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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
워싱턴 어빙 Washington Irving(1783~1859)
「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 등과 나란히 언급되는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 어머니가 조지 워싱턴에세 이름을 따와, 워싱턴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릴 때부터 주위 지역을 돌아다니며 낯선 인물과 풍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허드슨 강가를 여행하면서 강 인근의 수많은 전설을 접했다. 1804년 법률 공부를 하면서 오랫동안 앓아 오던 천식이 심해지자 요양을 위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이 때의 경험을 정리한 여행기는 후에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특히 뉴욕 허드슨 강을 따라서 위치한 마을들의 신기한 전설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감동은 그의 문학 세계의 밑바탕이 되었다. 1806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문학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잡지 <샐머건디>를 발간했다. 1809년 디트리히 니커보커라는 필명으로 <슬리피 할로의 전설>, <립 밴 윙클> 등이 실린 <스케치북>을 출간해 미국이 낳은 최초의 문인으로 인정받으며, 미국 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기존의 미국 문학이 보여주던 교훈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계와 옛이야기의 우수 어린 분위기를 유려한 필치로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기념비적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1859년 <조지 워싱턴의 생애> 5권을 출간한 뒤 그해 11월 28일에 숨을 거두었다..」
[아내]
깊은 바다의 보물들도
여인의 사랑 속에 갇힌 한 남자의
은밀한 안식만큼 귀하지는 못하리.
집 근처에만 다가가도 풍기는 축복의 기운.
결혼은 얼마나 달콤한 숨결을 내뿜는지,
제비꽃 화단도 이보다 향기롭지는 못하겠네!
-미들턴
나는 종종 여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역경 앞에서 얼마나 결연한 정신을 발휘하는지 목격해 왔다. 한 남자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그를 진창 속에 내던지는 불행은 가냘픈 여성들에게서 내면의 힘을 모두 끌어내어, 그들의 인품에 더없는 대담함과 고귀함을 불어넣는데, 때로는 거의 숭고함에 이를 지경이다.
우아한 잎사귀로 오크 나무를 휘감으며 햇빛을 향해 기어오르던 덩굴이, 그 튼튼한 나무가 벼락에 맞아 갈라지면 덩굴손으로 줄기를 부드럽게 휘감고 결딴난 가지들을 단단히 묶듯, 이 역시 신의 섭리로 아름답게 정해진 바, 행복한 시기에는 남편에게 그저 부양가족이고 장식에 불과했던 여성도 남편이 갑작스러운 불행에 좌절하면 그의 의지와 위안이 되어, 거칠어진 내면을 어루만져 주고, 축 처진 고개를 부드럽게 받쳐주며, 찢어진 가슴을 단단히 묶어준다.
어느 가정의 사랑스러운 일화가 떠오른다. 내게는 레슬리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상류사회에서 성장한 아름답고 세련된 숙녀와 결혼을 했다. 신부에게 재산이 하나도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친구는 꽤 유복했던 터라, 그는 아내에게 온갖 우아한 생활을 맞보게 하고,.... “아내의 삶은 말이지, 동화처럼 될 꺼야.”
하지만 불운하게도 친구는 대규모 투기에 재산을 투자했다가 예기치 못한 불행이 잇따라 터지면서 전 재산을 날리고.....결혼 생활을 시작한지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동안 친구는 자신의 처지를 비밀로 한 채 초췌한 표정과 W지어지는 가슴으로 다녔다. ~~~~아내 앞에서는 계속 웃는 낯을 보여야 했기에 더더욱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애정의 민첩한 눈으로 무언가 남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남편의 수척한 모습과 억눌린 한숨을 보았고,
그녀는 남편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고자 유쾌한 활력과 상냥한 애교를 한껏 발휘했지만 , 오히려 그의 영혼에 더 깊이 화살을 박아 넣을 뿐이었다. ※ (여기서 남편은 친구와 이 일을 상의했고 친구의 조언에 따라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
천사가 따로 없었네! 아내는 오히려 안도한 기색이었어. 내 목을 끌어안으면서 근래에 내가 불행해 보인 것이 단지 이것 때문이었냐고 묻더군. 하지만, 가엾은 사람. 그가 덧붙였다.
그는 옛 저택에 있었던 멋진 가구들을 모두 팔아치웠지만 아내의 하프만은 남겨두었다. ~~~친구는 이제 작은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참으로 훌륭한 여인이구먼! 내가 외쳤다. 그런데도 자네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하는가. 자네가 지금처럼 부유한 적은 없었네. 자네는 아내의 내면 깊이 감추어진 훌륭하고 무한한 보물을 소유했으면서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지 않았는가.
메리가 우리를 맞으러 달려 나왔다. 그녀는 예쁘고 하얀 시골 치마를 입고, 고운 머리카락에는 야샹화를 몇 송이 꽃고 있었다. 두 볼은 발그레한 홍조를 띠었고, 얼굴은 미소로 환히 빛났다. 지금처럼 그녀가 사랑스럽게 보인적은 없었다. 오, 사랑하는 조지. 그녀가 외쳤다. 당신이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몰라요. 오솔길을 달려 내려가 당신이 오나 계속 살폈답니다. 오두막 뒤쪽의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식탁을 차렸어요. 그리고 진짜 맛있는 딸기를 아까부터 따고 있었어요.
[립 밴 윙클]
캐츠킬 산맥에 대한 인디언들의 전설
보단, 색슨족의 주신이자,
보단의 날인 수요일을 있게 한 신,
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노니
진리는 영원히 내가 지킬 대상
무덤으로 기어드는 그날까지.
-카트라이트
허드슨 상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캐츠킬 산맥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산맥은 아팔래치아 조산대에서 갈려 나온 지맥으로, 허드슨 강 서쪽으로 쭉 뻗은 채 고귀하게 우뚝 솟은 모습으로 주변 지역을 호령하고 있다.
이 경이로운 산맥에 당도하면 여행자들은 어떤 마을에서 구불구불 올라오는 옅은 연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 지역이 아직 대영제국의 영토였던 수년 전, 바로 이 마을에, 이런 가옥에(사실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세월과 비바람에 딱할 정도로 낡아빠진 집에), 립 밴 윙클이라는 순박하고 마음 좋은 남자가 살았다.
