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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過庭 書譜 원문....
書譜
중국 唐나라시대의 서예가 孫過庭(648∼703)이 687년에 지은 서예이론서이다.
내용은 옛사람들의 글씨 品階와 書體 그리고 書寫技法이다.
손과정은 王羲之의 서예를 배웠고 초서를 잘 썼다.
이 책에서는 왕희지를 중심으로 한 전인적 서예를 근본으로 글씨를 공부하는 방법을 논하였다.
한나라 때부터 六朝時代 이후에 이르는 전통적인 서예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문장은 육조시대 이래의 四六騈儷(儷, 짝려)이고, 이론의 전개도 육조시대 당시의 미의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원래 6편 2권이었으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眞迹總序 한 편뿐이다.
특히 서보는 저자의 초서체 自筆이며 卷子本으로 오늘날까지 전한다.
原文 1
夫自古之善書者, 漢魏有鍾張之絶, 晉末稱二王之妙. 王羲之云, 頃尋諸名書, 鍾張信爲絶倫, 其餘不足觀. 可謂鍾張云沒,
而羲獻繼之. 又云, 吾書比之鍾張, 鍾當抗行或謂過之, 張草猶當雁行. 然張情熟, 池水盡墨. 假令寡人眈之若此, 未必謝之.
此乃推張邁鍾之意也.
예로부터 글 잘 쓰는 서예가는 漢 (및 後漢)나라와 魏나라에 걸쳐 張芝와 鍾繇(繇, 역사 요)에 이어 晉(및 東晋)나라
말기의 二王(王羲之와 王獻之)이 뛰어나다.
왕희지가 이르기를 “근래의 많은 명가들의 필적을 보았지만 종요와 장지의 글씨가 단연코 출중하다.
그 밖의 글씨는 볼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종요와 장지의 사후에는 이를 이을 대가로는 왕희지와 왕헌지가 있을 뿐이다.
또한 왕희지가 이르기를 “나의 글씨를 종요와 장지에 비교하면 종요에게는 어께를 나란히 할 만하거나 혹은 우위에
있는지 모르나 장지의 초서에는 내가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장지는 숙련하기를 연못물이 까맣게 될 만큼 연습하였다.
내가 그와 같이 연습한다면 장지에 미치지 못할 바도 아닐 것이다”라 하였다. 이 말은 장지가 종요보다 우수하다는
뜻이다.
* 안행(雁行): 기러기가 하늘을 날아갈 때 차례를 유지하듯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 사지(謝之) :부끄럽지 않음. 뒤떨어지지 않음
* 매(邁) : 갈매, 지날 매, 뛰어날 매.
考其專擅, 雖未果於前規, 摭以兼通, 故無慚於卽事. 評者云, 彼之四賢, 古今特色. 而今不逮古, 古質而今姸. 夫質以代興,
姸因俗易. 雖書契之作, 適以記言, 而淳醨一遷, 質文三變, 馳騖沿革, 物理常然. 貴能古不乖時, 今不同弊, 所謂文質彬彬,
然後君子. 何必易雕宮於穴處, 反玉輅於椎輪者.
오로지 종요와 장지의 글씨를(왕희지의 글씨와) 비교하여 살펴보면, 비록(왕희지가) 종요와 장지보다 위라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모르나 두 사람의 장점을 취하여 통하였으므로 일상의 일(文書 등을 쓰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평론가들은 말하기를 “저들 四賢(종요, 장지, 왕희지, 왕헌지)은 고금에 통하여 뛰어난 명필로 따를 자가 없다.
(현대의 서예는 고인을 따르지 못하는데)고인은 質樸을 숭상하였고, 지금사람들은 곱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무릇 질박이나 연미는 시대의 풍속을 따라 변천하는 것이다.
문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오직 실용의 필요에서 사용되었지만 그 내용이(시대의 발전에서) 바뀌어 질박한 것에서
수식적인 예술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 변화는 자연히 이루어진 것으로 時勢와 더불어 사물이 변화하여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書도 옛 질박함을 체득하되 현대감각을 외면하지 않고, 現代風(꾸밈이 많은)을 존중하되 시류의 폐단에 물들지
않음을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그래서 <논어>에서 말하는 “素樸함과 文飾(다시 말해서 전통성과 현대감각)을 조화한 사람이여야 군자라 한다.”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호화로운 궁전이 있음에도 동굴생활로 돌아가며 훌륭한 수레가 있는데도 원시적인 수레를 탈 필요가
있겠는가?
* 전천(專擅, 擅: 멋대로 천): 권력이나 힘을 대로 부림. 오로지
* 미과(未果): 능하지 못하다. 과(果)는 승(勝)이나 능(能)의 뜻이다.
* 능고불괴시(能古不乖時, 乖: 어그러질 괴 ): 옛 법을 배우되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시세에 응하여 점차 변화하여 감을 말한다.
* 옥로(玉輅): 옥으로 치장한 천자의 수레를 말한다.
* 추륜(椎輪, 椎: 몽치 추, 輅: 수레 로): 수레로서 아직 완전하지 않은 원시적인 손수레를 칭한다.
又云, 子敬不及逸少, 猶逸少之不及鍾張. 意者, 以爲評得其綱紀, 而未詳其始卒也. 且元常專工於隸書, 百英尤精於草體,
彼之二美, 而逸少兼之, 擬草 則餘眞, 比眞則長草, 雖專工小劣, 而博涉多優, 摠其終始, 匪無乖互.
또한 말하기를 “왕헌지(子敬)가 왕희지(逸少)에 미치지 못함은 마치 왕희지가 종요와 장지에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나(손과정)의 뜻은 이 평가가 대강(大綱)에 있어서는 맞는 평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종요(元常, 종요의 字)는 예서(여기서는 해서를 말함)에 우수하고, 장지(百英, 伯英으로 장지의 字)는 초서에 뛰어났다.
그러나 일소(왕희지)는 해서와 초서를 겸하여 잘하였다.
장지의 초서에 비교하면 (왕희지는) 眞書를 (장지보다) 여분으로 가지고 있고, 종요의 해서에 비교하면 (왕희지는 종요
보다) 초서가 뛰어나니, 비록 두 사람의 전공보다는 다소 못하다고 하더라도 각체를 겸하여 잘한 점은 왕희지가 우수
하다 하겠다.
이들의 글씨를 총체적으로 평가해 보면 (왕희지가) 종요와 장지에 따르지 못하다는 평가는 이치에 맞지 아니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 猶, ~은 ~과 같다. 접속사
* 王獻之(子敬), 王羲之(逸少), 鐘繇(元常), 張芝(百英), 楷書(眞書)
* 강기(綱紀): 대요(大要), 대강(大綱). <시경(詩經)>대아(大雅)에 보인다.
* 전공(專工): 전공(專功)과 같은 뜻으로 이 부문에 우수함을 말한다.
* 피지이미(彼之二美): 종요의 해서와 장지의 초서의 미를 말한다.
* 진(眞): 진서(眞書)로 해서를 말한다.
* 박섭다우(博涉多優): 각체에 걸쳐 널리 우수함을 말한다.
* 비무괴오(匪無乖互): 비(匪)와 무(無)는 부정사로 이중부정이며 괴호(乖互)는 ‘서로 어긋남’을 말한다.
謝安素善尺櫝, 而輕子敬之書. 子敬嘗作佳書與之, 謂必存錄, 安輒題後答之, 甚以爲恨. 安嘗問敬, 卿書何如右軍. 答云,
故當勝. 安云, 物論殊不爾. 子敬又答, 時人那得知. 敬雖權以此辭折安所鑒, 自稱勝父, 不亦過乎. 且立身揚名, 事資尊顯,
勝母之里, 曾參不入. 以子敬之豪翰, 殆右軍之筆札, 雖復粗傳楷則, 實恐未克箕裘. 況乃假託神仙, 恥崇家範, 以斯成學,
孰愈面牆.
사안(謝安)은 본디 척독을 잘 썼으나 왕헌지(子敬)의 글씨를 경시하였다.
왕헌지가 어느 날 솜씨를 발휘하여 편지를 써서 사안에게 보냈다.
필히 이만한 글씨라면 잘 보관하겠거니 생각했으나 사안(安)은 왕헌지가 보낸 편지지의 여백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왕헌지는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날 또한 사안(安)이 왕헌지(敬)에게 묻기를, ‘그대의 글씨와 우군(王羲之)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떠냐?’ 라 하였다.
왕헌지가 대답하기를, ‘물론 내가 더 낫다’고 하였다. 사안(安)이 다시 ‘세간의 평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다시 물었다.
왕헌지(子敬)가 또한 말하길 ‘요즘 사람들이 어찌 우열을 가릴 능력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왕헌지(敬)의 이 말은 비록 사안(安)의 감식안(鑑識眼)을 비웃기 위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아버지보다 낫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또한 “입신양병(立身揚名)하여 부모(祖上)를 후세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孝)의 끝이다”(<孝經>)고 하였고,
효자 증삼(曾參)은 ‘어머니보다 낫다’는 이름을 가진 마을인 승모리(勝母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왕헌지(子敬)는 타고난 천성과 아버지 왕희지(右軍)의 글씨를 대체로 이어받았을 것이지만 실제로 그 진수(眞髓)를
완전히 계승하였고 체득하였는지 의심스럽다. 아울러 가범(家範)을 이어 받음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 신선(神仙)
에게 전수받았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자세로 큰 배움을 이룩하였다는 것은 마치 바람벽을 마주한 것과 같이 견문이
좁아 나아감이 없었을 것이다.
* 사안(謝安, 320-385): 자(字)는 안석(安石)으로 진군양하(陳郡陽夏)사람이다. 18세에 저작랑(著作郞)이라는 벼슬을
받았으나 고사하고, 회계(會稽)에 은둔해 살면서 왕희지 등의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40세 이후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러 왕도(王導)에 비견되는 벼슬에 있었으나 음악이나 청담(淸談), 문아(文雅)를 즐김이 왕도보다 나았다고 한다.
* 척독(尺櫝, 櫝: 함 독): 척독(尺牘)으로 써야 한다.
* 존록(存錄): 소중히 보존함. * 첩(輒): 문득 첩, 쉽게 첩, 갑자기 첩.
* 고(故): 여기서는 부사로 본디(素)의 뜻이다. * 수(殊): 다를 수, 죽일 수.
* 권(權): 여기서는 부사로 거짓 가(假)와 같은 뜻이다.
* 승모지리(勝母之里): ‘승모(勝母)’는 지명으로 공자의 제자인 지극한 효자 증삼(曾參)이 “어찌 어미보다 낫다는
불손한 마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까”라고 말하고 그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漢書 鄒陽傳>의 고사에서 유래
되었다.
* 호한(豪翰): 필적. * 태(殆): 가까움. * 해칙(楷則): 바른 서법.
* 기구(箕裘): <禮記 學記篇>에 “양궁(良弓)의 아들은 키(箕)만드는 법을 알게 되고, 양야(良冶)의 아들은 가죽옷(裘)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된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부모의 일을 보고 자신의 일을 터득하여 이어받음을 말한다.
* 가탁신선(假託神仙): 왕헌지가 신선에게 서예를 전수받았다고 자기를 내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왕헌지의 <론서(論書)>에 본인이 24세 되는 어느 날, 오른쪽에 종이를 왼쪽엔 붓을 가진 새가 날아와서 579글자로서
서의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당나라 우세남(虞世南)은 <권학편(勸學篇)>에서 “헌지가 회계(會稽) 산중에서 이상한 사람으로부터 서예의 비결을
전수받아 그에 따라 공부하여 3년 후에 서의 오묘한 뜻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 숙유(孰愈): 누가 나으냐? 논어(論語) 공치장제오(公治長第五)에 “子謂子貢曰女與回也로 孰愈(숙유)오 對曰賜也何
敢望回리잇고 回也는 聞一以知十하고 賜也는 聞一以知二하노이다” 공자 자공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회 중에는
누가 나으냐.”고 하자 자공이 이르기기를, “제가 어찌 감히 회를 바라보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
* 면장(面牆): <상서(상서)>에 “불학면장(不學面牆) 즉 배우지 않으면 바람벽을 맞바라보고 선 것”과 같으니 견문이
좁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왕헌지의 공부방법의 그릇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後羲之往都, 臨行題壁. 子敬密拭除之, 輒書易其處, 私爲不惡. 羲之還見, 乃歎曰, 吾去時, 眞大醉也. 敬乃內慚. 是知,
逸少之比鍾張, 則專博斯別, 子敬之不及逸少, 無或疑焉.
