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韓管境 本紀 第四 (241) (삼한관경 본기 제4) ― 43
[番韓世家 上, 번한세가 상] ―10
낭사가 죽으니 계묘년 아들 勿吉(물길)이 즉위하였다. 물길이 죽으니 갑오년에 아들 愛親(애친)이 즉위하였다. 애친이 죽으니 아들 道茂(도무)가 즉위하였고, 도무가 죽으니 계해년에 아들 虎甲(호갑)이 즉위하였다. 정축년에 천왕께서 순시하사 松壤(송양)에 이르러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번한이 사람을 보내 문상하고 병사를 경계도록 했다. 호갑이 죽으니 단군 達門(달문)의 기축년에 아들 烏羅(오라)가 즉위했다. 갑신년에 하나라 왕 少康(소강)이 사신을 보내 새해 인사를 올렸다. 오라가 죽으니 병술년에 아들 伊朝(이조)가 즉위했다. 이조가 죽으니 단군 阿述(아술)의 병인년에 동생 居世(거세)가 즉위했다. 거세가 죽고 신사년에 아들 慈烏斯(자오사)가 즉위했다. 자오사가 죽으니 을미년에 아들 散新(산신)이 즉위했고, 산신이 죽으니 무자년에 아들 季佺(계전)이 즉위했다. 경인년, 명을 받아 삼신의 단을 湯地山(탕지산)에 세우고 관리들의 집을 옮기게 하다. 탕지는 옛날 安德鄕(안덕향)이다. 계전이 죽었다. 정사년 아들 伯佺(백전)이 즉위했고, 백전이 죽은 뒤 을미년에 仲弟(중제), 仲佺(중전)이 즉위했고, 그가 죽자 신묘년에 아들 少佺(소전)이 즉위했다. 갑오년에 장군 蚩雲(치운)을 파견하여 湯(탕)을 도와 桀(걸)을 치게 하였다. 을미년에 墨胎(묵태)를 파견하여 탕임금의 즉위를 축하했다. 소전이 죽고 갑술년에 아들 沙奄(사엄)이 즉위하였고, 그가 죽으니 동생 棲韓(서한)이 즉위했다. 서한이 죽으니 정축년에 아들 勿駕(물가)가 즉위했고 그가 죽은 뒤 신사년에 아들 莫眞(막진)이 즉위했다. 막진이 죽으니 정묘년에 아들 震丹(진단)이 즉위했다. 이해 은나라 왕 太戊(태무)가 찾아와 특산물을 바쳤다. 그가 죽으니 계유년에 아들 甘丁(감정)이 즉위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아들 蘇密(소밀)이 즉위하였다. 계사년에 은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가서 北亳(북박)을 치게하니 그 왕 何亶甲(하단갑)이 이에 사죄하였다.
1.하나라 왕 소강 : 하나라 제6대 소강(B.C.2056~B.C.2034년)
2.중제 : 가운데 동생. 세 번째 동생.
3.은나라 왕 태무 : 태무밀, 은아라 7대왕을 말한다. 그의 연대는 B.C.1643~ B.C.1568년 이다.
4.북박 : 은나라 삼박의 하나. 은나라 서울을 밝이라 한 것도 음미할 가치가 있다. 남밝은 곡엵, 북밝은 경밝, 서밝은 언사, 남밝, 북밝은 지금의 하북성 상수현, 서밝은 지금의 언사현. 탕임금의 옛서울 백성들이 문왕에 복종하여 3읍으로 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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