~~~이웃에게 친절하고, 마누라에게 고분고분 쥐여짜는 남자이기도 했다. ~~~집에서 혹독한 바가지에 시달리는 남자일수록 밖에 나가 다른 이의 기분을 잘 맞추고 풀어주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선량한 마을 아낙들은 그를 매우 좋아했고,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부부 싸움이 발생하면 항상 그의 편을 들었으며, 저녁에 수다를 떨다 이들 부부를 도마에 올릴 때면, 어김없이 모든 탓을 밴 윙클 부인에게 돌렸다. ~~~마을의 개들조차 그에게는 짖지 않았다.
아내는 잠시도 쉬지 않고 그의 게으름과 소홀함을 탓하면서 립 때문에 가족이 폭삭 망하게 생겼다는 잔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퍼부어 댔다.
집에서 유일하게 립을 따르는 식구는 울프라는 개였으나 이 개 역시 주인 못지않은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으니, 밴 윙클 부인이 이 둘을 게으른 단짝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남편의 젖은 엇나감을 울프 탓으로 돌리면서 사나운 눈초리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립은 이 튼튼한 요새에서도 결국에는 달아나야 했으니, 사나운 마누라가 갑자기 이 평온한 모임에 들이닥쳐 회원들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싸잡아 욕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립은 마침내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밭일과 마누라의 바가지로부터 벗어나려면 엽총을 손에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그는 종종 나무 밑둥에 기대고 앉아 전대에 든 음식을 울프와 나눠 먹으며, 자신과 함께 박해를 받는 동료로서 울프를 동정했다.
어느 쾌청한 가을날에 이런 식으로 한참을 어슬렁거리다, 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캐츠킬 산맥 중에서도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까지 오르고 말았다.
늦은 오후, 그는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목초로 뒤덮인 푸른 언덕에 털썩 쓰러졌다. ~~~그는 마누라의 혹독한 잔소리를 생각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산을 막 내려가려는 참에 멀리서 “립 밴 윙클! 립 밴 윙클!”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까마귀 한 마리가 산을 가로질러 날아갈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헛것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내려가려는 찰나, 아까 들은 목소리가 조용한 저녁 하늘에 다시금 울려 퍼졌다. “립 밴 윙클! 립 밴 윙클!” 동시에 울프가 등의 털을 곤두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주인 곁에 숨더니 골짜기 아래를 겁에 질려 내려다보았다.
좀 더 다가갔을 때 그는 낯선 이의 특이한 모습에 더더욱 놀랄따름이었다. 상대는 짤따랗고 다부지게 생긴 늙은이로, 머리털이 텁수룩하고 턱수염은 반백이었다.
노인은 술이 가득 찬 듯한 나무통을 어깨에 진채, 립에게 얼른 와서 도와달라는 몸짓을 했다. 낯선 만남에 립은 다소 겁도 나고 의혹도 들었지만 평소처럼 선선히 요청에 응했고, 두 사람은 서로 나무통을 번갈아 지면서, 산골짝 급류가 흐르다 지금은 말라버린 좁은 협곡을 힘들게 기어올랐다. 두 사람이 위로 오를 때 립은 때때로 먼 곳에서 천둥처럼 우르릉거리는 긴 굉음을 들었는데, 깊은 산골짜기에서,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뚝 솟은 암벽들 사이의 오목한 틈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골짜기를 가로지르다 보니 작은 원형극장처럼 생긴 우묵한 곳이 나왔는데, 사방이 깍아지른 절벽에다, 벼랑 끝에 위태로이 붙어 있는 나무들이 무성한 가지를 뻗어, 푸른 하늘과 산뜻한 저녁 구름이 어쩌다 언뜻 비칠 따름이었다. 힘든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내내 립과 동행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황량한 산속으로 술통을 나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매우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낯선 동행에게는 뭔가 기이하고 불가해한 면이 있어서 두려운 마음에 허물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
원형극장으로 들어서자 다시금 경이로운 대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묘하게 생긴 사람들 한 무리가 나인피스(볼링의 전신)를 하고 있었다.
립이 특히 기묘하게 생각했던 점은 이들 무리가 분명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더없이 심각한 표정과 불가사의한 침묵을 지킨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제껏 이렇게 우울한 유흥 집단을 본 적이 없었다. 조금의 잡음도 없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이따금 공이 굴러가는 소리만 들렸으며, 그때마다 우르릉 천둥 같은 굉음이 산을 타고 울렸다.
립과 동행이 다가가자 일행은 돌연 놀이를 멈추고 그를 쳐다 보았는데, 그 시선이 워낙 조각상처럼 흔들림이 없는 데다 표정 또한 기묘하고 야릇하고 흐릿하기 그지없어, 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때 동행이 나무통에 든 내용물을 커다란 술병에 따르면서 립에게 일행의 시중을 들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립은 두려움에 떨면서 그의 말에 따랐다. 무리는 깊은 정적 속에 벌컥벌컥 술을 들이키더니 이어 다시 놀이를 시작했다.
립은 점차 두려움과 불안감이 가라앉았다. 심지어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과감히 술을 맛보기까지 했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나중에는 감각이 마비되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떨어뜨렸고 이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자 골짜기의 노인을 처음 만났던 푸른 언덕이었다. 그는 눈을 비볐다. ~~~~설마 밤새 여기서 자지는 않았을 텐데. 립은 생각했다. 그는 잠들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엽총을 찾았으나 깨끗하게 기름칠 된 엽총은 간데없고 그의 옆에는 낡아빠진 화승총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총신은 녹으로 뒤덮였고, 방아쇠는 떨어져 나갔으며, 개머리판은 벌레가 먹은 상태였다. ~~~울프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다소 힘들게 골짜기로 내려갔다. 지난 저녁에 노인과 함께 기어올랐던 좁은 협곡을 발견했으나, 놀랍게도 지금은 시냇물이 거품을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마을에 이르러 사람들을 여럿 만났지만 모두 모르는 얼굴뿐이라 그는 적잖게 놀랐다. ~~~자신의 턱수염이 30센티미터나 자란 게 아닌가!~~~분명 이곳은 고작 하루 전에 떠났던 고향마을이었다. ~~~~부인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아 떨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도착해 보니 흉가가 따로 없었다. 지붕은 내려 앉고 창문은 박살났으며 문짝도 떨어진 상태였다.
문간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니콜라우스 베더는 어디 있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한 늙은이가 가늘고 새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분이야 십팔 년 전에 돌아가셨지!
립이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쳤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딴사람이 됐어요....
