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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백두대간 '두문동재 → 금대봉 → 수아밭령 → 비단봉 → 고위평탄면 → 매봉산 → 바람의 언덕 → 피재(삼수령)' 이 11km 구간을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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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봉
높이: 1,418m
위치: 강원도 태백시 삼수도삼수동
금대봉은 해발 1,418m로 정선군 고한리와 태백시 창죽동과 화전동 사이에 솟아 있다. 산중에는 주목을 비롯하여 각종 원시림이 빽빽이 차 있고 창죽마을의 진산이다.
이 산은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샘을 안고 있는 의미 깊은 산이다. 금대(金臺)란 말은 검대로 신(神)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금대라고 한다.
산상의 야생화원이라 불리는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이 있다. 정상은 그리 넓지 않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백두대간은 동쪽으로 급하게 꺾이며 매봉산을 향해 이어지며 낙동정맥의 산줄기와 만날 준비를 한다. - 한국의 산하
매봉산
높이: 1,303m
위치: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해발 1,330m의 높은 산으로 일명 매봉산이라고 부르는 천의봉은 하늘 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낙동강과 남한강의 근원이다.
영남에서 산을 거슬러 올라와 황지로 접어들면 북쪽에 가장 높이 솟은 산이 바라보이니 그 산이 천의봉(매봉산)이다.
천의봉은 하늘봉이요 하늘로 통하는 산봉우리요 하늘을 닮은 봉우리이다. 삼척시 하장면 쪽에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오면 가장 위쪽에 하늘 가까운 곳에 천의봉이 자리 잡고 있다.
옛사람들은 방향을 따져 북쪽을 위쪽으로 잡기보다 산과 물줄기를 떠져 아래와 위쪽을 정하였다. 그래서 방향으로는 북쪽에 있는 하장면이 물줄기 아래에 있기에 즉 천의봉 아래에 있기에 하장면이요, 상장면(현 태백시 황지, 상장동)은 물줄기 위쪽 천의봉 쪽에 있으니 상장면인 것이다.
천의봉 남쪽은 경사가 급하나 북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25년 전 한미재단에서 20만 평의 산지를 개간하여 전국 제일의 고랭지 채소 단지가 되었다. 산의 동쪽은 피재가 있고 그리로 35번 국도가 나 있다.
천의봉을 일명 매봉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황지동 대명 광업소가 있던 아래쪽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위쪽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다. 연일 정씨 묘로 금계포란 형국의 명당이라 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면 천의봉이 매(鷹)처럼 바라보이기에 매봉이라 부른 것이다.
금계포란은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의 명당인데 이럴 때 매나 수리가 이곳 명당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는 풍수 이치 때문에 인위적으로 천의봉이 매봉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매봉하면 될 것을 매봉산이라 불러 역전앞과 같은 뜻이 되고 말았다.
진주지에는 鷹幕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하는 말로, 옛날 이곳에서 매사냥하였다고도 한다. - 한국의 산하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 탐방은 150여 개 중 100여 산을 넘자 나머지 산은 교통편 부재로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인, 즉 산악회가 진행하는 산행은 고객을 끌어야 하는 만큼 유명하고 볼 게 많은, 또는 한참 유행인 인증을 받는 산 위주다. 따라서 남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 중 의식적으로 뒤로 미뤄둔 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등산객에게 인기가 없는 산이라 산악회도 거의 찾지 않아 탐방하지 못했다. 해서 거의 한 달 전에 각 안내 산악회를 돌아다니며 원하는 산이 있는지 뒤지는 게 일이다. 그러다 아직도 인기가 좋은 백두대간 종주 구간에 내가 원하는 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백두대간 종주는 특성상 고개와 고개를 무박 또는 당일에 다녀오는 산행이라 게시판에는 "대간 몇 구간 두문동재~건의령" 식으로 제목을 달아 그 구간 내에 어떤 산이 있는지, 어느 지역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하도 갈 만한 산이 없어 대간이나 달려볼까 하고 대간 산행 계획을 클릭하고 들어가 전체 산행 코스를 확인하고서야 그 중간에 내가 원하는 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서 그 이후에는 대간 산행도 꼼꼼히 살펴 코스 내에 원하는 산이 있으면 신청해 같이 다녔다. 물론 정 가고자 하는 산이 없으면 대간 구간도 동행했다.
