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6년 5월 20일 고려호텔 노래방에서 자신의 히트곡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르고 있는 장윤희씨. [사진 - 정창현] | 취재거리가 있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고려호텔 지하 노래방에 가니 젊은 여성봉사원이 손님을 맞이했다. “아니 여기에 무슨 취재거리가 있다는 거요?” “조금 기다려봐요. 내가 특별히 오라고 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무대로 올라왔다. “정 선생, 누군지 모르겠소. 장윤희야.” “<심장에 남는 사람> 부른 가수?” “그래요. 이제 알아보는구만.”
현역에서 은퇴한 후 이곳의 봉사책임자로 장윤희가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화 같은 성화에 그녀가 자신의 히트곡을 직접 불렀다.
1980년대에 들어 북한에서는 생활 속의 음악, 민족적 선율을 살린 가요풍 노래 창작이라는 시대적 요구 조건을 수용해 전자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자음악의 필요성에 따라 1983년 7월 ‘왕재산경음악단’이 결성됐고, 뒤이어 보천보전자악단이 결성됐다. 이때 장윤희는 왕재산경음단의 독창가수로 발탁됐다. 그 뒤로 그녀는 염청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남쪽으로 치자면 북의 ‘1세대 아이돌’ 가수였던 셈이다.
1년 정도 지난 2007년 4월 8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장윤희씨를 만나러 가자”고 요청했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노래방에 가자 북측 안내원이 인터뷰는 안 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그녀와 함께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운한 심정을 달래주려고 했던 것일까. 그녀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여러 곡 불려줬다.
그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녘의 노래를 담은 음반 ‘동인’이 출시됐다. ‘동인’에는 바이브, 마야, 배슬기, 베이비복스, 리브, Enjel(채은정), JK김동욱 등 남쪽의 가수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살려 다양한 버전으로 부른 10곡이 수록돼 있다. 여기에 장윤희가 부른 <심장에 남는 사람>이 바이브의 노래로 실렸다.
그녀는 남쪽의 공중파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2003년 8월 평양 모란봉공연에서 녹화된 KBS ‘전국노래자랑-평양편’에 북측 초청가수로 나와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부른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공개 무대였고, 그 뒤에 고려호텔에 배치된 것이 아니었나 추측된다.
그녀는 자신의 히트곡이 남쪽의 노래방에서도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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