아기 엄마, 이름이 어찌 되누? 립이 물었다. 주디스 가드니어인데요. 아버지 상함은? 아, 가엾은 분, 립 밴 윙클이 아버지 성함이지만, 이십 년 전에 총을 메고 집을 나가신 뒤로 소식이 끊기셨어요..... 아버지가 키우던 개만 집으로 돌아왔지요.... 총으로 자살하셨는지, 아니면 인디언들에게 끌려갔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일이랍니다. ~~~~ 어머니는 어디 계시누? 오, 그 어머니도 얼마 전에 죽었다고 했다. ~~~ 적어도 이 소식은 한 줄기 위안이 되었다. 정직한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딸과 아이를 끌어안았다. 내가 아버지다!
[실연]
[책 만드는 기술]
“죽은 이의 옷을 훔치는 것보다 노동을 훔치는 것이 더 큰 범죄다.” 라는 시네시우스의 준엄한 판결이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찌 될 것인가?
-버턴, <우울의 해부>
나는 종종 엄창나게 쏟아지는 출판물들을 보며, 자연이 불모의 저주를 내린 듯한 저 수많은 머리들 속에 어떻게 이리 방대한 저작물들이 들어 있을까라고 신기해한다.
[과부와 아들]
노년은 가엾이 여기라, 그 은빛 머리카락 속에
명예와 위엄이 영원히 깃들었도다.
-탬벌레인 대왕
이런 일을 눈여겨보는 사람이라면 일요일에 영국의 풍경이 얼마나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한지 느꼈을 것이다. 철컥철컥 방앗간 소리, 규칙적으로 내리치는 도리깨 소리, 귀가 멍멍한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 농부의 휘파람 소리, 덜걱덜걱 마차 소리, 기타 시골 일을 할 때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잠시 멈춘다.
최근 시골에 머무는 동안 나는 오래된 마을 교회에 자주 나갔다. 어둑한 교회 측량, 허물어져 가는 기념비, 검은 오크 나무 벽 널, 흘러간 세월의 그림자와 함께 이 모든 것에 경건함이 깃들어, 엄숙한 명상을 하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장소처럼 보엿다. 하지만 부유한 귀족 이웃들 사이에 있다 보니, 이 거룩한 장소에조차 번쩍거리는 최신 유행이 침범해 들어왔다. 쌀쌀맞고 허식에 찬 딱한 인간들에 둘러싸여 나는 번번이 속세로 되던져지는 느낌이었다. 신도들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이 참된 기독교인답게 자신을 낮추어 겸허히 섬기는 듯했으니, 바로 세월과 질병의 무게에 허리가 굽은 가난하고 늙어빠진 노파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절대 빈곤을 초월한 어떤 흔적이 있었다. 외모에는 옛 시절의 품위와 자존감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옷은 극도로 초라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사랑, 우정, 교제, 이 모든 것들을 떠나보낸 지금, 그녀에게는 천국의 희망만 남은 듯 보였다.
[문학의 가변성]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대담
나는 아내, 달 아래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임을,
인간들에 의해 이 세상에 생긴 것은
시간의 거대한 흐름 속에 언젠가 무(無)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나는 아내, 시인들의 그 모든 아름다운 노래들,
영혼을 노고로 값지게 얻었건만,
무익한 소리라 하여 찾는 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공허한 칭찬보다 가벼운 것은 없다는 것을,
-호손덴의 드러먼드
[시골 장례식]
[유령 신랑]
[포카노켓의 필립]
[마을의 자랑거리]
나그네들이 흔히 그렇듯, 내 발길도 이내 교회로 향했다.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나는 반쯤 파묻힌 묘석에 앉아, 이처럼 엄숙한 사색의 시간에 흔히들 그러듯, 흘러산 시간과 옛 친구들-멀리 떨어진 이들-에 대해 생각하며 애수 어린 상념에 젖었다.
나는 고인에 관한 사연을 들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마을의 미인이자 자랑거리였다. 아버지는 한때 꽤 부유한 농부였^으나 그간 가세가 다소 기울어 잇었다. 그녀는 외동딸이었고, 소박한 시골 생활t고에 오롯이 집에서만 양육되었다. 그녀는 마을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의 신도들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어린양이었다. 선량한 목사는 어버지처럼 자상히 그녀의 교육을 돌보았다.
푸른 풀밭을 뛰어다닌 미천한 소녀들 중
이렇게 어여쁜 아이는 없었으며, 몸가짐 하나하나.
뭔가 그 자신을 넘어선 느낌을 풍기네.
이곳에 있기에는 너무 고결한 모습이어라.
이곳은 옛 영국 풍습의 자취를 간직한 외진 마을이었다.
그녀의 연인 역시 열렬하기는 마친가지였다. ~~~그의 부대에 유럽 대륙으로 떠나라는 명령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그의 마음속 혼란도 끝이났다. ~~~이제까지 그녀는 그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행복한 꿈에 젖은 그녀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집을 나오라고, 그래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하자고 꾀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울지 않았고, 비난을 퍼붓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독사에게 도망치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서더니, 그의 영혼까지 꿰뚫는 고통스러운 포정을 던지다가, 괴로움 속에 양손을 꽉 진체, 피난처를 찾듯 아버지의 오두막을 향해 달아나 버렸다. ~~~장교는 당혹감과 굴욕과 죄의식 속에 물러났다.
자신의 이상 세계가 모조리 무너진 가운데, 가엾은 소녀가 받은 충격은 참으로 모질었다. 처음에는 실신과 발작이 그녀의 어린 몸을 흔들었고, 이어 만성적 우울증이 그녀를 말려갔다. 그녀는 떠나가는 부대의 행진을 창가에서 지켜보았다.
때때로 사람들은 밤늦게 마을 교회 현관에 앚아 있는 그녀를 보았고, 소젖 짜는 여자들은 들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사나무 산책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구슬픈 노랫소리를 듣곤 했다. 그녀는 더더욱 뜨겁게 교회에 헌신했다.
차츰차츰 그녀는 기력을 잃어갔고, 이제는 더 이상 오두막을 나서지 못했다. 한없이 창가로 걸어가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온종일 그곳에 앉아 풍경을 내다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그들 사이에 앉아 잇었다. 두 손은 부모님의 손에 꼭 쥐여 있었고 ~~~아버지는 이제 막 성경의 한 장을 읽어주던 참이었다. 속세의 덧없음과 천국의 기쁨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때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전속력으로 오두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어 그가 격자창 앞에서 내렸다. 가엾은 소녀가 희미한 비명과 함께 의자에 털썩 쓰러졌다. 회개한 연인이 아닌가! 장교는 황망히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품에 끌어 안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녀의 초췌한 모습, 죽음이 깃든 안색, 너무나 파리하고, 그럼에도 너무나 아름답게 이운 그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영혼까지 미어져 그녀의 발치에 고통스럽게 몸을 던졌다. 그녀는 너무 병약하여 일어나지 못한 채 떨리는 손을 내밀려 애를 썼다. 말을 할 듯 입술이 움직였으나, 그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그녀는 형언할 수 없이 애정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고, 그렇게 영원히 눈을 감았다.
