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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찬덕 선교사
본문 말씀 : 마태복음 27장
말씀 주제 : 십자가를 통하여 사람의 불의를 드러내시고 담당하시므로 의와 사랑과 은혜 안에서 구원을 인치심
전편에서 마태복음 27장에 대해 말씀교제를 나누었는데,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불의한 세상 왕국을 대표하는 로마정부의 부당한 심판에 따른 정죄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세상 정부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근본이 불의하다는 것을 나타냈고 반면에 아무런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짊어진 죄인이 되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을 구속하는 하나님의 의(義)를 이룸으로써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이 의롭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태복음 27장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의(義)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계시하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영적인
말씀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주연이고 베드로가 조연임에도 예수님이 아닌 베드로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것은 베드로의 실패를 통해서 태어날 때부터 가진 천연적인 생명을 가지고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 수 없고 또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외진 길을 통과할 수도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일인데,
마태복음 26장은 천연적인 생명을 가지고서는 그 일을 이루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비록 품은 뜻이 선했을지라도 태생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에 결국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완전히 패배할 수밖에 없고 결코 주님이 가시는 의로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27장에서는 세상 나라와 세상 사람들은 그 근본이 불의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고 오직 그리스도만 홀로 의로우신 분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義)를 성취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세상 나라와 세상 사람들 그리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불의한 심판에 참여해 의로운 예수님을 정죄해서 모욕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3시간 동안 주님께서 그 모든 불의한 짓을 어린양처럼 잠잠하게 다 받으심으로써 세상과 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불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시간 제6시부터 제9시까지 곧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은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신 시간으로 그때 어둠이 온 땅에 덮였는데 이는 이 세상과 온 우주 가운데 만연해 있는 모든 불의를 모아서 땅의 중심인 그 골고다 언덕 가운데로 이끌어 뒤덮이게 한 것으로 그 모든 불의를 의로우신 주님의 몸에 다 짊어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어둠이 골고다 언덕을 덮은 것은 친히 하나님의 안배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완전한 신뢰와 사랑의 관계 속에 누림을 가졌던 분으로 단 한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적이 없었는데 세상 죄를 진 죄인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의 진노의 막대기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받아 버림을 당하여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주님께서는 도저히 견디실 수가 없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의로우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정죄를 당하여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에게 수난을 받고 계실 때에도 의로우신 하나님은 의로우신 주님과 함께 하심으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주님께서 우주에 속한 모든 불의 곧 모든 죄를 담당하셔서 죄 자체가 되시고 죄인들을 대신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고 주님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인 율법의 막대기로 심판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는 말씀이 베드로전서 3장 18절 말씀이고,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한글 KJV)
의로우신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말씀 베드로전서 2장 24절이며,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2:24 한글 KJV)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죄 자체가 되셨다는 것이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장 21절 한글 KJV)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바로 죄가 되시고 죄들을 담당하시고 죄인들을 대신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불의한 자가 되셨고 의로우신 하나님께는 죄인이 된 주님을 내동댕이 치고 완전히 버림으로써 영원 전부터 함께 했던 하나님과 예수님이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온 땅에 어둠이 임했던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차마 견딜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의로우신 주님께서는 불의한 인류의 모든 것들을 대신하고 담당하시고 죄 자체가 되셨기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르짖어 외치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불의한 우리의 모든 죄들을 짊어지셔서 대속물 그 자체가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의인이지만 불의한 자가 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에 따라 율법의 권능의 지팡이로 때리신 것이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도다”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3시간 동안에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기록된 이야기들 곧 예수님에 대한 고소와 재판의 과정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이후 나타난 일들은 세상 왕국과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모두 불의한 존재이고 반면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의로운 존재인 것을 대조하여 나타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불의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불의한 우리가 의로운 존재로 전환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義)로 말미암은 것이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였던 