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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마25:31-46절) 양과 염소 일본(日本)의 어느 심리학자(心理學者)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자(著者)는 ‘일본인들은 남에게 욕먹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고 했습니다.
즉 자기 어머니는 외국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자녀들을 키워놓고 간다고 미뤘는데, 자녀들이 다 자랐을 때, 어머니는 중풍이 와서 외국 여행을 갈 수 없었고, 또 책 읽는 것을 좋아하셔서 책을 읽어드리려고 해도 치매가 와서 알아듣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心理學)자는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성은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직장을 그만 두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고급 승용차에 모시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명품 선물을 사드리기도 하고, 많은 돈을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 있지만, 그것을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했으면, 그것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루하루 먹을 것이 없어서 미래를 걱정하며, 난리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며, 병에 걸려 죽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과 유대인들을 향해서 천국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유대인들을 향해서“너희에게 천국이 가까이 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아주 가까운 곳에 어마어마한 천국이 축복을 잔뜩 싣고 와서 그것을 다 풀어놓으려고 대기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병드는 것이나, 전쟁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쳐들어가든지, 아니면 천국에 들어오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은 다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모든 복(福)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데 대기(待期)중에 있으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우리는 천국 안으로 뛰어들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은 다른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름이 나는 열매를 가지고 짜야 하는 것입니다. 즉 깨를 짜면 참기름이 나오듯, 하나님의 말씀을 짜면, 성령의 기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돈 버는 재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인생을 사는 것이 큰 달란트입니다. 즉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달란트를 받은 것입니다.
거기서 말씀과 기도로 부흥을 일으키고. 사람의 영혼(靈魂)을 건지는 것이 달란트입니다. 즉 할머니도 전도 하시고, 어머니도 전도하세요. 이것이 달란트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천국 비유(比喩)의 가장 중요한 진리(眞理)를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比喩)는 결국 하나님의 종들 중에는 천국(天國)을 만지작그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천국(天國)을 영원히 소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양과 염소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과 염소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이 비유(比喩)를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Ⅰ.두 부류의 사람들 예수님은 제자나, 믿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천국에 몰려가서 천국의 놀라운 능력과 축복으로 일을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도 마귀(魔鬼)가 있는 곳으로 쫓겨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님과 그들을 위하여 예비(預備)된 천국(天國)에 들어가서 모든 축복(祝福)을 자기의 것으로 다 가지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백화점에는 손님에게 물건들을 소개해주고 팔기도 하고 계산도 하는 많은 점원(店員)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집에 돌아갈 때에는 따로 직원용(直員用)문으로 나가는데, 거기서 검사(檢査)를 해서 백화점에 있는 물건을 하나도 집으로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합니다.
만일 그들이 몰래 팔다 남은 명품(名品)을 자기 가방에 넣어가지고 가다가 걸리면 경찰에 붙들려가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천국(天國)에는 이 세상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명품(名品)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설교(說敎)도 있고, 병(病)낫게 하는 능력(能力)도 있고, 상담(商談)이나, 선교(宣敎)와 구제(救濟)하는 일들도 있고, 음악(音樂)이나, 미술(美術)이나, 건축(建築)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어떤 목회자는 수십만 명의 교인들을 모아서 목회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크리스털(crystal)같이 생긴 예배당을 지어서 예배드리기도 하고, 유명한 책을 써서 수백만 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best seller)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능력을 행한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두 부류(浮流)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즉 어떤 사람은 이런 능력을 행하고, 인정(認定)을 받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서 마귀(魔鬼)와 그 종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지옥(地獄)에 들어가는 종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명한 목사(牧師)였고, 설교자(說敎者)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엄청난 예산(豫算)을 주물럭거렸고, 수십만 명 앞에서 설교(說敎)하고, 높은 사람을 만나고, 최고의 호텔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종업원(從業員)이지, 천국의 자녀(子女)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천국의 그 많은 축복(祝福)들을 취급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지옥(地獄)으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어떤 사람은, 천국의 축복을 취급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능히 천국(天國)에 들어가서 모든 축복(祝福)과 능력(能力)을 다 가지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옥(地獄)에 갈 사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그 유명한 사람들이 지옥(地獄)가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틀림없이 지옥(地獄)행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자신은 천국(天國)행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天國)을 취급만 하고, 지옥(地獄)에 가느냐? 아니면 실제로 자신이 천국(天國)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기준에 맞아야 최종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Ⅱ.예수님의 구분 25:31-33절)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예수님은 결국 천사들과 함께 이 세상에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온 세상 모든 민족들을 예수님 앞에 모으는데.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구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사람을 구분(區分)할 때, 국적(國籍)을 가지고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양과 염소는 매우 비슷한 짐승에 속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양과 염소를 잘 구별하지 않습니다. 즉 양과 염소는 덩치도 비슷하고. 먹는 것도 같이 풀을 먹고. 서로 잡아먹거나. 해치지도 않기 때문에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이나 염소는 성질은 서로 다르지만, 자기는 양인지. 염소인지. 잘 모르고 지낼 것입니다. 그래서 양도 염소 사이에 들어가서 지내기도 하고. 염소도 양들 사이에 들어가서 지내기도 하고. 같은 풀밭에서 풀을 뜯어 먹으면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도 양과 염소를 같이 취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때에는 염소와 양을 구별하지만. 구별하지 않고. 바칠 때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과 염소를 우리(우막)에 집어넣으면, 서로 섞여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牧者)는 양과 염소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곧 양의 털을 깎을 때입니다. 양(羊)은 그 털이 중요한 소득이지만, 염소는 젖이나, 고기가 중요한 소득인 것입니다.
