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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은 경서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김태환 목사님께서 영적 분별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큰 은혜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기드온 찬양대의 정말 찬양 너무나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지난 주간 영락교회 선교대회에 오셔서 찬양을 해주실 때 참 은혜롭고 감동스러운데 오늘 교회에서 하시니까 더욱 은혜롭고 정말 참 감동적이네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다고 했는데 정말 여러분들을 찬양하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정말 저 죽어가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소서 하늘로부터 찬양의 은혜가 쭉 임하는 그런 느낌을 가졌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우리 파리선한장로교회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조금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01년에 총회에서 파송을 받아서 프랑스 개혁교단과의 선교 교류 사역을 위해서 파송받아 나와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 성원용 목사님이나 또 한 분 안태영 목사님은 각각 따로 사역을 하고 있었고 저도 알지 못했었는데 제가 선교사 불어 학교를 들어갔는데 마스팔레조에 있었죠. 그때 거기 한국 사람이 두 분이 계신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 했더니만 한 분이 바로 성원용 목사님이시고 다른 한 분이 바로 지금 둘러지에서 사역하고 계신 안태영 목사님이십니다.
저희들 셋이 만나서 천상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같이 식사를 나누고 또 점심식사 시간이 길잖아요 뭐 해요? 앉아서 수다 떨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제 안태영 목사님은 리옹에서 사역을 마치시고 파리로 오셔서 계시면서 다음 사역에 무엇을 할까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계셨고, 송은영 목사님은 당시 파리 장로교회에 부목사님으로 계시면서 미래 선교 사역에 대한 어떤 비전과 꿈을 갖고 계셨죠?
그러나 저도 그렇고 처음 와서 두려움도 있었고 그것도 모두가 다 불완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야 우리가 이렇게 점심시간에 수다만 떨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예배실에서 점심식사 얼른 마치고 기도를 했습니다. 각각의 기도의 제목을 내어놓고 또 미래에 대한 선교의 사역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한 해 동안 한 학기죠.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한 학기를 마쳤는데 끝날 때쯤 되었을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안태영 목사님은 차드로 선교 사역을 가기로 확정이 되었고 우리 성원용 목사님은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하는 꿈을 가지고 그렇게 시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한 장로교회가 금년이 10월 첫째 주일 22주년이죠. 22년 전에 그렇게 선한 장로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여러분들의 교회의 이 초석에 이 바탕에는 그래요. 우리 성 목사님의 큰 기도가 있었지만 거기에 함께했던 안태영 목사님이나 저의 기도도 함께 깔려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어떨까요?
정말 참 그때 처음 시작할 때 염려와 걱정을 생각한다면 정말 참 놀라운 오늘 우리 파리선한 장로교회의 모습입니다. 저는 그리고 제 사역의 기간에 맞춰서 한국으로 돌아갔고요. 그리고 물론 그 기간 또 그 이후에도 종종 몇 번 제가 파리에 와서 우리 선한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마는 한 번도 설교를 한 적이 없었죠.
사실은 제가 떠날 때 마지막으로 선한장로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20여 년에 세월이 지난 20여는 안 됐겠죠? 하여간 이 기간 동안에 우리 파리 선한장로교 선한 장로교회는 이렇게 성장하고 성숙해서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랑스러운 우리 파리 선한 장로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파리선한장로교회의 이 큰 힘과 기도와 그 능력이 우리 파리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이 교회에만 머물지 아니하고 세계를 향해서 더욱더 펼쳐져 나가는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비록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이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사실 제가 이번에 조금 어렵지는 않지만 좀 새로운 선택을 하나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성원용 목사님이 그 사이에 위그노 연구원을 세우셔서 세계적으로 많은 사역을 지금 하고 계신데 여기에서 이 귀한 사역들을 좀 함께 같이 도우면서 할 수 없겠느냐 말씀하시는데 제가 참 이제 은퇴까지 다 한 마당에서 뭘 할까 그랬는데 또 그래도 정말 우리 서원교회 시작할 때 함께 기도했던 그 마음을 가지고 그럼 함께 같이 하겠다 그렇게 해서 사실 저로서는 또 굉장히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고 또 굉장히 한편에서는 염려스럽기도 한 새로운 사역의 길을 또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선택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선택이 되시기를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다 선택이 있습니다. 선택이 참 중요하죠. 오늘의 나는 어제 나의 선택의 결과라고 말하듯이 오늘 나의 선택이 바로 내일 나의 삶을 좌우합니다. 좋은 선택은 행복한 삶을 가져오고 잘못된 선택은 불행한 삶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과 같이 이렇게 가치관에 혼란이 있고 어지러운 세대 속에서 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신앙적인 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일기 예보가 굉장히 정확합니다만 전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어서 그냥 나갔다가 낮에 비가 오면 굉장히 당혹스럽죠. 또 낮에 갑자기 온도가 올라가서 더워지면은 입었던 옷을 처리하기가 곤란해서 어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 하필이면 제가 신방하는 가정 수가 많이 있으면 더 힘들고 어렵곤 했었죠.