[낚시꾼]
[슬리피 할로의 전설]
고(故) 디드리히 니커보커 씨의 서류에서 발견된 글
이곳은 졸리는 사람들의 즐거운 나라
반쯤 감긴 눈앞에 아른대는 꿈들과,
영우너히 여름하늘에 불게 물든 채 흘러가는,
구름 속 유쾌한 공상들의 나라,
-나태한 성(城)
허드슨 강의 동쪽 기슭을 들쭉날쭉 파먹은 어느 널찍한 만(灣)의 한가운데, 고대 네덜란드 항해자들이 ‘태판지’라고 부르던 드넓은 강 지역이 있어, 그들은 그곳을 지날 때면 언제나 신중하게 돛을 줄이고 성 니콜라우스의 보호를 빌었다. 바로 그곳에, 한 아담한 시장 마을 혹은 시골 항도가 있으니, 혹자는 이곳을 그린즈버러라고 부르나, 일반적으로는 ‘태리 타운(늑장 부리는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이 이름은 옛날 인근 시골의 선량한 아낙네들이 장날마다 마을 선술집에 눌러앉은 남정네들의 고질적 습관을 빗대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아마도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작은 골짜기가 하나 있는데, 온 세상을 통틀어 이렇게 조용한 곳도 없다. 작은 시냇물이 졸졸, 그저 편안한 자장가처럼 나직하게 흘러가고, 이따금 메추라기의 울음소리나 딱따구리의 나무 찍는 소리만 들릴 뿐, 한결같은 정적이 감도는 곳이었다.
풋내기 시절, 내가 처음으로 다람쥐 사냥을 나선 곳은 이 골짜기의 측면에 그늘을 드리운 어느 호두나무 숲이었다. 온 산천이 기묘하게 조용했던 정오 무렵에 나는 그곳에 들어섰으며, 내가 쏘고서도 천둥 같은 총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총소리는 주변의 깊은 침묵을 깨뜨리면서, 성난 메아리에 실려 오래오래 울려 퍼졌다. 만약 내가 세상과 온갖 근심에서 벗어나, 험난했던 삶의 여생을 조용히 꿈꾸듯 보낼 은신처를 찾고자 한다면, 이 작은 골짜기보다 나은 곳을 알지 못한다.
이곳의 께느르한 고요와, 초기 네덜란드계 개척민의 후손인 이곳 주민들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이 깊숙한 골짜기는 오래 전부터 ‘슬리피 할로(잠의 골짜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의 투박한 사내들은 인근한 모든 지역에서 ‘슬리피 할로의 사내들’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서는 몽롱하고 꿈결 같은 힘이 대지에 드리웠고 공기 중에도 가득하다. 어떤 이들은 독일 고지의 한 주술사가 식민지 개척 초기에 이곳에 마법을 걸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헨드릭 허드슨이 이곳을 발견하기 전에 어느 늙은 인디언 추장이 자기 종족의 예언자 혹은 마법사로서 이곳에서 주술의식을 행했다고 믿는다.
확실히 오늘날에도 이곳에는 선량한 주민들의 마음을 홀려, 끊임없이 꿈꾸듯 걸어다니게 만드는, 어떤 마법의 기운이 드리워 있다.
이 마법의 골짜기에 출몰하는 지배적 유령이자, 공중에 떠도는 모든 악령들의 대장 격인 유령은 목 없이 말을 타고 달리는 사내였다. 일부에 따르면 이 유령은 미국 독립전쟁 때 어느 이름 없는 전투에서 머리가 포탄에 날아간 헤센 용병이라고 하는데, 때때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어두컴컴한 밤에 마치 바람처럼 쌩하니 서둘러 달려가는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유령은 자신의 머리를 되찾기 위해 밤마다 전투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때때로 그가 마치 한밤의 돌풍처럼 부랴부랴 골짜기를 달려가는 이유는 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동이 트기 전에 교회 묘지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슬리피 할로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아무리 정신이 멀쩡했더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의 마력을 들이마시고 점점 상상 속에 빠져들어, 꿈을 꾸고 환영을 보게 된다.
이처럼 구석진 자연의 품속에, 미국 역사로 보면 먼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쯤 전에, 이커보드 크레인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살았다. 그가 슬리피 할로에 머문 이유는 인근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는 키가 껑충하고, 몸은 극도로 홀쭉했으며, 좁은 어깨, 기다란 팔다리, 소맷자락 까마득히 아래에서 대롱대는 손, 삽으로 써도 될 법한 발 등등, 전반적인 골격이 너무나 헐렁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머리는 조그맣고 정수리가 납작하며, 큼직한 귀, 커다랗고 흐리멍텅한 녹색 눈, 도요새 부리 같은 긴 코가 달려 있어, 그 모습이 마치 길쭉한 목 위에 달랑 얹힌 채 바람이 부는 대로 돌아가는 닭 모양 풍향계 같았다. 바람 센 날에 그가 옷자락을 펄럭펄럭 휘날리며 언덕 경사지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 지상에 강림한 굶주림의 신이나 옥수수 밭에서 뛰쳐나온 허수아비로 착각하리라.
학교는 얼마간 쓸쓸하면서도 쾌적한 곳, 나무가 우거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바로 옆으로 시냇물이 흘러가고, 한쪽 끝에는 무시무시한 자작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는 생계비를 아끼고자, 이 지역 시골 풍습에 따라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농가에서 번갈아가며 숙식을 해결했다. 그는 한 번에 일주일씩 머물렀고, 이런 식으로 속세의 전 재산을 무명 보자기에 싸든 채 마을을 전전했다.
때때로 가벼운 농사일도 거들고, 건초도 만들고, 울타리도 고치고, 말에게 물도 먹이고, 목초지에서 소도 몰아오고, 경울 땔감으로 쓸 나무도 잘랐다.
