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라는 숲
양현주
나무괭이 등 맞춘 것 같은 너와 내가
푸른 깃발 펄럭이는 숲이다
서로에게 스미는 빛의 무지개들
광장에 모여 합을 이룬다 붉은 마음이 종요롭다
등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나무는 얼굴마저 없다
뿌리를 거꾸로 신지 않는다
저마다 모서리를 메고 앉아, 한 곳에 결을 긋는다
숲은 웃기 위해 상처의 잔을 기울이고
아침은 아무것도 가두지 않는다
우리,라는 말은 한 벌 푸른 동색의 투피스
묶여도 옥죄지 않는 숲이라는, 붉은 혈연 같은 말
중심을 찌르던 말의 잎이 하얗게 지고
나란히 서서 한곳을 바라보는
우리는
낙숫물로 툇돌을 뚫을 수 있다
바람을 깔고 앉은 잎들이 생의 가녘에서 웅성거리고
나무들이 무리 지어 서성인다
벗은 빙하가 햇살에 출렁거리는 그 숲을
우리는 밤새 들이킨다
폭염주의보
꽃은 너무 웃어서 탈이죠
눈과 귀를 잃고 바이올렛 잎꽂이를 해요
발에 날개가 달려 호접몽을 피어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이라 어히야,
막차마저 끊길 줄 누가 알았겠어요
침실은 천리 밖에 있어 우울한 샹송을 놓쳐요
발은 8번 홈의 열차나 휘파람이 되어 달 속을 헤집어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열기구에 폐기물 딱지를 붙여요
파란 캐리어를 풀어주고, 승차권을 찢고 햇살 바른 귀를 심었을 뿐인데,
누가 나를 휴지통에 버렸을까요
놓고 돌아가는 일이 물빛 눈처럼 무거웠어요
기차역 가로등 속눈썹이 파르르 울어요
초록 서랍 담쟁이는 여전히 비밀이 자라고 있을까요
달 뜬 강에서 그날의 분홍 숲 물소리를 들어요
저 태양에 눈이 멀어 꽃이 되었다는 전언을 믿나요
양현주 2014년 시산맥으로 등단. 시집으로 구름왕조실록이 있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