애초 이번 토에 달리기로 한 백두대간 두문동재~건의령 구간은 2020년 11월 말 한 산악회 산행계획을 구경하다 발견했다. 코스가 궁금해 확인해보니 금대봉, 매봉산, 피재, 건의령이다. 금대봉은 이미 다녀와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매봉산 소개를 글을 보니 해발 1,303m라고. 나름 새해 첫 산행지로 괜찮아 보여 바로 신청했다. 원래 두문동재~건의령 구간은 1월 2일 진행하기로 계획한 산행이었다. 그런데 다들 새해 첫 일출에 관심이 쏠려 일출 산행으로 다 떠난 덕인지, 성원 미달로 취소돼 별수 없이 방장산을 다녀왔었다[산행기]. 그리고 그 산행이 1월 23일로 연기된 걸 보자마자 다시 신청했다. 물론 1월 23일도 딱히 갈 만한 산이 없어 고민 중이었다.
1월 14일까지 신청자가 10여 명에 불과해 다시 한번 Plan B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해서 이번에는 봉 감독이 달릴 예정인 백두대간 조침령~구룡령 구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14일 오후 산행 게시판에 카페 주인장이 ‘정상 출발 예정’이라는 글이 올라오며 신청자가 늘기 시작해 1월 15일 오후에 출발 최소 인원 20명을 넘었다. 해발 1,268m의 두문동재에서 시작해 해발 1,418m인 금대봉에서 올랐다가 이후 계속 하산하는 구간이라 초보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고, '바람의 언덕'과 '삼수령(三水嶺)' 등 관광명소에, 설산이 예상되는 만큼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등산방에 같이 가자고 공지를 올렸다. 그러자 먼저 진행, 이어 순희 누님, 지리 조, 영빈 순으로 신청해 나를 포함 총 5명이 같이 하기로 했다. 물론 산악회에서도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3개의 코스를 준비하고 있어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면 건의령까지 달리지 않고 B코스 날머리인 피재(삼수령)에서 중단할 예정이다.
늘 그랬듯이 이번 산행도 일주일 전부터 기상 예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1월 23일 열흘 전 당일 중기예보가 나타난 이후 변하지 않는 게 태백산 지역에 종일 눈 또는 비가 내린다는 거. 그래서 그런지 산행 신청자가 폭주하더니 산행 이틀 전에는 좌석을 모두 채우고 공석을 기다리는 대기자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이 산행 신청자는 눈이 내리면 버스뿐만 아니라 어떤 차도 두문동재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차가 두문동재로 못 올라가니 당연히 들머리가 두무동재가 아니라 그 아래 ‘두문동재 삼거리’에서 3.1km의 급경사 또는 ‘싸리재 삼거리’에서 3.3km의 급경사 길로 두문동재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고로 전체 일정 및 코스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코로나 시대에 5명이나 가는 이번 산행에 점심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폭설이 내리는 허허벌판에서 라면을 끓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포기했다. 그렇다고 어디 앉아서 뭘 먹을 만한 상황도 아니라, 각자 이동 중 먹을 수 있는 걸 싸 오기로 했다. 그리고 날이 좋다면 탁월한 조망을 보여주겠지만, 폭설이 예상되는 마당에 조망은 기대할 바가 아니라 가벼운 카메라를 가져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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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전날 저녁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6시 6분경이다. 동명탕 정류장에서 10분가량 기다려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갔다. 6시 27분 출발 지하철을 타고 등산객의 성지 신사역으로 향했다. 누님과 영빈은 앞차다. 책을 보다가 내릴 역을 놓치는 일이 없게 교통 앱에 목적지를 설정해 놓고 패드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6시 57분경 신사역에 도착해 승차장을 나가니 누님과 영빈이 기다리고 있었다.
셋이 산악회 버스가 정차할 4번 출구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지리는 산악회 버스 출발지인 시청역에서, 진행은 남편분이 데려다줄 거라, 버스와 진행을 기다렸다. 시청을 출발한 버스는 7시 4분에 신사역에 도착했다. 만원에, 다른 산악회에 비해 탑승 인원이 많은 버스라 공간이 부족한 만큼 짐칸에 배낭을 넣고 진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부분 등산객이 도착했는데, 진행이 나타나지 않아 초조해 시계를 보니 7시 5분이다. 10분까지 나타나면 되니 아직 시간은 많았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다른 등산객도 역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7분경 많이 본 차가 나타나고 진행이 내린다. 이번에도 멀리 떨어져서 기사분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으나 못 본 거 같다.