가끔 미용사의 말 한마디에 머리 형태를 그만 잘못 선택을 해서 이발을 하고 나면 최소한 한 주간, 때로는 두세 주간을 여러 사람들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하는 말을 들어야 하곤 하죠.
우리의 삶에서 선택 하나를 잘못했다가 큰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야 뭐 우리의 삶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심각한 선택이 있죠. 학생들이 진로나 전공 학교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들, 이런 선택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더욱 심각한 선택은 결혼, 배우자의 선택이 잘못되면 일생을 힘들게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의 고민 간단한 영상은 하나 준비했습니다. 원래는 12가지 질문인데 7가지만 뽑았습니다.
a와 b 중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전체 퍼센트도 보여줍니다.
여러분도 한번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까 선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상 보여줄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오늘 a와 b 두 가지 선택 중에 한 가지를 골라야 합니다. 12개의 선택을 보고 5초 안에 결정을 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통계가 공개됩니다.
여러분의 선택과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한번 비교해 보세요. 준비되셨나요? 시작합니다. 10살 나이로만 남은 평생 살기, 60세의 나이로만 남은 평생 살기,
사랑하는 일하면서 월 100만 원 벌기, 혐오하는 일하면서 월 천만 원 벌기,
오늘 바로 로또 당첨되기 수명 2배 더 살기
책 읽지 않고 평생 살기, 음악 듣지 않고 평생 살기,
친구 대신 내가 누명 쓰고 감옥 가기, 나 대신 친구가 누명 쓰고 감옥 가기
정말 나쁜 일 하고 칭찬받기 정말 좋은 일 하고 비난받기
세상을 구했는데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구하면서 죽고 영웅이 된다.
여러분의 선택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얼마나 많이 달랐나요?
어떠세요? 여러분은 어떤 선택이 좀 어렵다고 생각되십니까? 가만히 보니까 역시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은 돈인가 봐요.
그렇죠 사랑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월 100만 원 받기 아니 좀 싫더라도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월 천만 원을 받는다면 그걸 하겠다 많잖아요. 그런 선택이 수명 두 배를 늘려서 더 더 살기, 그것보다는 아이고 당장 오늘 로또 당첨되는 것이 더 좋다 그런 게 굉장히 선택이 높은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는 평생 살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많은데, 음악을 듣지 않고는 평생 살 수 없다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선택이 참 어렵다고 하는 것, 그것은 왜 어렵습니까?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를 분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 분별력 세상에서도 존경받는 사람은 능력이나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분별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 잘 분별하고 나서야 할 자리와 나서지 않아야 할 자리를 구별할 줄 알고, 함께할 사람과 멀리할 사람을 분별할 줄 알고,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을지 잘 판단하는 사람,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는 말씀은 영적 분별력입니다. 학벌이나 재능이나 외모나 언변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영적 분별력이 있는 신앙인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신앙의 좋은 본을 보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신앙이 좋다 그런 말로 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쉽게 신앙이 좋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영적 분별력이란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히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세대를 잘 분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분별력으로 이 시대를 잘 분별하여서 세상 풍조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허망한 삶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 12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온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곧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의 시각, 세상의 지식으로 이 시대를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오늘의 세상과 우리의 삶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그냥 분별력이 아니라 영적 분별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 무엇인가요?
죄 가운데서의 구원이죠. 아니 이 땅에서의 삶입니다. 우리의 재능과 삶의 모든 여건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함께 살아간 여러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인데, 세상의 시각, 세상의 지식으로 보아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사할 줄도 모르고, 그 은혜를 올바로 누릴 줄도 모릅니다. 아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지 아니하고 그저 자기 욕심, 자기 편함을 위해서만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 복을 주었는데도 복을 복으로 알지 못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영적 분별력을 무능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로서 은혜로 주신 이 모든 은혜를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할까, 어떻게 감사할까 분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복과 은혜들을 잘 누리고 또 나누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하여서 자기가 하는 것이 마치 절대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주장만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치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전에 사울이었을 때 바로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는 모든 율법을 잘 배워서 알았던 율법학자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믿었고, 복음을 부정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했고, 성도들을 잡아가고 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죠.
