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글씨
나는 삼년 전부터 손글씨를 쓰고 있다.
원고지의 한칸 한칸을 시편 23장으로 또박또박 채운다. 나는 지독한 악필(惡筆)이었다. 초등학교부터 한글을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국어책에 있는 내용을 공책에 몇 번 써오라는 숙제는 있었다. 그걸 마지못해 무성의하게 했다. 선생님도 글씨체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글씨는 엉망이 됐다. 그래도 삶에 별 지장이 없었다. 입시가 모두 객관식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법대로 간 후 문제가 생겼다.
주변에서는 글씨 때문에 내가 고시에 합격하기가 힘들 것 이라고 했다. 고시는 붉은 줄을 친 양면 괘지 팔십장정도에 나흘 동안 한자까지 섞어 손 글씨로 문장을 쓰는 일이었다. 글씨를 잘 쓰느냐 못쓰느냐에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고도 했다.
대학시절 나의 글씨를 본 교수님은 손으로 썼는지 발로 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모욕을 주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교수님은 내게 명필로 쓴 다른 학생의 답안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나는 글씨가 미남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나의 글씨는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소설에 나오는 추남이었다. 사람들은 글씨체는 타고난 것이라고 했다.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영점 일점 차이로 고시에서 몇 번 떨어졌다. 주위에서는 글씨만 괜찮았으면 아마도 합격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래도 세상은 속단하지 말고 살아봐야 한다.
나는 지금도 나의 고시 답안지를 채점해 준 시험위원에게 감사한다. 고시 채점은 방안에 갇혀 수 천장의 손으로 쓴 글씨들을 봐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런 속에서 알아보기 힘든 악필을 만나면 속에서 화가 끓어오르고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고 한다.
글씨가 못났으면 모든 게 시원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좋은 점수를 주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고시에 합격했던 걸 보면 하나님이 개입해 시험위원이 인내하게 만들었던 게 틀림없다. 게다가 일등급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분만 잘 믿으면 바늘구멍도 통과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내가 경험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내가 사법시험 면접위원이 됐다. 시험을 관할하는 당국에서는 필요할 경우 면접시험을 보는 사람에게 손글씨를 쓰게 해서 그 필체를 파악해 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필체를 감정하는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
“손 글씨가 불규칙하게 크고 작은 사람은 일관성이 부족하고 예측불허의 일을 벌일 수 있습니다. 가로획이 아래로 쳐지는 사람은 요주의인물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소극적으로 지시만 받으려고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글씨가 역삼각형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법조인이 되도 일을 낼 우려가 있습니다. 글씨가 특별히 큰 사람은 주목받으려는 욕구가 강할 수 있습니다.”
글씨를 통해 그 사람의 숨어있는 인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나의 못생긴 글씨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경매에 나온 소설가 조정래씨의 초창기 육필 원고를 산 적이 있다. 가난 속에 원고지를 정상적으로 사용하기 아까워서 뒤의 백지인 면에 만년필로 깨알같이 쓴 소설 초고였다. 작고 예쁜 글씨들이 가로세로 반듯하게 면 전체에 꽉 들어차 있었다. 수정한 부분도 거의 없었다. 글씨만 봐도 그가 성공할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원고를 지금도 보물같이 보관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의 일산에 있는 작업실에 가 본 적이 있다. 책상 위에 몽당연필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원고지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쓰는 작가였다. 그의 글씨는 시원한 바람에 반짝거리며 날리는 나뭇잎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잘 생긴 글씨였다.
초등학교때 놓쳐버린 손글씨 연습을 칠십 고개를 넘으면서 하게 됐다. 시편이십삼장을 쓰는 걸 나의 기도로 삼고부터였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기회에 평생 잘못된 글씨 쓰는 버릇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기울어져 있는 세로획을 기둥같이 반듯하게 세우기로 했다. 가로획이 제멋대로 길어지거나 오른쪽 밑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조심하기로 했다. 점을 하나 찍은 것 같던 이응이라는 자음을 동그라미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크고 작고 불규칙하던 글씨의 크기를 고르게 만들어 보려고 애쓴다.
시편 이십 삼장을 삼 년간 그렇게 손 글씨로 반복해 쓰니까 조금씩 글씨가 바뀌는 느낌이다. 글씨가 바뀌니까 마음도 변하는 기분이 든다. 컴퓨터에 대고 말만하면 텍스트가 만들어져 나오는 세상이다. 굳이 손글씨 연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손 글씨는 인간의 영혼을 바꾸어주는 어떤 힘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처] 손 글씨|작성자 소소헌