후에 어느 날 왕희지가 서울에 가게 되었을 때, 집을 떠나면서 벽에다 글씨를 써 놓았다. 왕헌지는 몰래 그 글씨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자기의 글씨(왕희지가 쓴 글씨와 동일한 글자)를 써두고 마음속으로 대견해 하였다.
왕희지가 돌아와 이것을 보고는 탄식하여 말하되, ‘내가 떠날 때 몹시 취했는가 보구나.
저렇게 못 썼으니’ 하였다. 이에 왕헌지는 몹시 부끄러워했다.
이와 같이 살펴볼 때, 왕희지와 종요 그리고 장지를 비교해 보면 왕희지가 그들의 전문적인 글씨(종요의 해서, 장지의
초서)에는 다소 뒤지나 겸하여 두루 잘하였다는 점에서는 뛰어났다고 생각된다.
왕헌지가 왕희지에 미치니 못함은 의심할 바가 못 된다.
*임행(臨行): 그 자리로 떠남. *식(拭): 닦을 식.
*첩(輒): 문득 첩. 예를 들어 첩자가 들어가는 사자성어를 살펴보면;
動輒得謗(동첩득방): 무엇을 하려고만 하면 남에게 비난(非難)을 받음을 이르는 말.
逢人輒說(봉인첩설):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지껄이어 소문(所聞)을 퍼뜨림
應口輒對(응구첩대): 묻는 대로 지체(遲滯) 없이 대답(對答)함을 이르는 말
*전박(專博): 전(專)은 종요와 장지가 각각 해서와 초서에 전문으로 채득하였음을 말하고, 박(博)은 왕희지는 모든
체를 넓게 겸하였음을 말한다.
余, 志學之年, 留心翰墨. 味鍾張之餘烈, 挹羲獻之前規, 極慮專精, 時逾二紀. 有乖入木之術, 無間臨池之志. 觀夫懸針
垂露之異, 奔雷墜石之奇, 鴻飛獸駭之資, 鸞舞蛇驚之態, 絶岸頹峯之勢, 臨危據槁之形, 或重若崩雲, 或輕如蟬翼, 導之
則泉注, 頓之則山安. 纖纖乎似初月之出天崖, 落落乎猶衆星之列河漢. 同自然之妙有, 非力運之能成. 信可謂智巧兼優,
心手雙暢. 翰不虛動, 下必有由. 一畵之間, 變起伏於峯杪, 一點之內, 殊衄挫於豪芒.
나는(손과정) 15세부터 서예에 마음이 머물러 종요와 장지의 서예를 완미(玩味)하고 왕희지와 왕헌지 서예의 법칙을
맛보는 것이 24년이 되었다.
아직은 서예의 깊은 경지는 어긋났을망정 연구하는 마음만큼은 임지(臨池, 장지의 池水盡墨)에 못지않아 조금도
중단한 적이 없다.
저 현침(懸針), 수로(垂露), 분뢰(奔雷), 추석(墜石), 홍비(鴻飛), 수해(獸駭), 란무(鸞舞), 사경(蛇驚), 절안(絶岸), 퇴봉
(頹峯), 임위(臨危), 거고(據槁)획의 자태나 형세를 관찰하여 보면, 혹은 구름이 무너지는 것 같이 무겁고, 혹은 매미의
날개처럼 가볍기도 하며 샘물을 끌어내리듯 거침이 없고 산(山)의 앉음새처럼 태연하다.
곱고 가늘기는 초생 달이 하늘 저쪽에 걸린 것 같고, 낙낙하기는 뭇 별들이 은하에 나열된 것 같다.
이는 하늘의 조화와 같아서 손끝의 재주나 기교로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와 기술이 겸하면 뛰어나고 마음과 손이 잘 조화를 이루며 제멋대로 붓을 놀리는 것이 아니라 용필에
필연성을 갖추고 한 점, 한 획에 붓 끝의(抑揚, 緩急, 頓挫 등)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능할 수 있다.
* 지학(志學): 15세를 이른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라 하였다.
아래에 나이를 이르는 말을 살펴보겠다.
지학(志學): 15세(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과년(瓜年): 16세(婚期에 이른 여자의 나이)
방년(芳年): 20세를 전후한 여성의 나이.(방령(芳齡),
묘년(妙年), 묘령(妙齡) 과 같은 뜻)
약관(弱冠): 남자 나이 20세.(약년(弱年/若年),
약령(弱齡))--예기(禮記) 곡례 편(曲禮篇)
이립(而立): 30세(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불혹(不惑): 40세(미혹함이 없는 나이)
상수(桑壽): 48세(桑자를 十이 네 개, 八이 한 개로 봄)
지천명(知天命): 50세(천명을 아는 나이, 知命이라고도 함)
이순(耳順): 60세(예순, 육순(六旬): 귀가 순해진다는 뜻으로, 나이 60세의 비유적인 표현.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 들을 줄 아는 나이)
환갑(還甲): 61세(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 뜻하는 생일) 같은 뜻으로 (환갑(回甲), 화갑(華甲), 수연
(壽宴, 壽筵)으로 부른다.
진갑(進甲): 환갑(還甲)의 다음해인 62세 때의 생일.
미수(美壽): 66세('미(美)'를 파자하면 '육(六)+육(六)'이 되어 이르는 말)
칠순(七旬): 일흔 살. 고희(古稀) = 희수(稀壽): 70세(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에 ‘인생칠 십고래희(人生七十古
來稀)’에서 온 말.
종심(從心): 70세(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논어 망팔(望八): 71세(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장수(長壽)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
희수(喜壽): 77세. 희(喜)자를 초서체로 쓰면 그 모양이 七十七을 세로로 써 놓은 것과 비슷한 데서 유래된 말.
팔순(八旬): 여든 살. 여든 날. 산수(傘壽): 80세. (산(傘)자를 파자(破字)하면 '팔(八)+십(十)'이 된다하여 이르는 말
망구(望九): 81세.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여기서 ‘할망구’라는 말이 나왔 다 전한다.
‘망구탱이’는 망구순(望九旬)의 말. 반수(半壽): 81세. '반(半)'을 파자(破字)하면 '팔(八)+십(十)+일(一)'이 되어 숫자
81과 같으므로 81세라 한 것.
미수(米壽): 88세. '米'자를 풀면 '八十八'이 되는데서 '여든여덟 살'을 이르는 말이다.
구순(九旬): 아흔 살. 여든 날.
십순(十旬): 백일(百日)을 뜻함. 일순(一旬)은 십일(十日)로 일순의 열 번.
동리(凍梨): 90세. '언(凍) 배(梨)라는 뜻으로, 얼굴에 반점이 생겨서 언 배의 껍질 같다는 뜻으로, 노인의 피부를
이르는 말이다. 90세를 말 하기도 한다.
졸수(卒壽): 90세. 90세를 일컫는 우리말은 '구순(九旬)' 또는 아흔 살이다. 졸(卒)은 초서(草書)로 쓰면 '아홉 구(九)'와
'열 십(十)'을 세로 로 합한 모양이 되는데, 이 때문에 90세라 한 것이다. 그러나 졸(卒)에는 '마친다, 죽는다'는 뜻이
있어 마치 죽어야 할 나이, 혹은 죽기를 바라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어 쓰기에 좋지 않다.
망백(望百): 91세. 백세(百歲)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91세의 별칭이다. 90세 를 지났으니 이제 100세도 멀지 않았다는
만수무강(萬壽無疆)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백수(白壽): 99세. 百자에서 一자를 빼면 白자가 된다하여 이르는 말이다. 나이의 별칭으로 흔히 쓰는 일본식 조어(造語)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이다.
상수(上壽): 나이 100세 또는 100세 이상을 칭하거나 나이가 보통 사람보다 아주 많거나 또는 그 나이를 이른다.
사람의 수명 중 최상의 수명이라는 뜻으로 <장자>에 나온다. 좌전<左傳>에서는 120세를 상수(上壽)로 보았다.
* 나이를 일컬을 때 흔히 쓰는 별칭 가운데는 일본식 조어(造語)가 많다.
일본인들은 장수(長壽)에 관심이 많아 66세의 경우에는 '아름다울 미(美)'를 써서 미수(美壽), 77세의 경우에는 '기쁠
희(喜)'를 써서 희수(喜壽), 88세의 경우 '쌀 미(米)'자를 써서 미수(米壽), 99세의 경우에는 '흰 백(白)'을 써서 백수(白壽)
등으로 표기하는데, 이들은 모두 초서(草書)와 파자(破字)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즉 '미(美)'를 파자하면 '육(六)+육(六)'이 되어 66세, '희(喜)'를 초서로 쓰면 '칠(七)+칠(七)'이 되어 77세, 미(米)'를
파자하면 '팔(八)+팔(八)'이 되어 이를 합치면 88이 되기 때문에 88세, '백(白)'은 '일백 백(百)'에서 '한 일(一)'을 빼면
99가 되어 99세로쓰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일본식 조어이다. 버려야 할 용어들이 아니가 생각된다.
현대에 자주 쓰는 나이에 대한 말.
돌: 만 1살이 되는 생일(첫 생일, 첫돌)
영아: 젖먹이. 유아(幼兒): 어린아이. 생후 1년부터 만 6세까지의 어린아이.
아기: 어린 젖먹이 아이. ‘어린아이’를 귀엽게 일컫는 말. 나이가 많지 않 은 딸이나 며느리를 정답게 이르는 말(큰아기.
며늘아기. 새아기).
아이: 어린사람. 아해. 아자(兒子). 동유(童幼). 동해(童孩). ‘아들’의 낮춤말. ‘미혼자’의 낮춤말. 남에게 자기 자식을
낮추어 이르는 말. 아직 태어 나지 않았거나(태아 胎兒) 막 태어난 아기. 어른이 아닌 제삼자를 예 사롭게 이르거나
낮잡아 이르는 말.
어린이: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 대개 4, 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이름.
소년(少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사내아이. 젊은 나이 또는 그런 나이의 사람. 소년법에서 20세 미만인
사람을 이르는 말.
소녀(少女):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계집아이. 완전(完全)히 성숙 (成熟)하지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여자
(女子)
아이. 동녀(童 女). 진녀(振女) 사내아이: 나이 어린 남자 아이.
남아. 동남(童男), 동몽, 동자, 수초, 아남자 (兒男子), 진남(眞男). 남에게 자기 아들을 이르는 말.
계집아이: 시집가지 않은 어린 여자 아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 여아(女兒). 남에게 자기 딸을 이르는 말.
성년(成年): 법률상 완전한 행위능력자가 되는 연령. 민법상으로는 만 20세 이며 그 외 분야별로 가능나이(?)들이 있다.
청년(靑年):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 람. 나이가 20대 정도인 남자를 이르나 때로
그 시기에 있는 여자를 포함해서 이르기도 한다. 나이가 스물 또는 서른 살 안팎에 있는 젊은 사람.
<참고> 청춘. 나이가 스물 또는 서른 살 안팎에 있는 젊은 남자.
청춘(靑春), 방세(芳歲):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젊고 건강한 시절.
젊은이: 나이가 젊은 사람. 혈기가 왕성한 사람.
성인(成人):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보통 만 20세 이상의 남녀를 이른다.
