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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8-27절. 불신자 핍박에 대한 자세. 요약설교
1.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 불신자들에게 핍박받는 데 대한 말씀입니다.
2. 성도들이 세상에서 영생의 복음을 전해주고, 온갖 선한 일을 해주니까, 불신자들에게 사랑과 대접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반드시 예수 믿는 사람이 악을 행해서가 아니라, 마귀의 충동질 때문입니다.
3. 원래 마귀는 하나님과 성도를 미워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를 섬기는 불신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고, 아주 원수 같이 싫어하기도 합니다.
4. 우리나라도 원래 전통적으로 무속과 유교와 불교를 숭상하였는데, 기독교가 들어오니까 서양 귀신이 들어온다고 얼마나 핍박을 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박해를 하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의 정서가 아직도 무속과 유교와 불교 쪽에 가까워, 기독교를 괜히 미워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5. 이것은,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근본적으로 마귀가 예수님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마귀 귀신을 숭배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6. 우리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바로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미워할 것과 그것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신자 핍박에 대한 성도의 자세>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므로, 세상 사람들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18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 <세상>이란 단어( κόσμος)는 ‘질서, 세계, 우주, 세상일’(order, the world, universe; worldly affairs)을 뜻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the inhabitants of the world)을 뜻합니다.
본 절에서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미워하다>는 단어(μισέω)는 ‘미워하다, 싫어하다, 적게 사랑하다, 낮게 평가하다 (to hate, detest, love less, esteem less)는 뜻입니다.
<알라>는 단어(γινώσκετε)의 원형(γινώσκω)은 ’알게 되다, 인정하다, 인식하다 (to come to know, recognize, perceive)는 뜻이고, 특별히 경험적으로 아는 것(to know, especially through personal experience)을 가리키고, 남녀가 이성적으로 서로 친밀하게 아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sexual intimacy)
2. ‘세상’이란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불신세계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서로 미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 안에는 ‘서로 사랑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박해하여 죽음에 넘긴 것처럼, 세상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0:19-20.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고린도후서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9절.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였을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1. <사랑하였을>이란 말에서 ‘사랑하다’는 단어(φιλέω)는 ‘친구처럼 사랑하다, 애정을 갖고 대하다, 소중히 여기다’(to love of friendship, regard with affection, cherish)는 뜻입니다.
<택함을 입은>이란 동사(ἐξελεξάμην)는 ‘내가 택했다’(I chose)는 말이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서 택한’ 자란 뜻입니다.
‘선택하다’란 이 동사의 원형( ἐκλέγομαι)은 ‘고르다, 선택하다, 선임하다, 나를 위해서 뽑다’( to select, choose, elect, pick out for myself)는 뜻입니다.
<미워하느니라>는 단어(μισεῖ)는 현재형으로서(hates)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워한다’는 단어(μισέω)는 ‘미워하다, 싫어하다, 덜 사랑하다, 낮게 평가하다’(to hate, detest, love less, esteem less)는 뜻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싫어하고, 미워하다, 낮게 평가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하여도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1서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이 불신자들에게 당하는 박해를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2. 세상 불신자들은 성도들을 미워합니다.
요한복음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한 유명한 강해설교가(F. B. Meyer. 1847–1929년)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이방인과 같이 되어버렸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고 해습니다.
2. 세상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즉, 세상 불신자가 성도들과 교회를 미워하면, 그것은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은, 반드시 성도들이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예수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불신 가족이나 불신 친구들이 성도들을 미워하면,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마귀 역사구나’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3. 물론, 불신 가족들이 성도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외관상 이유는 있습니다.
(1) 즉, 집에 왔는데, 밥을 차려주지 않고 교회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혹은, 출근하려는데, 옷이 준비가 잘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들은 집안 살림도 엉망으로 하고, 맨날 교회에만 처박혀 있어. 예수 믿으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그럴러면 아예 교회 가서 살고 집에 오지 말어.“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꼭 밥이나 옷 때문이 아니라, 교회 다니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입니다.
화를 내는 이유가 반드시 밥 때문이나 옷 때문이라면, 좋게 말 할 수도 있는데, 속을 긁는 것은 마귀가 예수 믿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2) 정말 같이 예수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교회 일로(주님을 위한 일로) 바쁜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게 부탁할 것입니다.
”어이 주일학교 교사 할라, 찬양대 할라,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나 밥도 차려주고, 옷도 준비해주면, 그렇지 않아도 예쁜 각시가, 얼마나 더 예쁠까?“
(3) 아 얼마나 서로 비교됩니까?
