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혜숙_시 낭송 치유
찾아가는 시낭송 공연
시를 듣고 감동하며 감성 깨우기
서울시가 주최한 ‘시가 흐르는 서울’ 행사를 ‘선유도’와 북서울 ‘꿈의 숲’에서 할 때였다. 일반 시민들은 잔디에 앉아서 시를 들으며 낭만을 즐겼다. 무대도 제법 컸다. 협회는 선유도에서 서정주 시낭송 공연을 했고, 꿈의 숲에서는 애송시 낭송을 하였다.
그런데 낭송하면서 객석을 보니 풀밭에 앉아 있는 한 아주머니가 손수건으로 계속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또 뒤쪽 끝에 앉아 있는 아저씨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저마다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슬픔이 시어와 닿았나 보다.
시인의 경험과 내 경험이 비슷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기 때문에 시에 빠져들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시는 슬픔을 표현한다”고 했다. 시적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과 생각을 시에 이입하여 치유 효과를 가져온다. 시낭송을 듣고 감동하는 바로 그 순간, 치유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감동은 자신을 깨우는 것이니 일종의 부활인 셈이다.
몇 년 전 관리공단에서 시낭송을 한 적이 있다. 사내 곳곳에 시구가 깃발처럼 나부꼈다. 강당에 들어서니 이백여 명의 남자 직원들이 자로 재듯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분위기가 얼마나 딱딱한지 마치 시멘트 상자 속에 사람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월례회 때마다 감정을 순화시키고 부드러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문화 프로그램을 갖는다는데, 시심을 깨워 아름다운 감성을 갖게 하려는 리더의 노력이 놀라웠다.
시낭송을 하자 그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듯했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깊은 만족감은 어떤 채색된 무대가 아니라 인간사의 그늘 안에 감춰진 것들, 즉 소소하고 작은 시에서 감성을 느낀다고 했다. 역설적인 경험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 인근의 부대를 찾아가 시낭송 공연을 할 때였다. 딱딱하고 획일화된 군인들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 애국 시와 부모에 관한 시들을 낭송했는데, 그때 군인들에게 절묘하게 어울리는 시가 있었다. 한 낭송가가 읊은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군인들은 절절한 시와 그 시를 가슴 절이게 표현하는 낭송에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곧 나라의 충성과 이어지는 길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정채봉 _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