대인(大人). 성관(成冠). 어른: 다 자란 사람. =대인(大人). 성인(成人).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 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장자.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장자(長者). 결혼을 한 사람. 장년(壯年): 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서른 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장령(壯齡). 성 년(盛年). 장년(長年): 늘그막. 나이가 많은 사람. 오래 삶. 오랜 세월. 중년(中年): 마흔 살 안팎의 나이.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 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중신(中身). 사람의 일생에서 중기, 곧 장년·중년의 시절을 이르는 말.
노년(老年): 나이가 들어 늙은 때. 또는 늙은 나이. 늘그막. 늙은이. 노령(老齡): 늙은 나이. 노년(老年).
노장(老壯): 노년과
장년. 노장(老長, 老丈): 나이 많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늘그막: 늙어가는 무렵. 말래(末來). 늙은이: 늙은 사람. 노년. 노리(老羸). 노인(老人). 숙기(宿耆).
노인(老人): 늙은이.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 구로(耉老)·기수(耆?)·기애 (耆艾)·노창(老蒼)·백수(白?)·숙기(宿耆).
할망구: 늙은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천수(天壽): 병 없이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면 하늘이 내려 준 나이를 다 살았다는 뜻.
향년(享年): 돌아가신 분에게만 쓰는 말로, [한평생 누린 나이]의 뜻.
살아있 는 분에게 이 말을 쓰는 것은 큰 缺禮(결례)임. * 享: 누릴 향
* 전규(前規): 前人의 법칙
* 읍(挹, 뜰 읍): 잔질하다 또는 맛보다.
* 이기(二紀): 24년. 일기(一紀)는 12년이다.
* 입목지술(入木之術): 장회관(張懷瓘)의 <서단(書斷)>에 “왕희지가 축판(祝 板)에 쓴 글씨를 공인(工人)이 깎으려
하였으나 삼분(三分, 약 10cm)이나 깎아야 했다”라 하여 필력이 강건하였음을 비유하였다.
이 후로 서예를 입목지술(入木之術)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 현침(懸針)에서 거고(據槁)까지는 관념적인 표현이므로 이설이 많으나 아래에 대강을 풀이해 보았다.
* 현침(懸針): 십(十)이나 평(平)자의 아래로 내려 긋는 획의 끝이 바늘처럼 뾰족함을 이른다.
* 수로(垂露): 내려 긋는 획의 끝이 물방울이 매달리듯 둥그스름하게 쓰여 진 획을 말한다.
* 분뢰(奔雷): 점의 하나로 영(永)자의 첫 획(머리 점)을 말한다.
* 추석(墜石): 돌이 떨어지듯 무거운 점을 이른다.
* 홍비(鴻飛): 기러기가 나는 것 같은 불(乀)획을 말한다.
* 수해(獸駭, 駭는 놀랄 해): 을(乙)과 같은 법을 이른다.
* 란무(鸞舞, 鸞은 난새 난. 방울 란): 궤(几)의 두 번째 획을 말한다.
* 사경(蛇驚): 파법(波法)을 말한다.
* 절안(絶岸): 포(勹)의 두 번째 획을 말한다.
* 퇴봉(頹峯, 頹은 기울어질 퇴): 궐(亅)을 말한다.
* 임위(臨危): 별(丿)를 말한다.
* 거고(據槁, 槁는 마를 고): 천(巛)의 한 획법을 말한다.
* 하한(河漢): 은하수를 말한다.
* 묘유(妙有): 인간의 행위를 초월한 어떤 물건.
* 력운(力運):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라는 뜻으로 力은 권(勸)이나 강 (强)의 뜻이다.
* 하필유유(下必有由): 하필(下筆)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 변기복어봉초(變起伏於峯杪, 杪는 끝 초): 운필의 누르고 들어 올리는 것과 느리고 급한 변화를 말한다.
* 수뉵좌어호망(殊衄挫於豪芒, 衄은 코피 뉵): 운필에 있어서 필봉(筆鋒)의 변화를 말한다.
뉵(衄)은 돈(頓)과 같이 돈좌(頓挫), 돈절(頓 折)의 뜻이며 망(芒)은 붓 끝을 말한다.
况云積其點畫, 乃成其字. 曾不傍窺尺牘, 俯習寸陰, 引班超以爲辭, 援項籍而自滿, 任筆爲體, 聚墨成形. 心昏擬效之方,
手迷揮運之理, 求其姸妙, 不亦謬哉.
하물며 점과 획을 찍고 긋기만 하면 글씨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고인의 훌륭한 척독(尺牘)을 살피지도 않았으며
짧은 시간 쉽게 익히고, 반초(班超)의 말이나 항적(項籍)의 자만에 이끌리어 붓과 먹을 취하여 형체를 이루었다.
마음은 수련방법에 혼미하고, 손은 운필의 이치를 알려는데 미혹하면서도 지극히 오묘한 경지를 구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 방규(傍窺) : 곁에서 엿보다. * 부(俯) : 숙일 부, 누울 부.
* 촌음(寸陰) : 짧은 시간.
* 반초(班超, 33-112) : 후한시대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관청에서 필경(筆耕)의 일을 하며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박차고 異域에 나가 전공을 세워 제후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붓을 내 던졌다.
그 후 공을 세워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항적(項籍, 기원전232-202) : 진(秦)나라 말기에 초(楚)땅에서 봉기하여 패왕이 되었으나 한(漢) 유방(劉邦)에게
패하여 자살하였다. 자는 우(羽)이며 하상(下相)출신이다.
항적은 젊었을 때 학업과 무예가 뛰어나지도 못하면서 더욱 게을리 하였다.
숙부께서 이를 힐책하자 그는 서(書)는 성명을 기록할만하면 족하고, 칼은 한 사람의 적을 상대함에 불과한 것이니
애써 배울 것이 못된다. 만인(萬人)을 상대할 술(術)을 배우리라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 의효지방(擬效之方) : 연습의 방법. * 의(擬) : 헤아릴 의.
* 휘운지리(揮運之理) : 휘호와 운필의 이치.
* 류(謬) : 그릇될 류
然君子立身, 務脩其本. 楊雄謂, 詩賦小道, 壯夫不爲. 況復溺思豪氂, 淪精翰墨者也.
그러나 군자가 입신하기 위해서는 근본의 도(道)를 닦지 않으면 안 된다. 한(漢)나라 양웅(楊雄)은 “시부(詩賦)를 짓는
일은 작은 도에 불과하니 장부가 즐겨할 일는 못된다.”고 하였다. 하물며 붓 끝에 빠져 한묵의 도에 있음에야.
*군자입신 무수기본(君子立身 務脩其本): <論語 ․ 學而篇>의 “군자는 본(本)에 힘쓴다.
본(本)이 서고서야 도(道)가 생(生)한다.....”라는 구절에서 연유되었다.
*양웅(楊雄, 기원전53-기원후18): 자(字)는 자운(子雲)이며 성도(成都)출신이다.
박학(博學)하고 문장에 뛰어났으나 문학보다는 철학에 전심하여 (<태현경(太玄經)>과 <법언(法言)>을 저술하였다.
특히 <법언 ․ 오자편(吾子篇)>에서 위의 글 “詩賦小道, 壯夫不爲”이 나왔다.
성인이 묻기를 ‘오자(吾子)는 젊었을 때, 부(賦)를 좋아하였는가?’라고 하자 대답해 아뢰되 ‘그렇다.
동자였을 때는 문학을 좋아했으나 장부가 되어서는 손을 떼었다.’라고 말했다는 구절이 보인다.
(或問吾子少而好賦曰然童子彫蟲篆刻俄而曰壯夫不爲也)
물론 위의 <법언 ․ 오자편>에는 ‘소도(小道)’라는 말은 없다.
이는 조식(曹植)의 <여양덕소서(與楊德素書)>에 “사부(辭賦)는 소도(小道)이며 대의(大義)를 유양(揄揚)하여 내세(來世)
에 창시(彰示)할만한 것이 못된다.
나는 박덕한 사람이지만 계급은 제후(諸侯)임으로 정치에 힘을 써야지 사부(辭賦)나 한묵(翰墨)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라고 자성(自誠)하고 있다.
‘근본을 닦는다.’ 함은 본디 ‘인(仁)’을 이룸이니, 즉 도덕의 기본을 이루는 충서효제(忠恕孝悌)의 실천을 말한다.
윤리의 근본을 충실히 행하여 얻은 군자이고서야 비로소 정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유가(儒家)의 윤리관이다.
이는 오래도록 지속되어 오다가 위(魏)나라 조비(曹丕)가 “문장은 경국(經國)의 대업(大業)”이라고 그 효용을 칭송하여
육조(六朝)시대에서는 예술의 가치를 중히 여기게 되었지만 사대부들의 외면적 세계였던 관계(官界)에서는 여전히
이것을 소도(小道)라고 보았다.
물론 당(唐)나라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역시 서(書)를 소도(小道)라 하였지만 이는 서예를 경시하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각기 하는 그의 본분이 있어 그것에 충실하여야 함을 이른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나서 여력이 있으면 서예를 익힐 것이지 군자가 본업마저 저버리고 서에 심혈을 기우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호리(豪氂=毫釐, 氂: 꼬리 리): 극히 미세한 붓끝.
夫潛神對奕, 猶標坐隱之名, 樂志垂綸, 尙體行藏之趣. 詎若功宣禮樂, 妙擬神仙, 猶挺埴之罔窮, 與工鑪而竝運. 好異尙
奇之士, 翫體勢之多方, 窮微測妙之夫, 得推移之奧賾. 著述者假其糟粨, 藻鑑者把其菁華. 固義理之會歸, 信賢達之兼善
者矣. 存精寓賞, 豈徒然歟!
정신을 차려 바둑을 두는 일을 앉아있는 은자(隱者)라고 하였고, 또한 강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명리(名利)를 그리워
하는 일도 없었으며, 뜻을 얻으면 자기의 이상을 천하에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물러나 스스로 좋아함을 찾아 홀로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다른 예술에 노닐기 보다는 서(書)를 배우는 효용이 큼으로 어진사람은 이것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서(書)를 배움으로써 정신을 수양하고 몸에 예악(禮樂)을 익히며 뼈를 문묵(文墨)에 부치고 의기(意氣)를
신선(神仙)에 비긴다.
서(書)의 효용(效用)이란 마치 도공(陶工)이 흙으로 온갖 도기(陶器)를 빚고 청동기 주조자가 화로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기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조화의 오묘함을 다한다.
서(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를 보건대 야릇한 것을 좋아하는 자는 구성상의 변화가 많음에 마음이 끌리고 심원한
묘취를 중시하는 자는 운필의 완급(緩急), 억양(抑揚) 등 깊은 내면적 변화를 추구한다.
서(書)에 관한 저술가들은 고인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고인의 조백(糟粨)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감상에 정통한 사람은 그 정수를 섭취한다
.서(書)는 과연 학문진리의 귀착점이며 실로 현인달사(賢人達士)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능히 이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고인이 서예를 소홀히 하지 않고 명품의 감상에 마음을 기울이었음은 우연이 아니었다.
* 혁(奕): 바둑.
*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왕중랑(王中郞, 王坦之)는 바둑을 ‘좌은(坐隱)’이라 하였고, 지공(支公, 支遁)은
‘수담(手談)’이라고 하였다.(王中郞以圍碁是坐隱, 支公以圍碁爲手談)
* 락지수륜(樂志垂綸): ‘락지(樂志)’는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독락기지(獨樂其志)”에서 따온 말이다.
륜(綸)자는 낚싯줄을 가리키며 ‘수륜(垂綸)’은 낚싯줄을 드리우고 스스로 즐긴다는 뜻이다.
* 행장지취(行藏之趣)의 ‘행장(行藏)’은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의 “용행사장(用行舍藏)”(뜻을 얻으면 자기의
이상으로 삼는 바를 천하에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물러나 스스로 좋아함을 찾아 홀로 즐긴다)하는 경지를 말한다.
* 거약(詎若, 詎: 어찌 거): 어찌 같으랴.
* 공선예악(功宣禮樂): ‘공(功)’은 서(書)의 효용을 말하며 ‘선(宣)’은 선양(宣揚)의 뜻이다.
