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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라도 있는 집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릅니다.
샬롬! 밤새 안녕하셨는지요?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뜻있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병원 안 가고 건강 지키는 법’ 세 번째는 ‘장(腸)건강을 위한 음식섭취’입니다. 발효식품이나 ‘프로바이오틱스’성분이 많은 음식을 꾸준히 섭취해서 장내 미생물을 유지해줘야 한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아버지는 마땅히 할 일이 없으셨습니다. 건축 현장에도 나가고, 동사무소에서 하는 거리청소, 풀베기 등 허드렛일을 찾아 하루하루를 전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가려나?’ 식구들은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시간이 되면 전전긍긍했습니다. 저는 ‘불안한 가정’이 인간의 정서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경험했습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식구들은 가난보다도 더 힘든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함께 살고 있는 사촌누나네 식구들과도 충돌이 잦았습니다. 큰형은 아예 아버지를 피하여 집을 나가서 입주과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철이 든 저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재활원에서 보낸 광야생활 3년 동안, 그런 아버지라도 있는 집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릅니다.
술에는 장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위에 구멍이 나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셨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남편을 정성껏 보살피고 치료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금방 완쾌되셨습니다. 병이 나은 기념으로 아버지는 담배를 끊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때리고 괴롭히면서 미운 짓을 하는 남편’을 아끼고 보듬어주는 어머니를 보고 ‘부부의 사랑’이란 제3자, 아니 자식도 이해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의 감정을 초월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생들을 보살피느라 혼기가 늦어진 둘째 누나가 좋은 매형을 만나 결혼하여 분가했습니다. 누나는 결혼 후에도 저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서울로 오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아버지와 남은 동생들을 거두어주었습니다. 묵묵히 가족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누나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탓하지도 않고, 자기에게 맡겨진 가족들의 짐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대신 져주었던 누나, 그 희생에 머리 숙입니다.(출처; 기쁨공식, 김인강 / 고등과학원 교수)
김 교수의 어머니와 그 누나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두 분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김 교수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때리면서 괴롭혔던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위에 구멍이 났을 때, 그를 정성껏 보살피고 치료해서 낫게 했다니,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이런 어머니에 대하여 뭐라고 할까요? ‘현명한 여성’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바보 같은 여자’라고 할까요?(물맷돌)
[지혜로운 여자는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제 손으로 집을 무너뜨린다.(잠14:1,표준)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엡5:25,현대인)]
제가 머물던 섬은 ‘고통의 섬’이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병원 안 가고 건강 지키는 법’ 두 번째는 ‘단식 모방식단’입니다. ‘물만 먹는 단식’은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있고 실천하기 어려운 고로, ‘단식 모방식단’이 좋답니다. 아예 밥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칼로리 섭취량을 800~1,100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오래 전, 저는 3년간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이명(귀울림)으로 생긴 우울증이었습니다. 제 양쪽 귀에서는 단 1초도 쉬지 않고 고막이 찢어질 듯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명(耳鳴)으로 인한 심한 ‘어지럼증’으로 다섯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명과 함께 동반되는 것이 ‘어지럼증, 우울증, 불면증’이고, 심한 경우는 ‘자살충동’이라고, 의사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먹었던 빨간색 우울증 약은 저의 혀를 꽁꽁 묶어놨습니다. ‘어머니’라는 말조차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싫었고, 사람만나는 것이 싫었습니다. “아빠, 아빠!”하며 철없이 매달리는 어린 딸들의 손을 싸늘하게 뿌리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머물던 섬은 고통의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자애원’ 아이들이었습니다.
자애원 아이들은 저를 ‘치킨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자애원에 처음 갔던 날, 아홉 살 태웅이가 치킨을 먹으면서 “아저씨, 다음에도 꼭 올 거죠?”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럼, 한 달에 한 번은 꼭 올게. 태웅이 좋아하는 치킨 사 가지고.”라고 약속했습니다. 어린 태웅이와 새끼손가락을 굳게 걸던 날,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한 달에 한 번 자애원에 가는 날, 그 날은 세수도 하고 수염도 깎았습니다. 심한 어지럼증으로 몸을 비틀거리며 자애원으로 가는 길. 그 길이 저에게는 너무 먼 길이었습니다. 어지러워 몇 번이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사랑이 남아있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과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가족들의 눈물어린 기도로,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3년 만에 다시 일어서던 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어린 딸아이의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아빠가, 정말 미안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저는 어린 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울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그 고통의 섬에서, 저는 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아파야만 ‘보이는 길’이 있었습니다.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지독한 마음의 병을 앓았던 3년간, 저에게 가장 힘든 일은 한 달에 한 번 ‘치킨 아저씨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제 손을 잡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삶은 ‘빛과 어둠’으로 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출처; 신앙계, 이철환 / ‘연탄길’ 저자)
양쪽 귀에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고막이 찢어질 듯 쇠 깎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니, 글쓴이가 3년간 겪었을 그 고통을, 그야말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아픔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길’을 봤다고 했습니다. 혹시, 지금 어떤 아픔을 겪고 있다면, 글쓴이가 본 그 길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랍니다.(물맷돌)
[그들은 자기들이 모셨던 이방 신상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여호와만을 다시 섬겼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당하였던 고통을 생각하시고는 마음 아파하셨다.(삿10:16,현대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환란과 고통을 당할 것이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롬2:9-10,현대인)]
아들과 함께 훈련받는 기분으로 기호품을 멀리한 아버지!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오늘부터 몇 차례 ‘병원 안 가고 건강 지키는 법’을 소개합니다. 먼저 ‘사과식초로 요리한 샐러드’를 매일 섭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사과식초는 혈당조절, 심장건강유지, 체중조절, 동맥경화 개선, 인후염 예방, 소화력개선, 피부질환 치료, 에너지 증진 등에 좋다고 합니다.
