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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곤:
그럼 어뜩하냐?
방송 시간이 딱 밥 땐데.
아침도 안 먹고 나오고.
석영:
왜 아저씨까지 이래요?
박민수:
단무지가 하나라.
석영, 뭐라 한마디 더 하려다 관두고 짜증내며 나간다.
최곤과 박민수, 맛있게 짬뽕을 먹는다.
노래 끝나가자 최곤이 멘트 할 준비를 한다.
그사이 박민수가 하나 남은 단무지를 날름 가져다 먹는다.
최곤:
장씨, 여기 단무지 하나만 더 갖다 줘.
다음 곡 들으시겠습니다.
이스트 리버의 ‘비와 당신’
이스트 리버가 리메이크 한 ‘비와 당신’힘차게 나온다.
에필로그…….
홍대의 인디 밴드 클럽, ‘비와 당신’ 이어진다.
서울로 입성한 이스트 리버가 열정적으로 ‘비와 당신’을 연주한다.
정열적으로 환호하는 사람들……. 영화 ‘라디오 스타’의 출연진과 스탭들이다.
<끝>
오아시스 OASIS
각본․감독
이 창 동
등장인물
홍종두/29세/ 설경구
한공주/28세/ 문소리
홍종일/35세. 종두의 형/ 안내상
종일처/34세/ 추귀정
홍종세/26세. 종두의 동생/ 류승완
엄마/ 65세. 종두의 어머니/ 김진진
한상식/33세. 공주의 오빠/ 손병호
상식처/31세/ 윤가현
옆집여자/37세/ 박명신
옆집남자/37세/ 박경근
형사1/
형사2/
형사3/
형사4/
목사/
김군/
식당 주인/
미니수퍼 주인/
외삼촌/
중국집 사장/
부동산 업자1, 2, 3/
동직원1, 2/
생수병 연인 남녀/
핸드폰 여인/
여학생1, 2/
식당 여인/
아파트 여인/
수퍼 아줌마/
식당 아줌마1, 2/
파출소 순경1, 2/
홍정민/ 아역.
중국집 배달원/
그밖에……
1. 타이틀 백, 방 안 (내부, 밤)
(F․I 되면,
얼핏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그림 같은 것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검은 나무 그림자가 그 그림을 덮고 있다.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나 무 그림자는 추상적인 형태로 음산하게 흔들리고 있다. 마치 불길한 몸 짓으로 춤추는 무수한 창끝처럼.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는 동안, 아마도 날이 밝아오는지 나무 그림자가 눈에 띄지 않게 차츰 옅어지면서 그림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낸다. 이윽 고 우리는 그것이 싸구려 벽걸이 카펫에 새겨진 ‘오아시스’ 그림임을 알 아볼 수 있다.
두어 그루의 야자수 나무가 있고, 그 아래 우물이 있고, 아기 코끼리 한 마리와 인도 풍의 의상을 입은 젊은 여인, 그리고 벗은 몸을 새까맣게 드러낸 어린아이도 볼 수 있다. 싸구려 카펫에 어울릴 만한, 기계자수로 된 국적불명의 조악하고 유치한 그림이지만, 한편으로 순진하고 소박한 정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림 아래에 영문으로 'OASIS'라는 글씨도 보인다.
F․O.)
2. 거리(외부, 낮)
(F.I 되면,
몹시 추운 겨울날, 서울 시내 어느 거리의 버스 정류장. 종두가 버스에 서 내린다. 그의 인상은 첫눈에도 조금 기묘해 보인다. 한겨울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반소매 여름남방 차림에다 빡빡 깎은 머리를 하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여름남방의 초록색 싸구려 야자수 무늬는 차갑고 삭막 한 겨울 풍경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추위 때문에 팔뚝에 하얗게 소름이 돋아 있지만, 짐짓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꾸미고 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비닐 백 같은 것이 들려있다. 갈아탈 버스를 찾는지 표지판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한다.)
종두: 쌍문동 가는 버스 여기서 타요?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이마 한쪽에 있는, 잉크 얼룩 같은 거무튀튀한 반점이다. 머리를 빡빡 깎고 있기 때문에 그 반점은 더욱 두드러져 보 이고, 그의 인상을 더 기묘하게 만든다. 그는 시종 미소짓고 있다. 의외 로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담고 있는 미소이다. 그러나 번들거리는 눈 빛만은 섬뜩하다. 그 눈빛은 마치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불안한 광기 를 품고 있는 듯하다.