예정대로 7시 10분 출발한 버스는 죽전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운 후 실내등을 끄고 들머리인 두문동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8시 43분에 치악산 휴게소에 들렀다. 딱히 휴게소에 볼일은 없었으나, 예의상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란히 주차해 있는 각 산악회 버스를 보고 놀랐다. 코로나 시대 휴게소에서 볼 수 있는 산악회 버스는 많아야 3대였는데, 10대 가까운 버스라니. 해서 주차해 있는 버스 행렬을 사열하듯이 지나며 어느 산악회에서 어느 산을 가지는지 확인했다. 처음에 있는 우리는 금대봉, 마지막 버스는 백두대간, 나머지는 다 태백산이다. 그것도, 여러 산악회가 아니라, 소수의 산악회가 2호 차까지. 금대봉과 백두대간도 태백산 라인이지, 치악산 휴게소에서 쉬고 있는 모든 산악회 버스는 범 태백산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태백산 눈 소식에 많은 등산객이 몰린 거다!
오랜만에 보는 휴게소에 주차한 산악회 버스 행렬에 감격해 사진 몇 장 찍고, 이왕 내린 김에 화장실에 들른 후 영빈이 스패츠 사는 거 돕고 버스로 돌아갔다. 9시가 다 되어 버스는 휴게소를 출발했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준 후 이번 산행 코스 소개와 주의사항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동행했던 산악회와는 다른 모습이라 약간 당황했다. 어쨌든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에 감탄할 지경이었다. 산행 시간은 7시 20분 동안으로 예상보다 길었다. 들머리 도착 예정이 10시 40분, 18시 마감이다. B 코스 들머리인 피재(삼수령 휴게소) 마감은 16시! 피재에서 건의령까지 거리는 6km가 조금 넘지만 2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누님과 4시 이전에 피재에 도착해 모든 짐을 버스에 두고 건의령으로 달리는 방안에 관해 얘기하기도 했다.
가끔 짙은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10시 20분경 신고한을 지났다. 그런데 그때까지 비나 눈 어느 것도 내리지 않고, 날은 화창하기만 했다. 주변에 눈이 내린 흔적도 없고. 태백 지역 눈 소식에 대기자까지 생길 정도로 신청자가 집중했는데 눈이 없다니. 물론 휴게소를 떠나며 인솔 대장이 날이 따뜻하면 비가 올 수도 있어 고도가 높은 곳은 눈이 낮은 지역은 비가 내려 산행이 피곤할 수도 있고, 두문동재까지 버스가 못 올라갈 수도 있다고 언급했었다. 기대대로 버스는 삼거리에서 두문동재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두문동재까지 걸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반, 버스가 다닐 정도면 기대할 게 없다는 실망감 반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런데 100여 미터 올라가던 버스가 급경사에 정지하더니 갑자기 후진하기 시작했다. 버스 전면이 보이지 않아 어떤 상황인지 몰랐지만, 승객이 수군거리는 소리로는 위에 내려오는 차와 교행하기 위해서라고 해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50여 미터를 후진한 버스는 도로변에 주차했고, 인솔 대장은 등산객에게 등산 준비하고 내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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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린 등산객은 아무런 불평 없이 각자 등산 장비를 챙기며 두문동재를 걸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준비하는 중에 누님이 아침 대용으로 끓여 온 죽으로 간단히 요기했다. 그리고 10시 40분이 좀 안 된 시각에 버스가 주차한 지역을 떠나 1차 목표인 두문동재를 향해 출발했다. 정확히는 두문동재가 아니라 두문동재 삼거리~건의령 산행의 시작이다.
두문동재까지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얼거나 눈이 쌓인 게 아니라, 아이젠, 스패츠 둘 다 필요 없어 일단 착용 없이 시작했다. 급경사의 고개를 차가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를 닦은 만큼 길은 갈지자를 그리며 정상까지 오르고 있다. 말인 즉, 도로를 따라 오르는 것보다 등산객답게 가로질러 가는 게 힘은 들지만, 더 빠르고 짧다는 거다.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첫 번째 굽이를 만났다. 도로는 어느 정도 제설한 상태라 아이젠 없이 올라갈 수 있었으나, 가로지를 구간은 아주 당연히 눈이 쌓여 있고 구간구간 얼어 아이젠 없이는 갈 수 없어 보였다. 아이젠,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는 게 귀찮아 그냥 도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는데 지리가 이의를 제기해, 그나마 첫 번째 지름길은 아이젠 없이도 갈 수 있어 보여 그 길을 택했다.
