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이야기
(열왕기상 17장 8-16절)
8-12.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엘리야의 식수였던 그릿 시냇물이 말라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위하여 새로운 곳을 알려주신다. 그곳은 곧 사르밧으로, 엘리야는 가뭄이 끌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사르밧은 이세벨의 고향으로서, 이세벨이 여호와를 믿는 신앙인들을 탄압하고 있을 때, 엘리야는 이세벨의 고향 깊숙이 숨어버린 것이다. 이 점은 마치 바로의 왕궁에서 온전히 양육받은 모세와 유사한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의 지배자인 사탄의 나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사탄으로 부터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 그의 믿음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를 구원하신 것이다.
과부는 남편이 없으므로 인해 사회, 경제적 지위가 형편없는 존재였다. 아무 힘없는 과부를 통해, 엘리야가 음식을 제공받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과부와 병든 자를 고쳐주고 돌보아 주시기 위한 것과 같은 것이다. 과부를 통한 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통한 부활생명을 예표한다.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나무가지를 줍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나뭇가지를 주워 땔감을 삼을 수 밖에 없는 과부의 극빈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당시의 이스라엘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영적으로 말씀의 기갈 속에서 허덕이는 이스라엘인 것이다.
물을 조금 가져다가 마시게 하라는 요구는 당시 가뭄이 심한 곳에서 들어줄 수 없는 과도한 요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물을 찾으러 가는 과부에게 다시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물과 떡은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물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어주는 생명수, 떡은 제자들에게 찢어 주는 부활의 몸이다. 하나님은 과부(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부활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그 이유는 하늘의 능력을 부여받기 위함이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민수기 2장 1절에서『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소제는 고운 가루로 드렸다.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고운 가루로 옛것이 죽으면, 성령으로 하늘로 부터 태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겉으로는 엘리야의 요청에 과부가 당황한 까닭은 그나마 남은 밀가루는 최후의 만찬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떡 하나를 요구한 엘리야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과부에게 자신의 전부를 요구하는 엄청난 요청이 아닐 수 없었다. 훗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이 과부가 신앙의 표본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녀가 순종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4장 25-26절『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당시 예수님이 자라나신 나사렛의 한 회당에 들러, 이사야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이 응하게 되었다고 말을 하므로 예수님이 메시야 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어릴 때부터 보고 안 지라, 받아드리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4장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과 나누는 떡과 포도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장차 부활생명으로 물과 떡을 통해서 거듭나서 영생의 몸을 얻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된다. 우상숭배로 찌든 백성들이 바알의 선지자들을 벗어나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통해서 하늘의 생명수를 맛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13-14.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엘리야가 지적하는 과부의 두려움은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서 부정적이고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어야만 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부활생명이 믿음으로 다가온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고, 그 다음은 그 부활을 믿은 제자들일 것이며, 나아가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부활은 죽었던 영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오는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장치 육체가 죽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믿기가 두려운 것이다.
과부에게는 최후의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바치라는 것이다. 성도 역시 자기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이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육체의 몸은 죽어야 할 한정된 몸이지만, 부활의 몸은 죽지 않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삶이 이루어진다.
15-16.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사르밧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시기는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였을 것이다.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를 영접함로써 선지자의 보상을 받음은 물론 자신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에게까지 구원의 은총을 끼쳤다.
영적으로 죽어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엘리야를 통하여 바알의 우상숭배자들을 벗어나 부활생명으로 거듭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엘리사가 가난한 과부에게 기름을 가득 채워주었던 기적과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써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연상케 한다. 이것은 장차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