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베트남 파병 맹호사단 재편성과 훈련
재편성과 지휘관의 번민
베트남전 파병사단은 강원도 홍천에 주둔해 있는 수도보병사단으로 결정되면서 맹호사단으로 일반 명칭이 부여되었다. 이제 한국군이 생전 처음 정글전을 치르게 될 전술훈련을 시작하기 전 임무 완수를 위한 재편성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의 편성으로 파월 할 수 없다는 것이 군 고위층은 물론이고 파병 당사자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1965년 8월 3일 새로 교체되어 부임한 맹호 사단장 채명신 소장의 꿈은 컸다. 어디 채명신뿐이랴. 주월한국군 전투부대의 새로 교체되어 부임하기 시작한 대대장급 이상의 모든 지휘관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지휘관은 6.25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은 전투 유공자들이다. 그리고 모두 미국의 군사학교에서 유학해 새로운 군사학문을 익힌 엘리뜨 고급장교들이었다.
일본 군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 군대 출신 지휘관 밑에서 일본군 리더십에 의해 혹독한 근무를 모두 겼었다. 일방적이고 강압 일변도의 리더십은 오직 계급만이 존재했다. 절대적인 그들 장군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질서였고 법이었다. 그러다가 미국 군사학교에 유학해 새로운 학문에 접하고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을 발견했다.
강압적이 아닌 정해진 질서에 따라 부하의 의견도 존중하는 새로운 질서의 길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길을 따를 것인가. 일본군의 길인가. 미군의 길인가. 혼돈의 과정은 미국 유학파 엘리뜨 장교들이 겪어야 했던 번민이었다.
맹호 사단장 채명신 소장은 제일 먼저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훈시한 내용은 한국군다운 한국군 건설을 주창했다. 우리는 일본군도 아니고 미군도 아닌 한국군이다. 그러므로 한국군 독자적인 정신을 세우고 한국군의 전술 교리를 계발해 한국군만의 학문을 발전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충격적인 말이 채명신 소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월남전에서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탈취할 목표는 없다. 다만 조국과 군인정신을 늘 의식한 길을 걸어야 한다"
군대에서 명령이 내려지면 정해진 목표 탈취를 위해서는 결사적으로 책임을 완수 해야 한다. 따라서 목숨을 버리면서 목표 탈취를 이행 하는 것이 군인의 길이다. 목표 탈취 시 목숨을 버리지 말라고 미리 말하는 군대는 없다. 그러나 채명신은 분명히 월남전에서는 '목숨울 버리면서까지 탈취할 목표가 없다'라고 말했으니 결국은 목숨을 아끼면서 전투를 하라는 것이므로 한편 생각하면 비겁해 질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은 훗날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왜냐하면 베트남에 도착해 상황을 살피니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싸워야 될 전쟁판이 아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에서 앞장 서야 하는 당사자인 월남군의 군기의 타락은 상상을 초월했다. 중대장 정도만 되면 싸움판에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예사고 중대원의 반수 가까이 행방이 묘연했다. 알고 보니 중대장이 돈을 받고 부하에게 자유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고급장교들과 대화하면 자기들과 싸우고 있는 상대국의 수괴인 호찌민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공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연례 행사처럼 일어난다.
이런 정세하에 투입된 한국군이 목숨을 버리면서 목표를 탈취한다는 것은 개죽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군인이기 때문에 전투에는 승리해야 한다. 패배 할 수는 없다. 또한 조국을 의식한 애국심에 의한 군인의 길은 지켜야 할 덕목이다.
채명신 소장이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설파한 '베트남전에서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탈취할 목표는 없다'는 이 짤막한 경구는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한국군에게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 명구였다.
맹호사단의 파월을 위한 재편성은 국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파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위로는 사단장으로부터 아래로는 소대장까지 100% 교체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술 기본단위인 보병 대대장의 경우 파병이 결정된 제1연대와 기갑연대 6개 보병대대장을 자격 기준에 맞추다보니 6명의 보병 대대장 전원이 육군대학 교관으로 강의중인 중령급이 선발되었다. 박경석(필자), 배정도, 이필조, 박한영, 김용진, 최병수 등이 그들이다.