사탄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 오직 하나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아니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을 거짓 영으로 미혹하여서 영적 분별력에 혼란을 주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여서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까지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으니라. 눈에 보이는 신앙생활의 모습, 그걸로 다 믿지 말라.
열심히 있다고 말 잘한다고 유명하다고 그거 다 믿지 말고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말을 해도 삶에서 거룩의 열매가 없다면 그건 거짓의 영이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혼란한 시대를 분별하고 지혜롭게 살려면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혼란한 시대에 살았던 에스겔 선지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특별히 제사장들이 거룩한 것, 정한 것을 잘 구별하여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서 44장 23절 말씀입니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은 백성들이 거룩함을 분별할 수 있도록 늘 가르치라고 하신 것처럼, 사실 오늘 우리들이야말로 이 혼란한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여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영적 분별력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 분별력은 이 시대를 또한 분별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사람을 분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 아닙니까? 관계가 좋으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때는 힘들고 불행한 삶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살면 살수록 알 것 같은데 모르겠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정말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참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믿었는데 뜻밖의 배신으로 아픔을 겪는가 하면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신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문에서 함께 교독했던 것처럼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은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한 삶이 되고 불행한 삶이 된다 그런 말씀이잖아요.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은 인간관계 곧 사람들을 잘 분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할 것인지 분별하라는 것이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한다.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 그들을 잘 분별해서 함께 하지 말라. 친구로도 삼지 말고 결혼 상대로도 사업의 동력자로도 그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활하고 이중적인 사람을 피하고 내게 은혜와 지혜와 영적 격려를 주는 믿음의 사람을 잘 분별하여 함께하는 자가 복 있는 자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보면요. 같은 밭에도 자라는 곡식들의 곡식만이 아니라 그 가운데 가라지가 섞여 자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죠. 오늘 이 세상뿐만 아니라 아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도 사실 악인과 의인이 섞여 있습니다. 진짜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거짓으로 섬기는 자가 섞여 있기 때문에 분별할 줄 잘 알아야 합니다.
가롯유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12 제자 중에 가장 똑똑한 제자였잖아요. 논리가 정연하고 좋은 말만 골라서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리는 여인을 향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아니 이 좋은 향유를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 이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
한 여인이 예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여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자.
그 향유 허비하지 말고 같이 있게 쓰라.
그렇게 충고하는 가롯 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중성을 보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세우고 어떤 사람을 격려하고 어떤 사람과 동력자가 되어야 할지 분별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초대 교회로서 너무나도 놀랍고 감사할 만한 거액의 헌금을 사도들 앞에 내어놓은 헌신을 한 부부입니다. 온 교회가 그들에게 감사하고 높여줄 만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영적 분별력으로 그들의 잘못된 동기와 이중성을 보았습니다. 성령을 속이는 그들의 그 거짓 헌신을 꾸짖자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고, 초대교회의 영적 질서가 바르게 세워졌습니다.
그래요. 헌금을 드린다고 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아닐 수 있습니다. 헌신한다고 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수고한다고 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봉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믿음이 좋다 가도 어느 한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보세요. 여러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놀라워하실 만큼의 신앙 고백을 했던 베드로.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죠.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 같은 대사도도 이렇게 순간적으로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별하지 못하여서 사탄의 도구라고까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다면 오늘 우리야 오죽할까요?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건 한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할 때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서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오히려 자기 공로를 내세우고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이 제일인 듯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여서 주님과 성도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하여 잘 지켜갈 수 있을까요?
