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에서 50여년만에 대구흥사단을 찿아"를 재경달구벌카페에 올렸더니 정말로 아주~ 먼, 지구 남반부의 뉴질랜드에서 이 글을 보고 카톡으로 보내온 것을 카페에 옮겨 봅니다.
박현득;
때로는 박 단우님. 때로는 병저이 형님 하고 불러 드렸는데.... 혹 기억하시는지요.... 고A67 박현득 입니다. 평안 하셨는지요? 그렇군요 안죽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문안인사 여쭙니다. 혹 기억나시면 답 주십시오
박병전;
지천 촌놈 현득이네.
여드름이 많았던 것과 신동재아래의 과수원, 신동재 길옆에 살던 경북공고 다니던 박현장?이 문득 생각 난다. 이거 얼마만인가? 자네가 공전졸업후 경희대에 편입, 졸업후 구미의 한국반도체에 입사했을 때 이니까 40여년전이네. 이젠 길거리에서 만나도 얼굴 도 모를것 같네.
외국에 있다던데 귀국 했능가? 아무턴 반갑네.
박현득;
맞습니다.
전 삼성전자 통신사업부문 초기 맴버로 수원을 거쳐
서울 사옥에서 삼성전자 생활을 시작해서 구미 한국전자통신 인수때
인수맴버로 구미로 와서
화상무선 개발실장을 끝으로
영국 빌링햄의 팩시밀리 유럽전진기지로 갔습니다.
몇년 후 중국에 삼성과중국의 통신설비 합자회사 법인장으로 다시 나갔습니다.
거기서 건강문제로 삼성을 정리하고 건강회복차 뉴질랜드로 왔습니다.
잠깐동안 있은것 같은데 20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요즘은 건강도 제법회복되어 있고 평안한 나날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하던일 들은 연전에 다 리타이어했지요.
형님에 대한 여러가지 추억중에 저의뇌리에 확실히 박혀있는것 중 하나는 재수 형님 장례때 군복입으신 채로 직각보행하시면서 슬픔을 함께 하셨던 일인것 같습니다.
전 그동안 안형 (안형수 선배님 - 그때 우린 그냥 안형안형 하고 불렀기 때문임) 소식이 늘 궁금하였는데
병저이 형님께서 달구벌에 올려 놓으신 글보고 30여년전에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공전 학생회장 선거때 안형이 저에게 여러면에서 지도도 해 주시는 등 선한 빚을 지워 주셨는데
언젠가는 갚아야지 하면서 몇 사람들 통해 안부를 물어왔으나 다들 모른다고만 했어요.
참으로 세월이 밉고 야속합니다. 안형의 씨익 웃으시던 일품짜리 미소가 저의 뇌리에 늘 남아있고 그리운데요......
지금은 천국에서 편히 쉬시고 계시겠지요.
늦게나마 하늘의 큰복을 빌어드렸습니다.
형님
앞으로 가끔은 메세지 드리겠습니다.
형님께서도 이런저런 소식 주시기 바랍니다.
잘 아시겠지만 여긴 지구의 벽촌이라 평안을 누리는 반면 외로움에 대한 댓가는 치뤄야 하는 곳이니까요. ㅎㅎㅎ
늘 건승하시고 평안하십시오.
박병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 곳. 조금 알만할 사람들의 로망!
좋은 그 곳에서 평안하게 생활하는 자네가 부럽네 나는 10여년전에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놀이터로 텃밭 200여평과 10여년을 지냈는데 힘에 부쳐서 이젠 그만 할까 하네. 지난5월로 칠순을 맞은 초노의 청춘이 되었다네.잊지 않고 소식주어 고맙구려.
건강 하시게
대구흥사단카페도 글로벌시대에 들어 섰군요. 뉴질랜드 말레지아 캐나다.. 또 어디 에서 단우들의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병호단우께선 이름은 기억 나는데 얼굴은 가물거립니다. 모두가 일흔을 바라보니 세월이 너무 빠르군요 우리 모두는 그 자리에 두고 세월만 가게 할 수 는 없는지요?
첫댓글 박현득 단우님 예전에 피리 좀 불지 않으셨어요? 소금 이나 대금였든가?
차돌이님, 기억력 대단하시네. 칠곡 지천 신동재에서 갈고 닦은 솜씨가 대단하였지요
카페가 차~암 좋습니다.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둥지를 지키고 있다는 또 다른 보람이 있네요.
대구흥사단카페도 글로벌시대에 들어 섰군요. 뉴질랜드 말레지아 캐나다.. 또 어디 에서 단우들의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병호단우께선 이름은 기억 나는데 얼굴은 가물거립니다. 모두가 일흔을 바라보니 세월이 너무 빠르군요 우리 모두는 그 자리에 두고 세월만 가게 할 수 는 없는지요?
연재 단우님, 건강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