정류장 옆에는 의류행상이 여자 옷들을 늘어놓고 팔고 있다. 버스를 기 다리며 그는 그 옷들을 구경한다. 자세히 보면, 그는 항상 입으로 뭔가 흥얼거리며 몸을 건들거리고 있다. 마치 그의 내부에서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비트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듯이.
이윽고 그는 여성용 가디간 하나를 골라 산다.)
3. 아파트 복도(내부, 낮)
(어느 고층 아파트의 긴 복도를 걸어가는 종두. 손에는 비닐 백 외에 귤이 든 검은 비닐봉지까지 들고 있다.
여전히 계속 흥얼거리며 박자를 맞추며 긴 복도를 걷다가 어느 집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종두, 벨을 누르고 몸을 숨기듯이 문 옆의 벽 에 붙어 선다. 사이. 안에서 여자의 소리가 들린다.)
소리: 누구세요?
종두: (목소리를 꾸며서) 세탁이요!
소리: 누구세요?
종두: (여전히 우스꽝스런 가성으로) 세탁!
(이윽고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고개를 내민다. 종두, 갑자기 문 앞 으로 튀어나오며 장난스런 몸짓으로,)
종두: 짜잔!
여자: 어마!
(여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문을 쾅 닫는다. 종두,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문에 붙은 호수를 확인하고 다시 벨을 누른다.)
여자: (소리) 뭐예요?
종두: 여기 홍종일씨 집 아니예요?
여자: (소리) 그런 사람 없어요.
종두: 예?
여자: (소리) 그런 사람 없다구요.
종두: 이사 갔어요?
여자: ……
종두: 저기, 언제 이사 왔어요?
(더 이상 대답이 없다. 종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다.)
(극부감으로 보이는 아파트 건물 아래. 차들이 주차해 있고, 사람들이 서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한다. 노란 색 귤 하나가 아래로 낙하해 간다. 어느 차 지붕 위에 떨어져 으깨어지는 귤. 카메라 TILT UP 및 PAN하 면, 복도 난간에 팔을 괴고 기대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종두. 그의 입에서 침이 떨어질 동 말 동 매달려 있고, 한 손에는 귤이 들려 져 있다. 이윽고 침과 귤이 동시에 아래로 떨어진다. 마치 어느 것이 먼 저 떨어지나 낙하 실험하는 어린애처럼 얼굴에 장난기 어린 엷은 미소 가 있다.
그의 뒤쪽 아까의 집에서 문이 빼꼼이 열리고 여자가 조심스럽게 내다 보다가 종두의 모습을 보고 얼른 문을 닫는 것이 보인다.)
4. 지하상가 안(내부, 낮)
(아파트 단지내의 지하상가.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고, 식당들 도 연이어 붙어 있다. 종두가 입구에 있는 수퍼로 들어선다.)
종두: 아줌마 두부 있지요?
아줌마: 두부요?
종두: 예, 생두부 한 모 줘요.
아줌마: 두부 없는데요.
(수퍼를 나가는 종두.)
5. 지하상가 식당(내부, 낮)
(상가 내에 있는 조그만 식당. 종두가 들어선다.)
종두: 아줌마 두부 있어요?
아줌마2: 두부요? 순두부요?
종두: 아니, 생두부. 생두부 있으면 한 모만 파세요.
아줌마2: (종두를 이상하다는 듯 보다가 주방아줌마에게) 두부 남았어?
아줌마3: (종두에게) 없어요, 아저씨. 다 떨어졌어요.
6. 미니수퍼 수퍼(내부, 낮)
(어느 미니 수퍼 안에서 생두부를 먹고 있는 종두.)
종두: (두부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얼마요, 아줌마?
주인: 그냥 잡수쇼.
(주인남자는 종두가 자기 얼굴을 멀쩡히 쳐다보면서도 ‘아줌마’라고 부 르는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다.)
종두: 예?
주인: 돈 안 받고 드리는 거니까 그냥 드시라고.
(주인은 냉장고에서 우유까지 꺼내준다.)
주인: 자, 이거 마셔가며 먹어요. 체할라.
종두: (우유를 들어보며) 해태우유는 없어요?
주인: 우유 다 똑같애. 해태우유라고 뭐 다르나?
종두: 우유는 해태우윤데.
(종두, 우유를 마시며 두부를 삼킨다.)
7. 공중전화 부스(외부, 낮)
(거리 모퉁이의 공중전화 부스. 여중생 둘이 부스 안에 들어가 친구에 게 전화를 걸고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여중생: 여기 학원 앞인데 너 생각나서 전화했어. 옆에 은영이도 있어.