가룟인 유다가 예수님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긴 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무고한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기 위해 누명을 씌워서 고소한 일, 유대 민중이 불의한 바라바는 풀어주고 주님을 죽이라고 한 목소리로 빌라도를 압박한 일, 세상 정부의 위임을 받은 재판장 빌라도가 주님께서 죄가 없으신 것을 알았음에도 유대인들의 압박과 자신의 정치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의와 타협하여 부당한 판결은 내린 일, 정죄를 받은 주님을 로마 군병과 유대인들이 조롱하고 모욕한 일들 등, 이러한 모든 일들은 사람들의 불의가 온 땅에 얼마나 가득 찼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편의 교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오후 3시까지 달리셨는데, 9시부터 낮 12시까지의 3시간 동안은 사람들의 불의한 처분으로 수난을 당하신 시간이며,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세상 죄를 담당하시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불의한 자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따라서 의로운 처분으로써 하나님께 철저히 버려지고 매를 맞아 죽으신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 말씀은 굉장히 깊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7장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의와 세상 왕국과 사람들의 불의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일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동안에 의로우신 분을 조롱하고 모욕했던 모든 세상에 속한 자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 장로들, 유대인들 모두가 의로우신 주님께 불의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의 하수인들은 밝은 대낮이 아닌 깜깜한 밤중에 겟세마네 동산에 계시던 예수님을 불법적이고 불의한 방법으로 체포하여 낮에 재판을 하는 관례를 어기고 산헤드린 공회로 끌고 가 종교 재판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관원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하수인들 모두가 주님께 행한 모든 것이 불법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도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을 받고 불의하게 예수님을 팔아넘긴 후에 뉘우쳐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라고 말하며 은 삼십을 성소 안에 던지고 그는 자책하여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는데, 이 이야기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이 불의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조금도 죄가 없으신 의인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유대인들, 빌라도 총독과 로마 군병들 모두 주님을 불의하게 대했습니다. 조그만 흠과 점도 발견할 수 없는 완전한 의인이심에도 조롱하고 모욕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빰을 때리는 모든 행위들이 불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단 한 점의 흠과 점, 조그만 불의나 죄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주님께 행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 가룟 유다, 로마 군병들과 유대 민중까지도 모두가 불의하였다는 것은 이 세상의 왕국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의로움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불의만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 현대 시간,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덮였다’는 마태복음 27장 45절 말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온 세상 왕국과 모든 사람들은 불의하다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의인 예수 그리스도는 불의한 자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셔서(벧전 2:24)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시고(벧전 3:18) 죄 자체가 되심으로(고후 5:21) 주님은 불의한 자가 되셨고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의 지팡이로 반석을 쳐 깨뜨린 것과 같이 죄인이 된 주님을 그분의 의로운 심판의 지팡이로 그분을 때리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왕국 가운데 만연되어 있던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심으로 불의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심으로써 불의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의로 전환되는 것을 우리가 마태복음 27장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의로운 예수님을 거짓으로 정죄해서 유월절 어린양을 도살장에 끌고 가서 재단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십자가 위에 의로우신 예수님을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간 어린양]
그래서 불의한 모든 사람들이 의로우신 예수님께 행한 모든 일들은 사실 하나님의 지혜로운 안배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들의 불의한 행위들이 하나님의 의가 들어오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랍고 오묘한 지혜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들이 의로우신 예수님께 행한 모든 불의 곧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에 속한 모든 어두운 것들이 하늘에 속한 그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를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게 해 주었습니다. 마치 검은색이 하얀색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처럼 세상 왕국과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있던 모든 불의가 하나님의 의 (義)를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일의 전후 과정 속에 사람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비밀스러운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 왕국과 그에 속한 모든 불의한 사람들이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은 그들이 겉으로는 의(義)를 표방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실상은 의(義)를 미워하는 불의한 존재라는 것을 완전히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불의가 오히려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사람들의 불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義)를 가져왔는데 그 첫 번째 길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불의를 드러내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세상 왕국과 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불의를 드러내셨고 아울러 의로우신 하나님의 완전한 의(義)를 밝히 드러낸 것입니다.