어느 겨울날, 저는 아버지께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해병대 체력시험과 면접을 통과했다’는 결과지였습니다. 포항으로 향하는 입영열차 안에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약속 하나를 하셨습니다. “일주일 후,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담배를 끊겠다.”
해병대에는 ‘입영여부를 결정하는 가(假)입소 기간’이 일주일 있습니다. 그 기간엔 정식군인이 아니고, 주말이 오기 전 금요일에 ‘해병대에 남을지, 집으로 돌아갈지?’ 의견을 묻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신 약속은, 이때 제가 포기하지 않으면 ‘당신의 오랜 기호품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도 역시 흔들렸습니다. 저의 의지로 지원했지만, 그리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가 ‘앞으로 2년간, 이와 비슷한 훈련 혹은 더한 일들을 버텨낼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무 성과 없이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해병대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신병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어 100일간 고된 훈련을 거뜬히 해냈습니다.
첫 휴가를 받아 가족과 다시 만났을 때, 어머니는 ‘그날 이후, 아버지께서 담배를 끊으셨다.’면서, ‘아들과 함께 훈련받는 기분으로 참았을 거다’라고 귀띔해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저와의 약속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사랑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힘에 부치는 일을 만나면, 멀리서나마 아들을 응원하고 있을 아버지의 마음을 되새기곤 합니다.(출처; 좋은생각, 박관우 / 경기 남양주시)
대부분의 부모들에게는 그 자식이 그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특히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겠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더러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무튼,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어버이라면 모든 일에 있어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물맷돌)
[네 할아버지께서 이 아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르는 말을 네 마음속에 새겨두어라. 내가 이리저리 일러주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살아야하느니라. 그래야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느니라.(잠4:4,현대어)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아들이 마음대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같은 방법으로 따라 할 뿐이다.(요5:19,현대어)]
자신의 마지막 공간(임종실)에 몰래 다녀온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꽃피는 4월의 그믐날이자 마지막 주말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자가격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기침증상으로 목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럴 땐, 약국에서 ‘가래 용해제’나 ‘가래배출 촉진제’를 구입해서 드셔야 한답니다. 그런데, 약을 먹었는데도 기침이나 가래가 계속 발생할 때에는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쉰다섯 살의 말기 담낭암 환자인 종국아저씨는 용기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황달 때문에 얼굴은 노랗다 못해 검게 변해버렸지만,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쌍꺼풀이 크고 서글서글한 눈매는 그의 선량함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의 몸에는 담즙을 배출하는 관(管)과 소변 줄을 꽂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수액제를 걸어두는 기구의 바퀴까지 손질할 만큼’ 부지런했습니다. 틈만 나면 침구를 정돈하고 병동 구석구석을 쓸고 다녔습니다. 환자가 일하는 게 안쓰러워 ‘시설관리팀에 부탁하라’고 하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웃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병동에서 봉사하며 지내는 종국아저씨 덕분에, 그가 입원해 있는 303호실은 늘 밝은 분위기였습니다. 그가 퍼뜨린 활기가 303호실을 넘어 온 호스피스 병동에 퍼져나갔습니다.
종국아저씨는 최고의 상담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죽음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에 관하여 말해주었고, 긴 투병생활에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은 제가 환자에게 죽음의 수용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수용단계에 다다른 종국아저씨의 이야기는 환자들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종국아저씨가 계셔서, 저는 늘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후 회진 때 303호실에 들렀더니, 종국아저씨가 학이 그려진 동양화 한 점을 제게 건넸습니다. “임종실에 살짝 가봤는데… 벽이 휑해서 그런지 조금 쓸쓸해보였어요. 이 그림을 기증할 테니까, 임종실 벽에 걸어주세요.” 자신의 마지막 공간에 몰래 다녀온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림은 임종실의 벽면을 모두 채울 만큼 컸습니다.
