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나이보다 한두 살 많은 이 나라의 형님벌입니다.
우리 동기들 중에는 1948년생으로 나라와 동갑나기거나 두세 살 위인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대개 그런 정도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겪은 경험, 곧 대한민국의 역사는 우리들의 일생과 일치하며, 대한민국의 애환은 처음부터 고스란히 우리들의 애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태동하는 와중에서 우리 부모들은 참 대단했습니다.
일본에게서 해방되었지만 나라가 없던 혼란 중에도, 겨우 나라가 세워져 광란하던 시기에도, 나라가 세워졌지만 나라와 나라가 이념으로 뒤엉켜 전쟁을 하는 소용돌이 중에서도 우리 부모들은 생명을 이어가는 생산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세대는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형제자매가 많고 친인척이 두터운 가족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같이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여름에 우리나라가 75주년 광복절을 맞이했으니, 당연히 우리들은 모두 75세 이상으로 나이든 노인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에 난리치던 이념의 쟁의는 아직도 거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지만, 세상은 아마도 한반도가 생긴 이래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싶을 정도로 급변하는 시기를 우리 세대가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기를 잠시 뒤돌아봅시다.
우리들이(국가든 단체든 개인이든) 변화를 야기하며 행하여 온 수많은 선택들 중에 ㅡ 그 선택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불문하고ㅡ 한 가지를 꼽아본다면, 그대들은 어떤 사연을 찝어내겠습니까?
필자는 이 점에서 딱 하나 찝어서 할 말이 있습니다.
되짚어보면 대한민국이 시행한 국책사업 중에 엄청나게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에도 온 국민이 생각 없이 따라가는 바람에 요즈음 21세기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비극의 단초가 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필자도 나라를 믿고 그 국가시책을 따라가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다름 아니라 나라에서 1960년대에 시작하여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까지 이르도록 공공기관까지 동원하여 유불리한 조건을 달아가며 선전하던 다음 구호가 그것입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지금 세상이 뒤집어져 형제자매가 없어진 요즘 자식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남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데가 없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는 청소년들의 불행한 일들이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구호는 다음과 같이 했어야 했습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넷까지만 하자. 정 안되면 다섯까지.”
⁕ 이 이야기는 오늘 서부연합 모임에서 나온 화제 중 하나였는데, 필자의 생각이 좀 보태졌습니다.
⁕ 저녁 6시 당산동 大觀園에 내남정 김영구 정경석 오세문 방기한 최홍규 여섯이 모였습니다.
특히 오늘 모임의 호스트로 내정된 내남정이 몇 일전 갑작스런 증세로 심장수술을 했다고 카톡에 소식이 전해져 당연히 못 나올 것이라고 여기고 호스트를 방기한으로 바꿔 공지까지 했는데 수술 경과가 좋아 오늘 모임에 참석해 호스트 역할까지 마무리하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축하할 일입니다.
그리고 배동한이 오랫동안 미적대던 사무실 청산문제가 잘 해결되어 그 일로 분주해 오늘 참석하지 못하였다고... 또한 축하할 일이라 여기며 담달에 가벼운 기분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모인 우리 모두 신선주 水井坊의 향을 즐기는데 문제없고, 오 회장이 이끄는 찻집에서 이차를 즐기고... 이렇게 우리들 모두 여전함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