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차(21. 6. 30/수)
산책
아침산책은 여전합니다.
깨워주심에, 그리고 살려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런데도 어제보다 더 늙은 것 같습니다. ㅎ
이른 새벽부터 미역건조에 온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여럿을 돕기 어렵지만, 만인은 소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더불어 사는 게 정답입니다.
오늘 일출은 숨었는데요, 100m 안팎의 방파제에 고작 네댓 척의 고깃배가 늦잠을 자고 있습니다.
서해상 외딴섬에 가면 중국에서 우는 닭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초승달 모양으로 크게 휘어진 ‘앞’짝지해면의 자갈들만 파도와 입씨름할 뿐입니다.
믿거나말거나 옛날엔 이곳도 중국과 해상무역이 성행했다죠.
예나 이제나 인간이 그은 국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고기와 새들은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바닷물이 맑은데요, 에메랄드빛으로 다가온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길 반복합니다.
조찬
아침상을 받습니다.
마지막(?) 식사라 생각하니, 입맛이 더욱 당기네요. ㅎ
그동안 밥상을 차려준 주인장께 감사를 표합니다.
달랑 전화번호 하나만으로 운영하고 있어 제목까지 붙여줬습니다.
[만재도 ‘여수’댁(정옥순/010-8625-6102)]
애써 회까지 대접해주는 친절함에 정들었습니다.
강추하는데요, 후회 없을 겁니다.
일탈(逸脫)은 인생의 충전입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절대 반복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진리입니다.
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내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기 -.
출도
출도(出島) 배편이 아침에 있기에 보따리 챙겨 나섭니다.
민박주인과도 아쉬운 작별의 정을 나눕니다.
갖고 나갈 미역이 한 리어카 가득입니다. ㅎ
가거도(可居島)에서 출항한 여객선이 다가옵니다.
‘가거(可居)’는 사람 살 수 있는 곳이란 뜻을 지녔는데, 예전에 산악회 따라 다녀왔지만 또 가고 싶은 섬이기도 합니다.
평화로운 앞산과 짝지해수욕장이 손을 내밉니다.
여유롭게 보낸 2박 3일이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아예 며칠간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Healing의 섬을 보고 또 봅니다.
안녕~ 만재도~!
파도가 만들어 낸 순수의 섬을 떠납니다. (09:00)
뉴딜300사업의 첫 번째 혜택을 입었다는 작은 섬 만재도 -.
세상과의 인연을 잠시 접고,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섬입니다.
높지 않은 산에, 맘껏 바다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대하면 마음까지 편해지고 평온해집니다.
독특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며, 흐려진 안구도 정화시켰습니다.
교통편이 좋아졌다고 해도, 왜 그리 먼 곳을 가느냐는 반문에 만재도가 답을 줍니다.
며칠쯤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단절을 선언하고 싶고, 세상 끝에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만재도는 아낌없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줬습니다.
사진 한 장 남깁니다.
또 오겠죠? ㅎ
뱃길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단파라디오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흙먼지 날리며 신작로를 달리던 시골버스가 그랬듯, 넘실대는 파도를 헤치며 다니는 여객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유의 끈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문득 ‘천상병’시인의 ‘귀천(歸天)’이란 시(詩)가 생각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노래했던 시인은 끝나는 날도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했습니다.
돌아갈 집이 있어야 소풍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은 방랑이 되겠죠.
우리 영혼도 돌아갈 하늘의 집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소풍처럼 설렙니다.
인간은 돌아갈 집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목포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11:30)
2020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대상지로 국제도시(부산)를 비롯하여 지역거점도시 4개(목포, 전주,
강릉, 안동)를 선정했습니다.
서남해안 관광거점도시 목포는 근대역사문화, 음식문화콘텐츠 등 지역특화자원의 잠재력과 활용방안을 높이 평가받았다죠.
“순천에서 인물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고, 진도에서 글씨자랑 말고, 강진에서 양반자랑 말고,
고흥에서 노래자랑 말라”
남도지역특성을 잘 묘사한 ‘김주영’의 ‘아라리난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왜 목포가 빠졌을까요?
일제수탈기지로 전남의 모든 부(富)가 모여서 그랬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그런데 60년대 중반부터 호남에 여순광(여수, 순천, 광양)은 떴으나, 목포는 동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개항으로 화려한 날갯짓을 폈던 목포가 하루빨리 옛 명성을 되찾기 바랍니다.
아픈 과거는 잊지 말아야지만, 그렇다고 ‘목포의 눈물’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시간도 있으니 밥 먹고, 쪼까 머물기로 합니다.
오찬
식도락은 여정의 핵심입니다. ㅎ
목포엔 인근에서 잡은 바다의 맛과 노련한 손맛이 버무려져 만들어낸 구미(九味)가 유명합니다.
떡갈비로 소문난 ‘성(成)’식당을 찜했다가 호불호가 갈려 대타로 등장한 ‘초원식당’입니다.
꽃게 살 비빔밥과 갈치조림을 놓고 고민하다가 반반씩으로 통일 -.