(은영이란 아이가 수화기에 입을 대고 “안녕”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얼 굴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매우 무표정하다. 카메라가 은영이의 시선을 따라 약간 PAN 하면 옆 부스에서 종두가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종두의 미소가 왠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은영이 얼른 고개 를 돌린다.)
종두: 얘!
은영: (말없이 쳐다본다.)
종두: 나 전화 걸려고 하는데 동전이 없걸랑. 동전 좀 빌려줄래?
(아이들, 종두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곤 전화를 끊고 가버린다. 종두,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보고 있다. 아이들이 떠난 부스에 동 남아 노동자처럼 보이는 외국인이 들어온다. 종두, 여전히 얼굴에 미소 를 지우지 않은 채 그 외국인이 전화 거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윽고 카메라는 무심하게 PAN 해서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사람들이 몰려서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보여준다.)
8. 음식점(내부, 낮)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한식당. 종두가 카운터 옆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
종두: 여보세요? 거기 홍종일씨 안 계세요? 홍, 종, 일이요. 전에 거기 있었어요. 예? 언제요? 여보세요……
(전화가 끊어진 모양이다. 그는 자기 자리로 간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 와 안주로 시킨 음식도 있다.)
종두: 아가씨! 맥주 한 병 더 줘요!
9. 음식점(내부, 밤)
(시간 경과 후의 같은 식당.
창 밖이 캄캄하게 어두워져 있고, 종업원이 식당을 치우고 있는 걸로 봐서 밤이 꽤 늦은 시간인 것 같다. 종두가 혼자 의자에 앉아 있고, 주인 남자를 비롯한 식당 사람들이 감시하듯 그를 보고 있다.)
종두: (비굴한 미소를 띠고)전화만 되면 된다니까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예?
주인: (종두의 테이블을 치우려는 종업원에게) 그건 치우지 마! 그대로 놔둬.
종두: 저 도망 안가요. 정말이예요.
(갑자기 신발을 벗어 주인에게 내민다.) 이거 맡겨둘게요. 신발 없이 도 망 가겠어요?
(주인, 한심하단 표정으로 종두를 보고 있다.)
종두: (양손에 신발 두 짝을 들고 내밀며)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내 동생하고 전화 연락만 되면 금방 올 거 걸랑요.
주인: (대꾸하기 싫지만) 전화가 언제 돼? 당신 지금까지 전화만 열 통화 넘 게 썼어. 하여튼, 경찰에 가서 이야기해.
종두: (점점 다급해진다.) 아저씨, 저 정말 경찰서에는 가기 싫걸랑요. 그럴 사 정이 있어요. 신발 맡겨둘 게요. 저 도망 안가요.
(주인 앞으로 신발을 던진다. 주인남자의 마누라인 듯한 여자가 한 마 디 한다.)
여자: 그렇게 겁나는데 무슨 배짱으로 돈 없이 음식을 있는 대로 시켜먹어?
종두: 전화가 될 줄 알았다니까요.
(파출소 순경 두 명이 들어선다. 종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종두: (맨발로 순경들에게 다가가며) 밤늦게 수고하심다!
(순경에게 인사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순경을 밀치고 식당 밖으로 뛰어 나간다. 순경이 따라나간다. 식당 문으로 도망가는 종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잡힌다.)
10. 경찰서(내부, 밤)
(어느 경찰서의 형사계 사무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조사 받는 잡범들로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그 사이 에 종두도 형사 앞에 앉아 조사를 받고 있다. 식당 주인도 있다. 경찰서 에 와 있지만 종두의 태도는 긴장되어 있다기보다 좀 산만하다.)
형사1: (모니터의 자료를 보며) 홍종두. 전과가 3범, 맞지?
종두: 예, 맞습니다.
형사1: 폭행도 한번 있고, 강간미수도 한번 있고……, 이번에 들어간 건 과실치 사, 사람도 죽였네?
종두: 그게요, 새벽에 운전하다가요, 환경미화원 있잖아요? 청소부요, 어두워 서 안 보이더라구요.
형사1: 몇 년 받았어?
종두: 2년 6개월 살았걸랑요.
형사1: 2년 6개월이면, 뺑소니였어?
종두: 예.
(형사, 한심하다는 듯 종두를 본다. 식당주인도 흥미있게 쳐다본다. 옆에 있던 형사2가 한마디 거든다.)
형사2: 누가 면회 오는 사람도 없었어? 옷이 그게 뭐야?
형사1: 오늘 교도소에서 나왔으면 얌전히 집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식구들도 만나고 해야지, 왜 밖에서 돌아다니며 돈도 없이 음식은 시켜먹고 그 래?
