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무원을 개헌 홍보에 내몰겠다는 건가
한명숙 국무총리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개헌 추진을 뒷받침할 정부 지원기구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밀어붙이겠다고 하면 정부도 실무 지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무 행정적인 데 그쳐야지 대통령의 정치행위까지 지원한다면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해치게 된다.
한 총리는 지원기구의 필요성을 꺼내면서 "대통령의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했다. 또 그는 "(지원기구는) 관련 부처가 참여해 학계나 정계나 시민사회 등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로 구성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물론 학자들까지 총동원해 개헌의 정당성을 홍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이미 재정경제부는 '선거가 미치는 사회 경제적 비용'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선거 주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기획예산처 장관은 방송에 나가 개헌 옹호발언을 했다. 개헌과 관련 없는 경제부처까지 나서는 걸 보면 한 총리의 발언에서 우려했던 일이 이미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헌 문제는 이미 대통령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됐다. 노 대통령도 개헌을 반대한 후보가 당선되면 5년 임기 내내 추궁하겠다고 했다. 한 총리가 언급한 노 대통령의 다단계 개헌이란 것도 임기 조항만 고치자고 해도 논의는 헌법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제쳐놓고 헌법 조항을 고칠 것이냐 아니냐로 갈라 대통령 선거를 해보자는 의도로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개헌의 논리를 개발하고,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전 내각과 공무원을 동원한다면 대통령 선거 운동으로 내모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 임기 말에, 대통령 선거가 소용돌이치면 국정이 표류하기 쉽다. 대통령이 민생을 외면하고 정치 놀음에 골몰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공무원들마저 총동원하겠다는 것인가. 한 총리가 개헌에 앞장서겠다면 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임기 말 내각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보장할 중립내각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