‘예악(禮樂)’은 예절과 음악의 뜻으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예(禮)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악(樂)이다.
<좌전(左傳)> 희공입칠년(僖公卄七年)에 “...... 시서(詩書)는 의(義)의 부야(府也)라 했고, 예악(禮樂)은 덕(德)의 칙야
(則也)”라 하였다.
<예기(禮記)>에 “왕자(王者)는 공성(功成)하여 낙(樂)을 짓고 치정(治定)하여 예(禮)를 마련한다.”고 하였다.
또한 <공총자(孔叢子)> 잡훈편(雜訓篇)에 “반드시 시서(詩書)로 비롯하여 예악(禮樂)으로 마친다.”라 한 것처럼 유가
(儒家)의 교과(敎科)는 예악(禮樂)을 마지막까지 중시되었다.
* 묘의신선(妙擬神仙): 서예의 묘미를 이르는 말로 중국 당나라 초기의 시인 노조린(盧照鄰, 637?~689?)의 시(詩)에
“形骸寄文墨 意氣托神仙(형해기문묵 의기탁신선)”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 정식(挺埴): 정(挺)은 뺄 정, 특출할 정자 이며 식(埴)은 찰흙 식(치)자이니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음을 뜻한다.
* 공로(工爐): <문선(文選)>의 매의(賈誼) <붕조부(鵬鳥賦)>에 “天地爲鑪兮 造化爲工 陰陽爲炭兮 萬物爲鋼......
(천지위로혜 조화위공 음양위탄혜 만물위강......)”라 했다.
즉 천지는 조물자(造物者)로 화로(鑪)이며 조화는 공(工)이고, 음양은 탄(炭)이며 만물은 강(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詎若功宣禮樂, 妙擬神仙, 猶挺埴之罔窮, 與工鑪而竝運은 서예를 작은 도(道)라고 하지만 저 사현(四賢)과
같은 사람들은 도공(陶工)이나 청동기의 주물자(鑄物者)가 변화무쌍한 기물을 빚어내듯, 그 운필(運筆)의 묘(妙)로서
종이 위에다 무한의 조화를 이루니 이야말로 ‘자연의 묘유(妙有)’와 같고 본바탕을 힘써 닦는 군자에 필적한다고
말하고 있다.
* 호기상이(好奇尙異): 기(奇)와 이(異)를 호(好)와 상(尙)함과 같다.
* 체세지다방(體勢之多方): 체세(體勢)는 결체(結體)와 필세(筆勢)를 이른다. 다방(多方)은 <장자(莊子)>천하편(天下篇)
에 “혜시(惠施)는 다방(多方), 그 서(書)는 오거(五車)"라 하여 다방면(多方面)의 뜻이다.
다시 말해서 작품구성의 변화다단(變化多端)을 추구함을 말한다.
* 궁미측묘(窮微測妙): 미묘함을 헤아리다는 뜻이다.
* 추이지오이(推移之奧頤): 추이(推移)는 운필의 완급(緩急), 억양(抑揚)등의 변화의 추이를 말한다.
오이(奧頤)는 주역(周易) 계사전상(繫辭傳上)에 "聖人有以見天下之頤"라 하였다. 도리(道理)의 심밀(深密)함을 말한다.
* 조백(糟粨): 술지게미로 쓸모없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과 <회남자(淮南子)>도응훈(道應訓)에
집 아래서 나무를 깎고 있던 목수 륜편(輪扁)이 환공(桓公)이 읽고 있는 성인의 서(書)를 가리켜 고인(古人)의 조백
(糟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 조감(藻鑑): ‘품조감식(品藻鑑識)’으로 다시 말해서 감상을 이른다.
* 청화(菁華): 사물의 정수(精粹), 정화(精華)를 말한다.
* 의리지회귀(義理之會歸): 의리(義理)는 바른길(道)이며 회귀(會歸)는 한 곳으로 모임을 뜻한다.
* 현달지겸선자(賢達之兼善者): <맹자(孟子)> 짐심편상(盡心篇上)에 “궁(窮)하면(極에 이르면) 곧 홀로 그 일신(一身)을
좋게 하고 달(達)하면 아울러 천하를 좋게 한다.”라고 하였다.
* 존정우상(存精寓賞): 정신을 집중하여 감상하는 것을 말한다.
而東晉士人, 互相陶淬, 至於王謝之族, 郗庾之倫, 縱不盡其神奇, 咸亦挹其風味. 去之滋永, 斯道逾微. 方復聞疑稱疑,
得末行末. 古今阻絶, 無所質問. 說有所會, 檻秘已深. 遂令學者茫然, 莫知領要. 徒見成功之美, 不悟所致之由. 或乃就分
布於累年, 向規矩而猶遠, 圖眞不悟, 習草將迷假令薄解草書, 粗傳隸法, 則好溺偏固, 自閡通規. 詎知心手會歸, 若同源
而異派, 轉用之術, 猶共樹而分條者乎? 加以趨變適時, 行書爲要, 題勒方畐, 眞乃居先. 草不兼眞, 殆於專謹, 眞不通草,
殊非翰札.
<*쉬(淬): 담금질할 쉬. *치(郗): 고을이름 치. * 유(庾): 곶집 유. *읍(挹): 뜰(물을 푸다) 읍. *조(阻): 험할(막힐) 조.
*구(矩): 곱자 구. *애(閡): 문 잠글(닫힐) 애. *거(詎): 어찌 거.>
그러나 동진(東晋)시대의 유식(有識)계급 사람들은 서로 서(書)를 연구하고 탁마하였다.
그중에서도 왕(王), 사(謝), 치(郗), 유(庾)씨 제족(諸族)의 사람들은 더욱 뛰어나 설령 서예의 절묘한 경지를 체득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서(書)의 풍운(風韻)를 알고 서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서의 길은 점점 쇠미해져 야릇한 서론이 나돌고, 지엽적인 기법이 성행하여 과거의
전통은 현대와 단절되어 누구에게 서의 본질을 물어야 할지를 모르게 되었다.
설령 서의 진수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들은 입을 다물고 쉽사리 전수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의 서를 배우려는 자는(서의 본질과 전통이) 넓고 아득하여 요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완성된
훌륭한 작품을 볼 수 있을 뿐인데 그나마 그런 작품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구성이나 배치에 대해서 여러 해 연구하여도 그 바른 법칙을 체득하기에 까마득하며 해서를 씀에 있어서도 그 법칙을
깨닫지 못하고, 초서를 배움에도 어떻게 쓰는 것이 옳은 것이지 망설인다.
설령 초서를 조금 깨치고 해서의 법칙을 그런대로 전승하였다 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쳐 좋은 점을 배우기보다는
야릇한 버릇이나 아류(亞流)의 기(技)를 배울 뿐이니 이들은 정신과 기법의 융화가 마치 같은 수원(水源)에서 지류(支流)
가 갈라지는 것과 한가지로 용필법도 비슷하여 같은 줄기에서 나온 가지가 그 방향을 달리하는 것과 같다는 이치를 이해
하지 못한다.
그런데 관원이 ‘실무적인 것’을 쓰거나 일상의 사무를 처리하는 데는 행서가 가장 적합하고, 비(碑)나 제액(題額)을 쓰는
데는 해서가 으뜸이다.
(하지만) 초서만을 배우고 해서를 익히지 않으면 단정한 것을 쓰지 못하며 (반대로) 해서만을 배우고 초서가 서투르면
편지를 쓰는데 부적당하다.
* 동진(東晋)은 晉나라가 揚子江을 건너 南渡하여 宋에게 멸망하기까지의 419년간.
* 왕사지족치유지륜(王謝之族郗庾之倫) : 왕(王), 사(謝), 치(郗), 유(庾)씨는 모두 동진시대의 名族이다.
* 고금저절 무소질문(古今阻絶 無所質問) : 고법은 전해지는 것이 없고, 이것을 물어서 알 길이 없다는 뜻이다.
* 함비이심(緘秘已深) : 함(緘)은 다불 함. 설령 그것을 알고 있는 자가 있더라도 입을 봉하고 비밀로 하고 있다.
* 성공(成功) : 여기는 衛夫人 <筆陣圖>의 “.... 근대이후 더욱이 옛것을 법으로 하지 않고, 헛되이 末節에 끌리어
道를 멀리하고 있다.. .... 배움도 해박하지 않고 견문도 좁아 성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부질없이 정신만 소모하고
있다. 通靈感物하지 않고는 더불어 이 도를 말하지 말지니라.”하는 뜻을 의식하고 쓴 말인 것 같다.
* 분포(分布) : 포백(布白)과 같은 말로 청(淸)나라 등석여(鄧石如, 1743-1805)는 書家는 ‘빽빽한 곳은 바람이 통하지
않고 성글은(疎) 곳에는 말이라도 달리게 하라’는 비유로서 포백의 妙를 말하였다.
* 규구(規矩) : <맹자>에 ‘規矩로서 하지 않으면 方圓을 이루지 못 한다’라 했다. 즉, 規는 원을 그리는 콤파스類이고,
矩는 방형을 그리는 자(尺)類로 여기서는 서의 법칙을 가리킨다.
* 도진불오(圖眞不悟) : ‘진(眞)’은 楷書, 隸法도 여기서는 역시 해서를 말함
* 호익편고(好溺偏固) : 바른 서법을 배우지 않고 나쁜 버릇만을 배움을 말함.
* 애통규(閡通規) : ‘애(閡)’자는 방해됨을 뜻하며 ‘막을 해’와 ‘거리낄 핵’으로도 읽는다. ‘통규(通規)’는 서예의 바른
법칙을 말함.
* 심수회귀(心手會歸) : 정신과 기교가 일치함. 심수일치(心手一致)의 삼매 경지로서 앞에 나오는 心手雙暢이나
義理之會歸와 같은 의미이다.
* 동원이이파(同源而異派) : 뒤에 나오는 ‘공수이분조(共樹而分條)’와 같은 의미로 사람에 따라 다른 길을 취하고는
있지만 결국에는 같은 근원으로 돌아감을 말한다.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의 말에 “장장사(張長史, 張旭)의 ‘절차고
(折釵股, 차(釵): 비녀 채, 비녀 차. 고(股): 넓적다리 고.)’,
안태사(顔太史, 顔眞卿)의 ‘옥루흔(屋漏痕)’, 우군(右軍, 王羲之)의 ‘추획사(錐劃沙)’, ‘인인니(印印泥)’, 회소(懷素)의
‘비조출림(飛鳥出林)’, ‘경사입초(驚蛇入草)’ 등은 모두 같은 법이다. 마음이 손을 느끼지 않고, 손 또한 마음과
동 떨러짐이 없는 법일 뿐 이라고 하였다.
* 전용지술(轉用之術) : 용필의 기술.
* 가이(加以) : 그런데
* 추리(趨吏) : ‘추(趨)’는 바쁘게 움직인다는 뜻이고 ‘리(吏)’는 하급관리.
* 제륵(題勒) : ‘제(題’)는 제자(題字), ‘륵(勒)’은 금석문의 글씨.
* 방복(方畐) : 큰 판에 쓰는 큰 글씨를 의미함.
* 전근(專謹) : 단정의 뜻.
眞以點畵爲形質, 使轉爲情性. 草以點畵爲情性, 使轉爲形質. 草乖使轉, 不能成字. 眞虧點畵, 猶可記文. 廻互雖殊,
大體相涉. 故亦傍通二篆, 俯貫八分. 包括篇章, 涵泳飛白. 若豪氂不察, 則胡越殊風者焉.
해서는 한점 한획을 형의 본질로 하고 운필의 리듬을 감정표현으로 한다.
초서는 한점 한획에 감정을 나타내고 운필의 리듬은 오히려 형태를 형성하는 본질인 것이다.
