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9강 창세기 15:1~21 믿으니 의로 여기시고 55.12
26.09.23(수)
헤브론에서 흔들림 없이 믿음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에 1절 말씀을 우리 지난 시간에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만 하셨던 말씀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이후에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 여호수아에게도 그리고 다윗 신약의 사도바울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만한 죄악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게는 그와 같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언제나 자비와 긍휼의 대상으로 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에게 다가가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존재이어서 하나님께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자비의 대상으로 임해주시는가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으로 인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아 내가 너의 방패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출생은 프랑스 철학자의 말대로 죽음을 향한 제1보지 않습니까? 출생 자체가 죽음을 향해 있단 말이어요.
그러니 어린아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하루 살았다는 것은 죽음에 그만큼 하루 더 가까이 가는 것 아니어요.
그 유한한 존재가 유한한 기간만 살아가는 이 유한한 세상 속에서 무엇으로부터 완전한 보호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인간을 위한 완전한 방패란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주겠다.
하나님께서 방패되어 주시는 것보다 더 완전한 방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방패는
첫째로 죄에 대한 심판으로부터의 방패라고 그랬죠 둘째로 어둠의 유혹으로부터의 방패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죽음으로부터의 방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영원한 방패가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잘난 사람이어서 아니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은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그냥 상급이 아니라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상급으로 번역된 사카르라고 하는 히브리 말은 상이라는 뜻도 되지만 대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대가로 여러분들이 무엇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대가로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보다 더 큰 대가가 이 세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이 세상에서 부유하게 사느냐 가난하게 사느냐 남보다 높으냐 남보다 낮으냐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의 대가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한 의미로 승화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셨습니까? 아브라함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였기 때문입니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이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에 대한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을 향한 말씀이기도 하지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방패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일방적인 은총으로 인함인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2절입니다.
아브라함 이르되 주여호와여. 주여호와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르는데 여호와 하나님 혹은 하나님 이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아도나이
우리 교회 우리 교회 3부 성가대 이름이죠.
우리 창세기 4장 14절 한번 보실까요?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난 뒤에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에게 하는 말입니다.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 즉 내가 주어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성경 창세기부터 우리말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가장 먼저 부른 사람은 가인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히브리 원전을 보면 가인은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라고 불렀는데 우리말 성경은 당신이라는 말 자체가 3인칭으로 쓰여질 때는 극존칭이지만 2인칭에서는 존칭이 안 되기 때문에 주라고 바꾸어서 번역을 한 것이죠.
가령 예를 들어서 우리 아버님 당신께서는 나를 키우시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를 3인칭으로 당신이라고 표현할 때는 존칭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를 면전에 모셔놓고 당신 식사하셨나요?
이 큰일 날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4장 14절이 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아도나이 나의 주라고 부른 최초의 구절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지금 모시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주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주 여호와 하나님 나는 지금 자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있는 일하는 다메섹의 엘리에셀 아브라함 집의 집사였던 사람으로 알려지죠 이 사람이 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씨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집에서 함께 기르고 같이 사는 이 사람이 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언뜻 이 구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내용인 것처럼 여겨지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뭐라고 호칭해요. 주라고 호칭하지 않습니까?
나의 주님을 주님으로 모신 아브라함입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속에 있는 아브라함을 지금 보여주는 거여요.
창세기 12장 2절을 한번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하란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지금 언약을 주시는 장면이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네 몸에서 태어날 자식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리라 아직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잖아요.
아브라함에게 약속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13장 14절부터 16절까지 보십시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세기 12장에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13장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너의 후손이 땅의 티끌만큼 많아질 것이다. 네 자손이 그 정도로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약속을 하십니다.
10:4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손이 너의 몸을 통해서 나올 자손이라고는 아직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옛날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자식이 없는 경우나 혹은 내 자식이 있지만 특별한 어떤 상황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양자로 입적시켜서 상속자로 만들어주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창세기 16장 3절을 보면 한번 보십시다.