똑같이 밥 차려주고, 옷 준비해달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하나는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심하게 미워하고, 하나는 예수 믿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다릅니다.
말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 남편은 눈을 부릅뜨고, 협박을 하면서, 뭐라도 집어 던질 태세입니다.
그러나, 집사 남편은 뒤로 와서 어께를 감싸 안고,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을 하는 것이지요.
(4) 어떤 때는 수요 밤 예배에 갔다가 왔더니, 남편이 노발대발 욕을 합니다.
“이 여편네가 예수에 미쳤나? 애기들 먹을 것도 안 주고, 내일 학교 갈 준비도 안 해주고. 예수한테 미쳤구만.”
평상시에는 맨날 술 먹고 밤늦게 들어오던 사람이, 오늘따라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일찍 집에 들어와서, 마누라한테 화풀이를 합니다.
이럴 때, 예수님 잘 믿는 남편 같으면, 그러지 않습니다.
“어이, 교회 가서 은혜 많이 받았는가? 교회가 좋지? 정말 세상 불신자들과 직장 생활하려니까, 참 마음이 맞지 않구만. 나도 이제는 회식이고 뭐고 일찍 와서, 당신 따라 교회나 갈까봐”
“난 자네가 하나님 말씀에 은혜 받으면서 신앙생활 하는 모습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우리 계장 마누라와 선배 마누라도 바람나서 순천 다니다가, 부부 싸움을 심하게 한 모양이야.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얼마나 예쁜지..”
4. 불신자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고, 신자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1)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불신자들은 모두 악한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요한일서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
(2)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귀 따라서 살고, 욕심 따라서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2:2-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3) 불신자들은 땅의 일을 추구하지만, 예수 믿는 성도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3:18-20.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
(4) 불신자와 신자는 근본적으로 조화될 수 없습니다.
마치 빛과 어두움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불신자와 함께 사는 것은, 무한히 사랑을 베푸는 삶이지, 서로 조화되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성도들에게 사랑과 도움을 받으면서도, 어쩔 때는 핍박을 합니다.
(5)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1서 3: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5.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세상을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1)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느니라.
(2)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3)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4) 교회를 가까이하면, 세상이 멀어지고, 세상을 가까이하면 교회가 멀어집니다.
세상 친구들과 계모임에 자주 가면, 교회 성도들과 멀어지고, 교회 모임에 자주 가다 보면, 세상 친구들과 자연히 멀어집니다.
세상 연속극에 재미 붙이거나, 화투에 재미 붙이면, 교회 모임에서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새벽예배 가고, 밤 예배 가면, 연속극이나 화투에서 멀어집니다.
기도 생활과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면, 세상 연애하는 것이 싫어집니다.
그러나, 세상 연애를 좋아하면, 기도가 막히고, 말씀의 맛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모든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102장- 주 예수 보다더 귀한 것은 없네>
20-25.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한 것 같이 성도들도 핍박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0절.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1. <박해하다>란 단어( διώκω)는 ‘쫓아내다, 추격하다, 박해하다’(to put to flight, pursue, persecute)는 뜻입니다.
<지키다>는 단어(τηρέω)는 ‘지키다, 준수하다, 지켜보다’(keep, guard, observe, watch over)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박해한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사람도 있었듯이, 성도들도 박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도들의 말을 지켜 준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2.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다”는 말씀은 요한복음 13장 16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에서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 이유는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는데, 성도들도 불신자들이 박해하고 심지어 죽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불신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바울이 전도할 때,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가두기도 했고, 로마 황제는 베드로나 바울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21:17-19.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21절.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1. <이름>이란 단어(ὄνομα)는 ‘이름 성격, 명성, 평판’(name, character, fame, reputation) 등을 뜻하는데, ‘모든 다름 사람들과 구별된 어떤 사람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 name; the manifestation or revelation of someone's character, i.e. as distinguishing them from all others)을 가리킵니다.
<나를 보내신 이>란 말(τὸν πέμψαντά με)에서 ‘보낸다”는 단어(πέμπω)는 ‘보낸다, 파송한다, 발송한다, 가게 한다’ (to send, dispatch, transmit, permit to go, put forth)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나를 보내신 이’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알지 못한다>란 말(οὐκ οἴδασιν 에서 ‘알다’는 단어(οἶδα)는 ‘알다, 주의하다, 생각하다, 인식하다, 기억하다, 어떤 감각을 통해 알다, 조사하다, 검사하다’(be aware, behold, consider, know, remember, appreciate: to perceive by any of the senses: to inspect, examine)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주의하고, 분별하고, 발견하는 것’(universally, to perceive, notice, discern, discover)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οἶδα)는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안다’는 단어(γινώσκω)와는 다르고, ‘분별하지’(discern) 못한다는 뜻입니다.