따라서 초서는 그 본질인 리듬감에서 멀어지면 글자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지만 해서는 본체(本體)인 일점일획을
빠뜨려도 일단 문자로서의 식별(識別)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해서와 초서에서는 조형과 리듬의) 상관관계는 상반(相反)되지만 대강(大綱)에 있어서는 서로 작용하여
서(書)로서의 미관(美觀)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대전(大篆), 소전(小篆)에 정통하고 팔분(八分)을 익히며 장초(章草)를 체득하고 비백(飛白)을 구사할
수 있도록 널리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 연구를 게을리 하여)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한 곳이 있으면 (나중에는)호(胡)와 월(越)의 風俗이 다른 것 같은
거리가 생길 것이다.
* 형질(形質) : 생김새, 형태, 형상, 본질을 말한다.
* 사전(使轉) : 초서의 곡선이나 해서의 전필(轉筆)부분.
* 정성(情性) : 성정(性情)과 같은 뜻으로 서(書)에 표현되는 성격, 감정을 말한다.
* 회호수수(廻互雖殊) : 해서와 초서에 있어서는 점획과 사전(使轉)에 있어서의 형질(形質), 정성(情性)의 관계가
반대로 됨을 말한다.
* 초괴사절불능성자 진휴점화유가기문(草乖使轉, 不能成字. 眞虧點畵, 猶可記文. 괴(乖) 어그러질 괴.
휴(휴) 이지러질 휴.) 초서는 흘려쓰는 법을 잘못하면 글자로서 성립이 안되거나 다른 글자로 둔갑을 하는 것임으로
바른 사전(使轉)을 배워야 할 것임을 알 수 있고, ‘해서는 점획을 빠뜨려도 일단 문자로서의 식별이 가능하다’함은
서(書)로서의 점획의 미는 갖추지 못하더라도 실용상으로는 통용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 ‘진(眞, 楷書)은 점획을 형의 본질로 하고, 사전(使轉)으로 정성(情性)을 나타내며 초(草)는 점획으로 정성(情性)을
표현하며 사전(使轉)은 오히려 형질(形質)이다’라는 말은 고금(古今)의 명언(名言)으로서 모든 글에 인용되고 있지만
해석이 각기 다르다.
포세신(包世臣)은 <산정오군서보서(刪定吳郡書譜序)>의 발문에서 “점획에 평직(平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활자
(活字)와 같이 무의단조(無意單調)한 글씨가 되기 일쑤인데, 그것은 곡선적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리듬에 주력(主力)하여 형태(形態)를 잡으려면 뼈 없는 글씨가 되기 쉬운데 그것은 직선적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탁월한 견해를 제출하였다.
* 이전(二篆), 팔분(八分), 비백(飛白) 등은 글자체의 명칭들이다.
1. 대전(大篆) : 통상적으로 진(秦)나라 문자 통일의 산물인 소전(小篆)이전의 문자를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서문(序文)에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사관(史官)인 주(籒)라는 사람이《사주십오편(史籒十
五篇)》을 지었다’고 하며 진(秦)의 팔체서(八體書)중에 이를 주문(籒文)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를 대전이라고도 한다.
왕국유(王國維)는 전국시대에는 각지에서 쓰여 진 글자가 서로 달랐는데 동방(東方)의 육국(六國)에서는 고문(古文)이
쓰였고, 진(秦)등 서방(西方)의 나라들에서는 주문(籒文)이 쓰였다고 했다.
이는 주문이 주나라 선왕시대에 지어졌다는 설도 부정하였다.
2. 소전(小篆) :《사기(史記)》시황본기(始皇本紀) 이십육년조(二十六年條)에 문자 등의 통일에 대한 내용과 《설문
해자(說文解字)》서문(序文)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전국시대 7국은 언어가 다르고 문자의 형태가 달랐다.
시황제는 비로소 천하를 통일하고 이사(李斯)의 건의에 자형(字形)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이사는 창힐편(倉頡篇)을 짓고, 중차부령(中車府令)인 조고(趙高)는 원력편(爰歷篇)을 지었으며 태사령(太史令) 호모경
(胡母敬)은 박학편(博學篇)을 지었다. 모두 사주(史籒)의 디전(大篆)을 가감(加減)하였다. 이를 소전(小篆)이라고 한다.’
고 하였다.
진(秦)나라 각석(刻石) 즉, 역산(嶧山), 태산(泰山), 랑야대(瑯琊台), 지부(之罘), 갈석(碣石), 회계(會稽)각석은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나라 안을 순수(巡狩Z)하면서 명산(名山)에 입석(立石)하여 자신의 공적(功績)을 만세(萬世)에 전하려
하였는데 이들 각석은 모두 소전이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소전을 진전(秦篆)이라고도 부른다.
3. 팔분(八分) : 광의(廣義)의 예서(隸書)는 고예(古隸), 초예(草隸), 팔분(八分)을 포괄하나 정확하게 그 구분을 살필
수는 없다. 단지 파세(波勢)라는 필세가 팔분(八分)의 특징으로 이들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아낼 수 있다.
문헌 기록에 팔분의 창시자를 왕차중(王次仲)이라고 하였으나 믿기 어렵고, 아마도 <사체서세(四體書勢)>라는 책에
의하면 진(晉)나라 이후에 붙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팔분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다.
첫째, 팔(八)자처럼 분산(分散)의 형상을 하고 있다(<書斷>).
둘째, 한 글자의 사방(四方)이 팔분(八分)이다.
셋째, 예(隸)의 이분(二分)과 전(篆)의 팔분(八分)을 취하였다.(<古今法書苑>)
넷째, 삼국 위(三國 魏) 무렵 해서(楷書)에 가까운 신서체(新書體)가 나왔기 때문에 한비(漢碑)에 쓰일 공식서체로
명명한 것으로서 그 팔분이 고체이므로 부르게 되었다.(啓功의 <古代字體論稿>) 등이다.
4. 장초(章草) : 글자를 연이어 쓰지 않고, 매 글자를 또박또박 떼어서 쓴 것으로 주요한 점획이나 종필(終筆)을 오른
쪽으로 삐쳐내기도 하는 초서체의 하나이다.
유명한 것으로는 진(晉)나라 삭정(索靖, 239-303)의 글씨라고 전하는 <월의첩(月儀帖)>(秘閣續帖 卷七外)이 있으나
오히려 목간(木簡) 속에 장초의 시원이 보인다.
그러나 목간의 예는 의외로 많지 않다.
장초에 대한 여러 설은 아래와 같다.
첫째, 한(漢)나라 원제(元帝, 기원전 75-33)시대에 사유(史游)가 급취장(急就章)이라는 것을 지었는데 거기서 유래
되었다는 것이다.(<서단(書斷)>)
둘째, 한나라 장제(章帝, 58-88)가 이 서체를 좋아하였기 때문이거나 장제가 창시하였기 때문에 불리었다는 것이다.
(<서단(書斷)>)
셋째, 후한(後漢)의 두도(杜度)가 이 체(體)에 능하여 상주문(上奏文)이 훌륭했기 때문에 오로지 장주(章奏)에 쓰이게
되었다는 설(<서단(書斷)>)
넷째, ‘장(章)’은 ‘창(彰)’으로 통하여 법칙, 조리(條理), 명형(明顯)의 성질을 갖는 초서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 외 에도 진(晉)이후에 이왕(二王)의 금초(今草)와 구별하기 위하여 고체(古體)의 격식이 있는 초서에 따로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다.
5. 비백(飛白) : 후한(後漢)의 채옹(蔡邕)이 장인(匠人)의 도배모습을 보고 창안한 것이라 한다.
당태종(唐太宗)의 <진사명(晉祠銘)> 제액(題額)이 대표적이다.
이는 신비적이고 권위 상징으로 당 이후에는 특수한 용도로 쓰였다. 점과 획이 먹으로 검게만 채워지지 않고 군데군데
흰 선조가 나타난다든지 천(布)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과도 같고, 혹은 점획의 어느 부분을 동식물을 본뜬 것 등의
특징이 있다. 당송(唐宋)시대에는 태종을 따라 고종(高宗), 측천무후(則天武后), 예종(睿宗), 송(宋)의 고종(高宗),
인종(仁宗) 등이 즐겨 썼다.
* 방통(傍通), 부관(俯貫), 포괄(包括), 함영(涵泳) 등은 모두 널리 깊이 연구한다는 뜻이다.
* 호월수풍(胡越殊風) : 호(胡)는 북방, 월(越)은 남방의 이민족 나라로 서로 멀리 떨어져서 풍속을 달리 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와 《사기(史記)》에 ‘호리(毫釐)의 차(差)는 천리를 어긋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至如鍾繇隸奇, 張芝草聖. 此乃專精一體, 以致絶倫. 伯英不眞, 而點畫狼藉, 元常不草, 使轉縱橫. 自玆已降, 不能兼善者,
有所不逮, 非專精也. 雖篆隸草章, 工用多變, 濟成厥美, 各有攸宜. 篆尙婉而通, 隸欲精而密, 草貴流而暢, 章務檢而便. 然後,
凜之以風神, 溫之以姸潤, 鼓之以枯勁, 和之以閑雅. 故可達其精性, 形其哀樂. 驗燥濕之殊節, 千古依然, 體老壯之異時,
百齡俄頃. 嗟乎, 不入其門, 詎窺其奧者也.
종요의 해서의 뛰어남과 장지의 초서의 훌륭함은 그야말로 한 체에 마음을 다해 연마하여 발군의 경지에 달한 (명인
이었기 때문이며 이는 鐘․張이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장지는 초서를 (전수한 명인)이지만 그의 점화에는 (해서와 같은 요소가) 自在로이 섞여있다.
또한 종요는 해서의 명인이지만 (초서의 리드미컬한 운필법이) 자유로이 구사되고 있다.
종요와 장지이후 서예가들이 한 체에서 해서와 초서의 요결을 겸용하지 못하는 것은 천분(天分)이 이 두 사람에게
미치니 못하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書에 대해서 두 사람만큼) 열심히 연찬(硏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전․예․초․장초 등의 서체는 각각 조형적 기법이 변화 다양하지만 각 서체 고유의 미를 발휘하려면 각기 그 요결이
있다.
전서는 완곡하면서 거침없어야하고, 예서는 치밀한 배려를 중히 하며 초서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창달(暢達)됨이 긴요
하며 장초는 착실하고 간편함에 힘써야 한다.
이 후에 ‘름(凜)’, ‘온(溫)’, ‘고(鼓)’, ‘화(和)’의 묘를 터득하여 그 정성에 달하여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작품위에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다. 한서건습(寒暑乾濕) 사계(四季)의 변화를 보면 천년에 한하여도 의연히 영구불변(永久不變)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일생은 청년도 이내 노쇠(老衰)하여 진다.
사람의 일생이 백년을 간다 하더라도 자연의 유구함에 비하면 극히 짧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書)의 문을 들어가지 않고는 그 집안을 엿볼 수 없는 일이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예기(隸奇) : 아래에 나오는 ‘초성(草聖)’이라는 구(句)와 함께 『도은거여양무제론서계(陶隱居與梁武帝論書啓)』
(『법서요록(法書要錄)』券二)의 第七에 “백영(伯英)은 이미 초성(草聖)이라 일컬어지고 원상(元常)은 진실로 스스로
예절(隸絶)”이라는 말이 보인다. 기(奇)나 성(聖)은 모두 절묘의 뜻이다.
* 전정(專精) : 전심정려(專心精勵)의 연구
* 낭자(狼藉) : 이리(狼)가 풀을 깔고 누웠다가 간 자리(藉)의 어지러워진 상태를 말하나 여기서는 장지(張芝)의 초서
가운데에는 직선적인 해서의 점획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래의 ‘사전종횡(使轉縱橫)’은 종요의
해서에 곡선적 리듬이 자유자재로 구사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종요와 장지의 ‘전공(專工)’은 ‘하나의 예술에 빼어나면 다른 예술에도 통한다는 말과 같이 해서와 초서의
진수를 체득하고 있었음을 암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장(章) : 장초(章草). * 공용(工用) : 기법, 造形技法
* 제성궐미(濟成厥美) :『좌전(左傳)』문공(文公)18년에 ‘세세(世世)로 그 미(美)를 제(濟)하고,
그 이름을 운(隕, 떨어질운)치 않음이라’ 하였고, 註에 ‘濟는 成也라’라고 보인다.