종두: 그게요, 우리 집이 이사를 갔더라구요. 전화 번호도 다 바뀌고…… 전화 만 돼서 사람 만났으면 음식값 내죠, 당연히. 거기가 우리 형이 다니던 회사 앞이었걸랑요.
주인: 전화기 주고 걸어보라고 해도 번호도 모른다며?
형사1: 돈이 없으면 음식점에 들어가질 말아야지. 무전취식이 죄가 되는 줄은 알 거 아냐?
종두: 알죠, 당연히.
(얼굴이 갑자기 밝아진다.)
야! 홍종세! (손을 흔든다.) 일루 와. 일루 와! 괜찮아.
(상대가 다가온다. 동생 종세다.) 인사해. (형사1에게) 내 동생예요.
(다시 종세에게) 인사해.
종세: (형사들에게 인사한다) 수고하십니다.
형사1: 동생이요?
종세: 예.
종두: (마치 자기 사무실인 것처럼) 앉아라. 어디 의자 하나 가져와서 앉아.
(그러나 종세는 그냥 서 있다.) 야, 너 머리 염색했네? 넌 염색이 안 어 울려.
11. 경찰서 밖(외부, 밤)
(경찰서 현관을 종두와 종세, 그리고 식당 주인이 걸어나온다. 종두는 식당 주인과 마치 친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슨 썰렁 한 농담을 하는 듯하고 주인은 마지못해 받아주고 있다.
종세, 가까이 세워둔 타우너에 올라탄다. 타우너 옆구리에는 ‘각종 판촉, 공연 기획 이벤트 전문업체 드림박스’라는 선전문구와 로고가 보인다.)
종두: (식당주인에게) 안녕히 가세요!
주인: 예.
(종두, 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든다. 식당주인도 마 지 못해 손을 흔든다. 차가 출발한다. 종두는 차창 밖으로 계속 손을 내 밀고 흔들고 있다. 차가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간 뒤에도, 차창 밖으로 흔들고 있는 그의 손이 보인다.)
12. 차 안(내부, 밤)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종두와 종세. 종두, 앞을 바라본 채 손 만 창 밖으로 내민 채 흔들고 있다. 카세트에서 영어회화 테이프강좌가 흘러나온다.)
종세: 그만 손 좀 내려, 인제! 창문 닫게. 추워!
(종두, 그제야 손을 내린다. 창문을 올리는 종세. 사이. 종두, 동생의 얼굴을 살핀다. 아무래도 화가 난 것 같은 눈치다. 종두, 운전하고 있는 종세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툭 친다.)
종세: (짜증스럽게) 하지마!
(그런데도 종두는 실실 웃으며 장난하듯 다시 머리를 때린다.)
종세: 아이, 씨! 하지 마, 좀!
종두: 화났어?
종세: (분명히 화났지만) 화 안 났어.
종두: (다시 머리를 툭 때린다. 이번에는 좀더 세게.) 화났지? 그지?
종세: (억지로 참는다)…….
종세: (계속 때리며) 화났어. 그지?
(종세,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용케 참으며 묵묵히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차가 급 정거한다. 두 사람의 몸이 앞으로 부딪칠 듯 쏠리고, 뒤따라오던 차들도 놀라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린다. 요란하고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들도 들 린다. 그러나 종세는 길 가운데 차를 세운 채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누른 채 말없이 앞만 보고 있다. 종두가 약간 기가 질려 동생을 쳐다보 고 있다.)
종세: (가라앉은 목소리) 형, 부탁인데…… 앞으로 내 인생 방해하지 말아 줘. 응? 부탁이야.
(종두, 그런 동생을 말없이 보다가 갑자기 킬킬 웃기 시작한다. 동생의 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왠지 우습게 느껴진 것이다. 말해놓고 보니 자 기도 우스운지 종세도 피식 따라 웃는다.
차가 다시 출발한다. 영어회화 카세트 소리는 계속 들린다.)
13. 종일의 집(내부, 밤)
(미니 지하 셋방인 종일의 집. 엄마가 문을 열면 종두가 들어온다.
뒤따라 종세도 들어온다.)
종두: 자기야, 나 왔어!
(엄마를 안고 춤을 추듯 거실의 소파까지 들어온다.)
엄마: 옷이 이게 뭐꼬? 한겨울에 옷을 이렇게 입혀서 내보내나?
종두: 여름에 들어갔으니까 여름옷 입고 나왔지. (집을 둘러보며) 집이 왜 이 리 한심해?