목포먹갈치가 명인을 만났다는데요, 집 밥처럼 포근하여 좋습니다.
색깔만 보면 엄청 짤 것 같은데도 보들보들한 감칠맛이 예술입니다.
상에 그득한 전라도 반찬들과 미역국까지 하나같이 주연감입니다.
목포 민어거리에 붙어있는 집구석인데요, 잘 먹었습니다.
목포근대역사문화 공간
목포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국유일의 자주적 개항도시였습니다.
부산, 인천과 함께 조선 3대 항구로 1897년 개항되어 일제강점기엔 호남의 곡식, 목재, 수산물, 면화 등이 일본으로 약탈된
아픈 역사가 배어있는 곳입니다.
레트로(Retro) 여행지라니 잠시 한 바퀴 돌아봐야죠.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를 거닙니다.
구도심일대의 허름한 집들을 사들여 Remodeling하여 Guesthouse(‘창성’) 등을 만들겠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광기(?)로
시끌벅적했던 곳이었습니다.
결국 반짝 주목에 그쳤는데요, 가게마다 붙어있는 임대표시처럼 목포는 또다시 긴 잠에 빠져든 것 같습니다.
문인과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예향도시였으나, 60년대부터 시계가 멈췄다죠.
오죽하면 ‘목포의 눈물’은 아직도 현재형이란 말이 생겼을까요.
무관심과 방치만 남은 현장을 보며 보존만이 능사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전국 5대 빵집에 들어간다는 목포 ‘코롬방(Colombang)’제과점에 들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새우 Baguette를
사주려 했는데, 덥다며 불평하는 이가 있어 포기합니다. ㅎ
근대역사문화거리
목포근대역사관 1, 2관 -.
1920년에 건축한 르네상스식 석조건물인데요, 원래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사용되던 일제식민지배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그날 영웅들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당신도 영웅입니다’란 글귀에 가슴이 뜨거워지려 합니다.
아픈 역사에 분통을 느끼다가도 분연히 일어선 열사들의 뜨거운 애국심에 숙연해지는 공간입니다.
뒤로 가면 실제 사이렌소리도 들려주는 방공호도 있습니다.
인심도 좋고, 볼거리도 많고, 무엇보다 음식이 정말 맛있는 목포는 언제 작정하고 다시 들려야겠네요.
진한 선창가내음이 가시지 않는 항구도시 목포 -.
건너편에 해군기지가 있어 가끔 들렸던 곳이기에 추억이 잔류해 있습니다.
항구의 삶과 포근한 인심이 어울리고, 해상풍경이 멋진데다가 맛까지 더해 목포는 사계절 모두 여행하기 좋습니다.
해상케이블카도 탈 겸 언제 다시 들려서, 슬프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싸돌아다니기를 마칩니다. ㅎ
복귀
목포를 뒤로하고 다시 올라갑니다.
[천천히 가자.
굳이 세상과 발맞춰 갈 필요 있나?
제 보폭대로, 제 호흡대로 가자.
늦다고 재촉할 이, 저 자신 말고 누가 있던가?
눈치 보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가자.
욕심 부린다고 뜻대로 살아지나?
다양성이 존중될 때만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이 땅위에서 너와 내가 아름다운 동행인으로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쪽에 네가 있으므로 이쪽에 내 선 자리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서로 귀한 사람이 아니던가.
너는 너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가자.
네가 놓치고 간 것들, 뒤에서 거두고 추슬러 주며 가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
굳이 세상과 발맞추고, 너를 따라 보폭을 빠르게 할 필요는 없다.
불안해하지 말고, 웃자라는 욕심을 타이르며 가자] (펌)
가수원에 있는 ‘재스민’님 목장에 들려 닭 모이도 주고 복숭아도 따 먹었습니다.
추억입니다. ㅎ
만찬
밥 먹고 헤어져야죠.
시원한 막국수로 더위를 날립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여행을 할 때다.
일상 속에서는 딱히 새로운 것을 접할 일도 없고, 주변 것들이 너무나 익숙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경치도, 사람도, 예술도 모든 것이 새롭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적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
떠나기 전의 설렘이 좋다.
가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지식이 하나씩 쌓여가는 게 경이롭다.
내가 사는 이곳은 정말 작은 우물일 뿐, 그 우물을 벗어나면 엄청나게 넓은 세상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 -.
그것이 여행이다.
나는 여행이 좋다] (‘장소원’)
에필로그
보훈의 달 6월도 가고, 이젠 7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하는데, 성급하게 서두르기 전에 우선 올바른 방향을 잡으란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속의 함축된 의미는 방향이 분명해야 속도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달려갈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속도를 낼 수는 없지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서 천천히 가도 방향만 제대로라면 올바르게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늦게 도착하면 가져갈 게 없다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게 오히려 빨리 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섬 & 인‘ 멤버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입니다.
좌장 ‘정이품’님, 가마꾼 ‘여울목’님, 감초 ‘Jasmine’님, 그리고 구석구석 ‘갯바위’까지 몽땅 수고 많았습니다.
참 행복한 섬 나들이였습니다.
금욜(7. 2) 아침에 갯바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