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마음챙김-엘렌 랭어의 마음챙김을 비평하다
하버드대 교수 엘렌 랭어(Ellen Langer,1947~)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심리학 개념을 창안하고 연구했다. 엘렌 랭어가 제시한 마음챙김의 주요 전략은 탈 고정관념, 맥락의 초월, 과정 지향적 태도, 창의적 불확실성 등이다.
우리는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고방식(mindset)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고정관념이다. 여기서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는 다르다고 엘렌 랭어는 강조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배하는 것이지만, 여기서 무의식은 얼마든지 의지로 고칠 수 있는 것이다. 랭어는 이 무의식을 ‘마음놓침(mindless-ness)’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녀는 마음놓침 상태가 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결과 지상주의를 지적했다. 결과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과정 지향적 태도, 즉 ‘내가 할 수 있을까(Can I do it)?’보다 ‘어떻게 할까(How do I do it)?’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마음놓침에서 벗어나는 전략으로 창의적 불확실성(Creative Uncertainty)이 제시되었다.
불확실성을 허용했을 때 사람들은 더 창의적일 수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의 지나친 자기확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느 것도 확실치 않아 함부로 주장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확신에 차 있을까? 자기 주장은 자기 생각일 뿐인데,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불확실성이 전제되자 나에게는 모든 일에 회의가 일어났다. 어느 주장도 불확실하므로 누군가 주장하면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하는 생각에 따르지 않고 딴지를 걸었다. 그러자 나는 주류에서 밀려나 경계인이 되었다. 경계인이 되니 주류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창의적인 관점이 마구 솟아 나왔다.
사람들은 흔히 불확실성을 받아드리지 않는데 사실 불확실성은 이해와 허용을 가져온다.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모두 확실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누군가 주장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포용했다. 하나의 주장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자 나는 대인 군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인 군자가 되니 모든 생각이 막힘없이 모여들어 어우러져서 그 속에서 창의적인 발견이 태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불확실성은 경계인이면서 대인 군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창의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녀가 제시한 마음챙김의 전략으로 모든 삶의 문제를 거침없이 해결할 것만 같았다. 마음만 잘 다스린다면 어떤 어려움도 없을 듯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1989년 발간된 책이다. 21세기에서 보면 이미 한물 지나간 이론이 된 감이 없지 않다. 탈 고정관념, 맥락의 초월, 과정 지향적 태도 등,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들은, 물론 아직도 충분히 유효하기는 하지만, 21세기의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 심리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병철의 <피로사회(2010)>, <투명사회(2014)>에서 말하는 ‘긍정성의 과잉’이나 ‘성과사회’, ‘포르노 사회’와 같은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에 대응하는 처방으로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마음가짐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피로사회에서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과잉된 긍정성이 오히려 ‘자기 착취’로 옥죄어온다. 현대 사회는 아무리 해도 안 되기도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챙김을 통해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맥락을 초월하며, 과정을 중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성과를 지향하는 한에는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마음챙김이 모두에게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며, 실패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에 실패가 마음챙김을 하지 못한 자기 잘못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자기를 심리적으로 착취하고 학대하여 신경증 환자로 몰고 가는 짓이 된다. 마음챙김을 잘 하면 성공하고 마음 챙김을 잘못하면 실패한다는 사회적 신념이 들어설까 두려운 일이다. 이런 오도된 신념은 마음챙김이 자본주의화 된 부작용일 것이다.
엘렌 랭어의 마음챙김은 21세기에 맞게 변해야 한다. 그 방향이은 불교 본연의 마음챙김을 회복해야 하는 방향이지 않을까? 불교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의 마음챙김은 랭어의 것과 다르다. 랭어의 마음챙김은 마음을 조정하여 무언가를 얻기 위한(성취욕), 마음을 다스리면 무엇도 얻을 수 있는 욕계 중생의 욕망 긍정 활동이다. 그러나 불교의 명상은 욕계를 떠나는 즉, 세계 부정의 행위이다. 이는 결국 마음챙김에서 조차도 벗어난 풀려남, 마음을 챙길 것도 없는 열반을 지향한다. 이런 방향이 곧 出離출리다.
출리심의 회복, 이것이 21세기에 걸맞은 마음챙김이다. 출리심이란 무엇인가? 멈추고 쉬기, 하지 않기, 머뭇거리기이다. '잠깐, 멈춰!', '이건 아니야’라고 외쳐 보자. 우리가 벌이는 짓들이 우리를 망치고 있다는 걸 신경증에 걸리기 전에 깨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