갈지자 도로의 첫 굽이를 가로질러 도로에 도착해 보니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차량 통행이 잦았던 곳은 얼어 있었고. 저 아래 굽이를 도는 곳에는 우리에 앞서갔던 등산객 10여 명이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있었다. 해서 우리도 도로변에 자리 잡고 앉아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했다.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만나는 도로는 잠깐의 휴식처에 불과하고 우리가 가는 길은 직선의 등산로다! 역시 산꾼은 도로가 아닌 흙이나 바위를 밝고 올라야 한다. 그렇게 도로를 가로지르며 오르다가 '두문동재 380m'라고 표기한 이정표를 만났다. '갈지자의 도로를 따라가면 380m란 거니, 직선이면, 그 반 정도 거리가 아닐까?' 생각하며 계속 올랐다.
앞선 산꾼이 러셀하며 간 길을 따라 계속 오르니, 저 위로 도로와 하늘이 보였다. 두문동재다! 그 시각이 11시 21분이다. 산행 시작 기준 40분 정도 걸렸으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월아 네월아 했기에 실제 걸린 시간은 20분이 채 안 걸렸다. 물론 우리가 세월아 네월아 하는 동안 다른 등산객은 이미 두문동재를 지나 금대봉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장 늦다. 두문동재 도로에 11시 23분경 도착해,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며 3년 만에 온 두문동재 주변을 둘러봤다. 과거 어린이날 대덕산~금대봉 야생화 산행 시[산행기] 라면을 먹었던 함백산 휴게소는 문이 꽉 잠겨 있었다. 여기서 라면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일행이 모두 도착해 두문동재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당연히 처음 온 친구는 인증을 남겨야 했고, 몇 번 왔었다고 해도 수건을 들고 다시 (두문동재는 까만 소 인증 대상이 아니지만,)인증을 찍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 버스가 올라가지 못한다고 항복했을 때 ‘반대편으로 오르면 되지. 왜? 여기서 포기하냐?’고 우리끼리 뭐라고 했는데, 두문동재에 올라와서 보니 그 구간은 12월 23일부터 다음 해 3월 31일까지 통제하고 있어 아예 시도조차 불가능했다는 걸 알았다. 산악회가 우리보다 잘 알겠지! 어쨌든 인증을 남길 친구는 다 남기고 국립공원 탐방센터를 지나 금대봉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11시 38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수령 즉 피재까지 마감 시각이 4시에서 4시 30분으로, 건의령은 6시에서 6시 30분으로 변경된 거로 알고 있었다. 애초 두문동재에서 시작하기로 한 산행이 그 아래 삼거리에서 시작해 당연히 추가 시간이 주어진 거로 여겼다. 해서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탐방센터를 지나 금대봉을 향하자, 등산로에 쌓인 눈과 주변 나무의 상고대, 눈꽃에 정신이 팔린 일행이 사진 찍고 감상하느라 전혀 전진을 못 하고 있었다. 해서 전진을 독려하기 위해 가면 갈수록 더 좋으니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가자고 큰소리로 외쳐도 별 효과가 없었다. 건의령은 포기하더라도 피재까지는 산악회 마감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해 어르고 달래고, 토끼몰이까지 하며 길을 재촉했다. 그럼에도 각축전으로 유명한 사슴뿔 같은 가지에 쌓은 눈꽃, 상고대의 절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맛보고, 사진 찍느라 계속 지체했다.
11시 55분 대덕산 갈림길을 지나 500m 남은 금대봉 정상으로 갔다. 500m에 불과한 거리였으나 사진 찍고 감상하느라, 20분이 넘게 걸린 12시 19분에 도착했다. 문명의 이기가 즐비한 사이에 외롭게 서 있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이번 산행 첫 단체 인증을 남기고, 각자 인증을 남긴 후 12시 24분에 금대봉을 떠나 다음 목표인 비단봉으로 향했다. 당연히 비단봉으로 가며 하얀 눈 위에 천사의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놀며 쉬며 길을 가다가 뒤처진 일행을 기다리는 중에 친구가 간단하게 빨갱이 한잔하자는 제안에 "OK"하고 길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처음 생각은 둘이 간단하게 빨갱이 팩 하나만 마시고 길을 갈 생각이었는데, 그때 시각이 점심시간이라,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해서 사용할 일이 없을 거 같으나 그래도 몰라 들고 간 의자를 식탁 삼아 먹거리를 나열했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는데 누님을 필두로 뒤처진 일행이 나타났다. 폭설을 예상한 산행이라 라면을 끓일 수도 없고, 어디 앉을 만한 여유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먹거리가 부족할까 걱정했는데, 각자 싸 온 먹거리가 너무 많았다. 일단 남은 빨갱이 팩 하나로 건배 후 밥과 반찬, 김밥, 빵, 고구마, 과일 등을 배불리 먹었다. 물론 양이 너무 많아 대부분 과일과 갱 등 비상식은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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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0분가량 점심을 먹고 다시 비단봉을 향해 출발했다. 봉우리로 향하며, 여기까지 와서 신고한 단골집에 들러 저녁을 안 먹고 가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진행의 의견에 '4시까지 피재에 도착해 버스에 놓아둔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신고한으로 가자'는 얘기를 하며 갔다. 