사람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義)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나타난 완전한 의(義)가 이 세상의 불의와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구별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불의가 의로 전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모든 불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 전환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불의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사람들의 불의를 완전히 드러나게 하셨고 아울러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 만이 의롭다는 것을 온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생긴 이래로 5천 년의 인류 역사가 진행되었고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인간의 불의가 드러남으로써 인간들의 비밀스러웠던 실체가 어둡고 깜깜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마치 빛으로부터 차단시켰던 두꺼운 창문 커튼을 활짝 열었을 때,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으로 인하여 눈에 띄지 않았던 수많은 먼지들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 안에 은밀히 감춰졌던 불의한 정체가 의로우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확연하게 본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전에는 완전한 의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 실체가 은밀하게 감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불의가 뿌리를 내리고 비밀스럽고도 아주 은밀하게 그 모습을 감춘 채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 불의의 바탕 위에 있던 조그마한 의(義)를 보고 우리는 스스로를 의롭다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 섞여 살고 있었던 인간은 참된 의로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불의한 존재인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의(義)가 비춰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불의한 존재이며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천 년의 인간 역사 가운데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 위해 인간들이 행한 불의 곧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주님을 종교 심판하여 거짓으로 고소하고 불의한 재판으로 의로운 주님을 정죄하여 희롱하고 모욕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불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불의와 세상 나라들의 어떤 통치자, 권세자들, 정사와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에게 속한 세상 나라들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불의를 십자가를 통하여 완전히 폭로하셨던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왕이며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일은 완전한 불법이며 불의였고,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인 가룟 유다가 흠도 없는 그 의로우신 분을 팔아넘긴 것도 불법이었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는 결의에 참여한 대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 등 공회원 모두가 불의한 일에 참여한 자들로서 모두가 불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그분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고소하여 진행된 빌라도 총독의 심판은 더 할 수 없는 불법과 불의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인류 역사 5천 년 동안 이루어진 모든 불법과 불의를 모두 모아 놓은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소송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불법 체포하여 잡아간 것도 불법이었고 불의했고 또 사람들에 의하여 죄 없는 자가 고소당하여 불의한 판결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일도 불법이었고 불의했습니다.
이렇게 빛 한점 없이 불법과 불의로 가득 찬 곳의 한가운데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 가운데 십자가에 높이 들려 못 박혀 죽으셔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심으로써 온 세상과 온 우주 가운데 만연한 불법과 불의를 완전히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불의한 자들의 모든 불의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베드로전서 3장 18절 말씀과 같이 죄인들을 대신하셨고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과 같이 불의한 인간 사람들의 죄들을 담당하셨고,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과 같이 우리를 위해 죄 그 자체가 되심으로써 우리의 구속의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실 수가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한글 KJV)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2:24, 한글 KJV)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한글 KJV)
그래서 먼저는 의로우신 주님께서 사람의 불의를 자신에 대한 소송 사건을 통하여 드러내신 다음에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불의를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드러내시고… 대신하시고… 담당하시고… 그리고 죄 자체가 되셔서…’라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 제물로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것은 불의를 드러내시고 십자가 위에서 불의를 친히 담당하시는 장면을 앞에서 제가 말했던 비유 곧 창문을 가리고 있는 두꺼운 커튼을 열었을 때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으로 방 안의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감추고 있던 수많은 먼지들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온 우주와 세상 왕국들과 세상 사람들 안에 만연되어 있는 것들 곧 죄의 어둠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던 모든 불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 소극적인 것들, 깜깜하고 어두운 것들, 냄새나는 것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째로 담을 수 있는 의로운 커다란 통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들을 담당하셔서 불의한 모든 먼지들을 말끔하게 청소한 것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예수님의 임재의 범위에는 온 우주가 있고 그 가운데 세상 왕국과 세상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온 우주 가운데 만연돼 있는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감춰진 모든 불의의 먼지, 소극적인 것들, 부정적인 것들, 냄새나는 것들, 더러운 것들, 땅에 속한 것들, 사탄의 본성과 하나 된 불의의 모든 찌꺼기들을 드러내셨고 이 모든 것들이 큰 통이신 의로우신 주님의 안에 모두 모아진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죄들을 소멸시키는 소각로인 것입니다.
[소각로]
그래서 마태복음 27장 45절에 낮 12시부터 오후 3시(유대시간 6시부터 9시)까지 어둠이 온 땅에 덮인 것이며 이것은 우주 가운데 만연되어 있었던 모든 불의 곧 모든 사람들을 죄를 짓게 하고 그 죄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땅의 중심인 팔레스타인 지방 그리고 그곳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갈보리 언덕, 해골을 상징하는 그곳에 모였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들이 의로우신 주님 앞에서 행한 모든 죄들과 그 죄로 인하여 만들어진 불의한 것들과 우주적인 불의한 쓰레기들, 우리 모두를 사망케 하는 사망의 본질들이 의로우신 그분에게로 모두 모아짐으로 말미암아 45절에 어둠이 온 땅에 덮이더니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 어둠이 온 땅에 덮였다는 것입니다.