창세기 16장 3절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 후였더라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볼 창세기 16장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자기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남편의 몸에서 씨가 나올 수 있도록 자기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때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가까웠을 때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의 자손이 세상의 티끌만큼 많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자기 몸에서는 아직 자식이 태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 하나님께서는 나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 자손이 많아지게 하시지만 내 몸을 통해서 태어난 자식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을 양자로 입적해서 그 양자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고 나의 후사들을 크게 하시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는 과정이 이런 과정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질문한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4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너의 몸에서 태어날 너의 자식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룬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주셨습니다.
5절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묻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데리시고 밖으로 나가셔서 밤 하늘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저 하늘을 좀 보거라 별들이 얼마나 많으냐 네 몸에서 태어날 네 후손들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75세의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이주를 했는데 약 10년이 경과하기까지 아직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그 당시 나이로 85세가 된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을 데리시고 나가셔서 상수리 나무 한 그루를 보여주시고 아브라함아 네가 아직 네 몸에서 자식이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저 상수리 나무처럼 건강한 자식이 너한테서 태어날 거다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믿기도 쉽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 자식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고 네 자식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런데도 6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직까지 자식이 한 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이신칭의 이신득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
바로 그 핵심적인 주제가 바로 이 창세기 15장 6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여기시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하샤브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데 그런 것으로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본질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아니에요.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죄인이에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자신들은 여전히 죄인이여요.
본질적으로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의로워졌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신칭의를 뜻하는 이 구절 앞에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이고 더럽고 죄인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진정으로 내가 믿는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정말 의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여요.
그것이 전문적인 용어로 소위 성화의 삶을 사는 거잖아요. 내가 의롭지도 않은데 거룩하지도 않은데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거룩하다고 인정해 주셨거든요.
그렇다면 나는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부터 의롭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되는 것이죠.
내가 만약에 성화의 삶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본질적으로 더러운 죄인인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하나님을 아직까지 못 믿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 우리가 이 구절 앞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이를 아브라함의 의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거여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같은 죄인 우리 같은 하찮은 피조물인 인간이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여요.
오직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아무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싶어도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아니하면 믿음을 떠나서는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바른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지간이 어떤 관계인지 잘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다. 부부란 남남이잖아요. 서로 몰랐던 사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남남이 일평생 한 몸이 되어서 해로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믿음이에요. 믿음만이 부부가 서로 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부부가 바른 관계를 맺어갈 때에만 가정이 바로 세워지는 것 아니겠냐 말이죠.
피조물인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이 바른 관계 속에서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20:30
아브라함은 부족했고 불완전했고 허물 많고 흠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그 바른 관계 속에서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꾸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 성경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표현할 때는 하나님의 언약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강조할 때 여호와라고 칭한다고 그랬죠
네가 지금 자식이 없어도 하늘의 별처럼 네 자식이 많게 해주겠다는 것은 세상 사람의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거여요.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게끔 하기 위해서 너를 이끌어낸 여호와다 여기에서 이제 아브라함 너는 단순한 아브라함 개인 그 한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죠.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날 그 수많은 후손들을 다 합쳐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다 라고 당신 자신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8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주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우리말 성경을 보면 이 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불신해서 마치 무슨 표적을 구하는 것 같은 이야기인 것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지금 방금 6절에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시고 이것을 그의 의로 여겨주셨지 않습니까?
그런 아브라함이 그 다음 구절에 가서 하나님을 불신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는 말이죠.
8절에서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무엇으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빰마라고 하는 말은 무엇 안에서 혹은 무엇에 의해서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이 아브라함이 한 히브리 말 뉴앙스를 그대로 100% 살리면 이런 의미가 돼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나의 소유로 주시기 위해서 이 다음에는 무엇을 행하여 주시겠습니까? 이 말이에요.
불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확신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내게 주실 것으로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후속 과정으로 무엇을 해주시겠습니까? 라고 아브라함이 물은 것입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 염소와 3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 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짐승과 비둘기를 가져와라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한 제물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암소 암염소 숫양 왜 하필이면 이 짐승들은 3년 된 것인가?