“결혼할 때에 줄 그림은 따로 준비해두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임종실이 한국적인 분위기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임종실로 꾸미고 싶다’는 것은 평소 저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의 소원을 들어준 종국아저씨의 두 손을 꼭 잡는 것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했습니다.(출처;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 김여환 / 호스피스 병동 의사)
그야말로, 종국아저씨는 ‘죽음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몸에 담즙을 배출하는 관과 소변 줄을 꽂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주변은 물론이요 병동 구석구석을 쓸고 다녔다고 하니,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마지막 가는 길에 ‘그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바라건대, 꼭 그렇게 갔으면 좋겠습니다.(물맷돌)
[이제는 똑똑히 알아라! 참신은 오직 나뿐이다. 나밖에는 천하에 다른 신이 없다. 죽이는 이도 나요, 살리는 이도 나다! 때려서 상처를 내는 이도 나요, 상처를 고쳐주는 이도 나다! 그러므로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신32:39,현대어)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더 이상 진리를 믿지 않게 되었을 때, 누가 ‘그의 마음을 돌이켜서 다시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한 이 사람은, 방황하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그 사람이 저지른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약5:19-20,현대어)]
저의 마음은 그 어떤 벌을 받은 것보다 무거웠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탤런트 이훈 씨가 최근 어느 방송에서 밝힌 이야기입니다. 이 씨가 얼마 전에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는데, 자기 딴엔 가족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애썼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 중 하나가 “강아지한테 코로나 옮기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더랍니다. 이 씨는 내심 그 자녀가 “아빠, 코로나 괜찮아요?”하고 위로해주리라고 생각했답니다. 하건만….
중학교 1학년 때, ‘감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생김새는 물론, 만만한 성격이 감자 이미지와 비슷했고, 무엇보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농사를 짓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자’는 자신의 별명을 싫어했습니다. ‘놀리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그럴수록 ‘감자’라고 부르는 입은 많아졌습니다.
하루는 ‘감자’와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감자’와 친하지 않았지만, 저는 다른 아이들처럼 ‘감자’를 놀리고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순간, ‘감자’가 울음을 터뜨리더니, 제 멱살을 잡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아이들은 당황했고, 이 일은 금세 담임선생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감자’를 놀려서 ‘미안한 마음’, 담임선생님께서 모범생인 제게 실망할까봐 ‘불안한 마음’, 아이들 앞에서 멱살 잡혔다는 ‘창피한 마음’이 수업 내내 저를 감쌌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평생 후회할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 아니에요. 다들 ‘감자’라고 부르는데, 괜히 얘가 …….” 최악의 변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감자’의 말이 놀라웠습니다. “모두 저를 ‘감자’라고 불러서 얘도 그랬을 거예요. 친구야, 갑자기 화내서 미안해.” 도리어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는 감자의 모습에, 선생님은 우리를 화해시키고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그 어떤 벌을 받은 것보다 무거웠습니다.
이후, 저는 ‘감자’와 조금 친해져서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지만, 마음속의 말은 전하지 못했습니다. “친구야, 미안해!”(출처; 좋은생각, 정우혁/충남 태안)
그렇습니다. ‘감자’처럼 속이 깊고 너그러운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상대방 탓’을 하거나 ‘남 탓’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에서 보면, 승자는 ‘모범생’이었던 글쓴이가 아니고 ‘감자’였습니다. 글쓴이는 ‘감자’가 ‘자기 잘못’이라고 털어놓자, ‘그 어떤 벌을 받은 것보다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이긴 것 같지만 실상 패자가 되어 쓴 맛을 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바보처럼 고개를 숙여서 패자처럼 보이나, 실상은 승자로 사는 사람들’도 적잖습니다.(물맷돌)
[주께서는 한없이 높이 계시나 낮고 낮은 사람들 굽어 살피십니다. 잘난 체하며 거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보십니다.(시138:6,현대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눅14:11)]
현재 이곳의 삶에 가치를 느끼고 있습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꽃피는 4월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혼자 지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위험이 40%나 높게 나타났답니다. 노년일수록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더욱더 공들여야 하는데, 그러나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답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관계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간 곳은 실재(實在)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의 삶이 완전히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곳은 실제(實際)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금의 삶에 대하여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현재 이곳의 삶에 가치를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지금은 ‘삶의 진정한 맥락’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이 사실을 알기 어렵습니다. 혼수상태 속에서 제가 겪은 일은, 일반상식과 너무 다른 내용이어서, 무턱대고 사람들에게 외쳐댈 만큼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뇌과학’과 ‘의식연구’의 최신개념에 대해서 익숙한 제가 의학적으로 추론하고 분석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저의 인생여정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일단 깨닫는 순간, 저는 이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해내는 일이 지금은 제 삶의 주요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신경외과의사로서의 직무나 제 삶을 포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우리의 삶이 육체나 뇌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몸과 이 지구를 넘어서 제가 본 것’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듣고서 믿고 싶었지만, 차마 전적으로 믿을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그 어떤 이야기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입니다.(출처; 나는 천국을 보았다, 이븐 알렉산더)
신앙인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중요합니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면, 신앙생활은 무의미할 겁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는 천국이 분명 실재한다면, 오늘 ‘이곳의 삶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4년 동안의 대학생활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 어떤 뚜렷한 인생목표가 있다면, 대학생활을 이전보다 더더욱 더 열심히 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고로, 천국소망이 간절하다면, 그만큼 ‘오늘 이곳에서 사는 동안’ 진리 안에서 더욱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물맷돌)
[이 때부터, 예수께서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며 전도를 시작하셨습니다.(마4:17,쉬운성경)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리지 않고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소식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초청 받고 있습니다.(롬1:16,현대어)]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가격리가 끝나면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완전히 해방됐다’고 착각하나, 코로나 완치 이후에도 바이러스는 대략 90일 간 우리 몸에 남아있답니다. 바이러스의 잔재는 신경계, 폐, 심장 등의 장기에 남아서 피로, 기침, 흉부 통증 등의 후유증으로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힌답니다.
