듯 어렵잖게 내동댕이치는 추세가 현저한데이들 양자가 어찌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를 알까보냐.>(2016 9 11)
첫댓글 파일럿이 되겠다는 친구는 장진근이었고 교수가 되겠다는 친구는 신익이었는데 해진이가 말한 것은 도시 생각이 나지를 않아 옮기지를 못했다. 흥섭이는 반야심경을 목에 걸고 다닐 정도였는데 엉뚱하게 친구는 나중에 미국에서 목사가 되었다.
대학신문사에 응모를 했다 논설문에서 낙방을 하고 그렇게 지내다 교생실습 지도교사가 아나운서를 추천했다. 새삼스럽게 놀라웠지만 교사가 되어 들은 바가 있어 교내 방송을 도맡아하여 수능방송을 3년하였다. 나를 모르는어떤 분이 KBS에서 스카웃해왔냐는 질문을 들었다고 교감샘이 으쓱하며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이후 나의 교내방송은 끝을 내렸다. 논설문에 대한 트라우마로 글을 쓰는 것은 아예 생각도 져버렸지만 산악회 덕분에 용기를 내어 후기를 쓴다. 문학적이진 못하지만 차츰 나아지겠지라는 용기와 기대감으로 이 공간을 사랑한다~~~~위위 언급한 4명의 친구들을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우리 도경숙 총무의 산행 후기쓰는 솜씨는 일취월장 하여 지금은 누구도 넘볼수없는 경지를 달리고 있어요 ㅋㅋ 문집으로 꾸민 책이 벌써 두권을 지나 세권째로 접어들고 사진 편집하는 솜씨도 날로 발전하고
있어서 저는 세번째 문집이 어떤모습일까 너무 기대가 됩니다 구름나그네 언제 만나면 두권의 문집을 보여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