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춘이 엄마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 출처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2008
● 詩 : 윤제림 - 1959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87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미미의 집』『사랑을 놓치다』 등이 있음.
● 낭송 : 황규관 - 시인. 196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88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철산동 우체국』『물은 제 길을 간다』『패배는 나의 힘』 등이 있음.
한동네에서 십 수 년을 살아도 옆집 엄마들의 이름은 모르고 살았지요. 저 엄마는 동분이네 엄마, 저 엄마는 연주네 엄마, 저 엄마는 영식이네 엄마였을 뿐. 엄마는 다른 엄마를 또 그렇게 불렀지요. 나의 엄마도 큰누나를 낳고서는 희숙이네 엄마였고, 여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후로는 양희네 엄마였지요. 엄마는 자식을 앞세웠지요. 당신에겐 자식보다 더 멋진 간판이 이 세상에 없었겠지요. 당신에겐 자식의 앞날을 위해 올리는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가 이 세상에 없었겠지요. 갑수와 병섭이와 상규와 병호는 모두 잘 살겠지요. 갑수야, 병섭아, 상규야, 병호야, 잘 되거든 엄마 덕인 줄 알아라!
2009. 6. 8.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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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각산의 바람과 노래 원문보기 글쓴이: 흐르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