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꽃피운 유교에서 몸이란 ‘조상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조상의 조상의 조상, 또 그 조상의 조상은 누구일까 하는 따위의 질문은 유교의 전통에는 없다(이렇듯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내 몸은 부모의 소산이고, 부모는 그 부모의 소산일 뿐이다. 유교에서 개인의 의미를 규정하는 최대 단위는 가족이다. 내 몸은 가족의 일부인 것이고, 그 주인은 부모이므로, 자신의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몸이란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해야 할 무엇이지, 그 자체나 일부를 마음대로 없애버리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유교에서도 몸은 기독교나 불교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훈육과 통제의 대상이었다. 몸은 마음을 닦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며, 그래서 몸의 욕구는 통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교에서 말하는 몸의 통제와 훈육의 의미는 다른 종교와 조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유교가 몸의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사회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즉 유교에서는 몸과 마음을 동등한 것으로 보았고, 이를 닦는 것을 사회적 행동의 출발점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이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결국 유교에서의 몸은 사회적 평가와 판단의 일차적 수단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유교가 통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 관리 등용의 잣대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는데, 여기서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 즉 몸의 외양을 뜻하는 것이다.
혈이나 장기기증·시신기증·문신이나 수술 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통적 거부감은 많은 부분 유교적 신체개념의 탓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옷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관심(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서구의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옷에 대한 관심과 소비성향이 높다)이나 명품에 대한 높은 선호 등에도 유교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 몸은 악의 근원인가? 그렇다면 악이란 무엇이며, 선이란 무엇인가?
위의 <1>번 답의 글에서 보듯이 유교에서는 몸이 악의 근원이라고 보지 않는다.
유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
中庸(중용)이 아닌 상태가 惡(악)
中庸(중용)을 이룬 상태가 善(선)
중용(中庸)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는 유교의 개념.
중용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우선 〈서경 書經〉에는 "진실로 그 ''중용''을 잡도록 하라"는 말이 있다.
<3> 왜 우리는 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인가? 오늘날의 구체적인 몸 담론들과 관련하여 (연예인 누드, 웰빙 기타) 말해보자.
유교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기 힘들어서 다른 전문지식을 이용하였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고 욕망은 우선 몸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몸은 욕망의 바탕이자 최초의 발현 장소이다.
거리를 걷거나 텔레비젼, 영화를 보아도, 사람들이 만나거나 잡지를 펼쳐도 온통 몸이다. 다이어트, 성형수술, 에어로빅, 선탠, 미스코리아, 슈퍼모델, 게다가 남자의 성형 수술까지. 몸에 대한 관심은 남녀 구분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이같은 몸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몸을 다듬고 몸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몸'은 이 시대의 한가운데서 연구자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몸은 정녕 꿈을 실현하는 매개물인가. 아니면 이성(정신)의 몰락 위에 쓸쓸히 남게 될 욕망의 껍데기인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에 의지해 살아가면서도 육체를 너무 간과해왔다.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사에서 육체는 진리를 위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 '영혼의 감옥'정도로 비하해 왔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도 몸 경시의 한 표현이다. 정신을 중시하고 육체를 가볍게 여기는 이러한 이분법은 서구 근대이성주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이성 정신 우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왜 몸이 이 시대의 주된 담론거리가 된 것일까?.
첫째, 이유로 폭발적인 소비문화를 들 수 있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상 소비는 필연적이고 그 소비는 물질과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 열기도 몸 담론을 뒷받침한다. 인간 이성을 신뢰하는 형이상학에 도전장을 내면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에 억압당했던 낭만적인 감성과 육체를 주요 테마로 내세웠다.
그 예로 지금 한창 인기를 얻는 웰빙 문화가 있다. 물질의 풍부함으로 사람들은 소비의 욕구를 몸을 더욱 가꾸고 아름답게하고, 건강하게 하는 곳에 사용한다. 이것은 남들에게 자기자신을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한 형태로 이런 웰빙 문하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둘째,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통제되고 착취당해 왔었는지 논의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확산 역시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셋째, 환경오염에서 비롯된 기형아 탄생, 인공장기의 등장으로 인해 몸에 대한 고전적인 시각이 무너지고 새로운 의미를 띄게 됐다는 점도 몸 담론의 확산을 재촉했다. 이밖에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인물인 사이버스타의 출현으로 신체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사실도 몸담론의 배경이라고들 말한다.
그 예로 사람들의 성형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쉽게쉽게 맘에 들지 않는 곳을 자기가 원하는 데로 고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성형이 시행되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예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신체를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고 그렇게 변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 학계의 몸연구는 '기氣철학'을 중심으로 한 전통 신체론의 복원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논의는 신체론 몸학이 서구의 것이 아니라 본시 우리의 전통철학과 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해에서 출발한다.
이정우 서강대 교수는 '조선후기 철학자인 최한기 등을 통해 발전했던 전통 기철학의 복구, 신체와 권력과의 관계, 사이버스페이스 시대 신체의 위상 등 사회과학적 탐구가 몸학의 핵심과제'라고 전망한다.
몸, 몸에 대한 욕망의 폭발, 거부할 수 없는 몸의 시대. 그러나 지성들은 '육체의 해방'이라는 낙관론에 쉽게 경도되지 않는다. 몸의 붐이 상업적 소비적 차원을 넘어서야 하고 그래야만 몸학의 궁극적 목표인 '육체와 정신의 행복한 만남'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댓글 [3] 좋은글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담론들도 좋았습니다.
(3)마지막 주제에 무게를 두셨네요.. 나머지 주제들도 자신의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자신의 생각을 더 많이 서술하셨다면 정말 좋은 글이 될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3]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으면 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4] 공부를 많이 했네...*^^* 희노애락중 발이중절한 것이 사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