짐승들은 3년이 되면 완전히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제물을 바치되 완전한 제물을 바치라 이렇게 말씀하신 의미죠
10절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개는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짐승과 집비둘기 산비둘기를 하나님을 위한 제물로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이 그 짐승들은 짐승들을 반으로 쪼개어서 쪼개어진 그 짐승의 부위를 서로 마주 보도록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그 제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놓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죠.
그런데 새는 쪼개지 말라
새는 쪼개지 않고 그냥 뒀습니다.
이 이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법을 명령할 때에도 새만은 쪼개지 않고 그냥 온전히 불에 태우도록 하죠.
그러니까 새는 쪼갤 만큼의 몸집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쪼개지 않고 그 대신 집비둘기 산비둘기를 마주 놓았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11절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라함이 쫓았더라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제물을 쪼개서 마주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지금 기다리는 거예요. 자 죽은 짐승이 그 땅바닥에 놓여 있으니까 당연히 솔개가 보겠죠.
그래서 솔개가 그 죽은 짐승의 사체를 쪼아 먹기 위해서 내려오니까 아브라함이 쫓았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지요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가려고 할 때 이 세상에는 반드시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그 방해하는 세력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솔개를 쫓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약속으로 인함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는 내 속에 있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어요 나의 방패되시고 나의 상급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므로 그 하나님을 힘입어 그 관계를 방해하려는 어떤 세력이든 우리들은 물리칠 수 있는 것이죠.
12절
해 질 때에 아브라함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이것은 아브라함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육신의 잠에 골아떨어졌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깊은 잠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일종의 혼수상태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신 뒤에 아담으로부터 여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는 히브리말이 타르데마입니다.
그 창세기 2장 21절을 제가 읽어볼게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해 채우시고
그러니까 아담도 마찬가지였고 지금 아브라함도 역시 그 아브라함의 의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의식을 하나님에게 전부 다 맡겨놓고 그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지금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해질 때에 아브라함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우리말 성경은 흑암과 두려움이 임했다.
그래서 흑암과 두려움이 같이 임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말이 아니고 히브리말은 흑암의 두려움이 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할 만큼 깊은 흑암이 지금 아브라함에게 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 빠져있는데 큰 흑암의 두려움이 아브라함을 엄습했습니다.
이제 뒤에 가서 보시겠습니다마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횃불의 형상으로 현현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무아지경에 넣으시고 하나님의 현현을 아브라함이 가장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흑암으로 배경을 까시는 것을 지금 우리는 알게 됩니다.
30:03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가서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400년 동안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미리 예고하고 계십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자식이 태어나지도 않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미래에 태어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종살이부터 할 것을 하나님께서 예고하셨단 말이죠.
우리는 이에 대해서 새 신자반에서 상세하게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식을 이렇게 사랑하지 못해요.
내가 뭔가 가진 게 많으면 내 자식을 편안하게만 해주려고 합니다. 내 자식을 호의호식시키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비단 금침에서 잠을 재우시고 구중궁궐에서 찬물 하나 만지지 않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건 자식을 망치는 길이거든요.
편안하고 잘 먹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 보십시오. 그 끝은 마약으로 갑니다. 편안하게 내버려 둬서 바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노예 생활이라는 가장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을 무위 도식하게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강인한 도구로 세워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훈련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죠.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원치 않는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부터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강인한 도구가 되도록 우리를 세워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훈련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자세인 것이죠.
14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백성을 400년 동안 노예살이 밑바닥 인생부터 시작하게 하시는데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는 나라를 반드시 하나님께서 징벌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징벌하시지 아니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상태에서 절대로 해방될 수 없거든요.
또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를 끝낸 뒤에 이집트에서 나올 때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큰 재물 금은 패물과 의복 등을 받아 나오잖아요.
여러분 노예살이하는 사람들이 그 노예들이 무슨 변변한 옷을 입겠습니까? 그저 거적더기나 가지고 몸을 거적더기로 몸이나 가리고 살았겠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재물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얻은 모든 것으로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짓기도 하고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노예 생활하던 그들에게 재물을 허락하시지 아니하시면 그들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민족으로서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예 생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인하게 훈련시키시되 그 상황 속에서도 너희를 위한 방패와 상급이 되시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너희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에서 그대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다. 아브라함 너는 이 세상에서 오래토록 살다가 평안히 너의 일생을 끝마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편안이가 아니라 평안이라고 하는 말씀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꾸 편한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예전에 비해서 얼마나 참 편해졌습니까?