갈보리 언덕에만 어둠이 덮인 것이 아닙니다. 그때 사망을 갖고 오게 하는 우주적인 불의의 쓰레기들이 모두 십자가 위에 놓인 것을 마태복음 27장 45절은 어둠이 온 땅에 덮였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우주 가운데 만연해 있던 불의한 모든 먼지들과 쓰레기들, 사망을 가져오는 것들, 이 세상의 땅에 속한 부정한 모든 것들이 모두 주님께로 모아졌기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불의한 것들을 대신하였다고 베드로전서 3장 18절, 불의한 우리들의 죄들을 담당하셨다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죄들을 담당하시므로 어둠이 온 땅에 임했고,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에 죄 자체가 되셔서 곧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는 우주 가운데 만연돼 있는 모든 불의와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도록 준비된 것이 바로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리스도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가 더욱더 선명하고 아주 분명하게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세상 나라들 가운데 존재했던 모든 불의들, 사탄으로 인하여 오염된 우주 가운데 만연돼 있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누룩과 같은 것들, 부정한 것들, 사망에 속한 것들이 십자가 위에 정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에 십자가 위에 놓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확연하게 나타나보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고소하여 심판한 소송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사람들의 불의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의가 온전하고 완전할지라도 하나님의 그 의가 어둠 속에 있던 온 우주와 온 세상 속에 나타날 수가 없었을 텐데, 세상의 불의가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의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고 증거 된 것입니다.
온 우주와 인류 가운데 만연했던 불의가 십자가 위에서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신 의로우신 예수님에게로 모두 모아져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어둠이 온 땅에 뒤덮였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와 온 세상의 불의가 모두 한꺼번에 모아져서 의인이신 주님께서 불의를 대신하셨고 자신이 죄를 담당하셨고 죄 자체, 불의 자체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은 주님을 통해서 온 우주와 세상과 그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완전한 의를 온 우주와 온 세상에 증거하고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의 불의가 완전히 드러남과 아울러 하나님의 의가 세상 가운데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며 이렇게 세상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로 전환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성경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피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3:25,26 한글 KJV)
완전한 의(義)이신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자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을 통하여 불의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시고 죄가 되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가져올 수 있는 전환점이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불의가 의로우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로 전환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있던 소송의 과정들을 통해서 온전히 불의를 드러내시고 그다음에 그 불의에 대한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친히 스스로 담당하셨다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죄들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린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들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낫게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2:24, 한글 KJV)
그리고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 베드로전서 3장 18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번 고난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육신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에 의하여 살림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한글 KJV)
이것이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셔서 스스로불의 한 자를 대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는 말씀이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한글 KJV)
그래서 우리가 지금 십자가 사건에서 나타난 불의한 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義) 아래에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왕국 복음을 선포하신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진리의 문제를 그분의 생애 마지막을 통해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셨는데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계시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義)가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 것은 우리의 구원이 그분의 의(義)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의(義)이시며 그분의 왕국의 기초가 의(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는 어떻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의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의로움이 하나님의 보좌의 근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왕국이 의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견고한 의(義)의 반석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조차도 변개하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義)는 영원불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결코 다시 변경될 수 없고 다시 고쳐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의(義)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에 결코 변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이 구원의 도를 알았기 때문에 로마서 1장 16절, 17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은 이 기쁜 소식은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강력하고 너무나 완벽한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로 인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를 통한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도 아니며 하나님의 긍휼도 아닙니다. 그 복음 안에서 우리를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는 그 놀라운 능력, 강력한 능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義)는 우리 구원의 근거이며 기초인데, 그 의(義)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 천국이고 천국의 주인은 보좌에 앉으신 왕이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평강의 왕, 의의 왕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전체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더니, 그의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히브리서 7:2, 한글 KJV)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들은 모든 법률 용어입니다. 일반적인 긍휼과 은혜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얘기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에도 법이 있는데 그분의 의에 대한 것을 법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역시 영원한 은혜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어느 때에는 변경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변경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무리 깊고 높고 넓고 크지만 그것들이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는 변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의(義)는 절대로 변경되거나 바뀌어지거나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義) 자체가 하나님의 보좌로서 하나님 왕국의 법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의(義)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는 결코 불의가 있을 수 없고 그분은 오직 의의 길로만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이며 그분의 모든 권위가 그 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義)는 우리를 구원하는 근거이며 기초요, 하나님의 왕국은 의의 견고한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영원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 바꿔질 수 있지만 절대로 변개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義)를 내세워 소송을 하는 변호사처럼 옳고 그름을 하나님께 따지고 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내세운 그 의(義)의 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의(義)의 길을 따라야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속성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의의 왕이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 되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 심판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의(義)로 말미암아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稱義)에 대한 얘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공정하고도 엄정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의로우신 주님을 법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리셔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율법의 진노의 지팡이로 주님을 때리심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모든 자들을 대신하고 불의한 모든 죄들을 담당하신 그분과 함께 하나 되어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못 박히심을 우리가 믿고 그분을 우리의 주인으로 영접했다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義)의 법에 따라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대속물이신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과 함께 하나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심판받아 죽으신 그리스도를 내가 믿고 그분의 의를 내가 소유하였습니다.”라고 얘기하면 천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의(義)의 법에 따라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실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義) 앞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대속물로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의로우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죽으신 것은 나를 대신한 것이고 나의 죄를 담당하신 것이고 나를 위해서 죄 자체가 되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약에 나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니라 불의하신 분이십니다”라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로우신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의(義)에 따라서 십자가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믿는 우리들에 대하여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해야 할 법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시편 89편 14절에서 “의와 정의가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라”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의(義)인 것입니다.
