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외 1편
오 병 량
종일 마른 비 내리는 소리가 전부인 바다였다
욕실에는 벌레가 누워있고 그것은 죽은 물처럼 얌전한 얼굴,
구겨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면
혐오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미개한 해변 위에 몇 통의 편지를 찢었다
날아가는 새들, 날개 없는 새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파도가 서로의 몸을 물고 내 발끝으로 와 죽어갔다
한 번 죽은 것들이 다시 돌아와 죽기를 반복하는 백사장에서
떠난 애인의 새로운 애인 따위가 그려졌다 다시
더러워지고는 했다
그대의 손등처럼 바스락거리는 벌레가 욕실에 있었다 벌레는,
곱디고운 소름 같은 어느 여인의 잘라낸 머리칼 같았다
나는 위독한 여인 하나를 약봉지처럼 접고
오래도록 펴보았다 많은 것이 보이고
슬펐으나 한결같이 흔한 것들 뿐이었다
나는 애먼 얼굴을 거울 안에 그려두었다
잘린 머리칼을 제자리에 붙여주면 어여쁘고 흉한,
평화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위독한 미소의 여자가
커다란 가위를 든 채 거울 밖에 있었다
이 위태로움을 어찌 두고 갈 수 있을까? 그대여,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고 쓴 그대의 편지를
두어 번 더 기억하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슬픔에 비겁했다, 생각할수록 자꾸 여며지는 백사장
말하자면 그건 소용없는 커튼, 소용없는 커튼은
창밖을 곤히 지웠다 도무지 펄럭이지 않았다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였다
죽을힘을 다해
죽는 연습을 하는 최초의 생명 같았다
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이건 원장수녀님의 방만큼 커다란 마차다. 빼곡한 나무 창살 속, 기진한 개들이 가득한, 성당입구를 반쯤 가로막고선 마차를 향해 신부의 딸이 침을 뱉는다. 썩은 빗자루 노래를 흥얼거리며, 썩은 빗자루 같은 늙고 젊은 개 사고 팝니다, 팻말을 두드리던 신부의 아들이 창살 사이로 목검을 비집는다. 그만둬, 그들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
정적은 종소리만큼 크다. 누군가 열쇠를 흔드는 그곳엔 모두가 주시하는 아버지, 아버지 같은, 머리를 조아리는 아버지신부와 두툼한 턱을 가진 개들의 아버지가 있다. 그는 당장 문이라도 열 기세로 열쇠뭉치를 흔든다. 콧잔등을 올리며 냄새를 맡는 그가 성당의 모든 방을 뒤져서라도 찾겠다는 아들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 돌멩이처럼 떨어지고 있다. 인적 없는 거리에 쏟아지는 구리빛 동전처럼 바닥을 뒹굴고 있다. 몸집이 큰 비둘기 한 쌍이 종탑을 위해 날아간다. 원장수녀를 따라 걸으면 낡고 긴 식탁에 둘러앉은 형제자매들, 감사기도를 한다. 감자스프를 먹는다.
내 고향을 가본 자라면 누구나 그를 안다. 그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자 값싼 개들을 시장에 내다파는 장사치, 술에 취한 날이면 몽둥이로 개를 때리는 날이 많았다. 곧 그가 죽는다는 말만 쉽게 떠돌 뿐, 그의 이름조차 아는 이가 없었다. 늙은이들 몇이 중얼거리는 말에 그의 집안은 대대로 왕실의 애견을 관리했다지만 고작해야 개장수, 떠돌이 개는 주워 기르고 늙은 개는 푸줏간에 내다 팔던 장사치였다.
그런 그가 이곳엔 무슨 일인가? 아버지신부도 묻고 있겠지. 그의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지만 분명 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다. 개들은 창살을 들이받으며 짖는다. 노랗고 하얀 털들이 햇살 속에서 몸을 녹인다. 고아들은 몸이 차니까,
언젠가 나는 출구를 찾지 못한 새가 종을 들이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몸이 문을 찾는 새, 벽 앞에서 종을 흔드는 사제 같은 새였다. 죽은 후에야 출구를 찾은 피투성이의 새를 날려주면서 나는 죽은 몸에 실린 종소리를 들었다. 무지의 기도문이 손에 들렸다. 고아 시절의 이야기다.
나는 말없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목검을 들어 그에게 십자성호를 그려준다. 이 순간, 길 잃은 미아들의 태도를 궁리하는 내가 그에게 용서를 주면 어떤 사랑이 시작될까? 그는 다가와 있다. 목검을 뺏어 던지고는 나를 꼭 안는다. 그리운 냄새를 가졌구나, 코끝을 글썽거린다.
비틀린 십자고상 목걸이만 반짝일 뿐, 신부아버지는 여전히 묻는 중인가! 무엇을 기다리세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부터 신부는 무언가 받아든 자세다. 멈춰있다. 마침, 미사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이층 창가의 원장수녀가, 여남은 아이들의 머릿수를 세는 어머니가, 어린 딸을 떠미는 포주처럼 웃는다. 날 보며 쌩끗, 기다리던 아버지가 오셨구나, 눈으로 가리키는 그곳에 개들의 아버지, 내 고향의 장사치가 있다. 어쩌다 길을 잃었니? 너를 찾느라 온 나라의 개들을 다 만났다. 나는 태어나 처음, 우수한 품종을 가진 사람을 본다.
마차에는 배다른 동생들, 거리에 널부러진 흔한 종소리들, 귀여운 내 새끼들. 개장수는 자신감에 차있다. 어쩜, 신부의 아이들이 외치는 아버지가 생겨 좋겠다, 는 말에 미력한 감정을 낭비할 수도 있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그는 우리의 주인이야, 나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흔들리는 손만큼은 차갑게 느껴주려 한다. 앞으로 우리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개를 사고 판다는, 팻말이 흔들리는 마차에서 나는 기도문을 외운다. 우리는 함께 할 거야, 그리고 이 뻔뻔한 믿음이 신뢰될 수 없음을 예감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인기척이 없는 생각 속에도 늙고 젊은 개들은 묻고 싶다. 아버지! 우리 다음에 태어나면 친구가 될까? 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말굽이 지축을 울리며 가는 길이다. 아버지가 고삐를 세게 당긴다.
오병량 201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