2. 세상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박해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성도들이 불신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이유는 “예수님 이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불신 유대인이었을 때, 그토록 마귀처럼 지독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던 이유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핍박을 감소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22절.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1. <죄>란 단어(ἁμαρτία)는 ‘죄, 실패, 죄책, 결점’ (a sin, failure, guilt, a fault)을 가리키는데, 원래 ‘목적에서 빗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윤리적인 데 사용되어서 ‘죄악된 행동, 죄, 죄책’ (prop: missing the mark; hence: guilt, sin, in an ethical sense sinful deed)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핑게>라는 단어(πρόφασις)는 ‘핑게, 구실, 변명’ (a pretense, a pretext, an excuse)을 의미합니다.
2. 여기서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와 마귀를 따라서 성도들을 미워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불신자들이 마지막 심판 때, 예수를 몰라서 못 믿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이미 예수님과 전도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세상 끝까지 선포된 현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어떤 분은 오늘날같이 거리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때도 거리 전도를 통해서 큰 교회를 이룩한 분(주*민 목사, 세계로 **교회)도 있습니다. .
23절.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1. <미워하다>는 단어(μισέω)는 ‘미워하다, 싫어하다, 적게 사랑하다, 낮게 평가하다’(to hate, detest, love less, esteem less)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을 미워하는 불신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고, 성도들을 미워하는 불신자를 예수님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만왕 되신 주님을 미워한 것이므로 심판 때 큰 벌을 받을 죄입니다.
24절.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1. <일>이라는 단어(τὰ ἔργα)는 정관사와 복수명사(the works)로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지 못한 메시야로서의 표적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죄>란 단어(ἁμαρτία)는 ‘죄, 실패, 죄책, 결점’ (a sin, failure, guilt, a fault)을 가리키는데, 원래 ‘목적에서 빗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윤리적인 데 사용되어서 ‘죄악된 행동, 죄, 죄책’ (prop: missing the mark; hence: guilt, sin, in an ethical sense sinful deed)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보았고>란 단어(ἑωράκασιν)는 현재완료형으로서 ‘지금까지 계속 보아왔다’는 뜻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표적들을 계속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본다’는 단어(ὁράω)는 ‘본다, 인식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경험하다, 분별하다, 알다“(to see, perceive, attend to, look upon, experience, perceive, discern, beware)는 뜻으로서, 가끔 비유적으로는 마음으로 보고, 내적인 영적 통찰력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often with metaphorical meaning: "to see with the mind" i.e. spiritually see, i.e. perceive with inward spiritual perception).
<미워했다>는 단어(μεμισήκασιν)는 현재 완료형으로 계속 미워해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μισέω)는 ‘미워하다, 싫어하다, 적게 사랑하다, 낮게 평가하다’(to hate, detest, love less, esteem less)는 뜻입니다.
2. 내가 아무도 못 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아무도 못 한 일을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은 표적들을 행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에는 7대 표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로 포도주 만든 표적 (요 2:7-10)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요 4:46-54)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한 표적(요 5:1-9)
오병이어의 표적 (요 6:9-13)
물 위로 걸으신 표적 (요 6:18-21)
나면서 장님 된 자를 고치신 표적 (요 9:1-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요 11:1-44)
요한복음에 이런 표적들을 기록한 목적은 이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30-31).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요 5:47)
3.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불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았고), 또 그가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서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워했습니다.
이처럼 불신자들 마음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어서 예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요한1서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5절.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1. <이유 없이>란 단어(δωρεάν)는 ‘선물로, 목적 없이, 거저 선물로, 댓가 없이, 이유 없이, 거저’( as a gift, to no purpose, as a free gift, without payment, without a cause, freely)란 뜻입니다.
그래서 ‘은혜로’란 말(as gratis: gratuitously)과 동일하게 쓰였습니다.
<미워했다>는 단어(Ἐμίσησά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단호하게 배격하면서 미워한 것을 가리킵니다.