옛날에는 자동차를 타면 자동차 창문도 이렇게 돌려서 여는데 지금은 삐익 하면 열리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 비해서 우리는 사지백체를 뭐 한 10분의 1도 움직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편안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안합니까? 전혀요 우리의 소득이 늘어나고 우리의 삶이 편해지는 만큼 이 세상은 대립과 갈등과 분열이 더 극심합니다.
사람들은 더 불안해하고 초조해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것은 평안이에요. 샬롬입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와 상급되심을 내가 믿을 때에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여건에도 굴하거나 흔들림 없이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평안을 약속해 주셨는데 그 시발점이 어디에 있는가
창세기 15장 1절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16절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보통 한 대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장성해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어린아이를 낳기까지의 기간으로 계산을 합니다.
그러니까 요즈음 한 세대라는 것은 보통 30년으로 계산하죠.
그런데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한 세대를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일생으로 표현했거든요.
그래서 이 당시에는 대개 한 세대라고 하면 100년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너는 4대 만에 되돌아올 것이다 하면 아까 13절에서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할 것이다 한 그 말씀과 일치되는 것이죠.
네 자손은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동안 노예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시키시는 것은 이집트 백성을 강인한 당신의 도구로 세워주시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거여요.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든지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언제든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고 다원적이여요.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민족성을 갖는 민족으로 훈련시키시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나안 땅에서 불의한 삶을 살고 있는 아모리 민족에게 400년 동안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에는 아모리 족속만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이 이후에도 나옵니다마는 여러 원주민들이 살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 아모리 족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을 대표하는 아모리를 비롯해서 폐역한 삶을 사는 그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에게로 되돌아오기까지 기다리시는 시간이 400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끝내 하나님께로 되돌아오지 않음으로 인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구로 삼아서 그들을 심판하게 됐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심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 심판은 하나님의 셈하심이라고 그랬죠 하나님의 상주심이란 말이죠. 내게 주신 건강과 시간과 모든 가능성을 내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썼는지 하나님께서는 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계산대 앞에서 그 셈을 받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에만 나의 방패와 상급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동행하는 바른 관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17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겐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제 사이가 캄캄해졌을 때 화로가 보이더니 갑자기 하나님께서 뿔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희생제물을 쪼개어서 벌려놓게 하신 그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40:47
18절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대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브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동안에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만 약속하셨는데 최초로 정확한 경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애굽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이 모든 땅을 너와 너 자손에게 준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제일 마지막에
네 자손에게 주노니 이렇게 되어 있죠.
우리말로는 주노니 현재형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히브리어 원전에는 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었다 이미 주었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자식은 아직도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지도 아니한 미래의 네 자식들에게 애굽강에서부터 유브라데에 이르는 이 땅을 이미 주었다 라고 하나님께서 다시 당신의 언약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1천년이 지나서 다윗과 솔로몬 때에 실제로 그 땅은 모두 이스라엘 땅으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하필이면 횃불 형상으로 나타나셔서 당신께서 아브라함에게 희생 제물을 쪼개어서 벌려 놓으라고 하신 그 사이를 지나가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계약을 맺을 때에 계약을 체결한 뒤에 계약 당사자들이 희생 제물을 죽여서 벌려놓습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같이 그 사이를 지나가요
우리가 지금 계약을 체결했는데 누구든지 이 계약에 대해서 신실하지 않는 계약 위반자가 나온다면 그 계약 위반자는 이 짤라진 희생 제물처럼 죽을것이라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지금 계약을 체결했는데 우리는 이 계약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는 의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짐승을 죽여서 쪼개어서 마주 대하고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줄게 자 이제 내가 너에게 명령한 희생제물을 벌려놔 그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걸어가게 하셔야죠
이젠 네가 이 사이로 걸어가 내가 너에게 복을 줄 터인데 이제부터 네가 나와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너는 이렇게 된다고 너 스스로가 알아야 돼 그래서 이제 네가 이 짐승 사이로 지나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야 될 터인데 아브라함은 그냥 내버려 두고 하나님 당신께서 쪼개어진 희생 제물 사이를 지나가시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언약한 이 언약을 반드시 성취한다고 아브라함 앞에서 당신 자신을 걸고 지금 맹세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는 이때 한 번만이 아니었죠.