얼마 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엄마 보러 오나?”
“음…. 왜?”
엄마는 올해로 여든이 넘었습니다.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힘들어진 엄마를 위하여 언니와 저는 금요일마다 가능한 한 시간을 내어 엄마 집을 찾고 있습니다. 가서 얼굴도 보고, 식사도 하고, 집안일도 돕고, 서로의 한 주간은 어땠는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날 언니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사실 엄마가 ‘어제 저녁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고 우셨거든. 오늘은 꼭 가야 할 것 같아서.”
“알겠어. 금방 갈게.”
엄마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엄마는 또 가까운 친구 한 명을 보내셨구나!’ 굽이굽이 아홉 고개를 돌고 돌아 만나는 생의 마지막에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떠난 이도, 남은 이도 후회가 없을까요? 삶의 끝에서 미련이 없길 바라는 저에게도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남편과의 문제입니다. ‘결혼생활 내내 가장의 책임에 소홀했던 사람.’ 저의 남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남편과는 성격문제로 3년 전부터 별거 중입니다. 정확히는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이고 가출이었습니다.
그는 원룸에 세를 얻어 혼자 삽니다. 3년 전, 그가 ‘남편과 가장의 자리’를 내려놓고 홀연히 떠난 뒤, 저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실패한 결혼생활에 좌절하면서 그를 지독하게 원망했습니다.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삼킨 날이 길고도 깊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진리였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굳은살처럼 단단해진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나의 인생, 내면의 상처, 그와의 관계’까지 조심스럽게 때론 과감하게 살피다가,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어갔습니다. 저도 남편도 철없던 시절, 저를 힘들게 한 것은 그의 무능력보다는 태도였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나눌 줄도 모르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받으려고만 했지, 주는 일에는 인색하고 서툴렀습니다. 저도 남편과 별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움츠렸다가도, 볕이 내리쬐는 봄이 오면 활짝 피는 꽃송이처럼, 이제는 저도 시린 상처를 딛고 따스한 봄을 맞으려고 합니다.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 그가 사는 동네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주어진 삶 동안에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노라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출처; 좋은생각, 김은선 / 대구시)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 인간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누구에게나 허물과 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티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내 허물 하나를 없는 걸로 하려면, 상대방의 허물도 하나 접어둬야 합니다. 하지만, 들입다 상대방 허물만 찾아내어 따지고 심판하려는 습관(본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자신의 허물부터 먼저 깨닫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물맷돌)
[그 자녀들은 자기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며, 그 남편도 그녀에게 “세상에는 훌륭한 여성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여성이오.”하고 칭찬한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여성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것이다.(잠31:28-31,현대인)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고전7:3,현대어)]
그날 이후, 장모님은 모든 약을 끊으셨습니다.
샬롬! 어젯밤은 잘 주무셨습니까?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잠을 깊이 자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수면의 질이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랍니다. 깊은 잠을 자려면, ‘유산소운동’보다는 ‘팔굽혀펴기’ 등의 근력운동이 더 좋은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며칠 지나서, 장모님의 단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건강염려증’입니다. 갑작스레 상경하다 보니 원래 드시던 약을 챙겨 오지 못했는데, 나중에 택배로 도착한 꾸러미를 보니 소쿠리 한 가득이었습니다. 언뜻 열댓 종은 되어 보였습니다. 점입가경, 장모님의 약품리스트는 갈수록 늘었습니다. 케이블TV에는 건강관련프로그램이 왜 그리 많은지, 어느 날 보면 ‘광고에 나오던 그 약’이 장모님 곁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관절 건강에 좋다는 약, 피부노화개선에 특효라는 약, 혈압과 신경계통을 시원히 뚫어준다는 약, 요즘 유행인 산양유성분이 들었다는 분말…. 처가에 갈 때마다, 거실 바구니에 웬 약이 저리 많나 했더니, 그 정체를 알게 됐습니다.