엄마: 니 형 회사 그만두고 가게 차릴라고 아파트도 팔고 고생이 많아.
종두: (안방 쪽으로 가며) 형네 방 어디야? 여기야?
(문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형님! 형수님! 나 왔어요!
(방문이 열리고 종일이 잠옷 바람으로 나온다. 뒤이어 종일의 처도 나 온다. 그녀는 잠옷 위에 윗도리 하나를 급한 대로 걸치고 나온다.)
종일 처: (잠에 취한 소리) 삼춘, 소식도 없이 언제 나오셨어요?
종두: 정민이는 자나?
종일: 야, 깨우지 마.
종두: 깨워야지. 오랜만에 삼촌 왔는데 자고 있으면 되나?
종일 처: (갑자기 놀라 소리를 지른다.) 어마! 이게 뭐야? 삼춘!
(거실 바닥에는 현관에서부터 종두의 흙발자국이 지저분하게 나 있다. 종일의 처가 종두에게 달려들며 주먹으로 어깨를 때리며 소리: 지른다.)
종일 처: 빨리! (한 대씩 때릴 때마다)빨리! 빨리 양말 벗어요! 바닥이 이게 뭐 야? 어디 논매다 왔어요?
(종두를 화장실 쪽으로 떠민다. 종두는 군소리: 없이 떠밀려 간다.)
빨리 양말 벗고 발 씻어요! (화장실로 들어가는 종두의 등뒤에 대고) 저녁은? 저녁은 먹었어요?
종두(O.S): 예! 먹었어요!
(그 동안 가족들은 거실에 멀뚱히 앉아 있다. 별로 할 말이 없는 모양 이다. 종세는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서 있다. 걸레로 바닥을 훔치는 종일: 의 처. 화장실 안에서 종두의 소변보는 소리가 들린다. 종일의 처, 화 장실 안을 들여다보며 다시 버럭 소리지른다.)
종일 처: 삼춘! 소변 볼 때 제발 변기 뚜껑 좀 올려요!
종일: (종세에게) 앉아, 왜 그렇게 서 있어?
종세: 가야죠. 늦었는데.
엄마: 넌 어떻게 만나 같이 왔냐?
종세: (말하기 싫다는 듯) 몰라.
엄마: (종일에게) 쟤 이제 어디서 재우냐?
종두: (화장실에서 다시 나오며) 엄마! 나 엄마한테 선물 사 왔어. (쇼핑백에서 물건을 꺼낸다. 거리에서 산 가디간 종류의 옷이다.) 입어 봐, 엄마.
엄마: 나중에 입을게.
종두: 지금 입어봐, 안 어울리면 바꾸러 간다고 했어.
(억지로 엄마에게 옷을 입히는 종두. 그런 종두를 다른 식구들은 말없 이 보고만 있다. 종두, 형수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형수님은 다음에 더 좋은 거 사 줄께요.
종일 처: 아이고, 됐네요.
종두: 와, 갑순씨 이쁘네!
(그리 싫지 않은 엄마의 표정.)
14. 카센타 (내부, 낮) ──────────────────────────
(변두리 동네에 있을 법한 자동차 경정비센타 사무실.
경리를 보는 책상에는 종일의 처가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종두가 전화 를 하고 있다. 유리문 밖으로는 작업복을 입은 종일이 방금 수리를 끝 낸 차의 차주와 이야기하고 있다. 공손함이 몸에 배어 있다.)
종두: (수화기에 대고) 장사 잘 돼? 때려쳤어? 왜? 그러게 내가 뭐랬냐? 오늘 저녁 술 한잔하자, 오랜만에. 왜? 바빠? 장사 때려쳤다며? …… 장사 때려쳤다며? …… 알았어. 알았어, 임마.
(전화를 끊고 수첩 같은 것을 보며 다시 다른 곳에 전화한다. 그 동안 종일이 차를 보내고, 다른 차를 손보고 있는 김군에게 뭐라고 이야기한 뒤 사무실로 들어온다.)
종두: (전화가 안 된 모양인지, 교환양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다시 전화를 건 다.)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종일: (장갑을 벗으며 소파에 와 앉으며) 너 일로 좀 와 앉아봐.
(종두, 자리에서 일어나 형 앞에 앉는다.)
종일: (태도가 매우 진지하다.) 너도 인제 어른이 되야지. 너 어른이 되는 게 뭔지 아냐? (사이.) 어른이 된다는 거는 인제 니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뜻이야. 자기 행동에 책임도 지고, 남이 날 어 떻게 보나, 그것도 생각하고, 한마디로 이 사회에 적응을 해야 돼. 그 게 어른이 되는 거야. (사이.) 다리 좀 떨지 마.