그런데 1,281m의 비단봉으로 가기 위해서 1,400m가 넘는 금대봉에서 내려가야 하는 건 맞는데 이건 너무 내려가고 있어, 약간 불안했다. 2시 2분에 정상을 900m 남겨둔 수아밭령에 닿았다. 트랭글 기준 해발 1,148m로 고개 가운데 고목이 서 있었다. 고개에서 봉우리까지 고도는 140여 미터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급경사의 작은 봉우리 하나를 오른 후 다시 급경사 비단봉에 올라야 해 이번 산행 최고 깔딱이었다. 와중에 싸락눈이 내려 시야는 10m 전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나 기온은 높아 땀이 났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경사의 비탈을 오르자, 일행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이 지체했다. 피재까지 5km가 넘게 남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마감 시각인 4시 30분까지 도착하기 어렵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사후에 안 사실이지만, 마감시각을 우리만 4시 30분으로 알고 있었지, 4시 마감이었다. 나도 인솔 대장이 30분 연장한다고 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어 긴가민가했다. 해서 잠정적으로 4시를 마감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해 여유 있게 귀가하기 위해서는 신고한에서 최소 7시 이전 차를 타야 했다. 해서 일단 내가 먼저 피재로 달려 버스에서 우리 짐을 다 뺀 이후 나머지 일행이 도착하는 대로 택시를 불러 신고한 낙원회관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 평소 페이스보다 좀 빠르게 피재를 향해 갔다. 먼저 2시 37분에 비단봉 정상에 도착했다. 물론 보이는 거라곤 눈구름밖에 없었다. 봉우리에서 내려와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목에 이정표는 없는데 갈림길이 나타났다. 산세로 봐서는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게 맞아 보이는데 직진하는 쪽에 등산객이 많이 다녀 눈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바로 폰의 등산 앱으로 길을 확인했으나,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해서 일단 앞선 등산객을 믿기로 하고 직진했다. 그 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 200여 미터 가니 길이 없어졌다. 거기서 등산 앱으로 확인하니 좀 전에 확인한 곳에서 우회전하는 게 맞다. 갈림길에서는 어느 방향이든지 조금 가야 GPS 신호를 받아 길을 표시하니 어쩔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백두대간 두문동재~피재 구간의 첫 번째 알바다! 다시 돌아와 우회전하며 보니 뒤에서 따라오는 우리 일행도 나와 같은 알바를 할 거 같아 나뭇가지를 주워 길이 아니라는 X 표시를 했다. 그리고 일행에게 전화해 내용을 알려줬다.
알바 후, 방향을 제대로 잡고 바람의 언덕으로 내려가는데, 이건 비단봉으로 가기 위해 금대봉을 내려갈 때보다 더 불안했다. 비단봉이 1,100m 정도에 불과한데 거기서 더 내려가 1,300m가 넘는 매봉산을 오른다는 건 힘든 과정이 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짧은 거리라도 높은 고도를 올라야 한다면 힘든 건 둘째 치고,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인데, 시간이 더 들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며 산을 내려가 3시 정각에 이정표가 있는 돌투성이 고랭지 채소밭을 만났다. 보자마자 돌 캐는 게 목적인 밭도 아니고, 저 돌밭에 뭘 키운다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가자 임도라기보다는 고랭지 채소를 운반하기 위한 용도인 도로가 나타났고, 이정표가 있었다. 뭐가 보여야 주변을 둘러보고 방향을 잡든 가 지름길을 찾아갈 텐데, 눈구름 속에 갇혀 있어 시야가 채 5m도 안 되는 상태라 그저 이정표만 믿고 갈 수밖에 없었다. 등산 앱 지도에 의하면 돌투성이 밭을 가로질러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고랭지 돌밭 옆의 얼어붙은 관목을 뚫고 오르자, 거대한 백두대간 매봉산 표지석이 나타났다. 배낭 위에 카메라를 적당히 위치하고 인증을 찍었다. 분명 여기가 매봉산 정상이 아닌데, 백두대간 매봉산 표지석이라. 그 표지석이 있는 풍력발전기에서 3분 정도 가자, 바람의 언덕이 나타났다. 사거리다! 이정표를 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정표가 "정상"이라고 가리키는 쪽으로 갔다. 다른 곳은 도로인데 여기는 얼어붙은 계단이다. 계단을 오르자 풍력발전기가 반겨주고 직진하는 곳으로 차가 다닐 만한 길이 보였다. 구름 속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100여 미터 진행 후 등산 앱을 확인하니 길은 아래에 있다(알바 지도). 해서 왔던 길을 돌아가 다시 바람의 언덕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가 도로를 따라갔다. 그 길을 따라 100여 미터 진행 후 다시 등산 앱을 확인했다. 이제는 길이 위에 있다. 좀 전 그 길이 맞다. 2차 알바다! 어쨌든 고랭지 돌밭을 사이에 두고 위. 아래에 길이 있고 정상에 가까운 건 위라는 걸 확인했다. 그럼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다. 돌밭을 가로지르면 되는 거다. 해서 길은 무시하고 앞이 보이지 않으니 감으로 돌밭을 가로질러 위로 갔다. 그리고 아까 그 길을 만났으나 굳이 감전 위험이 있는 전선을 넘지 않고 길과 나란히 달리는 전선을 따라 전진했다. 도착한 삼거리 이정표! 거기서 전선을 넘어 길로 갔다.