예전에도 운동을 하시라 권했건만 “맨날 힘쓰는 게 일인디?” 하는 것이 시골 어르신들 말씀이었습니다. ‘육체노동으로 운동은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늙으면 약의 힘으로 사는 거여.” 끼니때마다, 알약을 한 움큼 삼키셨습니다. 가끔 병원에 가는 것을 빼고, 장모님은 바깥출입을 일절 안 하셨습니다. 재활치료를 위해서는 자꾸 움직여야 하는데도, 뉴스에 나오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를 보시며 오직 ‘거실소파’만 고집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라,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연못과 정원, 운동시설이 있는데도 ‘집 밖은 위험하다’고 하셨습니다. “어제는 16만이었고, 오늘은 20만이라는디… 확진자가 사방 천지여. 나는 밖에 나댕기기 무섭네 그려.” 집에서도 꼭 마스크를 쓰셨습니다. ‘방역수칙준수1등 표창장’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집에만 계시고 활동량이 부족하니, 당연히 체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지럼증이 있다’고 하여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몽땅 해주었습니다. “어머님, 지금 드시는 약이 너무 많아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습니다. 비타민, 칼슘 빼고 다 끊으세요. 그리고 운동도 하시고요.” 어찌나 속시원하던지! 장모님의 또 다른 특징이 있으니, ‘의사선생님 말씀은 어김없이 지킨다.’는 것입니다. “장모님, 이 칼슘 약은 드셔도 된다잖아요.” “아녀, 간에 안 좋대!” 그날 이후, 장모님은 모든 약을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루 서너 시간, 부지런히 아파트 단지 곳곳을 돌아다니십니다. 목발사용도 제법 익숙해지셨습니다.(출처;C닷컴, 봉달호)
20여 년 전, 시골 면소재지 교회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약장수가 들어왔습니다. 주로 논에다가 천막을 치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약을 비롯해서 다른 물품들도 팔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날품 팔아 모아놓은 노인들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거의 깡그리 긁어가곤 했습니다. 면사무소와 파출소에 전화해서 약장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더니, 그 다음해부터는 교회부터 찾아와서 감사헌금을 들이밀었습니다. 제가 ‘감사헌금은 예배에 참석하고 드려야 한다.’고 했더니, 교회에는 오지 않았습니다.(물맷돌)
[모든 피조물의 목숨이 다 그분 손에 달려 있음을 모를 사람이 있는가? 인간의 목숨도 다 하나님 소관이다.(욥12:10,현대어) 예수께서 여자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안심하고 가라. 그리고 건강하게 지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막5:34,쉬운성경)]
좋은 것을 배우라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할 때 어린 소년이었지만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전쟁에서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미군들은 출동 전날에도 웃고 떠들었지만 미군부대에 일을 하러 들어온 한국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기가 없었다. 미군부대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최소한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뜻인데 그런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였다. 또한 이들 중에는 틈만 나면 창고나 매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한국인도 있었지만 미군들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일을 하다가 아무도 없으면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미군은 혼자서도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완수했다.
1년 동안 부대 안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본 나는 ‘정직, 근면, 명랑’이라는 인생의 교훈을 배웠다. 무엇보다 나를 하우스보이로 불러 준 칼 파워스 상사에게서 가장 큰 교훈을 배웠는데 그는 일면식도 없던 나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심지어 나를 미국으로 보내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한국 근무를 수차례 연장하기까지 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좋은 교훈을 배운 나는 훗날 이 교훈들을 간직해 목회를 하면서도, 방송사를 운영하면서도, 한국인 최초로 침례교세계연맹 총재직을 수행하면서도 적용해 큰 성과를 이뤘다.』
(김장환 목사 개인 노트에서 발췌 편집)
하나님은 상황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 주시는 주님의 소중한 교훈을 찾아 인생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아멘!
주님! 불평과 불만 대신 감사와 기쁨을 삶 가운데 심어주소서.
말씀 가운데, 상황 가운데 주시는 주님의 감동을 놓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
발명왕 에디슨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변명은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에디슨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5분, 10분의 짧은 시간도 항상 메모지를 들고 다니며 아이디어를 적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되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 중 출?퇴근 시간 그리고 5분, 10분씩 주어지는 짜투리 시간으로 1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으면 하루에 20페이지 정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얼마 안되는 양 같지만 1년이면 7천 쪽, 즉 400페이지짜리 17권 정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분야에 1년씩만 매진해도 전문가가 되는데 몇 년이면 충분합니다. 말만 그럴싸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일일까요?
