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수첩> 무죄판결을 정점으로 한 법원의 ‘소신 판결’ 퍼레이드는 한국 사회가 이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법원 판결에 대해 한나라당과 조·중·동, 검찰과 보수세력이 터무니 없는 음해성 공격을 이어가고 있지만, 결코 시대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진화’라는 화두를 꺼내들고 그 주요 내용의 하나로 법치주의를 내세운 것은 바로 현 정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뜻하는 법치주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획책하는 ‘사이비’ 법치주의였습니다. 그들이 검찰권을 남발하며 법치주의의 근간인 기본적 인권마저 짓밟은 지난 2년간 법원 내에서는 이념의 좌우와 상관없이 ‘너무한다, 야만적이다,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나’ 등 30~40대 판사들의 장탄식이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민주화 시대에 법률가로 진출한 이들은 OECD 수준에 맞는 법률 교육을 받았고 우리 사회가 그 수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법부 내에서는 시대감각이 바뀌었는데, 권력과 검찰의 행태는 1970년대로 회귀했으니, 다만 시기가 문제였을 뿐 충돌은 불가피했던 것 같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현대 민주주의의 골간을 이루는 서양 근대의 법치주의는 ‘법이 정부의 주인이고 정부는 법의 노예’라고 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권리청원과 권리장전 등으로 이어져 왕권에 대한 법의 우위를 확립하게 됩니다.
오랜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며 형식적 삼권분립에 만족해야 했던 우리 사회 역시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실질적 법치주의를 헌법적 가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미 대법원 판례는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즉, 법치의 대상은 현 정부가 생각하듯 국민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남용인 것이며, 제대로 된 법관이라면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 수호에 앞장서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 일련의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법정은 있으나 법은 없다’던 그 법정에 법이 돌아와 활짝 피길 기대합니다. 우리 사회 역시 현대국가의 네 기둥이라 일컬어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지와 법치’를 갖추어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법에 근거하지 않은 권력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권력이 법에 근거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권력의 실패’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