의와 정의가 하나님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에 의(義)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義)를 소유한 우리가 하나님의 그 의(義)를 내세울 때 하나님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의(義)를 내세울 때 하나님의 의(義)의 속성상 하나님은 결코 그 의(義)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의롭지 않은 길로 행할 수 없는 본질상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의와 정의가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義)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보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의(義) 위에 존재하고 그 의(義)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때문에 의(義)가 없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보좌는 결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의(義)가 없는 곳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조성되거나 건축될 수가 없고 세운다고 할지라도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의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는 의를 기초로 해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정의롭고 공정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의(義)를 내세우게 되면 그 내세운 하나님의 의(義) 안에서 하나님은 행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이러한 모든 공정함에 대한 것, 정의에 대한 것, 의로움에 대한 것들은 모두 법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보다도 의(義) 안에서 모든 일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꼭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의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할지라도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근간이 되는 의(義) 만큼은 견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한 것일지라도 의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의(義)의 테두리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인류 가운데, 우주 가운데 베풀어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요, 결코 변치 않으신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은 의(義)의 테두리 안에서의 영원한 사랑이요,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얘기입니다. 생명도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그 영원한 사랑을 바꿀 수가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義)만큼은 절대 바꿀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변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의(義)가 그분의 나라의 근간이고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요, 기초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은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義)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견인될 수 있는 것이기에 의(義)를 벗어나서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은혜를 우리에게 가져오기 위해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義)를 성취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불의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얻어 값없이 의롭게 되어 얻은 구원은 그 하나님의 의(義)의 견고한 반석 위에 놓인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값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받은 구원, 우리가 주님을 믿고 영접하고서 우리가 그분의 구원의 믿음을 통한 구원의 손길을 놓지 않는 한 그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로마서 3:24, 한글 KJV)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하나님의 영원한 법이기에 하나님 자신조차도 결코 임의로 바꾸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의(義) 자체이시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의(義)를 어떤 상황에 따라서 마음대로 바꾸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의로우심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며 이는 곧 그분이 스스로 하나님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시고 변치 않는 은혜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지만 그분의 사랑과 은혜는 의(義)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따라서 결정하여 베풀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천국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의의 법 안에서만 역사하고 활동하고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완전한 의(義)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포도원에 일할 품꾼을 찾으러 나간 주인은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아침 일찍 품꾼을 만나 포도원에 들여보냈고 제 삼시(오전 9시), 제 육시(낮 12시), 제 구시(오후 3시)에도 품꾼을 만나 포도원에서 일하게 합니다.
주인은 제 열한시(오후 5시)에도 놀고 있는 품꾼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일하게 하였고 날이 저물어 품꾼들에게 그날 일한 품삯을 정산해주면서 맨 나중에 온 자들부터 먼저 한 데나리온을 주자, 그보다 일찍 와서 더 많은 일을 한 품꾼들은 맨 나중에 온 사람보다 더 많은 품삯을 받으리라 기대했지만 주인은 약속한대로 품꾼들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나눠주었습니다.
