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외
김재용
곰소항 바닷물은 물인 겨 소금인 겨
맙소사 천만 겹 강이어라 바다여라
거시기
끝내 못 봉께
퍼질고 앉았어라
변산은 반도 못 가 똥섬서 비 맞으랴
목련꽃 한 잎 두 잎 시주하듯 흩는 참에
사천왕
당최 낯개리듯
노발대발 혀쌓네
허벌나게 비가 와서 절간에 깃들었지라
스님은 염불 않고 선禪 잠에 드셨능가
전나무
불경 왼다고
떼로 서서 궁시렁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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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한때는 시詩의 혁명 꿈꾼 적 있었겠지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 부여잡고
둔탁한 소리를 내는 속이 꽉 찬 통나무
백도 줄도 없었지, 벗겨낼 가죽조차
장군도 순교자도 아닌 나약한 시인이라
혁명은 심장에 있다 일깨우는 타악기
걸어서 닿지 못할 머나먼 혁명의 길
오롯이 몸을 비워 공명통이 된 켓 띠*
그 노래 별빛이 거두어 우주에 흩뿌렸지
* 켓 띠Khet Thi : 1976 -2021. 미얀마의 저항 시인. '혁명은 심장에 있다'라며 미얀마 쿠데타를 반대하던 켓 띠는 군부에 끌려가 심장을 비롯한 장기가 모두 제거된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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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함부로
나는 너를
버릴 수 없다는 걸
꿈속에도 잊지 않고
네 곁에 잠이 든다
내 삶의 음지에서도
햇살처럼
오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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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실체
그녀의 긴 꼬리를 봤다는 구름의 말
체온을 느꼈다는 나뭇잎의 증언들
분명한
거짓말이거나
믿을 수 없다는 것
어리석은 마음에 간직한 변장술로
사내의 텅 빈 가슴 가득히 채우는
그녀의
배경은 아직
누구도 모른다는 것
강철을 녹여내는 뜨겁고도 찬 손길
부드러운 속삭임 앙칼진 손톱자국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여기는 허공인 걸,
- 김재용 시조집 《바람의 실체》 2023. 책만드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