‘미워하다’는 이 단어(μισέω)는 ‘미워하다, 싫어하다, 적게 사랑하다, 낮게 평가하다’(to hate, detest, love less, esteem less)는 뜻입니다.
2.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율법’이란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고(요 101:34, 12:34), 이 성경 인용은 시편 35:19와 69: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35:19. 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 하게 하소서.
시편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3.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불신자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유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이유 없이 예수 믿는 자를 미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유 없이 사랑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즉, <이유 없이>란 단어(δωρεάν)는 ‘선물로, 목적 없이, 거저 선물로, 댓가 없이, 이유 없이, 거저’( as a gift, to no purpose, as a free gift, without payment, without a cause, freely)란 뜻이어서, ‘은혜로’란 말(as gratis: gratuitously)과 동일하게 쓰였습니다.
4.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아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우리를 죄악과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려고 자발적으로 죽음을 자초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하시니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의 손으로 죽였습니다.
5. 그 후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 황제에게 박해를 당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왕으로 섬기고, 성경 말씀을 법으로 따르며, 로마 황제를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로마법에 따르지 않는다고 모진 박해를 당했습니다.
네로 황제를 비롯하여, 도미시안, 트라쟌, 마커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머스 세베루스, 막시미너스, 데시우스, 발레리안, 오렐리안, 디오클레시안 등, 10대 황제의 박해는 대단히 무서운 박해였습니다.
6. 로마 황제의 박해 중에 폴리캅의 순교는 유명합니다.
폴리캅(Polycarp, AD 69-156)은 사도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 사도 요한이 근 100세가 다 되어서, 흰 머리에 강대상을 붙들고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폴리캅을 서머나 교회의 목사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면서, 원형 경기장에서 폴리캅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관료가 폴리캅에게 “어르신, 이 지역의 훌륭한 지도자신 줄 잘 압니다. 저도 어르신을 죽이고 싶지 않으니, 제발 총독 앞에서 한 번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십시오. 그리고, 가셔서 얼마든지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자, 폴리캅은 “나는 86년 동안 주님을 섬기며 살아왔다. 그 동안 주님은 한 번도 나에게 잘못하신 일이 없다. 그런데, 어찌 이제 와서 나를 구원해주신 나의 왕을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폴리캅은 화형을 당했습니다.
7.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제사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이조 시대에는 유교를 숭배했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유교의 가장 중요한 예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제사를 안 지냄으로써, 무지막지한 핍박을 받고 순교한 성도들도 많았습니다.
(1) 전북 진산 출신으로 예수님을 믿은 <윤지충>(尹持忠, 1759-1791년생, 정약용의 고종사촌)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25살 때,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범우>(金範禹, 1751~1787년)라는 분에게 전도를 받고, 기독교 서적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 내종형 정약전(丁若銓, 1758~1816년)의 인도로 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친 권씨가 돌아가셨을 때, 상복을 입고 호곡은 하였으나, 제사는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당시 좌의정인 <채제공>이 잡아서 고문하고 처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신앙을 지키고 순교했습니다.
당시 전라감사인 <정민시>가 정조 임금님께 올린 공문에, 윤지충의 신앙고백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5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으니, 만일 우리 부모가 위패 속에 참말로 계신다면, 우리 신자들도 다 그것을 마땅히 공경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패는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이 나무 위패는 나의 출생과 양육에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영혼이 한 번 이 세상에서 떠났으면, 이런 유형의 물건에 붙어있을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의 생명은 위대하고 존경할 바이나, 목수가 만들고 꾸민 물건을 어찌 부모로 삼으며, 어찌 부모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까? 나무로 만든 위패는 이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므로, 내 양심에 굴종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이로 인하여 귀관이 내 양반 계급을 박탈할지라도, 나는 하나님께 득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손으로 이 나무 위패를 땅에 묻었습니다. 죽은 사람과 그 나무 위패에게 술과 먹을 것을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바인즉,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은 또한 그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 영혼이 술과 음식으로 생양되지 못하였거늘, 어찌 죽은 다음의 영혼이 저런 것들로써 생양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께 아무리 효성 있는 사람이라도, 주무실 때는 음식을 드리지 않으니, 잠자는 동안은 음식 먹을 만한 때가 아닌 연고입니다. 같은 이유에 의하여, 사람이 죽음의 긴 잠에 들어 있을 때 음식을 드림은 더구나 헛된 일이요, 거짓 행습입니다.
