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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서로 존댓말을 쓰면 차별과 억압이 사라진다고?
입력 2023.07.07
서로 존댓말을 쓰자는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의 '상호존중 캠페인'.
‘서로 존대하자’는 캠페인이 사회 곳곳에서 조용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같은 조직에서도 나이와 직급에 상관 없이 서로 존댓말을 쓰자는 것이죠. 부장과 과장과 평사원이 서로 존댓말을 쓴다면 서로 존중하는 조직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가 초등학교까지 이어져 친구들끼리 “철수님, 주공아파트 1단지에 사시죠? 아침에 같이 학교 갈래요?”라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서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지식산업사)을 냈던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였습니다. 처음에 그 책을 보고 ‘한국학 전공자가 사회경제학 얘기를 할 리 없을텐데’라며 의아해했던 생각이 납니다.
인터뷰 때 최 교수는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는 차별과 억압의 근본적 원인은 ‘존댓말’과 ‘반말’로 이루어진 ‘존비어(尊卑語) 체계’에 있습니다. 이것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어 특유의 ‘존댓말과 반말’ 시스템이 한국 사회를 유사(類似) 신분관계로 뒤틀리게 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것이죠. 이게 무슨 말인가 좀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야말로 장유유서의 아름다운 예절을 굳건히 지켜주는 우리말만의 장점이라고 배웠고, 실제로 그렇게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던가요?
그러나 최 교수는 단호하게 ‘그게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존비어 체계를 갖춘 언어를 사용하는 까닭에 모든 사물을 ‘위와 아래’ ‘존귀함과 비천함’의 관계로 바라보려는 무의식적인 인지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등과 호혜보다는 차별과 억압 관계를 훨씬 더 당연하고 편안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죠.”
예컨대 어느 한 조직에서 장(長)에게 존댓말을 쓰고 높일 경우,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로부터 하대(下待)를 당하며 차별받는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수평적 방식의 소통’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만들고, 완고한 형식적 권위주의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늦게 입대한 24세 이등병은 21세 일등병에게 ‘야, 밥 먹자’고 하고 싶지만, 실제 표현은 항상 “김 일병님, 식사 하십시오”가 된다는 것이죠. 말과 표현이 달라지는 ‘생각과 소통의 이중성’이 일상화된다는 얘깁니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만드는 이와 같은 언어 속에서 자유로운 토론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하급자가 제대로 된 토론을 하고 싶을 때는 “계급장 떼고 해 보자”는 거친 말이 나오게 됩니다. 자유 토론을 제안했던 상급자도 불리한 분위기에선 “막 가자는 거지요”란 식으로 겁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언어체계는 전통적 신분사회에선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 민주화로 접어든 사회에선 중요한 걸림돌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존비어 체계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존대’를 받거나 ‘하대’를 당하는 극단적인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존대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도한 권력욕에 빠져 엄청난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죠.”