(다리 떨기를 멈추는 종두. 종일, 그런 동생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15. 중국집 (내부, 낮) ──────────────────────────
(배달 전문 동네 중국집 안. 종일과 종두가 주인과 마주 앉아 있다.)
사장: 나이가 몇이지?
종일: 인제 스물 여덟이예요.
종두: (종일을 돌아보며) 스물 아홉.
종일: (얼버무린다.) 설 세면 스물 아홉이예요.
종두: 설 세면 서른이지.
사장: 스물 아홉이면 배달 일 하긴 좀 많지 않아?
종일: 나이가 무슨 상관 있습니까? 무슨 일이든 해야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데……
사장: 하긴 경험이 중요하지. 이런 경험도 해봐야 나중에 뭘 해도 할 수 있지. 배울라면 배울 게 많아. 오토바이 타고 자장면 배달하면서도……
종두: 일을 하면 언제부터 해요?
종일: 아직 사장님 말씀 안 끝났어. 너는 항상 그래. 다른 사람하고 대화할 때 상대의 이야기가 끝나면 니 말을 하란 말이야. 뭐가 그렇게 급해? 남에 말을 끝까지 잘 듣고, 무슨 뜻인가 잘 생각하고, 그런 다음 할 말을 해 도 하란 말이야.
사장: 당장 오늘부터 해야지. 일을 할라면.
종두: 내일부터 하면 안되요? 오늘은 어디 가볼 데가 있는데……
(종일, 종두를 노려본다.)
종두: (형의 서슬에 눌려) 알았어요.
16. 아파트 밖(외부, 낮)
(재개발을 앞둔 어느 낡은 서민 아파트 앞. 어느 집에서 이사를 가는지 건물 앞에 이삿짐 트럭이 세워져 있고, 짐꾼들이 짐을 싣고 있다. 종두가 그 옆을 지나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손에는 과일 바구니 가 하나 들려져 있다.)
17. 아파트 계단 (내부, 낮)
(짐꾼들이 이삿짐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종두가 계단을 올라오 다가 비켜선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만삭의 젊은 여자가 계단 가운데 서서 짐꾼들에게 소리친다.)
상식 처: 그건 깨지는 거니까, 조심해요!
(계단을 올라가는 종두.)
18. 공주의 집 (내부, 낮)
(서민 아파트의 좁은 방안을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순백색의 비둘기 가 방안을 자유롭게 부유한다. 때 낀 벽지와 얼룩진 천장, 고만고만한 세간 등이 보이는 방안을 날아다니는 새의 모습은 너무 이질적이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을 받아 새의 날개가 눈부시 게 빛난다.
새는 열려진 방문을 통해 거실 쪽으로 날아간다. 거실은 이삿짐이 빠져 나가 어수선하고 황량해 보인다. 새가 거실을 한 바퀴 돈 뒤, 낡은 싱크 대 꼭대기에 사뿐히 날아가 앉는 순간, 문간에서 종두의 목소리가 들린 다.)
종두(O.S.): 실례합니다!
(불안하게 날개를 퍼덕이는 비둘기. 순간, 다시 날아오르는가 싶더니, 빠 르게 거실을 가로지르면서 눈부신 햇빛 조각으로 바뀐다. 카메라 그 햇 빛 조각을 따라 pan 하면, 문간에 서 있는 종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종두: 여기 홍상식씨 집 맞죠?
(그의 뒤쪽 벽에 햇빛조각이 희미하게 어른거린다. 그는 약간 놀란 듯 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다.)
종두: 이 집 오늘 이사 가요?
(그러나 상대는 대답이 없는 모양이다. 몸을 굽혀 앉는 종두의 움직임 에 따라 카메라가 TILT DOWN 하면, 우리는 거실 한쪽에 앉아 있는 공주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종두: 이 집 딸인가 보네. 말할 줄 몰라요?
(한순간 햇빛 조각이 종두의 얼굴에 올라간다. 눈이 부셔 우스꽝스럽게 눈을 찡긋하는 종두. 동시에 쿡, 웃음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이제 공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웃고 있다. 종두의 우 스꽝스런 표정이 그녀를 웃게 한 것이다. 한눈에도 그녀가 중증 뇌성마 비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을 비틀어 힘들게 종두를 쳐다보 고 있는 그녀의 손에는 작은 손거울이 쥐어져 있고, 지금까지 방안을 날던 비둘기가 그녀의 판타지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종두는 그녀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 얼굴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 의 표정을 우스워 한다는 것에 신이 났다. 그는 이번에는 좀더 표정을 우습게 만들며 말한다.)
