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을 출력하다 / 이정숙
몽골로 떠나기 몇 달 전부터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로의 동경과 떠남은 그것이 주는 감탄스러운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그 풍광과 낯섦에 나를 대면함으로써 나의 내면에 있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또한, 몽골 여행은 딱딱하게 고체성 사유가 내 안에서 얼마나 굳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계기다. 몽골인들의 품성과 생활 그리고 그들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그린 시간의 흔적들, 그것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동이고 가슴 깊숙이 숨어있는 또 하나의 나를 찾는 일이다.
첫길은 언제나 설렌다. 그 떨림이라니, 확 트인 초원에서 맛보는 해방감과 행복은 입에 살살 녹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문명이 덧씌워진 신발을 벗고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온몸으로 자연을 향해 한발씩 내디딘다. 경락마사지를 받은 느낌처럼 마음이 액체화되어 벌꿀오소리가 꿀을 만난 듯 나는 정신없이 초원을 흡입한다. 녹색의 푸른 기운이 솟는다. 전생의 삶이 이곳이었듯 유목민의 기질이 내장된 듯 낯설지 않다. 문명을 입어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데도 정신은 탈색된 자연이다. 이곳 자연이 성스러움의 현현이다.
람 소리, 구름 두둥실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빗소리, 바람이 꽃을 스쳐 가는 소리, 상상력의 호르몬이 나도 모르게 분비된다. 도시의 번잡한 생활은 소음에 가려 내 안에서 움터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연에서 다양한 언어를 배워 회색빛이 아니라 초록의 언어로 내 몸에 문장을 새겨본다. 열광과 속삭임, 여행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삽화며 삶을 도탑게 해주는 정신의 밥이다. 수국꽃이 흙에 따라 흰색, 청색, 분홍, 보라로 변색하듯이 몽골 땅에서 나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연은 어머니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뭔가를 주고 있는 존재로서의 자연, 삶의 망망대해를 건너오면서 나는 어머니가 그립듯 자연이 그리웠다. 나머지 생을 위한 마음의 힘을 쌓아주는 야생의 초원, 빛이 희미해져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 받는다.
몽골의 야생이 설렘과 호기심과 질문과 신선함으로 마음을 환하게 여행을 빛내고 있다. 시간을 쪼개어 뛰어다니며 살아야 했던 피로한 일상에서 벗어나 좋다. 분주함에 가려졌던 내 감각이 기지개를 켠다.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하고 어제와 다른 색다른 오늘을 축복하듯 만난다.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온몸으로 전진하는 자벌레처럼 촘촘히 시간을 걸어간다. 바람에, 초원에, 꽃과 새 그리고 야생동물들에게, 밤하늘의 별에 취해 내게서 멀어진 것들을 재생시킨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풍요로워지는 초원, 풀들이 일렁이고, 양떼도, 소떼도, 말떼도 바람처럼 우르르 몰려다닌다. 바람에 살근대는 꽃잎들의 눈부신 춤 또한 멈춤과 정지가 한순간도 없다. 몽골초원에는 즐거움이 통통 뛰어다닌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 역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간다. 그들의 삶에는 바람의 냄새가 스미어 유형의 물질조차도 오랫동안 바람이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견고한 것들에 대한 믿음을 종교처럼 떠받들며 사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풍경이다. 지루한 대지에 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도 편안해 보이는 그들의 생놀이에 귀를 기울인다. 야생에 단박에 취해 시방 내 몸에는 초록의 풀냄새가 풋풋하다.
야생이 파도치는 몽골은 고체적 사유를 거부하며 드넓은 초원에 바람이 방문하면 초원도 이내 바람이 된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방문객과 그를 맞이하는 주인을 따로 분간할 수가 없다. 방문객과 주인이 서로 대면하면 그 즉시로 하나를 이룬다. 초원은 주인, 바람은 방문객이라는 경직된 생각을 지운다. 조심성 없는 바람은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고 초원이 제 영역이듯이 불어댄다. 초원은 그걸 알아 바람에 닁큼 품을 벌린다. 이 또한 굳어진 사유를 허락하지 않은 몽골풍경의 특색이다. 바람의 땅, 초원의 땅, 몽골의 꽃들도 무제한의 자유다. 몽골에서는 묵직한 것들이 가벼워지고 바람처럼 유랑적이다. 초원은 강제적 지배가 없다. 말 그대로 여기서는 식물뿐 아니라, 말이나 염소, 낙타 같은 동물들도 자연스러운 자연이다.
멀리서 보면 양 떼가 초원에 찍힌 하얀 점 같다. 이런 풍경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저할 틈도 없이, 번쩍 ‘평화’가 떠올랐다. 세상은 어울림이고 자연은 조화 자체구나. 마음속에 무엇인가로 가득 차오른다. 그것은 행복? 혹은 기쁨? 아니다. 모든 것이 비워지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가벼움이다. 가벼움의 넉넉함으로 어두운 밤하늘과 그사이 몰래 뜬 별에 취한다. 전기가 부족해 10시 정도에 불을 끄는 이곳은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본래의 밤이었다. 진정한 어둠이 초원을 깊게 덮는다. 불만 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콘센트 작동도 안 되어 핸드폰 충전도 못 한다. 전기를 수거한 것은 어쩌면 관광객들이 저 하늘의 별을 더 크게 느끼며 바라보라고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밤새 어둠이 게르 밖에 각자 본연의 제 모양을 닮은 이슬들을 매달아 놓았다. 쉬이 볼 수 없는 에델바이스꽃이 무리를 지어 모래바람에 춤을 춘다. 작은 도마뱀들이 이리저리 모래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길을 만든다. 저들을 버티며 살게 하는 힘은 무얼까.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며 자연을 쪼개어 살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사는 것, 아무런 집착 없이 어디로라도 떠날 수 있는 유목주의의 비움?
입은 궁색했으나 몽골초원의 천진난만함에 눈은 내내 군침을 흘렸다. 초원의 매력이 함짓방이다. 자연 앞에서 눈이 유혹당하고 몸은 생기로 가득 찼다. 저 멀리 초원에서 목동의 요들송이 들려오는 것 같다. 식량을 비축한 여름 개미처럼 몇 계절을 잘 지낼 수 있겠다.
[이정숙] 수필가. 『수필과 비평』등단.
국제펜 한국본부 전북 회장, 전북문협 수필분과위원장 역임
* 『계단에서 만난 시간』『꽃잎에 데다』『내 삶의 어처구니』 외
* 신곡문학상, 온글문학상, 작촌문학상 등
몽골여행을 두 번 다녀와 여행기『계단에서 만난 시간』을 출간하신 수필가의 글을 참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저도 몽골을 무지 동경하거든요. 언제 그 황토빛 사막바다에 발자국을 찍어볼까요?
빛 오염으로, 밤 문화로, 밤하늘의 별이 묻혀버려 우리는 싸락눈 같은 별무리를 보기가 어렵지요. 바람처럼 들풀처럼 자유로운 몽골의 자연을 글을 통해 상상해 봅니다.
첫댓글 느낌을 느껴봅니다.
사진으로 보아도 맑고 깨끗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