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컬럼과 수필의 관계)
-의학 컬럼 ‘醫窓’에서-
이동민
신문에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룬 칼럼, 비평, 사설이 실린다. 보도 기사가 사실을 전하는 것을 주로 하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쓰여진다. 칼럼은 문학성이 있는 부드러운 문장으로 쓸 수 있다. 칼럼 등의 글은 쓴 사람의 주관적 판단과 주장을 전면적으로 보여준다. 칼럼은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사회 문제와 관련성이 있는 내용이 많다. 일반적으로 칼럼은 논술과 수필의 중간쯤으로 본다. 논술적인 성향 때문에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흘러서도 안 되고 논지가 불명한 체로 넘어가서도 안 된다.
칼럼은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칼럼의 내용에 독자가 공감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다음의 문제이다. 칼럼에는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주제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칼럼에 정보와 뉴스를 담는다. 통계 숫자를 담으면 독자의 신뢰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문장은 두드럽게 사용해야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칼럼은 예리한 시각과 날카로운 감각으로 사건을 이해하고 필자의 주관으로 비판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식이다.
칼럼은 글로 표현한다. 스토리로 만들어서 표현한다. 자신이 아는 정보를 스토리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칼럼 한 편 속에 사람의 웃음과 울음과 분노를 담으면 좋다. 그리고 인생이 담기면 좋은 칼럼이 된다. 이런 점들이 칼럼의 수필적 요소들이다.
칼럼은 수필과 유사점이 많으면서도 수필보다는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글쓰기도 핵심은 의미의 분명한 전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예 서두에 결론을 부각시키는 기법의 글쓰기를 많이 한다. 긴장감과 속도감을 주는 표현을 많이 하고, 독자가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설보다는 주장의 강도가 약하고, 문장도 부드럽다. 왜냐면 사설이 객관적인 사실을 다룬다면 칼럼은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필적인 요소들도 많이 부가된다.
칼럼을 쓰려면 교양과 경험이 풍부해야 예리한 시각과 날카로운 감각으로 사건의 전모를 소개하고, 비판할 수 있다.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글쓰기이므로 인간적인 감정을 쏟아 부어서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은 칼럼 쓰기의 요령이다. 말하자면 수필보다는 주장이 강하면서도, 수필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의사라는 전문가가 쓰는 의창은 수필쓰기 기법이 가미되어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킨다.
의창은 의사가 자신의 진료 경험을 통하여 의학 지식을 전달하거나. 의학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형식의 글이 많다. 의창 형식의 글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의학 상식의 전달이라는 목적 때문에 일반적으로 ‘컬럼’ 형식으로 분류하였다. 의창의 일반적인 형식은 의사가 특정 환자를 진료한 사실을 소재로 하여, 수필적인 요소가 강한 스토리로 풀어나간다. 칼럼은 수필보다는 더 논리적인 설명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의창은 병에 대한 지식이나. 의료를 사회 문제화하여 비판하는 형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특이하다. 치료를 하는 자와 치료를 받는 자의 위치는 지시를 하는 자와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자의 위치가 유지된다. 수평의 관계가 아니고 갑과 을의 관계이다. 일반 사회에서 형성되는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 환자도 자신이 을이라는 사실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의사가 쓰는 수필에는 은연중에 사람과 사람 관계가 갑의 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본다. 의사 수필가 협회의 문학 세미나에서 내가 이 점을 지적하는 발표를 하였다. 모두가 공감해 주었다.
의창에서 표현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학 상식 또는 치료를 매개로 하여 맺어지므로 기계적인 관계인 수가 많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사람으로 보고 감정을 투입하면 치료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믿음도 있다. 그러나 의사-환자 관계는 기계적 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인 이상 바탕에는 휴머니티가 깔려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의창은 칼럼적이면서도 수필적은 특성도 많이 지니고 있다.
임만빈은 매일신문에 2008년부터 의창란의 필진으로 활동하였다. 여기에 발표한 글을 모아서 ‘병실 꽃밭’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따진다면 의창으로 발표하였던 글을 모은 컬럼집이다.
나는 병실 꽃밭을 읽으면서 의창도 수필의 형식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책에서 표현된 인간관계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고 따뜻한 감정이 소통되므로 어느 글보다 진한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의창 형식의 글을 수필 장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글 한 편을 소개하겠다.