종두: 이름이 뭐예요?
(공주의 웃음이 더 커진다. 그는 계속 다양한 표정을 꾸며낸다. 그의 뒤 로 상식이 들어선다.)
상식: 왜 그러세요?
종두: (돌아보며 일어선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하시나 보죠?
상식: 무슨 일로 왔어요?
종두: 나 기억 안나요? 우리 전에 만난 적 있는데…… (농담하듯) 기억력 별 로 안 좋으시네. (상식이 기억을 되살릴 기회를 주려는 것처럼 미소지 으며 쳐다본다.) 전에, 2년 6개월 전에 도봉 경찰서에서 만났잖아요. (그 래도 상식이 기억하지 못하자) 이 집 아저씨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상식: (비로소 종두를 알아보고 얼굴이 굳어진다.) 여기 뭐 하러 왔어요?
종두: 그냥, 인사하러 왔어요. 어떻게 사시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 그저께 교도소에서 나왔걸랑요. 어제 바로 올라고 그랬는데 주소를 몰라서…….
상식: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빨리 나가요. 인사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빨리 나가라고.
상식 처: 왜 그래? 누군데 그래?
종두: (계속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다.)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그냥 인사하러 왔다는데……
상식: 인사는 무슨 인사? 누가 당신 보고 싶어 한다고? 빨리 가요!
(그래도 종두는 머뭇거린다. 상식이 버럭 소리지른다.)
상식: 빨리 가라고!
종두: 알았어요. 갈게요. 하여튼……
상식: (과일
누군가 그런 가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우산을 주워 가필에게 건넨다.
가필, 고개를 들어보면 승석이다.
가필과 승석, 말없이 잠시 서로 바라본다.
승석: 어떻게 하고 싶어요?
가필: …….?
승석: 태욱일 어떻게 하고 싶냐고요?
난 철학이 없는 사람이랑 같이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가필, 잠시 고민을 한다.
가필: 난……. 난 이 손으로.. 내 딸이 맞은 만큼.. 태욱이란 놈을 패주고 싶어.
그리고 내 딸을 데리러 갈거야.
떨리는 목소리에 가필의 결연한 마음이 느껴진다.
승석, 잠시 가필을 바라본다.
INT. 가필의 회사. 휴게실. 아침
가필이 책상을 마주하고 동료직원과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서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가필을 바라보는 동료직원
동료 직원: 다음 달 인사이동 있어.
가필: 알아.
동료 직원: 요즘 우리 회사도 심상치 않아. 이럴 때 휴가신청을 한다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가필, 잠시 말이 없다가
가필: 자네는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멋지게 보인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해?
동료 직원: …….?
가필: 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올게.
동료 직원, 잠시 가필을 바라보다가.
동료 직원: 자네가 회사에 돌아올 때까지 내가 언제 아버지로서 멋있었는지 기억해 볼게.
두 사람, 마주 보며 씨익 웃으며 악수한다.
EXT. 남산 케이블카 승차장. 오전
가필이 양복차림으로 허겁지겁 케이블카 승차장에 도착한다.
승석과 수빈, 개중은 이미 도착해 있다.
수빈: (가필에게) 20분 지각이에요.
가필: 미안……. 차가 너무 막혀서…….
책을 보고 있던 승석이 말없이 일어나 케이블 승차권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가필도 아이들 틈에 끼어 승차권을 받으려 한다.
가필 앞에 온 승석, 가필의 눈앞에서 가필의 승차권을 찢어버린다.
승석: 아저씨는 걸어서 올라와요.
아이들 키득대며 웃으며 유유히 케이블카에 올라탄다.
EXT. 남산 계단.
가필이 남산 타워에 까지 이르는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다.
계단 끝이 아득하게 보인다.
케이블카가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헉헉대며 케이블카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가필.
EXT. 남산 봉화대
추운 날씨여서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벌써 도착해 각자 봉화대 하나씩 사이에 끼고 서울시 전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개중이 사랑에 빠진 표정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개중: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그런 개중을 이상한 듯 바라보는 승석과 수빈.
마침내 가필이 헉헉대며 봉화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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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이 윗도리를 벗고 몸에 달라붙는 내복차림으로 추위에 떨며 잔뜩 몸을 움츠리고 서 있다.
수빈: 두 손을 들고 만세 하세요.
가필이 얌전하게 손을 들어올리자 개중이 줄자로 가필의 가슴 사이즈를 잰다.