존 밀턴은 교사로 일을 하면서 하루에 몇 분씩 짬이 날 때마다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실낙원’은 탄생했습니다.
지동설을 발견한 갈릴레이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갈릴레이는 일을 마치고 남는 시간에 취미로 과학을 연구하다가 지동설을 비롯한 빛나는 과학의 업적을 이뤘습니다.
하루에 남는 5분, 10분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며 살아가는 사람과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은 점점 큰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이 주신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게 하소서.
짜투리 시간을 활용할 쪽성경과 책, 메모지를 준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타이어의 법칙
자동차에 사용할 바퀴를 연구하던 굿이어 박사에게 하루는 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동차의 바퀴는 하루 종일 땅을 굴러다녀야 하잖아요. 매일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요.”
차에서 가장 피로한 부위가 바퀴라는 딸의 말에 영감을 얻은 굿이어 박사가 자동차 바퀴에 지금의 ‘타이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의 타이어는 관리만 잘하면 10년까지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초창기의 마차 바퀴는 고무를 두른 형태로 1년은 고사하고 한 달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타이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도로의 마찰을 이겨내는 방식으로 타이어를 개량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의 타이어가 탄생했고 마모도 훨씬 적게 되고 수명도 오래가는 지금 타이어의 원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타이어의 발전은 나무에서 철, 철에서 고무, 고무에서 공기를 안에 채우는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나무도 폭풍을 견딜 순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법을 아는 갈대는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언약을 붙들고 세상의 모든 고난을 극복하십시오. 아멘!!
주님! 이미 승리하신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함께 이겨나가게 하소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붙잡고 세상의 풍파를 이겨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낮은 자를 쓰시는 이유
호텔마다 있는 ‘펍 바(Pub Bar)’의 기원이 된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선술집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펍이 문 닫을 때가 되면 갑자기 한 사람이 일어나 모자를 들고 외칩니다.
“핸드 인 어 캡(Hand in a cap!-내 손에 모자가 들려 있소!)”
이 외침이 들리면 사람들은 저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모자에 넣습니다. 그런데 이때 자신이 먹은 만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더 넣어서 계산을 맞춥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소득에 따라 차별적으로 돈을 내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했고, 이와같은 문화로부터 현대의 ‘핸디캡’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영국의 경마에도 적용됐는데 우승을 자주 하는 말이 생기면 경기가 재미없기 때문에 말의 실력에 따라 서로 다른 무게의 짐을 싣고 경주를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불공평하다고 난리가 날 규칙이지만 당시에는 말의 주인들도 이 사실을 받아들여 아무런 불평없이 룰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이 낮은 자를 쓰시는 이유는 낮은 자의 핸디캡으로 인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나의 약점까지도 귀하게 쓰실 주님을 믿고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아멘!!
주님! 약점까지도 귀하게 쓰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하소서.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다면 그 약점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
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고급 승용차가 서서히 눈앞을 지나가는 광경을 보고는 노숙자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젠장, 왜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저렇게 호사를 누리고, 나는 구걸이나 하며 살아야 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화를 내고 불평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망연자실해 주저앉아 있는 순간 갑자기 노숙자의 머릿속에 예전에 교회에서 들은 “하나님께 구하면 지혜가 부족한 자에게 후히 주신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다음 날 보험회사를 찾아가 외판원이 된 그는 거리에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들의 번호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과 다니는 동선을 조사하며 맞는 보험상품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이나 먹고 살았던 폴 마이어라는 청년은 27살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0개가 넘는 계열사를 운영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 중 한명이자 훌륭한 인재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나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가장 아끼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부족한 것들을 간구하십시오. 아멘!!
주님!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뭐든지 구하게 하소서.
나에게 부족하고 필요한 것을 기도로 주님께 간구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무의미한 인생
론 허치크래프트의 ‘마음 도둑’이란 책에 나오는 게르빌루스라는 다람쥐와 주인의 대화입니다.
아침에 일어난 주인이 게르빌루스를 찾아가 계획을 물었습니다.
“게르비, 오늘의 계획은 뭐야?”
“일단 사료를 먹어야지.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곧 시작할거야.”
“시작한다니 뭐를?”
게르빌루스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뭐긴 뭐야, 쳇바퀴 도는 일이지.”
잠시 뒤 사료를 다 먹은 게르빌루스는 쳇바퀴에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주인이 몇 시간 뒤 찾아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평생 쳇바퀴만 돌거야?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는게 낫지 않겠어?”
주인의 말을 들은 게르빌루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말이 맞아. 여길 벗어나려면 조금 더 빨리 달려야겠어.”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쳇바퀴를 굴렸지만 여전히 제자리였습니다.