이 비유가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바라심의 문제, 하나님의 뜻에 따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당초 품꾼들과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먼저 온 자나 나중에 온 자나 똑같은 값을 주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법의 문제가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의 원하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불의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포도원에 일찍 온 자나 늦게 온 자 모두에게 동일한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마음에 따른 원함의 문제이지만 의(義)에 대한 문제는 신성한 하나님 나라의 기초인 엄위한 법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변개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의(義)의 법이 상황에 따라 개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 것이라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의(義)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며 또한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는 하나님의 의(義)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피 값으로 이룬 우리의 구원 또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의 견고한 반석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인식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義) 위에 천국이 세워지고 그 의(義)가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이고 그 의(義)의 법을 근거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 바꾸실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은혜는 하나님의 영원한 의(義)의 법 테두리 안에서 함께 역사하고 함께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의(義)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견고한 반석위에 놓였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절대 변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뀔 수가 없습니다. 조금도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의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은 하나님의 그 영원하신 사랑에 의하여 시작되어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 은혜라는 통로를 통하여, 그 과정을 통하여, 성취되어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義)로 귀결되어 종착역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의(義)로 귀결되기까지 의(義)라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어 역사하였고 또 그분의 은혜의 통로를 통하여 성취된 결과,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의(義)로 귀결되어서 그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으로 시작되어 하나님의 변치 아니하는 은혜로 성취되었는데, 그 사랑과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의(義)와 연합됨으로써 마침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의로운 법이 완전히 확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그분의 변치 않는 은혜를 통하여 성취되고 마지막 그분의 의(義)로 귀결되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값없이 의롭다 하는 인(印) 침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의(義)를 보증하는 증서가 우리에게 부여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칭의(稱義)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2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25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피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3:22~26, 한글 KJV)
우리의 구원은 먼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그분의 의(義)의 법으로 종결지음으로써,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의 구원이 인쳐지고 보증되고 확정되어서 우리는 그 권리 증서를 넘겨 받아 칭의(稱義)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의로운 법으로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임의로 바꾸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손을 놓지 않는 한, 우리가 그분의 구원의 손을 의도적으로 내팽개치지 않은 한, 우리는 그분의 구원의 법의 효력에서 제외될 수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은혜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마태복음 27장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뭡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불의한 우리를 정결케 하셔서 의롭다 하는 인을 쳐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의(義)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그 시작점은 영원한 사랑이었고 또 은혜를 통하여 성취되어져서 그 마지막에 의(義)로 귀결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하는 보증으로 도장을 ‘꽝’하고 찍는 일 곧 칭의(稱義)의 인을 치심으로 구원의 증서를 우리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운 법으로 확정이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우리의 구원을 취소하거나 변경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 도래하는 천국이 건축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되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의(義)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은 뭡니까?
천국, 하나님의 왕국은 의(義) 위에 건축되는 곳입니다. 천국은 의(義)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곳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7장은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나타내면서 그와 대비되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의(義)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종교 지도자들, 백성들의 장로들, 그리고 조롱하는 자들, 로마 군병들, 유대 관원들, 이 세상 나라를 대표하는 로마 황제의 대리인이었던 빌라도 또한 불의한 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따랐던 가룟 유다도 불의한 자였던 것입니다.
모든 자가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소송과 십자가 형이 집행되는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모든 사람들의 불의와 하나님의 의를 대조시킴으로써 불의와 의를 확연히 구별시키고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과 은혜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크고 오묘하고 기묘한 그 구원은 그분의 영원한 사랑으로 시작되어서 한없는 그분의 은혜를 통해서 성취되었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의(義)로 귀결되어 우리에게 확정된 것이 바로 칭의(稱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절대 그 구원이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로마서 3:28 한글 KJV)
그렇습니다. 유일하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와 사람들의 불의를 대조시킴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왕국이 아무리 겉으로 의를 표방하며 흉내 낸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완전한 의(義)가 나타남으로써 거짓으로 포장되었던 그것의 불의한 실체가 완전히 폭로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실체가 의(義) 자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 조그만 불의(不義)도 찾아볼 수 없고 그 어떤 고난과 핍박과 위협과 죽음도 결코 그분의 의(義)를 불의(不義)로 변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그분을 욕하고 거부하고 조롱하고 침 뱉고 찌르고 못 박아 죽일 때에도 의(義) 자체이신 그분께서는 오직 의(義)만 분출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왕국이 아무리 의(義)를 내세워 그 겉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실상 불의(不義)의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에 손해가 되고 고난과 핍박과 위험과 죽음이 다가올 때 그것의 불의한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왕국은 그 완전한 의(義)의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어떤 위협과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의(義)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왕국의 