흔히들 다양한 경험을 가질 때 분별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죠 인생의 경험이 많은 분들의 지혜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경험했다고 모두가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경험에서 아무 지혜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요. 아니 오히려 상처만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험을 영적으로 잘 해석할 때 영적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며,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육에 속한 사람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많은 일을 겪고도 그 경험에서 영적으로 깨닫은 깨달음이 없습니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도 그저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해석을 하니까 영적 분별력을 얻지 못하고 똑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되죠. 특히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시는 일들을 인간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영적 무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험하게 하시는 모든 사건들, 아니 만나는 모든 사람들, 때로는 내가 읽는 책이나 내가 보는 영화, 내가 보고 들을 모든 것들, 이 모든 경험들을 하나님의 지혜와 영적 깨달음으로 해석해 나갈 때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에게 상처와 비난, 후회와 원망으로 해석하여서 부정적인 생각,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에서 겪는 여러 경험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영적 깨달음으로 남아 영적 분별력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꼭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오늘 여러분께 세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 삶의 모든 경험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해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쓰라린 상처를 주는 일을 겪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해석하고 돌아볼 때 그것이 내게 영적 지혜로 남습니다. 시편 119편 99절 말씀에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라고 했습니다.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린다. 성경 그냥 한 번 읽고 지나가고 듣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겪은 일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겪든지 말씀을 생각하며 여기에도 분명히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을 거야 그러면서 말씀으로 문제 해결의 길을 찾고 주시는 말씀에 순종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적인 지식은 한순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별로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의 때를 이겨내는 지혜와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어떤 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하고 말씀대로 순종하겠다 다짐을 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성경책을 탁 펴고 손가락으로 성경 말씀 두 줄 하나 딱 짚어서 그 말씀이 사랑하라 그러면 오늘은 하루 종일 사랑하면서 살아야지 그러다가 또 딱 다른 그다음 날 딱 짚었더니 순종하라 그런 말씀이 짚히면 아 오늘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순종하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그래서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하고 그랬대요. 그런데 글쎄 어느 날은 하루 딱 짚었더니만 마태복음 27장 5절 말씀을 딱 짚은 거예요.
무슨 말씀인지 아세요? 유다가 나가서 스스로 목매여 죽으리라. 그러면 하나님 아무래도 그래도 내가 목매어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건 아무래도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를 하고 성경 말씀을 딱 짚었으니깐 누가복음 10장 37절 말씀이 짚었더래요.
무슨 말씀이에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
그래서 그럴 수는 없고, 그다음서부터는 그다음서부터는 이렇게 성경 말씀 묵상하는 것을 끝맞췄다고 하는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 13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영적 분별력은 그냥 단순히 철학이나 지식이나 명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주시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말씀에 순종할 때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을 들을 수 있게 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영적 분별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0절 말씀이죠.
주의 법도들을 지킴으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리다.
인생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갖춘 노인, 그 누구도 쉽게 이르기 어려운 높은 경제에 이르는 어르신들, 그들보다 더 온전한 지혜가 어디로부터 오는가 주의 법도를 지킴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는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영적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기도할 때 영적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지혜를 영적 분별력을 계속하여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회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다 지혜가 부족합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지혜 있는 척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구하면 뭐라고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아니하고 그 실패를 회복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실수하고 실패할 때 괜히 분노하고 짜증내고 화내고 원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그 실수를 만회하게 하시며 실패를 회복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계속하여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거룩한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 없지 않습니까? 오늘은 영적 분별력이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게 되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이럴 때 영적 분별력이 충만한 동력자가 곁에 있어서 나를 격려해주고 붙잡아주어서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나의 영적 분별력에 혼란이 왔을 때 나를 점검해주고 교정해주고 지혜를 공급해 주는 거룩한 공동체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진리의 영인지 미혹의 영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다고요 우리의 말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랑의 공동체, 주님의 몸된 교회, 서로 들어주고 받아주며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격려하고 지켜주고 붙잡아줄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인지 미혹의 영인지,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한 영적 분별력인지, 아니 어리석은 인간의 고집인지 나도 나를 모르기가 쉽습니다. 그러기에 교회 공동체 구역이나 각종 신도회나 여러 모임에서 서로 기도하며 격려하며 영적 분별력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유난히 자기 고집이 강하신 분들, 결코 자기 마음을 열지 않는 분들, 이런 분들은 영적 분별력을 공급받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목사님이나 리더나 동력자들의 격려를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강탁해서는 계속하여 영적 분별력을 지키지 못하고 인간적인 아집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사람은요 남의 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잘 분별하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막상 내 문제가 되면 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감정에 휩싸여서 판단을 그르치기가 쉽죠. 이럴 때 오히려 마음을 열고 영적 분별력이 있는 영적 지도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와 믿음의 기도팀을 이루어서 함께 기도하며 영적 분별력을 받으십시오. 그래야 영적 분별력을 예민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영적 분별력이 강해져야 그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든든히 서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파리 선한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이 벌써 9월 넷째 주일입니다. 여러분 새해를 시작하며 기도하며 다짐했던 일들 얼마나 이루셨나요? 어떻게 되셨나요? 내일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금년도 벌써 이제 석 달 남짓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만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의미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도록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오늘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