그는 여러 소명에 더해 마을 교회에서 성가대도 지휘했고, 젊은이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면서 반짝반짝하는 은화도 짭짤하게 거두었다.
학교 선생은 대개 시골 마을의 여성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는 반 떠돌이 인생이다 보니, 일종의 이동 신문처럼 마을의 온갖 소문을 집집마다 실어 날랐던지라, 사람들에게 언제나 반가운 환영을 받았다.
종종 그의 즐거움 중 하나는, 오후에 수업이 끝난 뒤, 학교 옆으로 구슬프게 흘러가는 작은 시냇가의 싱싱한 클로버 풀밭에 드러누워, 점점 내려앉는 땅거미 속에 책장이 흐릿하게 변할 때까지 친애하는 매더 목사의 음산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었다. 이어, 그가 늪지와 시내와 무시무시한 삼림지를 거쳐 자신이 거처하는 농가로 돌아갈 때면, 마녀가 나다니는 어둑한 시간인 만큼, 자연의 온갖 소리가 그의 흥분된 상상력을 부추겼다. 쏙독쏙독 산허리에 서글피 울어대는 쑥독새, 개골개골 비바람을 알리며 불길하게 울어대는 청개구리, 부엉부엉 음산하게 울어대는 부엉이, ~~~놀란 새들.
이런 경우, 불안한 생각을 달래거나 악령들을 쫓아낼 유일한 방법은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매주 한 번 저녁에 그에게서 찬송가를 배우기 위해 모이는 음악 생도들 중에는 네덜란드계 부농의 외동딸인 카트리나 밴 태솔이 있었다. 그녀는 꽃처럼 싱그럽게 피어나는 열여덟 살 아가씨로, 메추라기처럼 포동포동하고, 그녀 아버지가 키우는 복숭아처럼 장밋빛 빰에 탐스럽게 무르익었으며, 비단 미모뿐 아니라 앞으로 물려받을 막대한 유산으로 인해 명성이 자자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의 마음은 완전히 정복되고 말았다. 그곳은 무척이나 널찍한 농가로, 용마루는 높지만 지붕은 낮게 경사지고, 초기 네덜란드계 개척자 시절부터 내려운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이커보드는 경탄을 금치 못하며 베란다를 거쳐 홀로 들어섰다. ~~~~그는 어떻게 하면 밴 태슬의 출중한 외동딸에게 애정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궁리뿐이었다. 하지만, 옛 시절의 수행 기사들과 비교했을 때, 그에게는 좀 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상대는 에이브러햄, 혹은 네덜란드식 약칭에 따르면 브롬 밴 브런트라고 불리는 건장하고, 우렁차고, 으스대기 좋아하는 멋쟁이 청년이었다.
이 야생마 같은 영웅은 이미 오래전부터 꽃다운 카트리나를 자신의 투박한 애정 t아대로 점찍어 둔 터였고~~~~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그를 완전히 내치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브롬은 천성적으로 거친 기사도를 타고났는지라, 더없이 간명하고 단순한 사고방식을 지녔던 옛 수행 기사들의 방식, 즉 한판 결투에 따라 공개적으로 대결한 뒤 카트리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카보드는 이런 시함에 뛰어들기에는 상대의 우월한 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일전에 통뼈 브롬이 “그놈의 선생을 반으로 접어서, 자기 학교 선반에다 쑤셔 넣겠다.” 고 자랑하는 소리도 들었기에, 그는 상대에게 이런 기회를 주지 않도록 바싹 경계했다.
그들은 평온했던 이커보드의 영역으로 쳐들어와, 굴뚝을 막아서 노래를 배우던 사람들을 연기로 내쫓기도 하고...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 오후, 이커보드는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 높은 걸상에 군주처럼 앉아 있었다. 대개 그는 이 자리에 앉아 자신의 작은 학습 왕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시했다. 손에는 군주의 홀인 채벌용 나무 주걱을 흔들고 있었고, 말썽꾸러기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공포의 대상인 자작나무 회초리는 의자 뒤, 못 세 개에 얹혀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그가 무섭게 기강이라도 잡았는지, 학생들은 모두 열심히 책을 읽거나 한 눈으로 흘금흘금 스승을 훔쳐보면서 책 뒤에서 몰래 소근대고 있었다.
검정색 옷을 손질하고 매만지랴, 교실에 걸려 있는 깨진 거울 조각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으랴, 평소보다 최소 반 시간을 더 몸단장에 썼다. 그는 진정한 기사다운 모습으로 연인 앞에 등장하기 위해, 자신이 묵고 있는 농가의 주인인 한스 밴 리퍼라는 성 잘 내는 네덜란드계 노인에게 말을 빌렸고, 이어 그 위에 용맹하게 올라탄 뒤 모험에 나서는 수행 기사처럼 길을 떠났다.
그가 타고 있는 짐승은 쟁기질에 사용하는 노쇠한 말로서, 워낙 늙은 탓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고약한 성질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비쩍 마른데다 털이 텁수룩했고, 목은 빈약하고 머리통은 망치 같았다. 빛바랜 갈기와 꼬리털은 이리저리 뒤엉키고 옹이 져 있었다. 한쪽 눈은 눈동자가 없어 허옇고 유령 같았지만, 다른 쪽 눈에는 진짜 악마 같은 섬광이 언뜻언뜻 비쳤다. ~~~실제로 이놈은 주인이 제일 아끼는 말이었다. 성 잘 내는 밴 리퍼 노인은 사납게 말을 몰았는데, 십중팔구 얼마간 자기 기질을 애마에게 불어넣은 게 분명했다. ~~~이커보드는 이런 준마를 타기에 썩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작은 새들은 고별 연회를 즐기는 중이었다. 새들은 흥겹게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서 숲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에 변덕을 부리며 덤블에서 덤블로, 나무에서 나무로, 짹짹대고 까불대며 날개를 퍼덕였다.
이커보드가 밴 태슬의 대저택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이미 그곳에는 일대의 정화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이곳의 영웅은 단연 통뼈 브롬으로, 그는 애마 테어데블(물 불 가리지 않는)을 타고 파티에 등장했다.