일시에 육군대학에서 강의중이던 교관 6명이 빠져버리니 육군대학의 교육이 차질이 생겼다. 당시 육군대학 총장 박중윤 소장은 당황한 나머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진해에서 서울 용산(현 전쟁기념관) 육군본부를 찾아가 김용배 육군참모총장에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총장 각하, 지금 육대에서 주무 교관 6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게 돼 강의 중단 사태가 염려 됍니다. 3명 정도만 빼주십니요"
김용배 총장은 잠시 입을 열지 않고 생각하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육대 총장을 달랬다.
"박 장군의 사정도 알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해외 원정군의 임무를 띄고 출정하는 맹호사단의 입장도 이해주시오. 대대장은 주력 전술 지휘관이니 지휘 조직의 핵심이오. 국위를 떨칠 전투부대이니 어쩔 수 없잖소"
육대 박중윤 총장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총장실을 나와 진해로 향했다. 어디 대대장 뿐이랴. 전투의 핵심인 전투 중대장 또한 전군에서 우수 중대장 선발에 착수했다. 중대장급은 전투 경험이 없었으므로 주로 근무 성적 중심으로 선발했다. 선발하다 보니 모두 육사 출신이었다.
제1연대 제3대대 전투편성
강재구 대위가 부임한 소속 대대는 박경석(필자)중령 지휘하의 제1연대 제3대대였다. 제3대대 전투 편성은 다음과 같다.
대대본부
대대장 박경석 중령 (육사생도2기)
부대대장 한학수 소령 (육사12기)
정보관 권준택 대위 (육사15기)
작전관 이규봉 대위 (육사16기)
강재구 대위 순직 후 작전관 이중형 대위 (육사16기)
대대부관 노영철 대위 (육사16기)
전투중대
제9중대장 용영일 대위 (육사16기)
제10중대장 강재구 대위 (육사 16기)
강재구 대위 순직 후 10중대장 이규봉 대위 (육사16기)
제11중대장 이재태 대위 (육사 16기)
중화기중대장 방서남 대위 (육사15기)
이상 전투 편성 완료한 날자는 1965년 9월 4일이었다. 물론 소대장 또한 100% 교체되었다. 그렇다고 파병 준비가 완료된 것이 아니었다. 사단 구성원 가운데 병사들의 동요가 심각했다. 탈영병이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고 병사들의 부모 또한 몰려와 아들에게 탈영을 종용하는 경우까지 생겨 모든 지휘관은 이를 막느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장 채명신 소장은 대대 단위로 돌아가면서 정신훈화를 통해 이탈 방지를 위해 번민하고 있었으며 대대장은 중대 단위로 순회하면서 정신 교육에 전력을 다했다.
부산항에서 출항 할 날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략 10월 중순에 출항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 해 2개월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전투훈련을 마쳐야 하는 문제 또한 각급 지휘관의 고민이었다.
전투훈련에 돌입
9월 초부터 본격적인 전투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홍천 일대의 사단 주둔지에서의 훈련장 확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각 중대별로 일시에 훈련이 시작되다 보니 중화기의 사격훈련장, 수류탄 투척 훈련장이 중복되어 제대로 훈련이 진행될 수 없었다. 더구나 대부분 실탄을 사용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민원이 야기되어 지휘관들은 부락을 찾아다니며 민원인에게 사과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재구 대위가 소속한 제3대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수류탄 훈련장이 마땅한 곳이 없어 대대장이 직접 나서서 훈련장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대대 숙영지가 과거 군단 하사관학교 자리였고 군단 하사관 후보생 수류탄 훈련장이 있었지만 훈련장 구조가 위태로워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수류탄 투척선의 지면보다 위로 경사진 탄착점 때문에 자칫 던진 수류탄이 굴러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대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중대장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1군단 하사관학교에서 사용하던 수류탄 훈련장 외 대안이 없음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10중대장 강재구 대위는 얼마 전까지 1군단 하사관학교 수류탄 교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강재구 대위의 대안 없음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비록 그 수류탄훈련장이 최적의 장소는 아니지만 안전 대책을 세워 그곳에서 수류탄훈련을 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 날은 훈련이 막바지에 오른 9월 26이었다.
첫댓글 박 장군님
저는 맹호파월이지만
맹호부대의 자세한 내력을 몰랐죠
이렇게 올려주신 글 다시 읽으며
지난날을 회상하여 봤습니다
화창한 봄날 장군님의 건안을
기원드리며 다녀갑니다!
이관장 전우의 댓글에 이 글 게재한 보람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스토리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