* 각유유의(各有攸宜) : 유(攸)는 소(所)와 같고 의(宜)는 이치에 맞는다는 뜻이다.
* 완이통(婉而通) : 완(婉)은 완곡(婉曲, 노골적이 아님). 통(通)은 거침없음. 그리고 여기서의 이(而)자는 위아래의
말을 연결시키고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 완(婉) : 순할 완
* 정이밀(精而密) : 해서(예서)의 정밀이라 함은 운필에 있어서 정밀한 배려를 말한다.
* 풍신(風神) : 육조시대의 인물평에 자주 쓰였던 풍도(風度), 풍골(風骨), 풍자(風姿) 따위와 비슷한 말로 정신적인
높은 차원을 뜻한다.
당나라시대에 이 ‘풍신’을 서의 품등의 최고위에 두었음은 장회관(張懷瓘)『서의(書儀)』에 ‘...풍신골기(風神骨氣)
있음을 상(上)으로 하고 연미공용(姸美功用)함은 아래로 둔다.’라고 보인다.
송나라시대의『속서보(續書譜)』에 ‘풍신(風神)’을 풀어 필칙(八則)을 들었는데 인품(人品)의 높음,
사법(師法)의 고(古), 지필(紙筆)의 가(佳), 그리고 글씨의 험경(險勁), 고명(高明), 윤택(潤澤), 향배(向背)의 적의성
(適宜性), 때로 신의(神意)를 나타냄을 들고 있다.
* 연윤(姸潤) : 아름답고 윤택함. * 고(鼓) : 고무(鼓舞)시킴.
* 고경(古勁) : 고목과 같이 질기고 단단한 힘을 말한다.
* 한아(閑雅) : 여유롭고 우아함, 조야(粗野)와 반대말.
* 달기정성(達其情性) : 마음의 본질에 도달함.
* 형기애낙(形其哀樂) : 애락(哀樂)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로서의 서(書)임을 시사한 것으로『예기(禮記)』
낙기(樂記)의 ‘사람이 나서 정(靜)함은 천성(天性)이요 물(物)에 감동(感動)함은 성(性)의 욕(欲)’이라 한데서 근거
하였다.
* 조습지수절(燥濕之殊節) : 사계(四季)의 기상의 변화.『진사왕식전(陳思王植傳)』에 ‘踐水履炭, 登山浮澗, 寒暑燥濕,
高下共之’라 보인다.
* 노장이시(老壯異時). 백령아경(百齡俄頃) : 장년이니 노년이니 하지만 그 차이는 백년도 못 되며 설사 백년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유구한 천지에 비하면 실로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아경(俄頃)은 ’아경(俄景)이라고도 한다.
* 불입기문, 거규기오자야(不入其門, 詎窺其奧者也) : 서(書)의 문을 두드리지 아니하고는 그 깊은 경지가 이해될 리가
없음.
又一時而書, 有乖有合. 合則流媚, 乖則彫疎. 略言其由, 各有其五. 神怡務閑, 一合也. 感惠徇知, 二合也. 時和氣潤, 三合也.
紙墨相發, 四合也. 偶然欲書, 五合也. 心遽體留, 一乖也. 意違勢屈 二乖也. 風燥日炎, 三乖也. 帒墨不稱 四乖也. 情怠手闌,
五乖也. 乖合之際, 優劣互差. 得時不如得器, 得器不如得志. 若五乖同萃 思遏手蒙, 五合交臻, 神融筆暢. 暢無不適, 蒙無
所從.
또한 (같은 사람이)쓴 글씨라도 때로는 乖(괴; 어그러질 괴. 신통치 않음)한 경우와 合(합; 합할 합. 잘 됨)의 경우가 있다.
조건이 좋을 때는 글씨가 잘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글씨가 볼품이 없다.
그 까닭을 대충 살펴보면 각각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있다.
마음이 조화롭고 즐거워 여러 일에 쫓김이 없이 한가로운 상태가 하나의 좋은 조건이요.
민감(敏感)하여 곧 이해가 될 때가 그 둘째이며 기후가 온화하고 상쾌할 때가 그 셋째이다.
(그리고) 종이와 먹이 잘 조화될 때가 넷째조건이며 문득 쓰고 싶은 감흥이 일었을 때가 그 다섯째이다.
(여기에 반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몸이 좋지 않을 때가 일괴(一乖)이요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서 억지로 붓을 잡을
경우가 이괴(二乖)이며 날씨가 메마르거나 몹시 더운 때가 삼괴(三乖)이다.
(그리고)종이와 먹이 좋지 않을 때가 사괴(四乖)이며 별로 의욕도 없고 손이 풀리지 않았을 때가 오괴(五乖)이다.
(이와 같이) 조건의 좋고 나쁨에 따라 (작품 됨됨이의)우열의 차가 있다.
(그러나 이상의 여러 조건 중에서도) 기분이 상쾌하고 감흥이 일 때를 기다리기 보다는 좋은 도구와 재료를 갖추는 편이
좋고, 그것 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에 충실함을 모여 얻는 것이 긴요하다.
만약 다섯 가지 좋지 않는 조건이 동시에 합쳐지고 보면 감흥은 전혀 일지 않고 따라서 손(붓)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다섯 가지 좋은 조건이 갖추어지면 마음이 명랑하고 운필도 거침이 없이 된다. 이렇듯 붓에 거리낌이 없으면 어떤 글씨
라도 잘 되지만 붓이 막히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 一時(일시) : 때에 따라(一은 여기서 實數가 아님)
* 有乖有合(유괴유합) : 어그러지고 융합됨
* 流媚(유미) : 流動遒媚(유동주미) 기분 좋은 감흥에 따라 붓이 잘 움직여서 아름 다움. 遒 : 다가설 주.
* 彫疎(조소) : 시들고 산만함
* 神怡務閑(신이무한) ↔ 心遽體留(심거체유) : 怡(기쁠 이)는 悅(열)과 같아 神怡(신이)는 마음이 화락하고 유쾌한 것.
務閑(무한)은 俗務(속무) 따위에 해방되어 明窓淨机(명창정궤)를 대해 조용히 붓을 잡을 수 있는 心身의 여유 있는 경지.
蔡邕(채옹)의 <筆論(필론)>에 “글씨를 쓰고자 할 때에는 먼저 잡념을 버리고 情性(정성)에 맡겨 쓸 일이다.
俗務(속무) 따위에 생각이 얽매인 상태에서는 설사 中山兎毫(좋은 붓)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좋은 글씨를 얻기는 어렵다.”
(墨池篇 卷二)라 한 것과 같은 뜻이며 ‘心遽體留(심거체유)’는 마음이 조급하거나 안정되지 않고 身體가 마음 먹은대로
풀리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 感惠徇知(감혜순지) ↔ 意違勢屈(의위세굴) : 徇(빠를 순). 韋誕(위탄)의 論書法에 “凡書有五合 感物徇知二合也”라고
보인다고 하지만 아직 위탄의 론서법이라는 것을 본 사람이 없으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사기(史記)> 趙世家(조세가)에 “聰明徇智(총명순지)”라고 있어 ‘徇知’는 理知(이지)의 明敏(명민)함을 뜻하므로
敏感(민감)하여 곧 이해됨이라고 풀이해 본다. 아래 구절은 기분이 집중되지 않고 내키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라는
뜻이다.
* 時和氣潤(시화기윤) ↔ 風燥日炎(풍조일염) : 앞 구절은 기후가 온화하고 메마르지 않음.
사혁(謝赫)의 <고화품록(古畵品錄)>에 보면 화가 고개지(顧愷之)는 “천후(天候)가 온화(溫和)하고 상쾌한 날이라야
붓을 잡았다.”라고 하였다.
추운 겨울날 몸이 움츠려들어 손을 불어가며 글씨를 쓴다든지 무더운 복중(伏中)에 더위를 고통스럽게 느끼면서 쓰는
것과 봄, 가을의 청명(淸明)한 날 상쾌한 기분으로 쓰는 것과는 다르게 마련이다. 뒤 구절은 바람이 메마르고 찌는듯한
염천(炎天)의 날씨를 말한다.
* 紙墨相發(지묵상발) ↔ 帒墨不稱(대묵불칭) : 앞 구는 종이와 먹이 좋아서 글씨의 효과를 돋움을 뜻하고,
뒤 구절 ‘不稱(불칭)’은 지묵(紙墨)이 부조화하여 묵색(墨色)을 죽임을 말한다.
* 偶然欲書(우연욕서) ↔ 情怠手闌(정태수란) : <怠(태);게으름 태, 업신여길 태.
闌(란);가로막을 란(난)> 앞 구절은 문득 붓을 잡고 싶은 감흥(感興), 즉 쓰고 싶은 때가 있음을 말하고,
뒤 구절은 그 반대로 먹을 갈고 종이도 펼쳐 놓았지만 별로 뜻이 내키지 않고 붓도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 得時(득시) : 좋은 때, 곧 기분이 상쾌하고 감흥이 일었을 때.
* 得器(득기) : 좋은 도구와 재료를 얻음.
* 得志(득지) : 마음에 충실함을 모여 얻음을 말한다.
* 思遏手蒙(사알수몽) : <遏(알):막을알. 蒙(몽);덮을몽. 입을몽> 생각이 막히고 손이 나아가지 않음.
* 神融筆暢(신융필창) : 마음이 밝고 즐거워 붓에 거리낌이 없음.
當仁者, 得意忘言, 罕陳其要. 企學者, 希風敍妙, 雖述猶疎. 徒立其工, 未敷厥旨. 不揆庸昧, 輒效所明. 庶欲弘旣往之風規,
導將來之器識. 除繁去濫, 覩迹明心者焉.
(孔子가 말하고, 莊子도 말하였지만) 도(道)를 체득(體得)한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을 설명할)
말을 잊어버리고, 그 요결(要訣)을 표현하는 일이 드물다.
(그런데 반대로) 실력이상으로 성급히 서두르는 사람은 선현(先賢)의 풍취(風趣)를 경모(敬慕)하여 그 깊은 묘의(妙意)
를 설명하려들지만 제 아무리 설명을 잘 하여도 소략(疎略)함을 면(免)치는 못하며 선현의 공부를 입론(立論)할 따름
이지 그 진수(眞髓)를 풀지는 못한다.
(여기에서 나는) 범용(凡庸)하고 우매(愚昧)함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점만을 들어서 이 서보(書譜)를 찬술
(撰述)하려고 한다.
(나의 생각하는 바는) 모쪼록 선현이 남긴 훌륭한 서법을 세상에 널리 펴서 기량(器量)과 식견(識見)을 갖춘 장래성
있는 인재(人材)를 인도(引導)하고자 함이다. (내가 만약) 번잡(繁雜)한 설명을 제(除)하고 지나친 의견(意見)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뒷날의 식자(識者)는 스스로 선현의 명적(名蹟)을 감상함으로써 터득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 당인(當仁) : <論語> 衛靈公篇에 ‘仁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사양치 않음’이라 하였다.
도(道)를 구하는 마음의 돈독함을 표현한 말로서, 여기서의 인자(仁者)란 사현(四賢 : 종요, 장지, 왕희지, 왕헌지)과
같은 서의 진수를 체득한 사람들을 지칭한 듯하다.
* 득의망언(得意忘言) : <莊子> 外物篇의 말이다. 또한 도잠(陶潛)의 ‘음주(飮酒)’詩 중에 ‘이 속에 진의(眞意)가 있으니
말하고자 하나 말을 잊는다.’라는 뜻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여기서는 서(書)의 진수(眞髓)를 회득(會得)함으로써
설명은 구차스러움을 뜻한다.