가슴 다음은 허리, 그 다음은 엉덩이……. 수빈은 수첩에 숫자를 적어 넣는다.
다음에 체지방 측정 기능이 있는 체중계를 가져온다.
기계에 수치가 나온다.
수빈: 오늘 시점으로 체중은 73 킬로그램. 체지방율 32퍼센트. 가슴둘레 95센티미터. 허리둘레 36인치. 엉덩이 둘레 98센티미터. 아저씨 키는 어떻게 돼요?
가필: 165 정도…….?
수빈: 태욱인 라이트 웰터급이니까 60에서 63.5 킬로그램 사이에요.
공정하게 같은 급까지 내려서 결전의 날을 맞이해야죠.
가필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개중: 앞으로 매일 측정할 겁니다.
가필: 근데……. 태욱이랑 승석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개중: 글러브 벗고 뜨면 승석이한테 껨이 안돼죠.
근데 승석인 엄마랑 약속했데요.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쌈 안하기로.
가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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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승석과 가필만 마주 서 있다.
가필은 잔뜩 긴장해 있다.
승석: 앞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알려 주겠어요.
첫째, 이제부터 난 스승이고 아저씨는 내 제자야. 그러니까 사부 간에 예의는 반드시 지켜야 해요.
가필: 알았어.
순간, 승석이 가필을 매섭게 노려본다.
가필: …….요…….
승석: 둘째, 앞으로 일체 질문 같은 건 하지 마. 훈련 도중 아저씨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네’밖에 없어.
가필: …….네…….
승석: 셋째, 사부가 제자한테 아저씨, 아저씨하면 이상하잖아.
그래서 앞으로 아저씰 ‘짱가’라고 부를거야.
가필, 흠짓 놀란다.
승석: 왜? 맘에 안들어?
가필: (씨익 웃으며) 아니..요
승석: 마지막으로 다시 묻는데…….맞으면 아프고, 때리면 괴로워. 그래도 할거야?
가필, 잠시 머뭇대다가
가필: 이미 결정했어…….요…….
승석: 기초가 뭐라고 생각해?
가필: …….?
승석: 기초란 필요 없는 걸 버리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거야.
지금 짱가 머리와 몸에는 쓸데없는 걸루 가득 차 있어.
가필: …….
승석: 당분간 기초부터 다질 거야. 오늘은 이상 끝!
승석이 이야기를 마치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필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얼굴은 가필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이다.
가필이굴 구르는 가필.
승석: 올라 올 때까지 계속 해.
승석, 3층에서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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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석은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장작불까지 피워 놓고 편안한 자세로 계속 책을 보고 있다.
가필은 밧줄을 잡고 버티다가 떨어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어느 새, 동네 아이들 몇 몇이 가필의 주변에 모여 가필이 떨어질 때마다 깔깔대며 웃는다.
마침내 완전히 탈진해서 땅바닥에 큰 대자로 뻗어 헥헥대며 숨을 몰아쉬는 가필.
이 때, 착하게 생긴 여자애가 측은한 표정으로 먹던 요구르트를 뻗어있는 가필의 머리맡에
놓는다.
가필: (헥헥대며) 고맙다…….
그제야 승석, 책을 덮고 밧줄을 타고 내려온다.
승석: 오늘은 이상 끝!
가필은 바닥에 누운 채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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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필과 승석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승석: 밥은 꼭 집에서 먹어. 그리고 술은 당분간 금지.
가필: …….네…….
승석: 자, 그럼 내일.
승석이 이소룡처럼 인사를 한다.
가필도 한껏 폼을 잡으며 이소룡처럼 인사를 한다.
지하철.
가필, 지하철 라커룸에서 가방과 양복을 꺼내어 화장실로 들어간다.
EXT. 버스 정류장. 저녁
양복을 입은 가필이 지하철 게이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다.
언제나처럼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샐러리맨들이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도착하고 샐러리맨들은 올라타고 가필과 버스의 대결이 다시 시작된다.
시작과 동시에 버스는 절룩거리는 가필을 남겨두고 멀리 사라진다.
INT. 가필의 집. 침실. 아침
가필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려 한다.
가필이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근육통에 짧은 비명을 지른다.
팔, 다리 어디건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럽다.
가필, 침대에 앉은 채 스트레칭을 해 보지만 고통은 더 하기만 한다.
문 밖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V.O): 여보, 식사해요.
가필: 알았어. 지금 나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발을 내려 바닥에 겨우 선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밀려온다.
INT. 가필의 집. 주방.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