이커보드는 자신의 발성 능력만큼이나 춤에도 자신 있었다. ~~~춤이 끝나자, 이커보드는 현인들의 무리에 시선이 갔다. 그들은 늙은 밴 태슬과 함께 베란다 한쪽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옛 시절에 대해 환담을 나누고, 전쟁에 대해 기나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중에는 도퓨 마틀링이라는, 몸집이 크고 수염이 파란 네덜란드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진흙으로 쌓은 임시 흉벽에서 낡은 9파운드짜리 대포를 쏘아 영국군의 프리깃함을 거의 침몰시킬 뻔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섯 번째 발포 때 그만 대포가 파열해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무용담도 이어 계속된 유령과 망령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지역에는 이런 종류의 값진 전설적 괴담이 풍부했다. ~~~이 지역에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유행하는 직접적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슬리피 할로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다.
불운한 존 안드레 소령이 체포되었던 인근의 거대한 나무 근처에서는 요즘도 장례 행렬이 보이고, 비통한 곡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레이븐록의 어두컴컴한 골짜기에서는 흰옷 입은 여인이 나타나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눈 속에 죽었는지라, 겨울 밤 눈보라가 몰아치기 전이면 종종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당연 화젯거리는 슬리피 할로에서 가장 사랑받는 유령, 목 없는 기수였다. 최근에도 그가 인근을 순시하는 소리가 몇 차례나 들렸다는 이야기, 밤이면 그가 교회 묘지 무덤 사이에 말을 묶어둔다는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통뼈 브롬은 세 배나 더 기이한 모험담을 들고 나왔다. 그는 질주하는 헤센 용병을 형편없는 기수라고 깔보았다. 그에 따르면, 어느 밤 그가 싱싱이라는 이웃 마을에서 돌아오고 잇을 때 밤의 기병이 그를 따라잡았다고 한다. 그는 유령에게 펀치 한사발을 걸고 시합을 제안했는데, 데어데블이 요괴 말 따위보다는 훨씬 빨랐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승리가 확실했다. 하지만 그들이 교회 다리에 막 다다랐을 때, 헤센 용병이 갑자기 달아나더니 번쩍 섬광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이제 서서히 해산하는 분위기였다. 늙은 농부들은 짐마차에 식구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골짜기 길을 따라, 그리고 먼 언덕 너머로 얼마동안 울렸다.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했던 이곳은 이제 모두 떠난 채 정적만 감돌았다. 오직 이커보드만 뒤에 남았는데, 그는 시골 연인들의 관습에 따라 밴 태슬 가문의 상속녀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상당히 우울하고 풀죽은 모습으로 나온 걸로 보건대, 뭔가 틀어진 게 분명했다.
이커보드가 침울하고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집을 향해 떠난 것은 마녀가 설치는 한밤중이었다. 그가 지나는 산허리는 테리 타운 위로 우뚝 솟아 있었으며, 낮에만 해도 너무나 기분 좋게 지났던 곳이었다. ~~~밤은 점점 더 어두워져갔고, 별들은 점점 더 깊이 하늘에 박히는 듯했으며, 세차게 흘러가는 구름은 이따금 별들을 시야에서 감추었다. 그는 지금처럼 외롭고 우울했던 적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튤립나무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커보드는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누군가 휘파람에 대답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세차게 휘몰아친 돌풍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무 한가운데에 뭔가 허연 것이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발길과 휘파람을 멈추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바라보자 나무가 번개에 맞아 하얀 목질부가 드러난 곳이었다. 갑자기 신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이가 딱딱 떨리고 무릎이 후들후들 안장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것은 산들바람에 흔들린 커다란 가지들이 서로 부대끼는 소리였다.
튤립나무에서 180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작은 개울 하나가 길을 가로지르면서 빽빽한 삼림과 습지가 자리한 협곡으로 흘러들었다. 와일리의 늪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개울이 가까워지자 이커보드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그는 온 정신을 가다듬고, 말의 옆구리를 대여섯 번 걷어차며 단숨에 다리를 뛰어 건너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빙퉁그러진 늙은 말이 앞으로 돌진하지 않고 옆으로 움직이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 반대쪽으로 돌진하여 가시관목과 오리나무 숲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다리 옆에서 나는 질척대는 발소리가 이커보드의 예민한 귀에 와 닿았다. 개울가에, 숲의 컴컴한 그늘 속에, 무언가 거대하고, 일그러지고, 시커멓고, 높이 솟은 형체가 보였다. 형체는 꿈쩍도 안은 채,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언제라도 나그네를 덮칠 준비가 된 거대한 괴물처럼.
놀란 선생은 공포심으로 머리털이 쭈뼛쭈뼛 섰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을 돌려 달아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커보드는 용기를 그러모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시오?”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더더욱 동요된 목소리로 질문은 되풀이했다.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커보드는 꿈쩍 않는 건파우더의 옆구리를 다시 한 번 걷어찬 뒤, 질끈 두 눈을 감고, 본능적인 열정으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공포의 시커먼 형체가 몸을 움직이더니 단번에 훌쩍 뛰어올라 길 한복판에 우뚝 섰다.비록 컴컴하고 음산한 밤이었지만 낯선 이의 모습이 어느 정도 분간되었다. 그는 몸집이 거대한 사내였으며 강력하게 생긴 흑마를 타고 있었다. 상대는 어떤 위협이나 인사도 없이, 그저 길 한쪽에 멀찍이 떨어진 채, 늙은 거파우더의 장님 눈이 향한 방향에서 느릿느릿 말을 몰 뿐이었다. 한편 건파우더는 이제 두려움과 외고집을 떨친 듯 보였다.
이커보드는 한밤의 낯선 동료와 어울릴 마음이 전혀 없는 데다, 통뼈 브롬이 헤센 용병과 벌였던 모험이 떠오르는지라, 혹여 낯선 이를 따돌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상대도 똑같은 속도로 박차를 가했다. 이커보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찬송가를 계속 부르려 애썼으나, 바싹 마른 혀가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어 한 연도 나오지 않았다.
오르막길에 접어들어, 동료 나그네의 형상이 하늘을 배경으로 또렷이 드러났을 때, 이커보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상대는 목없는 기수가 아닌가! 하지만 그의 공포심을 더더욱 자극하는 것이 있었으니, 어깨 위에 붙었어야 할 목이 상대 앞의 안장머리에 얹혀 있는 것이었다!. 이제 공포심은 필사적 심정으로 변했다.
이제 그들은 슬리피 할로로 접어드는 길에 이르렀다. 하지만 건파우더가 악마에 홀리기라도 했는지, 느닷없이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더니, 내리막길을 따라 왼쪽으로 미친 듯 돌진하는 것이었다. 이 길을 따라 사백 미터 정도 나무그늘이 드리운 모래 골짜기를 통과하면, 요괴 이야기로 유명한 다리가 나왔고, 바로 그 너머에는 하얀 교회가 자리한 푸른 언덕이 솟아 있었다.