음주(飮酒) 其五 -도연명(陶淵明, 317-420)-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間有眞意, 欲辯已忘言.
<結廬(결려) : 초막을 짓다. 人境 : 사람들이 사는 곳.
車馬喧(거마훤) : 수레와 말이 다니며 내는 시끄러운 소리. 고관대작들의 왕래를 비유한다.
爾(이) : 그러하다. ‘
然’과 통한다. 偏 : 외지다. 悠然 : 느긋하고 한가로운 모양.
見 : 의도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보이다.
辨(변) : 분별하다. 忘言 : 말을 잊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심득(心得)하였음을 나타낸다.>
사람 사는 마을에 초막을 지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다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리할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면 땅도 자연 외지게 되는 법입니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어 드니 느긋하니 남산이 보인다.
산 기운 해질녘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 짝지어 돌아간다. 여기에 참된 뜻이 있는데, 말하려다 어느새 말을 잊었다
도연명은 동진(東晋)에서 유송(劉宋)시기에 활약한 전원시(田園詩)의 대가로 역대 중국시인들이 섬겼던 위대한 스승
이기도 하다.
특히 송대(宋代) 소동파(蘇東坡)는 백수가 넘는 <화도시(和陶詩)>를 지어 도연명을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한 바 있다.
동진이 망한 이후에는 도잠(陶潛)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음주(飮酒)란 제목으로 이루어진 20편의 연작시에는, “우연히 좋은 술이 생겨 술을 마시지 않은 밤이 없었는데,
내 그림자를 보며 홀로 잔을 비우다 금방 또 취해버렸다. 취하고 나면 번번이 몇 구씩 시를 써 놓고 혼자 즐기곤
하였다(…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라는 서문을 적어 작시 동기를 밝혀
두었다.
그 가운데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으로 손꼽히는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이상적인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 한(罕) : 그물 한, 드물 한.
* 기학자(企學者) : 實力이상으로 망령되이 能書家의 경지를 흉내 내는 사람. 企자는 跂(발돋움할 기, 육발이 기)의
假借字이다.
* 희풍서묘(希風敍妙) : 선현의 풍취(風趣)를 경모(敬慕)하여 그 오의(奧義)를 설명하는 것.
* 부궐지(敷厥旨) : 서(書)의 진의(眞意)를 부연(敷衍)함. * 부(敷) : 펼 부.
* 불규용매(不揆庸昧) : 범용우매(凡庸愚昧)함을 헤아리지 않고 라는 손과정의 겸사. * 규(揆) : 헤아릴 규 *
첩(輒): 문득 첩
* 효소명(效所明) :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바를 서술함.
* 풍규(風規) : 풍범규율(風範規律)의 뜻. 도덕적 규율을 말하나 여기서는 전범(典範)으로 삼을 만한 서법을 가리킨다.
* 기식(器識) : 기국(器局: 재간과 도량)과 식견, 즉 기량식견(器量識見)이다.
<당서(唐書)> 裴行儉傳에 ‘器識을 先으로 文藝를 後로’ 라고 하고 있다.
* 제번거람(除繁去濫) : 번잡(繁雜), 과잉(過剩)한 점을 제거함.
代有筆陣圖七行. 中畵執筆三手, 圖貌乖舛, 點畫湮訛. 頃見南北流傳, 疑是右軍所製. 雖則未詳眞僞, 尙可發啓童蒙.
旣常俗所存, 不籍編錄. 至於諸家勢評, 多涉浮華, 莫不外狀其形, 內迷其理, 今之所撰, 亦無取焉.
<舛(천): 어그러질천. 湮(인): 잠길인, 빠질인, 訛(와): 그릇될와, 거짓와.>
세상에 <필진도> 칠행(七行)이라는 저작이 있다. 그 속에 집필의 그림 3종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림의 됨됨이는 정확하지 않고, 해설의 문자도 명료하지가 않다.
최근 그것이 여기저기에 유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바 어쩌면 이것이 (그전부터 전해지고 있는) 왕희지가 지은 것인
지도 모르겠다.
(과연 왕희지의 작인지 어떤지) 아직 그 진위는 딱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소용이 닿을
정도이다.
(어쩠든 이 책은) 세상에 흔한 것이므로 여기서는 취급하지 않기로 한다.
(이밖에 六朝시대의 書에 관한) 제가(諸家)의 품평론(品評論)은 많으나 거의가 겉만 화려하게 꾸미고 속이 비어 내면
적인 서의 이치에 대해서는 적확하지 않으며 현재의 評論書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역시 취하지 않기로 한다.
* 대(代) : 세(世)와 같은 뜻으로 唐太宗의 이름인 世民의 ‘世’를 피한 것.
* 필진도(筆陣圖) : 위부인(衛夫人) 작(作)과 왕희지가 이 그림에 제(題)를 붙인 文章의 두 종류가 있다.
<필진도>가 著錄에 처음 보인 것은 <법서요록(法書要錄)>卷一이다.
후에 <묵지편(墨池篇)>卷二에 기록되지만 내용은 <법서요록>의 <王右軍筆陣圖題後>와 거의 같은 글이며 왕희지의
作이라고 되어 있다.
원제의 것은 <묵지편> ‘書論四篇’중의 前二篇에 거의 같은 글로 들어 있으며 왕희지의 작으로 하고 주(註)에 "<夫三端
之妙, 而(執筆有七種)>의 二段은 羲之의 作이라 舊傳되지만 <法書要錄>에서는 衛夫人의 말이다.
그러나 근거는 없다."라고 하였다.
다만 <서원필화(書苑筆華)> 卷一 <書法>上에 필진도를 위부인의 作이라고 한 이후 여러 사람의 著錄에 이것을 踏襲
하여 왔다. 그러나 孫過庭이 필진도에 의문을 갖고 있었음과 같이 그 후 黃庭堅과 米芾 등도 僞書라 하는 등 眞僞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 도모괴천(圖貌乖舛) : 그림이 정확한 것이 아님.
* 점화인와(點畫湮訛) : 문자의 점획이 명료하지 않음.
* 발계동몽(發啓童蒙) : 사리(事理)에 어두운 아동을 깨쳐 줌.
* 제가세평(諸家勢評) : 여기서는 당(唐)이전의 書評論家의 論評을 가리킴. ‘세(勢)’란 가령 삭정(索靖)의 <草書勢>라
든가 위항(衛恒)의 <사체서세(四體書勢)>이며 '평(評)'이란 원앙(袁昻)의 <고금서평(古今書評)> 등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겠지만 거기에 쓰인 作家와 그 書風의 評語가 예컨대 ‘衛恒의 書, 꽃을 머리에 얹은 美女가 鏡臺 앞에서 웃음 짓는
것 같이’(고금서평)라 한 것처럼 자연, 동식물, 사람 등의 형용을 빌어 美辭麗句로 수식되어 있으므로 손과정은 ‘부화
(浮華)’한 것이라 하여 물리쳤으리라 짐작된다.
* 부화(浮華) : 겉만 화려하게 꾸미고 속은 빈 것.
* 금지소찬(今之所撰) : 孫過庭과 同時代 무렵 사람들의 書論.
若乃師宜官之高名, 徒彰史牒, 邯鄲淳之令範, 空著縑緗. 曁乎崔杜以來, 蕭羊己往, 代祀綿遠, 名氏滋繁. 或籍甚不渝,
人亡業顯, 或憑附增價, 身謝道衰, 加以, 糜蠹不傳, 搜秘將盡. 偶逢緘賞, 時亦罕窺, 優劣紛紜, 殆難覶縷. 其有顯聞當代,
遺迹見存, 無侯抑揚, 自標先後.
<牒(첩): 서찰 첩, 문서 첩, 널 첩. 縑(겸): 합사비단 겸. 緗(상): 담황색비단 상. 渝(투): 달라질 투. 糜(미): 죽 미.
蠹(두): 좀 두. 搜(수): 찾을 수. 緘(함): 봉할 함. 罕(한): 그믈 한. 窺(규): 엿볼 규. 覶(라): 자세할 라.>
그런데 사의관(師宜官) 같은 유명한 사람도 오늘날에는 다만 역사 서적에 현창(顯彰)될 뿐이며 邯鄲淳(감단순) 같은
훌륭한 서법도 다만 書籍上에 유명할 뿐(書蹟은 현재 볼 수 없다)
그리고 최원(崔瑗), 두도(杜度)에서부터 소자운(蕭子雲), 양흔(羊欣) (등이 활약한 시대)까지는 年代의 사이도 길고,
유명한 書家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혹은 名聲이 赫赫하여 변하지 않고 死後에도 業蹟이 더욱 현저하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權門에 依支하여 당시의 聲價는 높았지만 死後엔 평가가 지속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書蹟도> 습기나 蟲害 등으로 손상되어 전해지지 않게 되므로 名品을
찾아보아도 거의 눈에 띠지 않는<실정이다.>
혹시 眼目을 갖춘 鑑賞家가 있어도 그러한 작품들은 秘藏되어 쉽사리 접할 수 없다. 따라서 優劣의 평가는 區區하여
一定하지 않아 細分된 序次를 매기기가 어렵다.
하긴 그 이름이 今世에까지 남아 있고 다행히 그 遺墨이 남아 있는 것이 있으면 새삼스레 世人의 批評을 기다릴 것
없이 작품 그 자체가 優劣을 보일 것이다.
* 師宜官(사위관) : 生卒未詳으로 후한(後漢) 령제(靈帝)時의 사람이며 八分體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술을 좋아한 그는 가끔 무일푼(無一分)으로 주막에 나가 술을 마시고는 벽에 글씨를 쓰고 그것을 보려고 모인 사람
들로부터 글씨의 관람료를 받아서 술값이 될 만하면 썼던 글씨를 삭제해버리고 돌아가곤 하였다 한다.
그가 쓴 경구비(耿球碑)가 있었다고 하나(<書斷>) 지금은 탁본도 전하지 않는다.
* 邯鄲淳(감단순) : 生卒未詳으로 一名 축(竺)이며 字는 子叔(혹은 子淑, 子禮)으로 영천인(穎川人)이다.
文帝(220-226년 재위)시대에 博士給事中의 벼슬에 이르렀고, 팔체를 고루 잘 섰으나 특히 고문, 대전, 팔분, 예서에
뛰어났으며 단절되었던 고문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魏의 三體石經 중의 古文은 淳의 글씨라 전한다.
(<魏志> 卷十一管寧傳, 卷一三 江朗傳注江式 <論書表> 등). 그의 書風은 ‘원형을 그리는 제구에 응하여 방형을 그리
는데 쓰는 자에 들어가면 원과 방이 이루어진다.(응규입구應規入矩, 방원내성方圓乃成)’(<古今書評>)라 하였다.
* 令範(령범) : 령(令)은 선(善), 범(範)은 법(法)으로 筆蹟의 묘(妙)를 말함. 앞 句의 ‘고명(高名),의 對句이다.
* 縑緗(겸상) : 겸(縑)은 명주(絹), 상(緗)은 담황색 비단(帛)으로 옛사람들은 겸백(縑帛)으로 책의 장정(裝幀)을 하였
다는 데서 책을 겸상(縑緗), 또는 상표(緗縹)라 하였다.
* 최두소양(崔杜蕭羊) : 최원(崔瑗), 두도(杜度), 소자운(蕭子雲), 혹은 소사화(蕭思話), 양흔(羊欣) 등
* 최원(崔瑗, 77-142) : 字는 子玉이며 탁군안평인(涿郡安平人)이다.
당시의 으뜸가는 학자로 지금도 그의 <최자옥좌우명(崔子玉座右銘)>은 유명하다. 서예는 두도(杜度)에게 師事했으며
장초(章草)를 잘 써서 초현(草賢)이라 했다. 小篆 작품 <장평자비(張平子碑)>를 썼다. 저서로는 <초서세(草書勢)>,
<비용편(飛龍篇)>이 있었다. 아들 식(寔)도 아버지의 서풍을 계승하여 장초를 잘 썼다고 한다(<後漢書>)
* 두도(杜度, 生卒未詳) : 字는 伯度로 경조두능인(京兆杜陵人)이다. 後漢의 장제(章帝, 76-88在位)때 제(齊)의 상(相)
이 되었다.
