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통에 빠져버린 정치꾼과 전문가
-청산은 사람들에게/말없이 살라고 한다지만/꼭 해야만 하는 말은/해야 되지 않겠는가/말 같지 않은 말이/세상에 차고 넘칠 때문/쓴소리 참말이/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닭을 꿩이라 하고/꿩을 닭이라 하는/혹세무민의 궤변이/흘러넘치면/ 닭은 닭이고/꿩은 꿩이다 라고/한마디 참말은 누군가/해야 되지 않겠는가. -
(유형지로부터의 엽서.9,중략)
주광일 시인(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역임)은-세상에 이럴 수가/원칙도 모르는 자들이/입을 벌려 예외를/떠벌리고 있구나-(중략)라며 시집에서 유형지인 이 땅에서의 참담한 현실을 토해냈다.
우리나라는 전문 집단(학계, 연구 등)은 많으나 진정한 전문인은 멸종위기 2급에 놓여 있다. 그저 저장된 과거의 지식을 앵무새가 되어 되풀이할 뿐이다.
정치적, 경제적 농간에 합류되어 궤변을 정당화하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오늘날의 전문가들이다.
원칙도 무시하고 탈색된 궤변이 진실로 곡해되는데도 침묵하고 외면한다.
정치꾼과 정책입안자들은 이 같은 생리를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의 입지와 선전수단으로 동원하고 정책도 전문가의 논리로 포장되어 변질을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환경 분야는 그 어떤 분야보다 사실에 입각한 매우 엄격하고도 진실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살균제사건’이다
지난 2016년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 32부(부장판사 남성민)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 현 RB코리아)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2,4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호서대 유일재 교수에게 실형인 징역 1년4개월을 구형하고 추징금 2,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학교수로서 연구용역에 따른 연구를 진행할 때에는 공정성과 객관성, 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유지할 의무가 있지만 유 교수는 이를 저버리고 옥시로부터 부정한 대가를 받았다. 유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가 옥시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면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원인을 규명하는데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측에 적정한 보상절차가 지연되는 원인이 됐다.”라고 판단했다.
독성물질의 국내 최고 전문가며 관련 분야에 많은 제자들을 키워 낸 유 교수는 2011년 말 실험한 연구과정에서 실험장의 창문을 열어둔 채 폴리핵사메틸렌구아니단(PHMG) 유해성 실험을 하고, 실제 연구하지 않은 연구원의 이름을 올렸으며, 옥시로부터 받은 용역비 1억 원 중 6,800만원을 기자재 구매에 쓴 혐의를 받았다.
2006년경에는 상수도관에 유리섬유복합관(GRP관) 도입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다.
전문가 집단인 서울시 상수도본부(오세훈 시장, 박명현 본부장, 공성석 차장, 황양현 수도관리부장, 이규상 누수방지과장, 2007년 5월)는 유리섬유복합관에 대한 검토에서 ‘닥타일주철관, 강관 등 기존관과 외경치수가 상이하여 연결시공이 곤란하고 700mm이하 관은 닥타일주철관보다 11.8% 저렴하나 1,000mm 이상의 강관보다는 4.0% 비싸다. 직관에 대한 수압시험 등 공장자체시험결과는 양호하나 이형관(곡관, T형관)의 수압시험결과가 없어 편심수압시험 등 추가시험이 필요하다. 이형관의 제작방법이 일체형으로 제작되지 않고 직관을 절단하여 접합부 내·외면에 본드로 유리섬유를 붙이는 수작업 접합방식은 매우 조잡하다. 유지관리 면에서 종·횡방향 누수발생의 경우 관 절단 시 연결부속이 없어 누수복구가 곤란하다’라며 유리섬유복합관 도입을 거부한바 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는 3차에 걸친 성능검증 평가(2006.12월)에 대한 종합의견에서 ‘시공성 및 경제성에서 타관보다 우위에 있어 확대 적용이 가능하며 상수도용 관으로 사용하는데 큰 무리가 없으나 공장에서의 시험결과와 달리 매설조건에서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시공된 관로시설의 시험통수나 운영결과에 따라 안정성이 입증되고 시공성 및 경제성이 확보된다면 향후 적용에 문제가 없다.’라고 판단하고 고양시와 충남 공주 등에 유리섬유복합관을 시공했다. 당시 수공의 전문가 중 유리섬유복합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인 인물은 수자원공사 일산사업단장을 지낸 안효원 단장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필자는 ‘유리섬유복합관은 수압이 없는 하수도관에는 사용이 가능하나 수압이 높은 상수도관에는 사용하기 어렵다.’라는 취지로 기사화했고 한국화이바는 신문사에 항의하는 고발장을 법원에 제출하여 법적공방으로 번졌다.
이때 가습기살균제사건처럼 전문가의 소견으로 상하수도학회에서 발행한 ‘상수도관에 사용해도 무방하다’(닭도 아니고, 꿩도 아니고)는 내용의 한 장짜리 의견서가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된다.
당시 상하수도 학회(홍익대 김응호 교수팀)에서는 화이바가 의뢰하여 연구를 진행한바 있다.
결국 수자원공사가 시범 설치한(고양시, 공주시 등) 유리섬유복합관은 수년 후 모두 철거하게 되고, 예산낭비와 상수도관의 시장진출은 어두워졌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는 인물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전문가 집단은 정치나 행정인들보다 사회적응력이 떨어지고 시간적 소요가 길다. 과학적인 신중론이 정무적 감각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신기술, 특허기술 등 신제품에 대한 현장적용은 좀 더 빠르게 진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있어서 기술자적 양심을 속여 가며 꿩을 닭으로, 닭을 꿩으로 대변하거나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지닌 인물은 닭도 꿩도 아닌 ‘꿩닭’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연구비를 조금 더 착복하고 개인적인 씀씀이로 지출한다 해도 사건의 진실만큼은 전문가답게 정돈된 과학적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신기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혹세무민의 궤변으로 미래기술을 사장시키는 전문가들도 경계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들은 자신들이 연구하고 활동한 지대한 업적이 세월의 물결을 지나서는 잘못된 선행연구에 대한 자아 비판적 사례연구는 왜 하지 못할까.
정치꾼이야 모든 것은 나라 탓, 국민 탓, 세상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참말을 기대하는 것은 오적행위인가. 못난이의 팔불출 혼불인가.
화분을 묻혀오는 벌도 달콤한 꿀 속에 빠져 죽는 일이 빈번한 오늘날 유형지에서의 풍경이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 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