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란 카페가 있었다. 그 상호의 간판은 한 군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역마다, 동네마다 이 이름을 단 카페가 꽤 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샤갈의 작품 중에는 '눈 내리는 마을'은 없다. 김춘수 시인의 시'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란 시 때문에 빚어진 혼란이었다.
마르크 샤갈(Marc Shagal, 1887.7.7~1985.3.28)
본명은 Moishe Shagal이다. 프랑스로 귀화해 Marc Shagal로 개명한다.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로 20세기 최고의 화가라 할만하다. 유대인 부모에게서 9형제 중에 맏이로 태어났으며 페테르스부르크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1910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 당시 파리에서는 입체파(cubism)가 지배적이었다.
23세의 샤갈에게 역경은 불어를 못하는 것이었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고향이 그리워 러시아 민속과 유대인으로서의 경험, 가족 그리고 특히 약혼녀 벨라를 꿈꿨다.
La Palette에 등록하고 그림 공부를 했으며, 여유 시간이 있으면 갤러리나 살롱 그리고 특히 루브르에서 렘브란트, 반 고흐, 폴 고갱, 밀레, 마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 간다.
1914년 러시아로 돌아가 약혼녀 벨라를 만나지만, 간지 몇 주 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국경이 봉쇄된다. 가난한 젊은 화가에 불과한 샤갈은 부유한 유대인 벨라의 부모를 어렵게 설득하여 그 이듬해 1915년 결혼하여 딸을 얻는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국제적 지명도를 얻은 것을 실감한다. 그러나 1944년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작품 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아내 벨라를 대신할 뮤즈를 찾는다. 그리고 영국 출신의 여성 버지니아와 만나 아들 데이비드를 얻지만, 곧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1950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며, 1952년 당시 60대의 샤갈은 러시아계 유대인 여성 발렌티나 브로드스키(샤갈은 그녀를 늘 바바라 고 불렀다)와 재혼하고, 전 아내 벨라를 대신할 뮤즈를 찾는다. 벨라가 사망한지 8년 만이다.
활력을 되찾은 샤갈은 벨라를 추모하는 작품으로 활동을 재개한다. 샤갈의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하나는 '시간 - 둑 없는 강'으로 제목도 난해하고 주제도 초현실적이다. 이 그림 속에는 추시계가 강물을 따라 둥둥 떠다니고 날개가 달린 거대한 물고기가 시계 위에 앉아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평생을 이 물고기처럼 산 샤갈의 인생을 빗댄 굉장히 적절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샤갈은 놀랄만한 시간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위험이 닥치기 직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훌쩍 떠나곤 했다.
이처럼 놀라운 직감 덕분에 샤갈은 유대인 학살과 스탈린의 대 숙청, 나치 강제 수용소를 피할 수 있었다. 샤갈은 거의 100세까지 살며 전쟁과 잔학, 유혈로 가득 찬 한 세기를 보낸 샤갈의 인생 항로를 보면 그의 화풍을 이해할 만 하다.
생일
시간-둑 없는 강
누워있는 시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할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은 샤갈의 고향인 '비쳅스크'라는 곳이다. 유대인들의 빈민촌에 지나지 않는 판잣집과 가난한 거리, 성당의 종탑들이 높이 솟은 곳...
비쳅스크는 마르크 샤갈에게 꿈과도 같은 곳이었으리라. 샤갈은 불행하게도 그토록 애정 어린 고향을 떠나 삶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살았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비쳅스크는 2차 세계대전 중 많은 곳이 파괴되어 샤갈이 멀리 타향에서 그 사실을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짐작이 간다.
김춘수 시인은 지금은 이 땅에 없지만 그의 시 영혼은 늘 우리와 함께 한다. 시인의 시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인간의 풋풋한 인정이 넘치고 사람 냄새가 난다. 특히 시의 끝부분에서 따듯한 향기가 오래도록 가슴을 감싼다는 박병두 시인의 변이다.
[출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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