이제 나무 사이로 빈터가 나타나자 그는 교회 다리가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에 기운이 솟았다. ~~~저 다리까지만 가면 안전하다.
그때 바로 뒤에서 유령의 흑마가 씩씩대며 내뿜는 숨소리가 들렸다. ~~~건파우더의 옆구리를 걷어차자 늙은 말은 다리를 향해 껑충 뛰었고, 이어 굉음을 내며 판자 위를 건넜다. 그는 건너편에 무사히 이른 뒤, 이제 그의 추격자가, 법칙대로, 불꽃과 유황 속에 사라지는지 지켜보고자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가 돌아본 바로 그 순간, 요기는 등자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머리를 던지고 있었다. 이커보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이 끔찍한 물체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터였다. 유령의 머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커보드의 두 골에 맞혔고, 그는 그대로 진흙 속에 고꾸라졌다. 이어 건파우더와, 흑마와, 유령 기수는 회오리바람처럼 그를 지나쳐 갔다.
다음 날 아침에 늙은 건파우더는 안장도 없이, 재갈을 발밑에 매달고서, 주인집 문가에서 여느때처럼 풀을 뜯고 있었다. 이카보드는 아침 식사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정찬 시간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내 이이들은 학교에 모여 빈둥빈둥 개울가를 돌아다녔지만, 학교 선생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조사를 실시했고, 부지런히 수색한 끝에 그의 발자취를 찿아냈다. 교회로 연결되는 길의 한 지점에서 진흙 속에 짓밟힌 안장이 발견되었다. 분명 맹렬한 속도로 달린 듯, 길에 움푹 팬 말발굽 자국이 다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너머, 개울 폭이 넓은 한 지점, 물이 깊고 시커멓게 흐른다는 그곳 기슭에서 불운한 이커버드의 모자가 발견되었고, 바로 가까이에는 호박 하나가 산산히 부서져 있었다.
개울을 뒤졌으나 선생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스 밴 리퍼는 이커보드의 유산 집행자로서 속세의 전 재산이 담겨 있는 그의 꾸러미를 살펴보았다. 귀중한 서츠 두 벌, 목에 두르는 옷깃 장식 두 개, 소모사로 만든 긴 양말 한두 켤레, 낡은 코르덴 반바지 한 벌, 녹슨 면도칼 한 개, 모서리가 잔뜩 접힌 찬송가집 한 권, 부서진 음조 피리 한 개가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책에는 큼직한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는데, 밴 태슬 가문의 상속녀에게 비칠 시를 몇 번 헛되이 시도한 듯, 이리저리 휘갈겨 쓴 글씨와 잉크 자국 범벅이었다. 한스 밴 리퍼는 마법 책들과 시 습작을 지체 없이 불길 속에 집어 던졌고, 이따위 내용을 읽고 써봐야 아무 이득 없을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 그때부터 더 이상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은 다음 일요일 교회에서 수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더 이상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고, 학교는 골짜기의 딴 지역으로 옮겨져, 새 선생이 대신 군림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한 늙은 농부가 뉴욕에 다녀왔다가 고향 사람들에게 이커버드 크레인의 소식을 전했는데, 이 유령 모험담도 그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커버드 크레인은 아직 살아 있으며, 그가 마을을 떠난 것은 요괴와 한스 밴 리퍼에 대한 두려움 뿐 아니라 밴 태슬 가문의 상속녀에게 느닷없이 퇴짜를 맞은 굴욕감 때문이었으며, 이후 그는 먼 고장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교직과 법학 공부를 병행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고, 정치가로 전향하고, 선거 운동을 하고, 신문에 글을 쓰고, 그러다 마침내 소액 재판소의 판사가 되었다고 했다. ~~~꽃다운 카트리나와 의기양양하게 결혼식을 올린 통뼈 브롬 역시, 이커보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뭔가 상당히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으며, 호박 이야기가 언급되면 언제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몇몇 사람들은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이 밝히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사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늙은 시골 아낙네들은 오늘까지도 이커보드가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잡혀갔다고 단언한다.
[추신]
니커보커 씨의 육필 문서에서 발견된 글
이상은 맨해토라는 오래된 도시에서 열렸던 어느 시정 기관 모임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를 거의 표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당시 그곳에는 더없이 박식하고 저명한 시민들이 많이 참석해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명랑하고 남루하고 점잖은 노인으로, 희끗희끗한 색깔의 옷에, 구슬프게 해학적인 얼굴이었다.
그는 필시 가난한 사람인 듯했으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청중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야기 내내 졸고 있던 부 참사회원 두세 명은 왁자하게 웃으며 호응을 보냈다. 하지만 그ㅏ곳에는 키가 크고 표정이 쌀쌀맞고 눈썹이 튀어나온 노신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이야기 내내 근엄하고 다소 매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따금 마음 속으로 의혹을 곱씹는 듯, 팔짱을 낀 채 머리를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는 타당한 근거, 꼭 그래야 될 이유나 법칙이 없이는 절대 웃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나머지 청중의 웃음이 잦아들고 방이 다시 조용해졌을 때, 근느 한 팔은 의자 팔걸이, 다른 쪽은 허리에 대고, 희미하지만 극히 박식한 듯한 고갯짓과 함께 이마를 찌푸리면서,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이고 증명하려는 바는 무엇이냐고 요구했다.
화자는 이야기를 끝낸 후 목을 축이려고 포도주 잔을 막 입에 가져가려다, 잠시 동작을 멈추고 무한한 존경심으로 질문자를 바라보더니, 이어 잔을 천천히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하길, 이 이야기가 더없이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바는 “우리가 농담을 있는 그대로 웃어 넘길수만 있다면, 인생의 모든 상황에는 나름대로의 이점이나 즐거움이 있지요. 따라서, 요괴 기병과 경주를 벌이는 자는 혼쭐 깨나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고로, 시골 선생의 경우 네덜란드계 상속녀에게 퇴짜 맞은 것은 높은 지위로 나아가는 일보가 되지요.