의(義)를 그렇게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왕국의 불의는 그 구성원인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 세상을 대표하는 로마 왕국의 대리자인 빌라도는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 그의 아내의 꿈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의인인 것을 들었지만 그는 결국 불의와 연합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종교 지도자들, 장로들, 유다 백성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왼쪽 편과 오른쪽 편의 강도들까지 모든 자들의 불의한 행위를 통해서 그 불의한 실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혹독한 고난과 핍박과 조롱과 죽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義)를 온전히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불의는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 무덤에 들어가신 후에도 나타났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가서 저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 자신이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했으니 우리로 그 무덤을 굳게 지켜서 그 제자들이 그 시체를 도둑질해 간 후에 살아났다고 사람들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무덤을 지키게 해달라고 빌라도 총독에게 요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을 보면 빌라도는 유대 종교자들의 요구대로 그 무덤을 지키게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부활하셨고 그 상황을 목격한 경비병들이 대제사장들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지만 그들은 진실을 듣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경비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거짓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여 부활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가로막는 너무나 큰 불의를 행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세상 왕국에 속한 모든 자들, 로마 정부를 대표한 빌라도와 그 군병들 그리고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그를 따르는 유대인들 모두 불의에 가담한 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이 불의한 자들이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진실로 의로우시다는 것을 드러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나라, 인간의 왕국, 세상 왕국, 인간 정부는 불의 위에 세워진 반면에 하나님의 왕국은 의(義)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왕국의 견고한 기초이기 때 문에 하나님 자신조차도 임의로 변개할 수도 없고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의(義)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구원은 확실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히 변치 않는 의(義)를 바탕으로 하여 굳건하게 세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통해서 “이 복음 안에는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라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견고한 의의 반석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의 확실한 근거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도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도 아니며 하나님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義)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영원한 사랑으로 시작되어서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성취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의(義)로 귀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義)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작되고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義)를 벗어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얽혀 있는 법적인 문제의 해결 곧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영원한 사랑으로 시작되어서 하나님의 의로운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는 한없는 은혜로 성취되어서 마침내 법적으로 죄인을 의롭다 칭할 수 있는 의(義)로 그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그 구원은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 인쳐진 확정된 권리 증서이며 그 증서가 우리에게 넘겨졌기 때문에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보증된 구원을 빼앗아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이것을 변개시킬 수 없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인 의(義)로 보증된 구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왕국의 견고한 기초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와 같은 확실한 의(義)로 인쳐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조차도 그 구원을 취소하거나 변개시킬 수도 없고 인간을 속여 타락시킨 사탄도 그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탄이나 어둠의 영들이 우리를 실족하게 하고 우리를 은밀하게 유혹하여 우리가 세상 가운데 발을 디디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불안할 수 있는데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번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의(義) 안에서 인쳐진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한글 KJV)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시작해서 그분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한 은혜로 성취되진 그 의(義)를 우리가 값없이 소유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사랑과 한 없은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다시 세상에 발을 딛고 나아가서 살 수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7장 말씀은 세상 왕국, 인간 정부에 속한 세상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십자가를 통하여 완전히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세상 왕국의 실체는 불의 위에 세워진 왕국이라는 것을 폭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천국,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의(義)의 기초 위에 건축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7장은 세상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불의를 모두 모아서 십자가에 달리신 의인 그리스도에게 지웠고 그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분노의 의의 지팡이로 내리침으로 말미암아 의로우신 주님께서는 우리 대신 징계를 받아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하고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시고 죄 자체가 되셔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그 모든 것들을 소멸시켰기 때문에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 안에 있는 의(義)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다는 것이 마태복음 27장에 숨겨진 중요한 비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세상 왕국에 속한 사람들의 불의 안에 있어 멸망당할 자였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 곧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시작되어 그분의 한없는 은혜로 완성되져서 귀결된 그 의(義)를 우리가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 안의 삶을 살게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왕국은 의(義)의 왕국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왕국, 사탄과 하나가 된 세상의 왕국은 불의의 왕국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왕국에 속한 불의한 자였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의(義)로 인치시고 구원의 증서를 건네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영원한 보증이며 확증으로서 그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 자신조차도 결코 그 구원을 취소하거나 변개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곧 도래하는 천국 안에서 살 의로운 백성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모든 교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