유해 동물 방지용 감전선을 넘어 이정표로 가서 유심히 살펴보니, 직진의 매봉산은 알아볼 수 있는데 오른쪽 두 이정표는 잔뜩 낀 상고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해서 스틱으로 상고대를 긁어냈다. 그러자 나타난 '금대봉', '바람의 언덕'! 예상했던 바지만, 일단 감은 잡았다. 그런데 삼거리에서 두 방향만 알려주면 나머지는? 매봉산은 위로 가라는 이정표를 믿고 올라갔다. 역시 풍력발전기가 반겨주고 눈 위에 난 어지러운 발자국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앞에 보이는 가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그 길을 따라가 잔뜩 얼어붙은 관목을 뚫고 조금 올라가니 고랭지 돌밭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길이 아니다. 3차 알바다! 폰을 꺼내 등산 앱을 확인하니 풍력발전기 직전에 길이 있는 거로 나온다. 뒤로 돌아, 왔던 길로 가며 왼쪽 숲을 유심히 관찰했다. 혹시 놓친 표지가 있을까 해서! 눈꽃, 상고대가 화려하게 핀 앙상하지만, 울창한 나무 사이에 같은 모습으로 위를 가리키며 서 있는 이정표가 있었다. 아래 삼거리에서 올라와 풍력발전기 방향으로 좌회전하지 않고 직진하라고 알려주는, 그런데 풍력발전기에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다.
이정목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올라가니 상고대 터널이 반겨준다. 절경이다! 그 시각이 3시 44분. 거기서 매봉산 정상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내가 생각했던 피재 기준 버스 마감 시각 4시가 가까웠다. 다행히 4시 30분이라면 여유가 좀 있지만. 어쨌든 예측이 안 돼도 4시 이전에 매봉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상고대 터널을 지나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오르니 눈앞이 뚫리며 갈림길이 나타나고 처음 보는 '작은 피재 2.28km'도 있다. 그 시각이 3시 54분이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4시까지 피재 도착은 안 된다. 4시 30분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벌어진 일 어떡하겠는가? 일단 매봉산 정상으로 올라가 배낭을 적당한 위치에 세우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두고 인증을 남겼다. 이후 정상석 뒤로 돌아가서 보니 백두대간 천의봉(天意峰)이라 새긴 글이 보인다. 하늘의 뜻? 하늘의 뜻을 안다?
3시 58분경 천의봉을 떠나며 인솔 대장에게 전화했다. 연결되자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현재 매봉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중이라고 얘기했더니, 혹시 일곱 명 팀이냐고 묻는다. 다섯 명 팀이라고 얘기하니 매봉산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삼수령 휴게소까지는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시간이 걸리니 등산 앱 지도를 이용해 샛길로 두 번만 빠지면 금방이라고 알려준다. 해서 고맙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은 후, 거의 뛰다시피 내려갔다. 5분가량 내려가자 키 큰 침엽수림 지대가 나타났다. 길 끝에는 겨울철에는 사용하지 않는 거로 보이는 가옥이 한 채 있고. 침엽수들은 상고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를 아래로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바쁜 와중에도 사진 몇 장 남겼다. 그리고 계속 달리니 도로다.