사육장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봤자 제자리일 뿐입니다. 진리로 얻은 자유함을 버리고 다시 세상의 쳇바퀴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열심을 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똑같은 세상에 나가 똑같은 일을 해도 주님을 위한 마음으로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의 능력
아인슈타인이 일본의 ‘도쿄 임페리얼’ 호텔에서 묵었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의 카페에서 연구를 하던 아인슈타인은 웨이터에게 미국에서처럼 약간의 팁을 건넸는데 종업원은 일본에서는 팁을 받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며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탁자에 있던 메모지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고 적은 뒤 싸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종업원에게 팁 대신 쪽지를 주며 말했습니다.
“운이 좋으면 이 쪽지가 팁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벨보이에게도 “조용하고 소박한 삶은 불안에 쫓기는 성공한 삶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라고 적은 쪽지를 팁 대신 건넸습니다.
그리고 약 90년이 지난 뒤 이 쪽지들은 예루살렘의 한 경매에 나왔는데 무려 16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500원짜리 볼펜과 거리에 버려진 종이쪼가리라도 유명한 시인이 작품을 남기면 높은 가치의 작품이 됩니다. 나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가장 좋은 방법에 좋은 때에 맞춰 나를 사용하십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아멘!!
주님! 초라한 나의 삶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임 받게 하소서.
내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믿읍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승리의 방법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한 전면전에서 큰 활약을 했던 조지 패튼 장군은 불같은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전투에서 큰 피해를 당해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병사를 몸이 멀쩡하단 이유로 군법재판에 회부했다가 파면을 당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실력을 이유로 누군가 보호했고 또 싫어하는 병사만큼 존경하고 따르는 병사도 많았습니다. 병사들은 패튼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격적으로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지만 그를 따라 전장에 나가면 반드시 승리한다.”
패튼은 승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육체는 본능적으로 포기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사람만이 승리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 장군은 2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명장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을 끔찍이 아꼈지만 군법을 어겼을 때엔 가차없이 벌을 내렸습니다. 특히 전투에서 도망가는 병사들은 모두 목을 베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전투 중에 죽은 병사보다 도망가다 죽은 병사의 숫자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공포와 자유, 쾌락, 본능을 따라 사는 사람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계명을 따라 전진해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서 승리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과 멀어지는 모든 일들을 멀리하고 포기하게 하소서.
죄와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려고 하는 나의 본능을 끊어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속담을 체험하다
언제부턴가 이가 아팠습니다. ‘참아보자’ 했는데 급기야 그쪽으로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경치료 해야 하나.’ 자가 처방과 상상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정작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치아 안쪽에 금이 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 발치했습니다. “치아여, 안녕. 통증이여 안녕!” 문제의 근원과 함께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속담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던 막달라 마리아와 말씀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의 삶은 같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목적이 선명해졌습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요 20:18)”고 뜨겁게 외치는 마리아에게 더 이상 슬픔과 두려움이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내 삶에 작은 속담 하나를 체험해도 이렇듯 좋은데, 내 생애 생명의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다면 막달라 마리아처럼 삶이 완전히 바뀌지 않겠습니까.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스무 살 야구선수가 주는 교훈
일본 프로야구에 경사가 났습니다. 갓 스무 살인 사사키 로키가 지난 10일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습니다. 13타자 연속 삼진을 포함해 19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에 필요한 공은 단 105개였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16번째입니다. 게다가 그는 완성형 투수가 아닙니다. 나이가 말해주듯 아직 미완의 투수입니다. 그러니 야구의 신이 일본에 선물을 보냈다며 흥분할 만합니다. 그런데 사사키에게는 단순히 타고난 천재적 능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픔이 있습니다.
사사키가 10살 때인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들이닥친 쓰나미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숨졌습니다. 자신과 캐치볼을 하면서 장래에 훌륭한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응원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린 사사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이 일로 사사키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 지금 있는 것이 언제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주어진 일상을 소홀히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일상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일상을 빼앗기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회복된 일상을 맞이하면서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해봅니다.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백만원짜리 전도지
아내와 차를 타고 신호등 앞에서 멈춰 있는데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차를 누군가 뒤에서 추돌한 것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렸더니 택시 기사님이 엄청나게 당황하고 계셨습니다. 사고 현장을 촬영하고 있는데 기사님께서 현금으로 합의를 보자고 하셨습니다. 이유인즉 지난번 사고로 보험을 한 번 사용해 이번까지 보험처리 하면 할증료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몸 상태를 알아야 하니 일단 하루 지나고 얘기해보자고 전했습니다.