최 교수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미 1970년대부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우군’은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학자들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아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 책에 각주를 붙일 수조차 없었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사람들은 “(존비어야말로) 우리를 예절바르게 해 주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비어 체계가 없이 호칭에 대한 높임말만 있는 서구 많은 나라들의 경우 결코 예절이 문란한 사회가 아닌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절의 근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는 데 있습니다. 존비어 중에서 ‘반말’을 없애고 서로를 높이고 존중하는 체계로 바꿔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언어에 의한 형식적 위계질서를 벗어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할 때, 차별과 억압을 벗어난 수평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주 친하다고 생각하는 후배, 또는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의 경우 저는 제가 반말을 쓰는 것이 친근감의 표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론 먼저 존댓말을 써 보고 반응을 살펴봐야겠습니다. “후배님, 기사를 이렇게밖에 쓰지 못하신다니 정말 능력이 안 되는 겁니까?”(사실 저희 부서에 이런 말을 할 만한 후배는 존재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 본 것입니다) 아, 이렇게 말하면 내용상 갑질이 될 테니 곤란하겠군요.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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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01:36:12
나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댓말 반말을 없애야 한다고 보았고 기회있을 때마다 이야기 해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이른바 어른, 선배, 상급자 앞에서 주눅든 모습으로 쭈뼛쭈뼛하며 악수조차 두 손 모으고 황공해서 몸둘 바를 모르는 자세로 하는 것을 보면서 서구의 당당하고 자유로운 젊은이들과 비교가 되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의 정신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사고를 지배하고 규정한다. 한국어의 구조적인 존대어 체계는 억압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편리한 장치이다. 그런 체계에 물들어서 우리는 상대를 자신과 동등하고 자유로운 인격체로 존중하며 대우하지 못하고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군림하거나 혹은 반대로 떠받들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대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존대어 대신 사람을 어떻게 동등하게 존중해야 하는지 다시 배워야 한다. 젊은이건 늙은이건 그것을 배우지 못하여, 자기 집단에 소속하지 않은 타인은 함부로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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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6:05:43
예를 들어 조선식 한국어에 얼마나 지나친 상하 의식이 배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이른바 압존법이라는 것이 있다. 압존법은 화자와 청자 그리고 대화에 등장하는 제3자 사이의 상하 위계 질서를 말에 엄격하게 나타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손자가 할아버지 앞에서 당연히 존대어를 써야 한다. 그런데 그 뿐 아니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지칭할 때는 낮춘 말인 '아비'나 '어미'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존대어 체계를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은 집에서 어른들에게서 배운 대로만,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대로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기에 근래까지 압존법을 철저하게 지켰고 지금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압존법이 희미해졌다. 나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2023.07.07 01:38:10
나는 서로 존댓말을 쓰는 것보다는 서로 정중하지만 반말을 쓰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고 본다. 당장에는 매우 부자연스럽겠지만 반말을 쓰는 것이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한다.
2023.07.07 03:48:58
나는 집사람한테 보통 존댓말을 쓴다.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하는데, 한국식의 존댓말이 없다는 것이지 뚜렷하게 존대표현이 있다. 40 년 가까이 미국인들과 일하면서 영어를 써서 잘 안다. 나는 내 아이들과도 영어로만 소통한다. 상하에 따른 표현의 차이는 인간사회에서 불가결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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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5:47:43
언어의 세부적인 점이 다른 언어와 똑같이 일치하는 건 불가능. 내 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한 것이지 세부적인 표현방법은 언어마다 달라서 어느 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23.07.07 15:14:32
영어 불어 독어 등 유럽어에 있는 것은 정중한 표현 방식과 친밀한 표현 방식(기타 비속어적 표현은 논외로 하고)이지 우리 같은 존대어 체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을 알현하는 것 같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예외가 아닌 일상적 삶에서 사용되는 것은 정중한 표현과 친밀한 표현이지 우리식으로 '상하' 의식에 기반한 복잡하고도 억압적인 존대어 체계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서구어에서 언어가 섬세하게 발달해 있는 불어의 경우에도 친밀하면 tu 이고 거리가 있는 사이 혹은 굳이 정중한 표현을 쓰야 할 경우에는 vous입니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은 vous이지만 할아버지에게도 tu이고 신에게도 tu입니다. 이건 한국어의 상하의식과 억압적 존비어 체계가 몸에 배어 있는 감각으로는 이해가 어렵다 할 것입니다.
2023.07.07 13:07:54
우국지사 : 문화권에 녹아든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 이민온 한국인 중에서는 소위 미국주류사회에 완전히 진입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은퇴해서 주로 집에 있지만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상대는 거의 대부분 미국인. 최교수는 언어의 기능을 지나치게 확대한 것처럼 보입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개념과 의견소통 도구입니다. 언어가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언어가 오히려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고등동물들은 뚜렷한 상하관게가 존재합니다. 언어는 단지 그 걸 반영하는 것뿐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존댓말을 들자면 독일어는 확실하게 존댓말이 있습니다. 다른 여러 언어에도 한국어식의 존대표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23.07.07 11:37:29
영어권도 사회적 위계질서가 있지만 한국과 같이 소통 자체가 막히는 존비어 체계는 없어요. 최 교수가 말하는건 더 심연적인 문제입니다. 40년 가까이 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40년동안 그 문화권에 녹아들어 살아본 경험은 있으신지.