창세기 22장 16절
하나님께서 100세에 아브라함이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번제로 모리야 산에 가서 실제로 바치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그 믿음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16절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음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때에도 모리야 산정에서도 아브라함에게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맹세하셨습니다. 여러분 맹세는 누가 하는 거예요.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 앞에서 큰 사람은 맹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맹세를 거듭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을 자르시고 그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당신의 언약을 지킨다고 맹세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죠
아브라함의 질문에 대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이 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다음에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시겠습니까?
그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몇 월 며칠 날 너한테 이 땅을 줄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당신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이에요. 믿음 이외에는 없다는 거죠. 너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나의 언약을 믿는 거라는 것입니다.
언제 이 땅이 네 이름으로 돌아갈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네가 나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을 믿은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제로 아브라함의 몸에서는 적자 이삭 서자 이스마엘
나중에 후세에 가서 아이들도 또 낳았지만 그 아이들은 다 성경에 없고 실제로는 이 두 적자 서자 2명밖에 낳은 셈이 아니지만 그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졌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서 기독교만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입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전 세계 인구의 10%입니다.
유대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지요
이슬람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그러죠 기독교인들 우리 같은 이 극동의 사람도 아브라함을 우리 조상이라 그러잖아요.
60억 인구 가운데에 40%가 아브라함을 자기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믿음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만이 우리의 방패이시고 상급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서 맹세하십니다.
나를 믿기만 하면 반드시 당신의 뜻 속에서 당신의 모든 언약을 이루시겠다고 말입니다.
하박국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하박국이 살던 시대에는 세상이 폐역했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이 득세했습니다. 악한 사람들의 강포가 날이 갈수록 그 도를 더 심해 심해갑니다.
하박국이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불의한 자가 이깁니까?
왜 정의의 등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입니까?
왜 악한 자에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습니까? 이 질문을 했던 하박국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얻었던 해답이 무엇입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 믿음밖에 없다는 것이어요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아모리 족속이 폐역하지만 당신의 뜻을 위해서 400년 동안 내버려 두시지않아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믿음으로 훈련시키시고 키우시는데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훈련장에서 하셨습니까? 태릉선수촌 아니잖아요. 폐역한 이집트에서 그 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은 질문 했겠지요.
50:54
하나님 왜 우리가 여기서 노예살이 해야 합니까?
왜 저 불의한 사람들의 종살이를 해야 할 것입니까? 해답은 뭡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
왜 그 순간에도 방패되시고 상급 되시는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 속에서 한 사람 개개인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그 사실을 깨닫고 하박국의 결론을 어떻게 내립니까?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내 우리에 양이 없고 내 과수원의 소출이 없다면 나가서 데모해야죠 아니라는거에요. 그래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할 것이다.
왜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이제는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속에 계십니까?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계십니까?
어떤 고통 속에 계십니까? 그래도 믿으십시다.
우리가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게 되고 믿을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자기의 몸에서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혹 자기 집에서 자기가 기른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고 너의 몸에서 직접 태어날 자가 너의 상속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가셔서 밤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너의 자식이 저렇게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브라함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아도나이 주님으로 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갔고
믿음 속에서 방패되시고 상급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그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되어져가는 세상의 불의 속에서 그 속에 절망도 있었고 절규도 있었지만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믿음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세상이 어렵습니다. 혼돈스럽습니다.
그러나 믿음만이 우리를 살리고 믿음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 모두의 믿음을 우리의 의로 인정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지게 하시어서 우리의 방패되시고 상급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성취됨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을 하박국 선지자처럼 찬양하며 감사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55.0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