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위해 교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어김없이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성이, 윤호, 형준이, 민석이, 은서, 세연이 등 7~8명의 아이가 교문 앞에 서 있다가 나를 따라 상담실로 들어왔다. 간식을 먹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준비해서 나누어 주었다.
어린 시절 장을 보고 돌아오신 어머니를 기다려 장바구니 속 달곰한 과자를 찾아내던 내 내면의 아이도 지금 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기도 슬프기도 한 양가감정을 아릿하게 느끼면서, 함께하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하자고 외치고 있었다.
3년 전 작은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지원하여 가게 되었다. 전교 학생 수는 87명이었는데 그중에서 보육시설 아이들이 57명이나 되었다. 이들 중 많은 아이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우울증 및 무기력 등 심리치료와 상담이 필요했다. 이미 약물 치료를 하는 아이도 많았고, 수업 시간 도중 집중하지 않고 돌아다니는가 하면, 심지어는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하였다. 수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하여, 교과 선생님의 지원요청에 따라 교실로 달려가기도 하고,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달래서 어떻게든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6학년 학생 수는 총 3명이었다. 진로 상담 도중 “난 안 돼, 고아니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어떤 말로 위로가 될까? 어찌해야 할까? 아무런 대책이 서질 않았다. 학습은커녕 집중도 어렵고, 책을 보는 것 자체를 싫어하였다. 한글을 아직도 깨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초등학생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부모님이 안 계시니 전문기관에 연계 치료조차도 쉽지 않았다. 전문기관 연계는 부모님과 학생의 동의가 필요하였다. 방법은 없지만, 어떻게 하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다! 대행 스님의 ‘주인공 관하기’를 해보자!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11시 두 번, 불교방송에서 방송되는 〈다시 듣고 싶은 법문〉 중 대행 스님의 법문을 적어가면서 집중하여 들었다. 대행 스님의 법문 중에서 “아이들도 나와 인연이 있으니 가설이 되어 있지……. 교단에 설 때는 주인공에 관하고 하세요.” 하는 대목이 떠올랐다.
“주인공! 말 안 듣고 힘들게 하는 것도 거기에서 나왔으니 착하고 바르게 하는 것도 너 아니냐. 정○우 주인공, 다음에는 잘해보자.”라고 관하였다.
“우리 아이들도 나와 둘이 아닌 주인공! 건강하게, 밝고 성실하게 성장하는 것도 주인공 너만이 이끌 수 있어.”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내었다.
그날도 변함없이 아침 수업 시작 전부터 상담실에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20명 넘게 들어와 앉았다. 아이들에게 음료와 과자를 접시에 담아 앉아서 먹도록 하고 〈괜찮아〉라는 동요를 들려주었다.
서로 붙잡고, 장난치고 떠들고 하던 아이들이, 이게 웬일인가? 하나둘씩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것이 아닌가?
놀라웠다. 그렇게 하라고 말한 적 없었는데…….
이 상황은 무엇이 불러온 것일까? 아이들이 한두 명씩 치유가 되고 정서가 안정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불보살님의 무량가피가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은 많이 안정적으로 되어 가고 있었는데, 나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되어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겨울 방학에 들어가는 날, 마지막 파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헤어졌다. 보육시설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기 몇 분 전에 급하게 두 아이가 찾아왔다. 어린 마음이지만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을까? 차를 놓칠까 봐 안아 주지도 못한 채 급하게 손을 흔들어 보냈던 기억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인연의 흐름 속에서 만난 아이들, 따뜻한 가정적 보호가 그리운 아이들…….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을 열심히 관하고, 현실적으로 되돌려 놓으면서 지켜보는 수행을 하기로 했다. 대행 스님의 둘 아닌 도리의 법문에 의지하여 “괜찮아, 잘될 거야. 주인공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관하고 또 관하였다.
아이들을 잊지 않고 후원하고,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내 자식 아닌 게 하나도 없고 내 부모 아닌 게 하나도 없고, 내 형제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주인공을 관하고 체험하고 가는 가운데 공한 이치를 알게 되고, 나타나는 경계를 재료로 삼아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수행을 하십시오. 내 주인공에 되돌려 놔도 부모 자식이 가설이 되어서 서로가 밝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습니다.”
—대행 스님의 법문 중에서
백현순
서원고등학교 전문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