*눈물을 다시 흘려야 겠다.
중환자실의 한쪽, 여인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환자는 보호자가 우는지도 모른 채 식물같이 꼼짝 않고 있다. 침대 앞에는 뚜껑도 열리지 않은 죽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인은 코를 통해 위(胃) 속으로 들어간 호스에 죽을 넣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꾸만 눈믈을 흘리고 있다. 눈물 속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만들었던 기억들, 좋은 기억도 있고, 애달픈 기억도 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는 순진함만이 있을 뿐이다. 신 앞에서 수천 번 기도하는 것보다 한 방울 눈물을 흘리는 것이 더 가치있다 하지 않는가?
감정을 느끼는 것은 대뇌 피질쪽이지만 반응은 피질 하(下)에서 이루어 진다. 피질은 뇌간을 둘러싸고 있는 변연계(邊緣系) 즉 해마, 부해마, 대상회, 시상하부, 안와전두회, 유두체, 전시상부(뇌의 해부학적 명칭-필자 주) 등이 주요 역할을 한다. 피질 쪽에서는 느낀 가정은 피질하 조직인 시상하부에 전달되고 이곳에서 교감, 부교감(신경을 분류할 때의 명칭-필자 주) 신호를 뇌간에 있는 뇌신경의 핵으로 보낸다.
눈물은 98%가 물이고 약간의 담백질, 전해질 및 당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물샘에서 만들어지고 눈알을 적신 후에 누소관을 거쳐 콧속으로 분비된다. 각만 표면을 매끄럽게 하고 이물질을 씻어내며 광학적 기능을 유지하도록 한다. 당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항균 작용도 한다.
사람이 슬프면 변연계에서 가지해 신호를 시상하부에 전달한다. 시상하부의부교감 신경섬유는안면신경 핵에 전달하고 이은 안면신경 부교감신경을 따라 눈물샘에 전달돼 눈물을 흐르게 한다.
요즈음 나는 자꾸만 눈알(눈동자)이 껄그러워짐을 느낀다. 눈물샘이 마른 듯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애달픈 환자들을 보아도 눈물이 흐르지 않고,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눈알이 촉촉해지지 않는다. 아팠던 시절, 이제는 환자를 내 몸같이 여기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안개 속에 흔들거리는 등불처럼 희미하다.
다시 눈물을 흘려야 겠다. 그래야 눈물을 흘리는 자의 아픔을 이해할 것이 아닌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아니라 식물처럼 누워있는 자의 옆에서흘리는 저 여인의 눈물 같은, 그런 순순한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래야 환자가 나이고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재인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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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형적인 의창 형식의 글이다. 1 단락은 내가 경험한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이다. 2-4단락은 전형적인 의학 상식을 기술하였다. 4-5단락을 다시 의사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였다.
이 형식에서 강한 감동을 주는 것은 1단락과 4-5단락 때문이다. 이것은 수필 형식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나도 예전에 신문에 의창을 연재한 일이 있었다. 소재는 물론 진료 중에 있었던 일들이었지만 내용은 지식의 전달이 목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지식 전달에 주안점을 두었으므로 감동을 전달하는 데는 소홀하였다는 생각이다.
임만빈의 ‘병실 꽃밭’은 의창 형식이면서도 예전에 내가 쓴 글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수필의 형식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의창을 수필의 한 장르로 수용하자는 주장을 한다. 더 확대하면 컬럼도 수필의 영역으로 수용할 수 있다. 다만 인간미가 들어가는 컬럼에 한해서 이다.
우리는 의창류의 컬럼을 수필의 장르로 수용함으로 수필의 영역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다. 디지털 매체가 판을 치면서 글이 점점 건조해지고 글쓰기가 위축되는 우리 사회에서 수필의 역할을 넓힌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한국의 현대 수필이 서정 일변도로 흐른다는 비판이 많다. 칼럼 형식을 수필 영역으로 수용하면 수필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에서 벗어나는 길일 수가 있다. 그러나 칼럼은 또한 칼럼이므로 수필로 접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에 가장 좋은 글쓰기가 의창이 아닐까?
첫댓글 변함없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읽을 때 마다 감사한 마음이 일렁이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수필문예대학을 사랑하시는 이동민 (전)학장님의 애틋함이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