신중한 노신사는 이와 같은 삼단논법의 추론에 몹시 어리둥절하여 설명을 듣고 난 뒤 열배는 더 이맛살을 찌푸렸고, 그동안 희끗희끗한 옷을 입은 노인은 의기양양한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극고 노신사가 말하길, 다 좋다 쳐도 그의 이야기는 다소 얼토당토않은 면이 있다고, 의심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 있다고 했다. “믿음이죠, 나리.” 화자가 대답했다. “그 문제에 관한 한, 저 자신도 절반은 믿지 않는답니다.” -디드리히 니커보커
[Review]
‘워싱턴 어빙’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이다. ‘에드거 앨런 포’, ‘너대니얼 호손’, ‘찰스 디킨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과 동시대의 인물로 글 표현 방식이 섬세하고 낭만적이어서 감동을 준다. 어릴 때부터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낯선 인물과 풍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허드슨강 강가를 여행하면서 강 인근의 수많은 전설을 접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이 책도 허드슨강을 배경으로 한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바탕으로 지어진 판타지 소설이다. 기존의 미국 문학이 보여주던 교훈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계와 옛이야기의 우수 어린 분위기를 유려한 필치로 선보인 이 작품은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기념비적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허드슨강의 동쪽 기슭 '그린즈버러’라는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골짜기 마을 ‘슬리피 할로(잠의 골짜기)’ 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발령받고 찾아왔다. 이 깊숙한 골짜기는 오래전부터 몽롱하고 꿈결 같은 힘이 대지에 드리운 곳이었다. 조용하고, 작은 시냇물이 편안한 자장가처럼 나직하게 흘러가고, 이따금 메추라기의 울음소리나 딱따구리의 나무 찍는 소리만 들릴 뿐, 한결같은 정적이 감도는 곳이었다.
이곳에 목 없이 말을 타고 달리는 유령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 때 어느 이름 없는 전투에서 머리가 포탄에 날아간 헤센 용병이라고 하는데, 때때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어두컴컴한 밤에 마치 바람처럼 쌩하니 서둘러 달려가는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사람들 말로는 유령이 자기 머리를 되찾기 위해 밤마다 전투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 행색은 초라하고 몰골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이커보드 크레인’이라는 젊은 교사가 찾아왔다.
“그는 키가 껑충하고, 몸은 극도로 홀쭉했으며, 좁은 어깨, 기다란 팔다리, 소맷자락 까마득히 아래에서 대롱대는 손, 삽으로 써도 될 법한 발 등등, 전반적인 골격이 너무나 헐렁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머리는 조그맣고 정수리가 납작하며, 큼직한 귀, 커다랗고 흐리멍텅한 녹색 눈, 도요새 부리 같은 긴 코가 달려 있어, 그 모습이 마치 길쭉한 목 위에 달랑 얹힌 채 바람이 부는 대로 돌아가는 닭 모양 풍향계 같았다. 바람 센 날에 그가 옷자락을 펄럭펄럭 휘날리며 언덕 경사지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 지상에 강림한 굶주림의 신이나 옥수수 밭에서 뛰쳐나온 허수아비로 착각하리라.”(본문)
그는 마을 풍습에 따라서 매주 번갈아 가며 아이들의 농가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대신 때때로 가벼운 농사일도 거들고, 건초도 만들고, 울타리도 고치고, 말에게 물도 먹이고, 목초지에서 소도 몰아오고, 겨울 땔감으로 쓸 나무도 잘랐다.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교회에서 성가대도 지휘했고, 젊은이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면서 짭짤하게 용돈도 벌었다.
그는 매주 한 번 저녁에 찬송가도 가르쳤는데, 생도 중에는 네덜란드계 부농의 외동딸인 ‘카트리나 밴 태솔’이 있었다. 그녀는 꽃처럼 싱그러운 열여덟 살 아가씨로, 메추라기처럼 포동포동하고 아름다웠다. 미모뿐 아니라 앞으로 물려받을 막대한 유산으로 인해 뭇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
이 마을에는 ‘브롬 밴 브런트’라고 불리는 건장하고, 우렁차고, 으스대기 좋아하는 멋쟁이 청년이 있었다. 그도 그녀를 흠모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은근히 라이벌 관계가 이어졌다. ‘브롬‘은 친구들을 부추겨 노래를 배우고 있는 집 굴뚝을 막는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선생을 반으로 접어서, 자기 학교 선반에다 쑤셔 넣겠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의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는 파티를 열었고 그도 초대받았다.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로 은근히 기대하며 몸치장하고 주인집에서 빌린 늙고 초라한 말을 타고 갔다.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브롬‘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도하며 자신이 목 없이 말을 타고 달리는 유령을 따돌렸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흩어진 후에 그는 자리에 남아 있다가 ‘테리’ 아가씨에게 퇴짜를 맞고 늦은 밤 혼자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유령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무언가 헛것을 보고 두려움에 이가 딱딱 떨리고 무릎이 후들후들 안장에 부딪혔다. 그는 휘파람을 불고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며 안정을 찾으려 했지만 두려움은 더해만 갔다.
그는 말을 재촉하며 달렸지만, 유령은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시냇물을 건너려고 말이 껑충 뛰었는데 그 순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큰 물체에 머리를 맞고 고꾸라지며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늙은 말은 혼자서 돌아왔고 사람들은 시냇가에서 사내의 모자와 깨진 커다란 호박 한 덩이를 발견했지만, 사내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마을의 한 늙은 농부가 뉴욕에 다녀와서 사내의 소식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내는 아직 살아 있으며 먼 고장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정치가로 전향하고, 선거 운동을 하고, 신문에 글을 쓰고, 그러다 마침내 소액 재판소의 판사가 되었다고 했다.
“꽃다운 카트리나와 의기양양하게 결혼식을 올린 브롬 역시, 이커보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뭔가 상당히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으며, 호박 이야기가 언급되면 언제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본문)
마을 사람들은 사내가 마을을 떠난 이유에 대해 목 없는 유령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브롬’은 무언가를 알고 있지나 않나 의심했다.
유령 이야기는 옛날과 달리 요즘 사람들에게는 별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만 해도 가슴을 조이며 들었던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는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야기를 특별히 재미있게 꾸미는 이들이 있어서 거짓인 줄 알면서도 언제나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빙‘ 이 살았던 시대인 당시에는 미국에도 이런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특히 글 솜씨로 많은 이들에게 칭송받았으리라 짐작된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 졌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는 가정의 행복을 그린 <아내>, 현실에 무능한 남편이 잔소리하는 아내를 피해 사냥을 나갔다가, 누군가 준 독주를 마시고 20년이라는 긴 시간 후에 돌아온 이야기<립 밴 윙클> 등 널리 알려진 여러 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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