2023.07.07 09:40:46
존대말, 하대말 다 쓸데가 있다. 하대한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다.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존대말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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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1:35:13
이러니까 OO 소리를 듣는거임. 반대로 당신과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당신은 일단 반말부터 하고 들어가나?
2023.07.07 13:37:01
나름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존댓말이 없는 중국은 왜 그 모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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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1:55:56
연장자가 하는 '반말'의 장점은 아래 사람을 가족관계처럼 친밀한 사이로 만들어 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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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1:48:44
존대말 쓰면서 뒤통수치며 인격 더러운 사람보다 차라리 하대하면서 맘 터놓고 대하는 자가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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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4:26:54
하대 하면서 뒤통수 갈기는 사람과, 상대?하면서 너그러운 사람은 어떤가요?
2023.07.07 11:44:49
추가로 한마디 더 하자면 존비어 체계가 있어서 한국인들이 다른나라사람들보다 더 예의가 바르나? 누가 누구를 향한 예의를 말하는건가? 유교적 장유유서 질서와 사회적 직급에 대한 아랫 사람의 윗 사람에 대한 과거 조선사회식 굴종을 예의라고 말하는것인가? 인간과 인간 상호 간의 예의가 과연 한국이 외국보다 낫다는 근거가 있나? 전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존비어는 곧 예의범절이라는 미개한 인식이 깔려 있으니, 하극상이라도 당해서 자기가 '아랫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에게 반말이라도 들으면 어쩔 줄을 모르고 개망신을 당하는게 한국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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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1:50:45
친구끼리 존대말 써봐라. 그게 뭔 친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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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1:52:50
어떤 집단에서 나이차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존대말 쓰면 절대 형-아우 관계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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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1:34:10
그래서 그냥 한국어를 없애고 영어 공용어 얘기도 나왔지. 외국 살다온 사람은 한국 언어체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 존비어의 문제점은 내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직급과 나이를 들이밀어서 나를 함부로 하대하는 인간들이 많다는거임. 그리고 존비어가 없는 언어인 영어, 중국어는 그 사람의 태도로 예의범절을 가른다. 영어에선 polite와 unpolite로 발음의 뉘앙스, 인토네이션, 태도 등을 종합 판단함. 존대말도 싸가지 없이 할 수 있다 충분히. 그래서 서양인들은 태도 전반에 호감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한다. 그게 자연스럽게 체화돼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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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8:48:33
최봉영 교수 주장이 일리는 있어요. 조선시대에 양반들은 부부간에도 존대말을 썼어요. 그러니 서로 존경했지요. 그러나 상놈들은 부부간에 반말을 썼어요. 그러니 서로 막대했지요. 그러니 평등하게 대하려면 존대말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해보면 거부감이 듭니다. 학생이 선생이나 교수에게 반말을 한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한다? 사원이 사장에게 반말을 한다? 9급 공무원이 대통령에게 반말을 한다? 이병이 병장에게 반말을 한다? 당해본 사람은 화가 나서 못 참지요. 한국어의 존대법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겁니다. 즉 한국사회와 한국어의 존대법은 함께 하는 겁니다. 말로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자고 한다면 "양존"을 하는 게 좋습니다. 서로가 상대를 존대하는 겁니다. 그러면 평등하면서도 존경하는 마음가짐이 되지요. 그래서 양반 부부는 서로 존대말을 썼던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끼리 서로 존대말 쓰게 하면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줄어듭니다. 양존을 하는 게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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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7 15:21:30
반말은 단순 명료하고.. 존대말은 까다롭고 너무 미묘하다. 통일할거면 차라리 반말로 통일해라. 대통령한테 '석열아 밥먹었냐'라고 묻는 비서관의 목소리에 흥분안할 자신 있으면 통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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