저는 하루 동안 이 사건을 놓고 어떻게 주님께 영광을 돌릴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돈을 받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100만원의 전도지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제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100만원이 넘는 전도지다”라고 하셨습니다. 기사님에게 돈은 10원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뒤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 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
부활, 기막힌 역전승
두꺼비가 새끼를 낳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뱀은 개구리를 굉장히 좋아해 만나기만 하면 한입에 삼켜버립니다. 반면 개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두꺼비는 무서워합니다. 평상시에는 두꺼비도 뱀을 두려워하기에 멀리합니다. 그런데 두꺼비가 일단 알을 배면 양상이 달라집니다. 뱀에게 싸움을 겁니다. 살살 약을 올리며 화를 돋웁니다. 정작 싸움 자체는 싱거운 싸움입니다. 순식간에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습니다. 허망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두꺼비의 허망한 죽음 같습니다. 로마 통치자나 유대 종교지도자와 당당히 맞서길래 뭔가 보여주시려나 하고 사람들은 잔뜩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왕으로, 메시아로 환영했지요. 그런데 맥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두꺼비를 먹은 뱀의 몸속에서 두꺼비 새끼들이 올망졸망 기어 나옵니다. 뱀에게 먹힌 두꺼비는 뱀의 배 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난 두꺼비 새끼들은 뱀의 연한 속살을 뜯어먹으며 자라납니다. 누가 누구를 잡아먹은 걸까요. 처음에는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었지만 뱀은 처참한 몰골로 죽고 두꺼비는 여러 마리로 살아납니다. 싸움은 두꺼비의 최종 승리로 끝납니다. 기막힌 역전승이자 부활의 진리입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겨자는 어떻게 클까요
에스겔이 소개하는 레바논 백향목은 아주 큽니다.(겔 31장) 나무 꼭대기는 구름 속으로 뻗고, 나무 그늘은 숲 그늘처럼 드넓었지요. 가지에는 공중의 새들이 깃들고 가지 밑에는 들짐승이 새끼를 치고, 나무 그늘에는 민족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에덴의 나무들이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키가 커지자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받고 베어져 산산이 부스러졌습니다. 레바논 백향목은 폭력으로 군림하는 오만한 권력을 경계합니다.
예수님도 한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마 13장) 다 자라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나무입니다. 바로 겨자 나무 아니, 겨자 풀입니다. 겨자는 어떻게 클까요. 겨자는 수직으로 1m정도밖에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평으로는 끝없이 퍼져나갑니다. 함께 더불어 어우러지면서 갈릴리 온 들판을 뒤덮은 겨자 풀밭은 가없이 크고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겨자씨는 정말 작지요. 예수님은 이 작디작은 겨자씨가 바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4·19혁명을 기리는 날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를 부르짖으며 어깨 걸고 일어섰던 날입니다.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그 어머니에게 그 아들
어느 집사님의 며느리가 길고 깊은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병간호하랴 비지니스하랴, 아들의 고생이 너무 안쓰러워서 “힘들지 않니?” 하고 물어보셨답니다. 아들의 대답은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아니에요. 어머니도 그러셨잖아요.”
그렇습니다. 저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집사님의 남편이 오랜 병으로 힘들어할 때 집사님은 힘든 내색 없이 병수발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잘 보아온 아들은 자기가 아내를 돌보아야 할 상황이 되자 어머니 모습을 묵묵히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에게 그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모든 것을 끝까지 참으시며 사명의 길을 걸으셨던 것을 잘 보아왔습니다. 그러신 예수님이 우리의 어려운 상황에 “힘들지 않니?”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아니에요. 예수님도 그러셨잖어요”라고 답하며 묵묵히 사명의 길을 간다면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그 예수님에게 그 제자’라는 가슴 벅찬 말을 마침내 들을 것입니다.
김성국 목사(미국 뉴욕 퀸즈장로교회)
죽으면 천국이요 살면 간증이라
지난 2월 4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암흑이 시작된 날입니다. 왜냐하면 26년간 저와 동행하던 사랑하는 아내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4살 연하지만 때론 친구이고 엄마이고 동지이고 내 편이었던 아내가 투병을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코로나에 감염돼 치명적인 상태에 도달했고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자가 호흡이 안 되어 기관절개를 통한 인공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면담할 때마다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기에 의사를 만나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웁니다. 그냥 눈물이 납니다. 이런 가운데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지금보다 더 강하고 온전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진리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저를 버티고 견디게 합니다. 대신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죽으면 천국과 부활이고, 살면 간증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천국 가는 것인데 아내를 살려주셔서 간증 찐하게 하고 가게 하소서.” 이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일은 부활절입니다. 사망 권세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 기쁨이 특히 사망의 문턱에 있는 분들에게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문혁 목사(좋은나무교회)
안다는 것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자신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를 잘 모르는 게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그 친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새벽 이른 시간에도 아이가 배가 고프면 일어나 우유를 먹이고, 대소변이 차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집중하는 분입니다. 그런 어머니도 자신의 아이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아시는 방법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든 허물마저도 사랑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아시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진정으로 아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알 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지성호 목사(서울이태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