갈림길이다. 도로를 따라가는 길과 등산로! 등산 앱에 따르면 어디를 선택해도 피재로 간다. 다만 등산로가 좀 더 짧아 보일 뿐. 볼 것도 없이 등산로를 선택해 달렸다. 최소 4시 30분에는 버스에 도착하기 위해. 그 순간 인솔 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위치를 묻는 전화다. 해서 좀 전에 전화했던 누구라고 얘기하자, “아, 雲峰님!” 한다. 그리고 도착하면 말해 달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중이다. 와중에 우리 일행이 길을 잃었다고 전화가 와 위치를 확인하면 내가 알바했던 딱 거기다. 길을 알려주기도 하며, 삼수령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앞에 생각지도 못한 표지석이 나타났다. 백두대간, 낙동정맥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백두대간 피재, 우로 내려가면 낙동정맥이다. 의도치는 않았으나, 내가 목표로 하는 산을 다니다 보니 한북정맥이니, 낙동정맥이니, 한남정맥이니 하는 대간이나 정맥을 따라 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낙동정맥 기점을 방문했다는 건 대단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산행 코스에는 없던 장소다. 상식적으로 백두대간 방향으로 가야 피재다. 그런데 인솔 대장의 샛길로 빠지라는 말이 모든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 해서 대간 기준 샛길인 낙동정맥 쪽으로 내려갔다. 계단과 오솔길을 달리며 몇 번 마주치는 임도를 가로질러 마침내 국도에 도착한 시각이 4시 32분이다. 간신히 2분을 초과해 도착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없다! 이정표를 보니 삼수령 600m 아래다. 인솔 대장과의 의사소통 실수로 한 알바다. 이것도 알바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아이젠 착용한 거북한 걸음으로 뛰다시피 걸어 버스가 기다리는 삼수령 휴게소로 갔다. 그리고 마침내 4시 45분에 버스가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많이 늦었다! 버스는 건의령으로 시간에 맞춰 가, 거기까지 달린 등산객을 태우고 서울로 가면 된다. 고로 피재에서 건의령 마감시각 6시에 맞춰 출발하면 된다. 해서 피재 마감 4시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인솔 대장이 시각을 공표한 이상 지키는 게 예의라 열심히 달렸다. 버스 가까이 접근해 배낭을 벗어 한쪽에 던져 놓고 아이젠을 착용한 상태로 버스에 탈 수 없어 아이젠과 스패츠를 벗었다. 버스에 타 인솔 대장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일행의 모든 짐을 버스에서 꺼냈다. 당연히 승객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좀 있다는 버스는 건의령으로 향했다. 사실 거기서 기다리나 여기서 기다리나 버스에 타고 있는 등산객에게는 차이가 없으나, 종착지에 일찍 도착한 대간꾼에게는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는 거라 중요했다.
3
버스는 떠났고, 일행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나, 내 산행은 끝났다. 그 시각이 4시 45분이다. 한숨 돌리고 있는데 영빈이 전화했다. 매봉산 정상에서 내려와 도로와 등산로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거다. 물론 평소라면 빠른 길은 등산로의 샛길을 찾아오는 거다. 하지만, 좀 빠르다고 샛길에서 헤매기보다는 좀 도는 한이 있어도 뻥 뚫린 도를 따라오는 게 오늘같이 5m 전방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 빠를 수 있다는 경험을 얻은 만큼, 다른 길은 쳐다보지도 말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구글링을 통해 현 위치에서 신고한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싼 이동 방법을 찾았다. 여기저기 전화해 보고 얻은 결론은 일행이 도착하기 10분 전 즈음에 택시 앱으로 호출하는 거! 해서 일행에게 전화해 위치를 확인한바 삼수령 1.2km 전방이다. 그럼 피재에 도착하면 내게 전화하라는 말로 전화를 끊은 후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초조할 수밖에 없는 게 일행이 늦어지면 신고한에서 저녁은 둘째고, 어떻게든 서울 터미널에 도착한다고 해도 귀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울 터미널에서 우리 일행 모두가 대중교통으로 값싸게 귀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7시 15분 신고한 발 동서울행이었다. 5시가 넘었으나 일행에게선 어떠한 연락도 없다. 싸락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가운데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로 건너로 익숙한 옷차림의 등산객이 보였다. 지리 조다! 아니 위에서 전화하라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내려왔을까?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 영빈에게 바로 택시 두 대를 부르라고 한 다음 다른 일행이 스패츠와 아이젠 등을 벗고 등산 장비 정리하는 걸 도왔다. 그렇게 대충 정리가 끝나고 조금 있으니 첫 번째 택시가 도착해 먼저 여성분 셋이 그 버스로 식당으로 출발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주인장에게 도착 즉시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연락하기로 하고. 그 시각이 5시 39분이다.