두도의 글씨를 좋아한 황제는 상주문(上奏文)을 草書로 쓰도록 하였다 한다.
장지(張芝)도 두도의 장초를 배웠다고 한다. 위(魏)의 위탄(韋誕)은 두도의 書를 評하기를 “骨力은 越等하나 字體는
多少 여위었다”라고 하였다.
* 소사화(蕭思話, 406-455) : 유송(劉宋)때의 能書家로 <南史> 卷十八에 隸書에 능하였다고 하며 왕승건(王僧虔)의
<論書>에는 범엽(范曄)와 더불어 양흔(羊欣)에게 배웠고 筆力은 떨어지나 雅趣는 뒤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 소자운(蕭子雲, 486-548) : 字는 景喬이고 齊나라 高帝의 第九子이다.
젊어서부터 文才가 있어 26세에 <晉書> 百餘卷을 撰하였다. 草, 隸에 능하여 당시의 規範으로 존중되었다.
특히 飛白에도 뛰어나 二王이후의 第一人者라 하였다. 그의 書는 특히 양무제(梁武帝)가 높이 평가하여 ‘筆力 경준(勁駿)
하고 정신과 기법이 融和되고 있다.
技法은 杜度보다, 美麗함은 최식(崔寔, 崔子玉의 아들)보다 뛰어났다. 아니 종요(鍾繇)와 겨루어도 難兄難弟가 아닐지!’
라고 하였다.
그가 동양태수(東陽太守)로 있을 무렵 百濟의 使臣이 와서 ‘海外에까지 評이 높은 그대의 글씨를 얻고 싶다’고 간청하자
20장을 써 주고 金貨 數百萬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古今書評>에는 ‘소자운의 글씨는 상림(上林, 苑)의 봄에 핀 꽃과 같아서 遠近 어디를 바라보아도 피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라 하였다.
고풍(古風)보다는 ‘技法과 美麗’를 내세운 평들로 미루어보면 그의 글씨는 화려한 서풍이었던 것 같다.
唐太宗의 희지전론(羲之傳論)에 鐘張, 二王과 竝稱될 정도로 六朝後期의 大家였던듯 하므로 본고에서 가리키는 사람은
蕭子雲이 아닐까 생각된다.
* 양흔(羊欣, 370-442) : 字는 敬元이며 泰山南城人으로 관직은 中散大夫, 義興太守에 이르렀다. 楷行草書에 능하고
왕희지가 吳興太守로 있을 때, 아버지 양부의(羊不疑)가 오정(烏程)의 守令으로 있었으므로 獻之와 親交가 있었다.
그래서 양흔은 12세에 왕헌지에게서 필법을 전수받았다.
宋의 文帝가 ‘짐(朕)의 書도 헌지에 뒤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자랑하였더니 評者가 天性은 양흔보다 勝하지만 技法은
양흔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고 하고, 또 당시 공림지(孔琳之), 구도호(丘道濩)와 비견되었지만 法에 맞고 技에
뛰어난 점으로는 양흔이 위라고 평가되었다. 반면 華奢한 무드를 缺하였다는 評도 있으나 왕헌지의 서풍을 계승한
名筆이었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 代祀綿遠(대사면원) : 시대를 멀리 隔함. 대(代)는 世, 사(祀)는 년(年). 즉 年代를 말하며 世를 代로 쓴 것은
唐太宗 ‘世民’의 諱를 피한 것이다. 면원(綿遠)은 멀리 이어지다라는 뜻이다.
* 名氏滋繁(명씨자번) : 사람이 많은 것.
* 籍甚不渝(적심불투) : 명성이 의연히 쇠퇴하지 낳음.
* 人亡業顯(인망업현) : 사람이 死後에 그 眞價가 세상에 나타남.
* 憑附增價(빙부증가) : 다른 사람의 명성에 의지하여 자기의 聲價를 높임.
* 身謝道衰(신사도쇠) : ‘謝’는 여기서 세상을 떠남을 뜻함. ‘道’는 ‘身’에 대해 聲價를 가리킴.
* 緘賞(함상) : 緘封(秘藏)하여 매완(賣玩)하는 것.
* 紛紜(분운) : 분명하지 않음.
* 覶縷(나루) : 자세히 말하는 모양. 次序를 알기 어려움을 말함.
* 糜蠹(미두) : ‘糜’는 진무르는 것. ‘蠹’는 좀이 먹는 것. 따라서 書蹟이 습기로 해지거나 좀이나 벌레의 해를 입는 것.
* 搜秘將盡(수비장진) : 아무리 찾아보아도 거의 눈에 띠지 않음.
* 見存(견존) : 現存.
* 抑揚(억양) : 억압칭양(抑壓稱揚)의 약칭. 여기는 작품의 우열을 논하는 것.
且六文之作, 肇自軒轅, 八體之興, 始於嬴正. 其來尙矣, 厥用斯弘, 但今古不同, 姸質懸隔. 旣非所習, 又亦略諸.
復有龍蛇雲露之流, 龜鶴花英之類, 乍圖眞於率爾, 或寫瑞於當年. 巧涉丹靑, 工虧翰墨. 異夫楷式, 非所詳焉.
<轅(원): 끌채 원. 嬴(영): 찰 영.>
그리고 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황제 때에 비롯되어 팔체(八體)의 서체가 통용된 것은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때이다.
문자의 역사는 길고, 그 용도는 광범하여 졌다.
다만 지금과 옛날은 (書體도 書風도) 달라져서 질박(質朴)에서 화미(華美)에로 현격히 달라졌을 뿐 아니라 나의 습득
(習得)한 바도 아니므로 이것 역시 여기서는 생략한다.
또 (이밖에도) 용서(龍書), 사서(蛇書), 운서(雲書), 수로전(垂露篆), 구서(龜書), 학두서(鶴頭書), 화서(花書), 영지서
(英之書)가 있었으나 이것들은 순간적 인상(印象)으로 대상물을 본 따 그리거나 혹은 그 때 그때의 서상(瑞祥)을 묘사한
것들이다.
그 기교는 (문자를 썼다기보다는)그림에 가까워서 한묵(翰墨)으로서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서(書)의 규범에 맞지 않은 것이므로 (이것들도 또한)상세히 논하지 않기로 한다.
* 六文(육문) : 六書를 가리킨다. 육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문자의 구성 원리인 지사 상형 회의 형성과
운용원리인 전주 가차를 말한다. 또한 王莽의 新나라 시대의 통해한 서체로 고문(古文) 기자(奇字) 전서(篆書) 좌서(左書)
무전(繆篆) 조충서(鳥虫書)를 말한다.
* 軒轅(헌원) : <史記> 五帝本紀에 ‘黃帝, 姓은 公孫, 名은 軒轅’이라고 있는 전설의 帝王. 그리고 <說文>序에는 黃帝의
史官인 蒼頡이 鳥獸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 八體(팔체) : <說文>序에 진대에는 대전(大篆), 소전(小篆), 각부(刻符), 충서(蟲書). 모인(摹印), 서서(署書),
수서(殳書), 예서(隸書)의 팔체가 있었다고 한다,
* 嬴正(영정) : 진시황을 말한다.
* 姸質(연질) : 곱고 아름다우며 질박함을 말한다.
* 龍蛇雲露之流, 龜鶴花英之類(용사운로지류 구학화영지류) : 자연현상이나 동식물을 象形하는 이른바 繪畵的 요소가
강한 古來로 전설로 전해지는 字體들이다.
* 圖眞(도진) : 회화의 종류
* 寫瑞(사서) : 祥瑞로운 물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것도 회화에 가깝다.
* 丹靑(단청) : 회화를 말함. 단(丹)이나 청(靑)은 모두 회구(繪具)이다.
* 楷式(해식) : 書의 法則, 規範을 말한다.
* 非所詳焉(비소상언) : 서법의 바른 종지(宗旨)은 아니므로 상세히 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代傳羲之與子敬筆勢論十章, 文鄙理疎, 意乖言拙. 詳其旨趣, 殊非右軍. 且右軍位重才高, 調淸詞雅, 聲塵未泯, 翰櫝仍存.
觀夫致一書陳一事, 造次之際, 稽古斯在. 豈有貽謀令嗣, 道叶義方, 章則頓虧, 一至於此. 又云, 與張伯英同學, 斯乃更彰
虛誕. 若指漢末伯英, 時代全不相接. 必有晉人同號, 史傳何其寂廖. 非訓非經, 宜從棄擇.
<鄙(비): 인색할 비, 어리석을 비. 泯(민): 망할 민. 貽(이): 끼칠 이, 줄 이. 嗣(사): 이을 사. 叶(협): 화합할 협.>
세간에 전해지고 있는 왕희지가 아들 헌지(獻之, 子敬)에게 주었다고 하는 《필세론(筆勢論)》 십장(十章)이란 것은
문장은 俗되고 論理는 조잡하며 의미는 통하지 않고 표현도 拙하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건데 결코 왕희지의 저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왕희지는 (당시의 사대부 중에서도)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재능도 풍부하며 풍격은 뛰어나게 맑고 文辭도
바르며 우아하여 名聲이 쇠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筆蹟도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왕희지는 한 통의 편지를 쓰거나 어떠한 일을 기술함에 있어서 비록 황급히 썼을 경우에라도 고인의 도에 근거를 두는
신중성을 잃지 않았다.
하물며 왕희지가 서법에 대한 소론(所論)을 아들에게 적어 남김에 있어 도리(道理)에 바르고 규범에는 들어맞으면서도
문장의 (이토록 淸雅함을)결함이 이럴 수가 있겠는가.
또 《필세론》에는 왕희지가 장지(張芝)와 함께 서(書)를 배웠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다시 한번 터무니없는 말임을
들어낸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백영(伯英)을 한(漢)나라 말의 장백영(張伯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왕희지가 활약했던 東晋과는) 시대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당연히 동진 사람에 동성동명(同姓同名)의 사람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는데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사서(史書)에 (장지 이름이)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원래 필세론 따위는) 규범으로 삼을 만한 정통의 저작이 아니므로 (믿을 것이 못된다) 따라서 백영동학(伯英同學)이란
것도 버리기로 한다.
* 文鄙理疎(문비이소) : 문장이 저속하고 논리가 조잡함.
* 聲塵未泯(성진미민) : 성진(聲塵)은 성망(聲望)이나 평판(評判)을 가리키니, 즉 성망이 쇠퇴하지 않음을 말한다.
* 翰櫝(한독): 편지. 櫝은 牘의 가차자.
* 致一書陳一事(치일서진일사) : 한 장의 척독을 쓰고 한 가지 일에 대한 개진.
* 造次(조차) : 황급히
* 稽古斯在(계고사재) : 고인의 도를 더듬어 생각함.
* 貽謀令嗣(이모령사) : 령사(令嗣)는 자손. 즉 자손(여기서는 아들 獻之)을 위한 도모(圖謀).
* 道叶義方(도협의방) : 도(道)는 서(書)의 도. 의(義)는 정(正), 방(方)은 규구(規矩). 도는 바른 규범에 들어맞음.
* 虛誕(허탄) : 진실이 아님. 허(虛)는 무(無), 탄(誕)은 함부로 큰소리쳐서 사람을 속임.
왕희지의 난정서에 ‘고지일사생위허탄(固知一死生爲虛誕; 본디 生과 死를 同一한 것으로 함이 허황된 것임을 알다)’
라고 보임.
* 史傳何其寂廖(사전하기적료) : 역사의 기록에 아무것도 언급도지 않았음은 이상하다. 하시(何其)는 강조어.
적료(寂廖)는 《老子》 第二十五章에 보이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조리가 맞지 않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 非訓非經(비훈비경) : 바른 교의(敎義)는 아님.
* 棄擇(기택) : 나쁜 점을 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