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7] 이정옥(李貞玉) - 일심봉천(一心奉天) 7. 1960년 하계 전도 순회 경험 - 1 1 1960년도 7월부터 전국 순회를 하게 되어 경기도부터 시작했다. 그 당시 지방에는 잘 되는 큰 교회도 있었지만 교회 체제가 아직 성숙되지 못했다. 그리고 개척 전도에 파송됐기 때문에 몇 사람 혹은 10~20명 내외의 식구에 불과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웠다.
2 가는 곳마다 저녁 집회를 열고 말씀을 해주면서 밤을 새워 가며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께서는 “고생하라. 고생 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3 여러 가지 뜻이 있는 말씀이지만, 그 하나의 예로써 나의 순회 활동을 돌이켜 볼 때 식구가 많고 잘 되는 교회에서 대접받고 고생되지 않았던 곳은 특별한 기억이 없지만, 어려움을 당한 곳은 언제까지나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다.
4 10월 20일 경이었다. 강릉교회를 거쳐 강원도 산골 임계를 거쳐 정선과 원주로 가려고 임계교회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다음날까지 계속 쏟아져 개울 건너편에 있는 교회에는 물이 불어 갈 수 없었다.
5 교회가 있는 쪽에 주로 식구들이 살고 있는데도 서로 왕래를 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무료하게 보내면서 비가 그쳐주기를 기다렸다. 또 때아닌 큰 장마로 강릉과 정선으로 가는 길이 두절되어버렸다. 여기서는 한번 큰 비로 길이 막히면 5~6일 걸려야 회복된다고 한다.
6 일주일 후면 자녀의 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서울 본부교회로 돌아가야 하는데 암담해졌다. 정선으로 가는 길은 더 험하고 시일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강릉으로 되돌아가야 했기에 다음날 밤도 그곳서 새웠다. 7 마침 그 동네에 혼사가 있어 신랑이 강릉에서 오는 신부를 맞이하러 새벽 5시에 트럭을 타고 나간다고 하기에 이 기회를 놓칠세라 그 부인 식구의 도움으로 그 트럭에 편승하게 되었다.
8 어둠은 짙은데 산길에는 산 위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들이 흩어져 있어 때로는 트럭을 멈추고 남자들이 큰 바위를 제거해 가면서 전진했다. 겨우 십오 리쯤 갔을 때 산사태로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채로 길 복판에 내려와 서 있었다.
9 이렇게 되니 길은 완전히 막히고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때는 약간 늦은 가을이었지만 강원도의 깊은 산중은 오색 단풍으로 화려했고, 큰 비가 지난 이후였기 때문에 산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이 생겨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흐르고, 새소리 물소리가 합주되어 교향곡을 듣는 것처럼 감미롭고, 공기는 한없이 맑고 신선했다.
10 나는 비교적 걸음을 잘 걷는 편이었으나, 아침도 못 먹고 새벽에 떠났기 때문에 40리쯤 걸었을 때 시장기가 돌기 시작하고 손에 든 가방은 점점 더 무거워 오며 다리가 아파서 걸음이 차츰 늦어졌다. 그렇다고 잠시 쉴 곳도 없는 이 산중에서 주저앉을 수도 없고 계속 걸어야만 할 사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