그런즉, 죽은 부모님을 자식이 어찌 헛된 일과 거짓 행습으로 섬길 수 있으리이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이 핍박한 것처럼, 성도들도 핍박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조들처럼,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83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6-27절. 아무리 핍박이 심해도, 성령님께서 증인되게 하실 것이니, 핍박 속에서도 고난을 잘 참으면, 장차 상이 크다는 내용입니다.
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1. <보혜사>란 단어(παράκλητος)는 ‘부름을 받고 와서 도와주는 분’ (called to one's aid)이란 의미로서, ‘변호사, 중재자, 위로자, 도우미, 보혜사’(an advocate, intercessor, a consoler, comforter, helper, Paraclete)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특별히 올바른 재판을 하도록 만들어줄 법적인 변호사를 가리킵니다. (properly, a legal advocate who makes the right judgment).
<나오시는>이란 단어(ἐκπορεύ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 항상 나오고 계시는 것을 가리키며,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결과가 되시는 성령님과의 연관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come out from" links the source to the outcome and influence on the object).
<진리의 영>이란 말(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에서 ‘진리’란 단어(ἀλήθεια)는 ‘진실, 진리’(truth)를 가리키며, 특별히 ‘도덕적인 면에서의 진실, 사람에게 계시된 신적인 진리’(truth in the moral sphere, divine truth revealed to man)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소위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이 성경 진리를 벗어나 신비주의로 흐르고, 성경 말씀을 벗어난 사적인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증언할 것이요>란 말(ἐκεῖνος μαρτυρήσει περὶ ἐμοῦ)은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서, 소위 ‘그리스도 중심의 성령론’(Christo-centric Pneumatology)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증언하다’는 단어(μαρτυρέω)는 ‘증언하다, 입증하다, 증거를 제시하다, 좋은 보고를 해주다’(to bear witness, testify, give evidence, give a good repor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세상의 불신자들은 이유 없이 예수님과 성도들을 미워하지만, 그러나 도우미(Helper)로서 성령님이 오셔서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불신자 속에 역사하는 영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이지만, 성도들 속에 역사하시는 영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성령’이란 말씀을 토대로 동방교회(Greek Orthodox)은 니케아 회의(Council of Nicaea, Concilium Nicaenum Primum. 325년~) 성령발출논쟁에서 성령은 오직 성부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서방교회(Roman Catholic Church)는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일로 세계교회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크게 나누어졌습니다.
동방교회는 러시아 쪽으로 가서 동방정교회(Greek Oorthdox Church)가 되었고, 서방교회는 유럽과 영국 쪽으로 갔고,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이후로 미국과 한국에까지 왔습니다.
4.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로 성령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행하여 전도했고, 오늘날도 주의 종들이 성령을 힘입어서 전도와 교회 설립을 하고 있습니다.
5. 진리의 성령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27절.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1. <처음부터>(ἀπ’ ἀρχῆς)에서 ‘처음’이란 단어( ἀρχή)는 ‘처음, 시작, 통치’(beginning, origin, rule)등을 가리킵니다.
<증언하느니라>는 단어(μαρτυρεῖτε)는 현재형이기 때문에, 한글개역성경이 맞습니다.
어떤 영어성경이나 한글성경에도 미래형으로 번역했으나, 우리 개역성경이 옳습니다.
즉 증언한다는 현재형은 우리 성도들이 항상 언제나 예수님께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증언할 것이라(will testify)거나 증언해야 한다(must testify)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이나 오늘날 우리도 언제나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언한다’는 단어(μαρτυρέω)는 ‘‘증언하다, 입증하다, 증거를 제시하다, 좋은 보고를 해주다’(to bear witness, testify, give evidence, give a good report)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을 확증하는 것’(to affirm that one has seen or heard or experienced something)이나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을 통해서 가르침 받아 아는 것’(that he knows it because taught by divine revelation or inspiration)을 가리키며, ‘고난과 죽음으로써 신앙 고백한 진리를 입증하는 것’(to attest the truth of the profession by his sufferings and death)을 가리킵니다.
2.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성령님만 예수님을 증언하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성도들도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 받고,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을 증언했고, 그러면서 성령님도 증언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30-3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3. 이처럼 성령님이 증언해주시기 때문에, 핍박을 당할 때,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말할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전도해보시면, 성령님이 말할 것 주신다는 약속을 확실히 체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8-20.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4.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5.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할 때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6. 그리스도인으로 고난과 핍박을 받은 성도의 자손들은 다 잘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성도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리고, 약속하신 큰 상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