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벨소리, 문이 쾅 닫히는 소리, 사이렌 울리는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앵무새보다 나은 점이 있더라도 그것은 목소리와는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의 언어는 무엇이 특별할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주위 세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다. 녹색원숭이도 동료들에게 “조심해! 사자야”라고 외칠 수 있지만, 현대 여성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 아침 강이 굽어지는 곳 부근에서 한 무리의 들소를 쫓는 사자 한 마리를 보았어.” 이어서 그녀는 정확한 위치와 그곳까지 가는 여러 길들까지 묘사할 수 있다. 이 정보를 두고 그녀의 무리는 강에 접근해서 사자를 쫓아버리고 들소를 사냥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도 있다.
- <사피엔스>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육하원칙이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역사 기사, 보도 기사 따위의 문장을 쓸 때에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여섯 가지를 이른다”라고 되어 있고, 예문으로는 “글을 간결하고 명확히 쓰기 위해서는 육하원칙에 따라야 한다”가 제시되어 있다. 위의 글을 보면서 육하원칙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을까 하다가 다음에 이어지는 글이 맞는 것 같아 또 옮겨 본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보다는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것 같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글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 파악에 가장 긴요한 것이 육하원칙이고 오랜 진화과정에서 이 법칙이 마련된 것 같다. 나도 살고 너도 살려면 말이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를 때 육하원칙에 따라 사고한 다음 가닥을 잡는 것도 좋은 글쓰기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