양과 염소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염소는 수염이 달려 있고, 뿔이 뾰쭉하며, 성질이 급해서 잘 들이 받고 싸우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염소보다는 몰려서 다니는 것 같고, 좀 미련하고 순한 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한다는 것은 대충 보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정확하게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양과 비슷하게 생긴 염소가 있을 수 있고, 염소 비슷한 양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천국 가는 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은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때, 임금은 먼저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34절)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이고, 창세로부터 준비된 천국의 복을 상속할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망(亡)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얼마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었고, 누군가가 공격을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덤벼들어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서 손톱도 빠지고, 발톱도 빠지고, 이빨마저도 변하면서 전혀 싸울 줄 모르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세상에 보내면, 틀림없이 이리에게 물려 죽을 텐데, 그래도 살아남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목자(牧者)가 지팡이로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은 몸에 상처가 많습니다. 행동이 빠르지 못하고, 공격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몸도 물리고, 얼굴도 물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왕(王)은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렸습니다. 25:41절)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염소들은 예수를 믿고, 변하기는 변했습니다. 그들도 옛날에는 이리나 맹수였는데,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양과 비슷하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완전히 양(羊)으로 변하는 데는 실패(失敗)했습니다. 즉 이들 속에는 옛날의 혈기(血氣)와 자존심(自尊心)이 그대로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염소 뿔따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인(主人)이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또 기분이 나쁘면, 들이받기도 하고, 아주 높은 뾰족한 곳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과 염소는 워낙 비슷한데다가 같은 풀밭에서 풀을 뜯어 먹었기 때문에 같은 천국(天國)에 들어갈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Ⅲ.예수님의 판단 기준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구별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헌금(獻金)을 많이 냈고, 사람들에게 인정(認定)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느냐? 로 판단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행동으로는 양과 염소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수 믿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질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에 옮겨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에게 이렇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25:35-36절)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대개 사람들은 누군가가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주는 것은 아주 귀찮아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그것을 좋아할지도 모르고, 또 너무 형편없이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누군가가 옷이 떨어졌으면, 내 옷을 주고 싶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굉장히 성가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羊)들은 이런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배고프다고 하면, 잠시 있으라고 하면서 먹던 것을 주었고. 입을 것이 없다고 하면, 자기 입던 옷을 빌려주었습니다. 또 누군가가 병원(病院)에 입원했다고 하면. 가서 보고 위로하고, 감옥(監獄)에 갇혔다고 하면. 찾아가서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냥 마음이 안 되어서 형편이 닿는 대로 가서 봐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자신도 돌보아주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5:37-39절)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이 양들은 무엇인가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도와주어야 하는 줄 알았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잘해 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25:40절)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어떤 종교적(宗敎的)인 열심히나, 큰 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곧바로 이것을 행동에 옮겨버렸던 것입니다.
그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 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자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고, 그것을 곧바로 행동에 옮겨버립니다. 남들은 그것을 비웃을 수 있고, 창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염소들은 무엇인가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에 남들의 반응(反應)을 생각합니다. 즉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서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認定)해줄 때에만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남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나에게 이익(利益)이 되지 않을 때에는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염소들에게 이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25:42-43절)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염소들은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을 때 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사(行事)없이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면,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퍼주고, 옷이 떨어진 자들에게 옷을 나누어주는 행사(行事)를 합니다. 이들은 또 병원(病院)을 공식적(公式的)으로 방문하거나, 교도소도 공식적(公式的)으로 방문합니다.
즉 공식적(公式的)으로 방문해야 사진에도 찍히고, 나중에 남들이 가지 않았다고 비방(誹謗)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또 어디에 기름이 유출되었다고 하면 작업복을 입고, 거기에 가서 오래 오래 일하는 척하다가 기념 사진도 찍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가 돈 낸 것을 기억(記憶)하고 있었고, 방문(訪問)한 곳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충격적으로“너희는 내가 굶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화(禍)가 났습니다.‘우리가 언제 그런 일에 빠진 것이 있었습니까? 언제 우리가 주님이 굶고.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 간 적이 있었습니까?’하고 화(禍)를 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5:45절)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리니.” 예수님은 공식적(公式的)인 것을 좋아하시지 않고, 골치 아프게 복잡한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먼데 있는 사람을 도우면서 생색(生色)을 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형제나 자매 중. 하나에게 모르게 도와준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敎會)에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이 많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예수님이 많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모든 배고픈 자를 도울 수 없고, 헐벗은 자를 다 입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마음에 생각을 주십니다. 그에게 그냥 주고 싶은 것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反應)을 생각하고. 무슨 행사(行事)를 하려고 하고.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면, 염소인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을 하는 것이고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구약 기생(妓生)라합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이 쫓기는 것을 알고. 그냥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점탐꾼들에게 살려달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생각만 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살지 못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아들은 진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면서 말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인정받았습니다. 롯은 천사가 와서 소돔을 떠나라고 했을 때, 끌려서라도 나와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위들은 농담(弄談)으로 알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일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냥 단순해야 합니다. 즉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무조건 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자꾸 높은 것을 차지하려고 하고, 뾰족한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양(羊)으로 변하는데 실패(失敗)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도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이 어마어마한 교회를 맡아 가지고 있고. 엄청난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종업원(從業員)이지, 양(羊)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각이 나면. 곧바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실수도 하시고. 창피도 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완전한 신앙을 가지지 말고. 살아서 약동(躍動)하는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진리의 복음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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