다음 도착한 택시를 타고 영빈과 나도 식당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중 택시 기사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으나 그 대부분이 '왜, 이렇게 신호등이 많은가?'였다. 그런데도 잘 달린 덕에 6시 10분경 고한 낙원회관에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세 여성분이 조치를 잘 취해 우리 둘도 자리에 앉아 바로 소맥 한잔 후 잘 구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택시로 7분 거리에 있는 신고한 터미널에서 7시 15분 차를 타야 한다는 강박에 정신없이 먹고 마시고 있는데, 우리만큼 초조했던 식당 주인장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7시 39분 고한발 청량리행 열차다! 가장 중요한 건 역이 식당 3분 거리다! 해서 예매했던 7시 15분발 신고한발 동서울행 버스를 취소하고 7시 39분발 고한역발 청량리역행을 예매했다.
교통수단을 변경하고 나자 한 시간이 넘게 여유가 생겼다. 물론 교통수단의 변경으로 일산으로 귀가해야 할 두 분은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으나, 그것도 쉽게 해결했다. 여유롭게 이번 산행과 세상사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잘 익은 고기를 안주로 누구는 소주를, 누구는 소맥을, 누구는 사이다를 마셨다. 그리고 진행이 꼭 먹어야 한다는 육개장 하나를 시켜 나눠서 맛봤다. 7시간 넘어가자 입가심으로 주문한 된장 소면이 나와 주인장이 배분해준 대로 먹었다. 고기로 배가 터질 정도로 채웠음에도 잘 들어갔다. 된장이 아니라 청국장이었다! 그 과정에서 놀란 건 소면을 다 건져 나눠 준 다음 거기다 밥을 말은 순간이다. 고기로 배를 채워 소면도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밥까지? 그런데 청국장에 만, 그 밥의 대부분을 내가 먹었다. 워낙 청국장을 좋아하기도 하고 맛이 일품이었다.
7시 29분 낙원회관을 나와 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역은 3분 거리가 아니라 길 건너에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역 구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태백역과 민둥산역은 알았으나 고한역이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예정보다 1분 늦은 7시 40분에 도착한 텅 빈 기차에 탔다. 알고 보니 코로나로 한자리를 비워 운행 중이라고. 텅 빈 열차에서 3시간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 자다 깨다, 책보다 유튜브 보다를 번갈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책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한 작가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음 내용이 예측되고 그럼 그 작가와 책에 흥미를 잃어 한쪽 구석으로 던져버리는데 아침에 읽던 책이 딱 그 순간이었다.
아주 지루하게 3시간을 보내고 10시 41분에 열차는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마침 마중 나온 진행의 부군께서 일산 사는 두 분을 광화문까지 태워주는 거로 가장 어려운 귀가 교통편을 해결하고, 나와 다른 친구는 아직도 많아 남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다. 11시 40분경 집에 도착해 먼저 등산 장비를 정리하고 얼었거나 젖은 건 뜨거운 물로 씻어 말렸다. 그러는 와중에 각 장비를 살펴보니 아이젠은 녹이 잔뜩 설었고, 스틱의 팁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어떡할까 고민하면 씻고 자는 거로 1월 23일 하루를 마쳤다.
산악회 계획 B 코스인 '삼거리 → 두문동재 → 금대봉 → 수아밭령 → 비단봉 → 고위평탄면 → 바람의 언덕 → 매봉산 → 피재(삼수령)'의 이 13.14km(트랭글 기준), 6시간 27분의 백두대간 두문동재, 피재 구간을 달렸다. 이동 5시간 24분, 휴식 1시간 3분!
5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구름 속이라, 3번의 공식적인 알바와 한 번의 비공식 알바로 산행 시간과 거리가 늘었다.
이번 겨울 몇 번의 눈 산행을 했으나 진정한 심설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셰르파를 앞장세운 나머지 일행은 인생 최고의 산행이었다고 자찬할 정도로 신나는 산행을 즐겼다고.
기회가 되면 춘삼월 꽃피는 호시절 야생화 천국에 다시 방문하기로….
첫댓글 나머지 일행의 셀파는 누구?
나머지는 앞선 셀파가 남겨 놓은 신호만 따라오면 되는
마음껏 즐기면서.
운봉덕분에 설경 설국 수정궁까지 즐긴 최초이자 최고의 눈꽃산행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